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8.5


 10년 전에 읽었을 땐 상당히 이색적인 추리소설이라며 감탄했지만 다시 읽으니 오히려 그 이색적인 특성이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설정은 여전히 참신하고 추리의 과정과 반전 모두 논리적이고 납득이 가능하나 작중에서 나오는 마법들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형편에 맞게 최소한의 개연성만 갖춘 터라 독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공정하게 추리가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말하니 꼭 추리하며 읽는 독자 같지만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읽는 독자다.;;

 허나 그런 내 눈에도 이 소설은 아슬아슬하게 공정함과 불공정함을 넘나들고 있어 읽으면서 불안했다. 추리소설의 미덕을 공정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으니까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할 엠마의 정체나 팔크 피츠존의 턱에 난 상처에 대한 복선은 영 미묘했던 것, 저주 받은 데인인의 생각보다 썰렁한 활약 등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어서 용케 이 작품이 일본추리작가협회상(장편부문)을 수상했구나 싶었다. 처음에 읽었을 땐 어느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단점이었지만 다시 읽으니 더욱 눈에 밟혔던 것 같다.


 시간대는 지금으로부터 10세기는 더 옛날이며 배경은 영국 인근의 가상의 섬이다. 데인인의 위협에 맞서 용병을 모으는 도입부나 마치 정말로 존재한다는 듯 마법을 묘사하는 태도와 논리적인 추리가 곁들여진 전개는 제법 흥미로웠다. 작중에선 마법이 거의 과학의 역할을 대신하지만 한편으론 마법이라 칭할 수밖에 없을 만큼 신비로운 묘사(저주, 투명화)가 많아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아닌 판타지 장르에서나 느낄 수 있는 매력 또한 겸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또 중세 시대의 분위기와 개성적이고 비중 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대규모 전투 장면은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겠다. 이게 추리소설이 갖춰야 할 장점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선 꼭 중요한 요소들이었기에 이 요소를 모두 충족시킨 요네자와 호노부의 필력에 새삼 감탄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빙과' 시리즈 같은 일상 계열의 추리소설만 쓸 줄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꼭 추천하고 싶다. 다방면의 장르를 소화하는 작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이 소설을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보틀넥>, <추상오단장> 같은 일상, 성장이 강조된 추리소설들이야말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진면목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러진 용골>은 뭐랄까... 대놓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결말에 반감이 생겼던 걸까, 아니면 생각보다 맥거핀이 남발된 것 같고 반전이 허무하게 다가와서, 어쩌면 제목의 정체가 별 대수롭지 못했던 탓인지 이래저래 여운이 남지 못했다. 어설프지 않은 세계관 묘사와 더불어 작가의 필력이 폭발하는 듯한 전투 장면에 비해 막상 추리소설의 묘미는 덜 부각돼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 이게 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이 문제다! 늘 말하지만 이 상을 받은 작품치고 추리소설다운 추리소설 같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 얼마 없는 것 같다. 오죽하면 아야츠지 유키토가 <시계관의 살인>으로 이 상을 받을 때 '추리소설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는 작품으로 이 상을 수상해서 영광이다' 라고 말했겠는가. 그 작가한테 이 상을 디스할 마음은 없었을지 몰라도 난 그 소감에 적잖은 공감을 했다.

 이 작품 이후로 요네자와 호노부는 상당히 대중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고 내는 작품마다 여러 문학상과 랭킹 1위를 석권한 것으로 알고 있다. 판타지처럼 원래 전문 장르가 아닌 작품을 완결했더니 더욱 필력이 상승한 모양이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1위를 한 작품이 참 많던데 그 작품들을 찾아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