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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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스포일러 없음


 역사와 범죄에 대한 요 네스뵈의 통찰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작품이며, 개인적으론 <스노우맨>보다 만듦새가 뛰어나다고 여겨'왔'다. 과거형인 이유는 다시 읽으니 몰입도가 이전보다 덜 강렬했기 때문이다. 처음, 그러니까 11년 전 군시절에 접했을 땐 노르웨이의 역사는커녕 나라 자체도 생소했기에 모든 것이 신선했던 반면 지금은 어느 정도 아는 얘기로 다가온 탓이므로 작품 자체의 단점이라 볼 순 없겠다.

 반면 다시 읽은 지금에도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었. 일단 길고도 긴 분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지만 후반부에 다다르면 애초에 이 사달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든지 범인의 동기가 흐지부지된 감이 없잖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아군과 적군을 가르기 모호했던 2차세계대전 당시의 노르웨이의 상황과 그런 이유로 친나치 세력이 척결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극우 세력이 활개치게 됐다는 작가의 통찰에 너무나 압도당한 나머지 정작 이야기의 결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보단 앞으로 인연을 이어갈 라켈과의 첫만남이나 엘렌이나 할보르센, 그리고 볼레르처럼 후속작에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퇴장하는지 아는 내 입장에선 아무래도 그들의 첫 등장이 더 흥미롭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2회차였다.


 '해리 홀레' 시리즈는 그 압도적인 흥행으로 인해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시리즈물로 격상한 감이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해리의 좌절과 몰락을 주로 다루는 만큼 시리즈에선 그의 내면 역시 범인을 추적하는 서사 못지않게 빼놓을 수 없는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작품마다 알코올을 달고 살고 자해에 가까운 자학을 일삼기도 하는 해리지만, 이번 작품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동료들이나 주변 인물들이 어떤 최후를 맞을지 알고 있는 나는 그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돌이켜보면 첫 등장한 작품인 <박쥐>에서부터 가장 무사했으면 싶은 인물이 꼭 유명을 달리하게 되니 미치지 않고 형사로 복직하는 해리가 가히 초인으로 느껴진다.

 최근에 시리즈 최신작인 <블러드문>이 출간됐던데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 작품이 시리즈 열두 번째 작품일 것이다. 열세 번째인가? 아무튼, 열 권이 넘는 시리즈에서 노르웨이의 흑역사를 조명한 작품은 <레드브레스트>가 유일하다. 요 네스뵈의 부모 세대에서 불거졌고 청산되지 못한 문제의 책임을 젊은 세대가 고스란히 안게 되는 형국인데, 이는 마치 우리나라 친일 관련 문제와 거울로 비춘 듯 똑 닮아있어 한국 독자라면 실로 공감 어린 독서가 가능할 듯하다. 무지하게 두꺼운 책이지만 공감의 측면에선 이보다 묵직한 작품도 없으리라 보는데... 먼 나라 노르웨이의 추리소설에 공감이 가능하다니, 이거야 참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그런데 역사나 뉴스를 들여다보면 어떤 나라는 꼭 피해자고, 또 어떤 나라는 늘 가해자로 지목된다. 그 차이는 뭘까. 글쎄, 내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관계가 생기는 것 자체가 필연적인 일이라는 것이겠다. 요새 악화일로를 넘어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인 중일 관계에 대한 뉴스를 보면, 뭐랄까, 그 누구도 책임도 직시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기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늘 피해자도 발생하고 당연히 가해자도 생기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적어도 자기자신만큼은 피해자이긴 싫으니 서로가 서로를 꺾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태도만큼은 이해가 된다. 서로 양보 좀 하라고 중재를 하는 것이 말로는 쉽지, 당사자가 되면 누구나 예민해진다. 세상의 이치란 방관자 입장에서나 정론일 뿐, 당사자 입장에선 무지하게 억울하고 부당하게만 다가오는 법이니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내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많이 겪는데, 그럴 때마다 이성적이기 쉽지 않고 이기적으로 굴고 싶은 충동이 들면서 양보가 정말 실천하기 어려움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어쨌든 나 혼자서 살 수만은 없는 곳이니 서로가 양보까진 아니어도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보는데, 그 방법이 꼭 <레드브레스트>의 친나치 세력처럼 자기합리화가 아닌 누가 봐도 합리적인 모양새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이것도 말로는 쉽지 실제론 더없이 어려운 일일 테지만...

