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개의 날 4 - 완결
김보통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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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개인적으로 드라마보다 원작 만화가 훨씬 좋았다. 드라마가 이야길 더 풍성하고 극적으로 풀어내려다 보니 다소 신파적이고 오글거리는 지점, 구교환이 연기한 한호열 상병 캐릭터가 완전히 판타지 그 자체였던 점 등 탐탁잖았던 부분이 있었던 반면 원작은 기승전결이 완벽했다. 단점이 있다면 너무 우울하단 점이겠지... 하지만 의외의 방식으로 결말이 나서 그만큼 여운도 상당했다.

 군대에 대한 비판과 통찰이 탁월하단 측면에서 <민간인 통제구역>과 더불어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두 작품 다 스릴러라 장르적 쾌감이나 완성도도 상당하고 결말이 씁쓸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지만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D.P.> 특유의 신선하고 아이러니한 전개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작품은 탈영병을 체포하는 D.P.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주인공 일행의 보직 특성상 군대 밖이 주무대이지만 탈영병들의 사연과 현재 처지를 쫓아가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군대 안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안에선 당연하게만 보였던 철칙은 사회의 통념에 비춰보면 똥군기를 넘어 입에 담을 수 없는 심각한 범죄 행위일 뿐이었고 탈영병들에게 있어 탈영은 불가피하고 절박한 저항이었음을 이 작품은 수시로 주지시킨다. 물론 다양한 탈영병이 등장하는 작품이기에 정말 시답잖고 쓰레기 같은 이유로 탈영한 놈들도(;;) 나오지만 작품의 초점은 역시 기구한 사연의 탈영병들에 맞춰져 있다. 


 찰나긴 하나 나도 이등병 때 굉장히 안 좋은 생각을 했던 터라 작중 탈영병들의 처지에 적잖이 공감했다. 주인공의 방백에서 나온 '그가 탈영을 결심하게 된 상황이, 사건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란 구절이 특히 그랬다. 흔히 탈영병을 두고 군대에 적응 못한 패배자라 일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군생활을 버텨냈다는 자부심이 지나치다 못해 일그러진 방향으로 부풀게 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자기 땐 더 심했는데 요즘 것들은 하여간 빠져서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본인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니 설령 내가 완벽하게 일을 해도 상대가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을 대하는 일은 재앙에 가깝다는 느낌을 매일 받곤 한다. 군대는 특히 사람을 상대하는 능력이 극단적으로 시험 당하는 곳인데 비극이 발생한 부대의 사례들을 놓고 보면 피해자가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러서, 이른바 군대 생활에 영 적성이 안 맞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가해자가 관용이 부족해서, 이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모자라서 빚어진 비극도 상당하다. 건방지고 개념 없고 어리바리한 후임들이나 그런 후임을 폭력과 부조리를 통해서만 소통하려 드는, 소통이라고도 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선임들 모두 전역하고 시간이 지난 내 입장에서 볼 때 그저 미숙한 아이들에 불과하다.


 물론 위의 내 생각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많은 사례에 들어맞지 않는다. 당장 이 작품에 나오는 가해자들만 해도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범죄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다만, 어차피 다들 하는 수 없이 군대에 징집된 마당에 조금은 마찰을 줄이고 배려하면 편하지 않은가? 그 와중에 자신들이 더 꿀을 빨아야겠고, 혹은 자신들이 그간 당한 걸 보상받고 싶단 이유만으로 선임 병사와 간부들이 후임에게 자행하는 짓거리를 보노라면 안타깝고 한심한 걸 넘어 그저 미숙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단면을 봤다는 실로 차가운 감상만이 남을 지경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린 결론, 군대 안에서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반복되리란 참담한 결론을 부정하긴커녕 나도 모르게 고갤 끄덕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D.P.>가 무의미하고 공허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탈영병을 쫓기에 보다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군대의 문제적 단면을 날카롭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이 작품을 접한 독자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부대에 조금씩이라도 반영하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수십년 동안 이어진 군대의 부조리와 인간의 이기심이 이룬 환장의 콜라보를 단시간에 변화시킨다는 건 정말 허무맹랑한 욕심에 불과하다. 게다가 다들 몰라서 바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싫어서 바꾸지 않는 것에 가까우니 상황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비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어쨌든 개미 눈썹만큼의 변화라도 변화는 변화다. 조금 이기적으로 말해본다면 결국 이런 작품들로 인해 내 아는 동생들이 최대한 덜 고통 받고 군생활을 이겨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음 같아선 모든 동생들이 군대에서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라지만 지금의 나로선 진심으로 그런 날이 오리라고 빈말로도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일의 군대는 오늘보다 더욱 따사로운 곳이 되길 바란다. 그게 내가 현실적으로 바랄 수 있는 소망일 듯하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군대라는 곳 자체가 평범한 젊은이들이 가는 곳이니까. 평범한 젊은이가 어쩌다 탈영을 했을 뿐이다.
내가 특별히 선해서 탈영병을 쫓는 것이 아닌 것처럼 탈영병도 특별히 악해서 탈영을 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탈영을 결심하게 된 그 상황이, 사건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다. - 1권 63~64p

물론 탈영병은 돌아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도망치며 살겠다 각오를 했을 수도 있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도망쳐 도착한 곳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았을 수도 있다. 군대라는 곳, 군인이라는 신분은 도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뿐, 이미 오래 전부터 도망을 꿈꿔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도망친 곳에서 불합리한 현실은 계속될 수 있으며, 도망자라는 처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피가 끝나기를. 아니, 차라리 누군가 끝내주기를. 그래서라도 이 길고 버거운 피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 3권 154~156p

왜 그는 먼 곳으로 떠나지 못했던 것일까.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더 비참한 기분이 드는 것일지도.
탈영보다 더 큰 결단이 필요한 것일까. 가족에게서 벗어난다는 건. - 3권 180~181p

사병을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거지. 한 번 사람이라고 인정해버리면 존나게 골치 아파지거든. - 4권 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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