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에밀 뒤르켐 지음, 황보종우 옮김, 이시형 감수 / 청아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8.7







 인문학 도서, 특히 사회학이나 심리학, 과학 도서는 늘 읽기 버겁다. 현재의 내 식견으로는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려 애쓰기 보단 저자의 논리, 책을 쓴 저의를 파악하며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마저도 쉽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불가항력에 따른 나름의 독서 방법이다.

 이 책은 내가 쓰려는 어떤 소설을 위해 읽게 됐다. 내 소설의 습작을 읽은 어떤 지인분이 '뒤르켐의 <자살론>이 보이기도 한다' 고 평을 남겼는데 난 그 책을 읽지 못해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흉내를 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런 책을 읽지도 않고 창작에 임했다는 게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슬슬 그 소설의 퇴고에 박차를 가할 때가 다가와서 참고 문헌 삼아 읽게 됐다.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움찔하던데, 어떤 사람은 '왜, 자살하려고?' 라며 농담인지 뭔지 모를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못한 대답을 하자면 자살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살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닐까..?

 무려 1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책인데 당시의 반응은 어땠을지 사뭇 짐작이 간다. 21세기의 나도 <자살론>을 읽으니 이상하게 비춰지는데 하물며 19세기의 저자가 자살을 연구한다니 얼마나 낯설게 보였을까. 책 속에는 그런 시선에 대한 작가의 논리적 주장과 그에 대한 노력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었는데, 그야말로 차가운 열정이 물씬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상한 말로 들릴 텐데, '차가운 열정'이라니 무슨 소리냐면 저자의 이성적 태도가 방대한 분량에 걸쳐 열성적으로 나열됐기에 나오고 만 표현이다. 저자는 사회학에 대한 정의를 비롯해 자살에 대한 거의 모든 편견에 대해 하나 하나 세밀하게 따져본다. 읽으면서 흡사 탐정이 추리소설 말미에 사건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추리를 펼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표와 그래프가 수시로 나열되는데 - 인상 깊었던 건 가끔 저자 수치를 언급할 때 잘못 기술한 부분을 역자가 고치고 그걸 역주로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꼼꼼하기가 저자 못지않은 역자였다. - 저자의 꼼꼼함은 물론이고 연구의 목적에서도 상당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자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질릴 정도로 유익한 책이 아닐 수 없는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솔직히 저자가 쓰는 용어가 너무 어려워 내 것으로 만들기 힘들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읽었는지조차 의심 -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자살'을 책의 내용에 대입하며 읽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 스럽다. 자살이라... 나는 자살을 사회가 저지르는 살인으로 개인의 부도덕함이나 정신적 미숙함으로만 자살을 규정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는데,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다면 이 부분 때문에 지인이 내 소설에서 뒤르켐을 느꼈다고 말한 것일 터였다. 만약 그렇다면 저자에게서 동의를 얻어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독서가 아니었을까. 누구 마음대로 동의를 얻어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반갑지 않을 리 만무하다.


 애꿎은 아쉬움이지만 이 책이 더 나중에 저술됐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이만큼 썼을 정도면 더 많은 자료가 갖춰진 지금에 와서는 얼마나 대단한 연구가 이뤄졌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학에 대한 저자의 자세, 그러니까 이성적 관찰을 중시하는 태도는 오늘날은 물론이고 미래에서도 귀감이 되고도 남으니 의미는 없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들었다. 시대를 잘못 났다고 하긴 그렇지만 때론 동시대에 같이 살았으면 하는 인물이 꼭 있다. 참으로 애꿎게도 말이다.

물론 사회학의 미래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가 끝나기를 바란다. 만일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사회학은 다시 과거처럼 불신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성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퇴보를 반기지 않을 것이다. 이성의 발전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인간 정신은 심각하게 퇴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 11p




사회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독단적 주장을 일삼으면서 증명을 하려는 요구를 공공연하게 회피하지 않아야만 사회학이 하나의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 159p




우리는 사회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이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는 느낌이 없이는 사회 자체의 퇴락을 의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좌절과 실망의 물결은 특정한 개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해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 258p




그러므로 자살이 비도덕성을 감소시키는 바람직한 효과가 있고, 그 확산을 막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한 주장이다. 자살은 살인의 파생물이 아니다. 물론 이기적 자살을 일으키는 도덕적 특질과 문명인들 사이에서 살인을 감소시키는 도덕적 특질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기적 자살을 하는 사람은 살인하려다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살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한 사람의 슬프고도 우울한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살인과 같은 종류로 취급할 수 없다. - 463p




필연적인 불완전성은 병이 아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병이라고 한다면, 완벽한 것은 없으므로 모든 것이 다 병이라고 해야 한다. - 4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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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