 뭐, 어렵다고 해서 안 보이는 척 안 들리는 척 자기 입장만 고수하고 자기합리화만 해댔다간 만사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틀릴 것이다. 결국, 노력하는 자만이 떳떳하게 살다 죽을 수 있는 세상이다. 말년에 비참하게 죽거나, 자신의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취했다가 크게 화를 당하거나, 극단적인 사상에 심취했다가 장기말로 쓰이다 버려진 작중 모든 인물의 최후를 떠올리니 그런 결론이 절로 나온다.


 <레드브레스트>는 '해리 홀레' 시리즈에 속하면서도 '오슬로'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이 3부작은 <데빌스 스타>까지 이어진다. 또한 팬들 사이에선 시리즈의 최전성기로 꼽히는 <스노우맨>까지의 여정을 장식하는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레드브레스트>인데,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부디 <박쥐>가 아닌 이 작품부터 펼치길 제발 부탁드린다. 공감 여부를 떠나 취향은 탈 수 있지만, 그래도 많은 이야기가 진행된 <스노우맨>보단 이 작품으로 해리의 이야길 시작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본다. 부디 분량에 겁나서 <박쥐>부터 펼치는 우를 범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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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앙코르와트에서 살아남기 1 코믹컴 서바이벌 만화 문명상식
코믹컴.류기운 글, 문정후 그림 / 코믹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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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최근 여러모로 안 좋은 뉴스의 무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캄보디아지만, 언젠가 그곳에 방문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하며 오래 전에 사놓은 이 책을 읽었다. 기본적으로 유익하고 작가들이 공부한 흔적이 느껴지는 책이었는데 문제는 그 방대한 공부량을 전부 녹여내려고 한 탓에 만화적으론 가독성이 떨어졌다. 이렇게 설명으로 점철된 만화는 처음이고 그런 무분별함 때문에 흥미롭던 내용도 점점 매력이 감퇴해갔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개그도 강박적이고 딱 2000년대 초반 감성이라 분위기를 환기시키지 않으며 2권에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인디아나 존스풍 유적 탐험도 긴장감과 몰입도가 부족했다. '살아남기' 시리즈와 '보물찾기' 시리즈와 그림 작가가 같을 뿐 만화로서의 완성도는 감히 두 시리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때문에 이 책의 전작이나 후속작을 찾아보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가족한테 그리 호감이 가지도 아니고, 당장 이 작품에서 보인 앙코르와트 탐험이 상술한 대로 시종 지루한 탓이다. 생소했던 캄보디아의 역사, 정확히는 크메르 문명을 수박 겉 핥는 식으로나마 접한 것 그 이상의 재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단 이 작품을 그리면서 작가들이 참고했던 문헌을 찾아 읽거나 아니면 직접 씨엠립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요새 캄보디아가 원체 불안해서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관점을 달리하자면, 크메르 문명도 좋지만 오히려 요새 필요한 것은 캄보디아의 근현대사를 망라한 책이지 않을까 싶었다. 킬링필드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에 최빈국 캄보디아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를 들여다본 책이야말로 지금 내게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책은 아마 수년 내로 집필해서 세상에 발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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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1 - 마네와 모네
강모림 지음 / 돌풍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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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8



 걱정 말게, 화가는 자기 자신이기만 하면 언제든 인정받을 수 있으니. 그저 자신의 것을 찾기만 하면 되잖은가. 굉장히 간단한 문제지. - 33p


 하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그저 자신의 것을 추구하다가 지지리 궁상 맞은 삶을 살아가다 눈을 감는다. 마네처럼 명망 있는 가문 출생이 아니면 생전에 부를 거머쥔 화가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모네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며 처자식을 굶기지만 불타오르는 예술혼을 주체하지 못하는 짠내 가득한 모습으로 말년까지 살아갔다. 사후에 인정 받은 화가도 극소수다. 오늘날 이름난 그들의 위상을 생각하면 생전에 뭘 그려도 조롱거릴 면치 못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어색하기만 하다.

 <화가1>를 그린 만화가 강모림 씨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포부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화가들이 위대한 예술가 이전에 그저 결점이 많은 한 사람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었는지 궤적을 쫓기로 했단다. 포부가 무색하게 1권의 매출이 그저 그랬는지 2편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깜깜무소식이다. 흐름상 '르누아르와 세잔', '고갱과 고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완성도와 집념이 느껴졌는데... 진실은 작가와 출판사만이 알겠지.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작가가 그의 예술혼을 다 못 펼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인 마네의 아이러니한 일대기는 다시 봐도 웃프다. 인정받으려고 그렸지만 보수적인 아카데미에선 괘씸한 그림으로 취급당하고 오히려 젊은 예술가들에겐 추앙받는다니... 그는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고 했지만 그러한 보이는 것을 미화하지 않는 작풍이 아카데미의 반감을 샀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렸을 뿐인데 불쾌감을 샀다면, 보이는 현실 그 자체가 불쾌하단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마네가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사회의 더러우면서 모순적인 태도를 알게 모르게 꿰뚫은 것을 들 수 있다. 정작 화가 자신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게 여전히 웃음 포인트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세상엔 야망과 재능이 불일치하는 사람이 많구나 싶어 어딘지 찝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의도치 않은 명성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에겐 행복일까? 어찌 보면 마네에겐 누명 내지는 저주였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는 처음 모네라는 이름을 봤을 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사칭하며 조롱하는 줄로 여겼다. 마네와 모네. 마네가 선배지만 어쨌든 둘은 동시대에 활동했고 처음엔 이름이 닮아서 평론가들 사이에서 자주 비교당했다고 한다. 마네는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선배인데 단지 이름이 닮았다는 이유로 동렬에 놓인다는 것 자체가 처음엔 불쾌했다고. 그 둘이 정식으로 만나고 모네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나서는 친해졌다지만 말이다.

 마네뿐 아니라 모네의 일대기도 만만치 않게 여운이 컸다. 모네가 젊었을 적엔 집세와 빵값을 위해 그림 스무 점을 거저에 가까운 값으로 내놔 풀칠이나 겨우 했다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이고, 마네도 그랬지만 모네도 아카데미에 미운털이 박혀 뭘 그려도 조롱만 받는 것도 혀를 차게 되는 부분이었다.

 아, 여담이지만 이 책에선 아직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 얽힌 논란이 '옛날 버전'으로 다뤄지고 있어 아쉬웠다. 그 그림에서 마네가 거울에 비친 술집 여인의 뒷모습의 각도를 이상하게 그려서, 명색이 화가란 작자가 그림의 기본도 모른다며 웃음거리가 됐고 강모림 씨도 책에서 마네가 말년에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보인 것이란 해석을 했는데, 실상은 다르다. 충분히 현실적으로 가능한 각도라고 오늘날 한 사진가가 재현했는데... 당시엔 마네고 모네고 인상파 전체가 선입견이 제대로 박혀 있어서 이런 조금만 생각해도 해결될 논란도 해결되지 못하고 불씨만 커질 뿐이라는 게 딱하게 여겨졌다.


 아내인 까미유가 죽었을 때도 아내가 막 숨을 거둔 얼굴을 그림으로 그린 모네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광기 어린 모습들이 포착되곤 한다. 이 책에선 마네와 모네의 흑역사...까진 아니더라도 사사롭더라도 가급적 많은 에피소드를 담아내 그들의 명과 암까지 모두 다뤄냈다. 그렇기에 다 읽고나면 이름난 화가들이 예술가로는 몰라도 인간으로선 딱히 본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시대적 한계나 경직성을 자신들의 전생애에 걸쳐 예술로써 초월한 자들이기에 일정 부분 미화되더라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한다. 뭐, 그들이 '미화'라는 단어까지 써야 할 만큼 됨됨이 글러먹은 짓을 일삼은 것은 아니지만, 책의 내용 중엔 평소 그들의 작품을 볼 때 느꼈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한마디로 실망스런 구간들이 몇 있기에 읽으면서 내내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실망스럽다는 것은 그들이 인간적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결국 위대한 예술가도, 기술적으로 통달한 화가도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와 비슷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재능이 있었거나, 시대를 타고났거나, 운이 좋았거나 등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이 모든 요인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노력과 집념이 없었다면 무수한 기회도 그들의 주변을 잠시 스쳐 지나가버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네와 모네를 비롯한 이름난 화가들은 예술가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위대한 작자들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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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농담거리
김병선 지음 / 웨일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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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일단 하고 이왕이면 최선을. - 201p


 꽤 예전부터 꼬독자였다. 스페인어를 맛깔나게 구사하면서 스탠드업 무대까지 섭렵하는 그의 패기에 쾌감을 느껴서 매영상마다 좋아요를 눌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나는 코미꼬의 농담보다 김병선이란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감명을 받아서 늘 좋아요를 눌러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엔 코미꼬가 백만 유튜버가 된 이후의 요즘 영상에선 느낄 수 없는 진지하고 찌질하며 속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가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고 서울대에 갔다가 무슨 연유로 KBS 공채 개그맨이 됐으며 스페인에 가서 망하고 흥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희망적이고 자학적이면서 다시 낙관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인데, 이 책이 30만 유튜버 시절이 아닌 지금 시점에 이어서 쓰기 시작하면 또 다른 톤으로 전개될 듯하다. 지금은 무려 골드버튼의 소유자고 멕시코에서 나름대로 자릴 잡은 유명 코미디언이니 말이다.


 결국 그렇게 살다 경험은 많지만 전문성은 없는, 질투는 많지만 자신은 없는 서른이 되어버렸다. - 213p


 아무래도 현재 내 처지와 겹쳐 보이는 구간이 많았던 터라 빠르게 읽히면서도 내내 속은 편치 않았다. 내가 경험한 것과 비슷하거나 더한 난관 속에서도 활로를 찾는 모습에서 역시 서울대생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싶다가 종국엔 내가 롤모델로 삼기엔 거리가 먼 사람이란 결론이 나왔다. 지난주 토요일에 코미꼬가 서울에 '내한'했을 때 무대에서 선보인 연륜을 느끼면서 이 사람과 나를 동일시해선 좌절밖에 남지 않음을 다시금 느꼈다.

 인생에 승자도 패자도 없다지만 험난한 길을 개척해나가는 코미꼬는 승자 중에 승자라고 본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거지만 그라면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리라 믿는다. 나는 나대로 나만의 전법을 갖춰 내 삶을 개척해나가면 그만이고, 나는 그의 통찰과 센스가 녹아든 농담을 편하게 만끽하면 된다. 저 사람은 지금 내 나이 때 이랬었는데 어쩌구저쩌구 전전긍긍할 필요는 전혀 없지. 전전긍긍해서도 안 되고. 코미꼬조차 그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자랑하려고 쓴 글이 아니니까.


 최근 포르투갈 학생비자를 준비하면서 그 나라의 초월적으로 답답한 일처리에 속이 타고 있는 와중에 한 병의 소화제 같은 글을 읽어 시름이 좀 덜어졌다. 설령 '또' 일이 틀어지더라도 어떻게든 길은 열릴 테므로, 오히려 일이 틀어진 것이 기가 막힌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새로운 기회를 안겨줄는지 모르니까 한껏 낙관적으로 앞을 바라보게 됐다. 나도 이제 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농담거리를 위한 재료라 생각하며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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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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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군대에선 무지하게 재밌게 읽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그저 그랬다. 어딘지 전형적이고 작위적인 인질극이란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아마 내가 니트로글리세린이란 폭약의 위력을 글로만 접해서 그럴 수도 있다. 강도인 남편을 여의었다고 38구경 총과 니트로글리세린으로 경찰서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아내에게 동정의 여지도 생기지 않아서 그저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복수하려는 꼬라지 봐라, 누가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랄까봐.

 강도 아내의 복수 대상인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바깥에서 자신만의 치열한 수사를 벌이는데, 이러한 두 사건의 병렬적인 배치가 은근히 주의를 산만하게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질극에 비해 카렐라의 수사가 지루한 게 문제였다. 사건의 전말이 궁금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반전도 있었지만 인질극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그가 매력적인 캐릭터란 사실만 제외하면 크게 몰입할 구석이 부족했달까.


 87분서 시리즈가 추리소설보단 경찰소설의 정체성을 갖춘 것으로 유명한 만큼 작중엔 굉장히 다양하고 사연 많은 형사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선 카렐라가 주인공을 맡았다면 다른 작품에선 브라운이, 또 다른 작품에선 다른 형사가 주인공을 돌아가며 맡을 만큼 각각의 형사들이 매력적이기에 후속작에선 누가 주인공을 맡을지 기대가 된다.

 그렇게 몇 편을 읽었고 개중 <살의의 쐐기>가 가장 재밌었는데... 서두에서 밝혔듯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그냥저냥이었다. 처음에만 좋고 두 번째엔 별로인 소설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변한 것일까. 대답을 찾기 애매한 궁금증을 안고서 책장을 덮어야 해 어딘지 씁쓸했다. 그나마 이 작품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안젤리카가 어눌한 영어로 외친 절규만이 기억에 남았는데, 나도 내년에 포르투갈에서 이방인으로서 씁쓸한 나날을 보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걱정이 약간 많아졌다. 뭐,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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