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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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삼은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었다.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삼은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그들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에 주목해 스릴을 연출한다. 주인공을 추적하는 살인마로든, 아니면 주인공이 사이코패스든 이 공식은 정해져 있다. 대개 이 경우 사이코패스는 불가해한 선천적 살인마로 그려진다. 사이코패스라고 다 살인마인 건 아니라고들 하지만 픽션에서 다뤄지는 모습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 일색이다.

 미치오 슈스케는 사이코패스의 정의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고 그 단어가 어떻게 오용됐으며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주목하며 집필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원래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일컫는 의학 용어에 지나지 않았던 사이코패스가 현재는 거의 극악무도한 살인마와 동의어로 여겨지는데 작가는 그 원인을 그들의 공감 능력 부족과 더불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미친 계획 실행력 때문이라고 본 것 같다. 특히 '주저하지 않음'은 이 작품에서 엄청난 스릴을 안겨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객관적으로 말해 약간 식상한 축에 들었다. 하지만 그를 연출하는 방식과 사이코패스라는 소재에 접목시키는 기술, 거기다 에필로그에서의 애틋한 분위기와도 이어지는 등 여러모로 완성도 높은 반전이란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거침없는 행동과 그 행동이 불러일으킨 후폭풍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이고 멈출 수 없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게 됐다. 도입부에선 인물이나 배경, 그리고 사이코패스에 대해 작가가 연구했을 내용을 히카리 누나의 입으로 대신 설명도 해주느라 이야기의 발동이 다소 늦게 걸리는 편이었지만, 발동이 걸린 이후부턴 거의 뭐... 가독성만으로 따지만 내가 접한 작가의 작품 중 단연 최고였다.

 반대로 제목은 미묘했다. 센스 넘치지만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작품이 여러모로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나는 터라 이 묘하게 잘 들어맞지 않는 제목은 약간 마음에 걸린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소설은 뻔하디 뻔하다는 나의 편견을 멋지게 부순 작품이기에 더 마음에 걸리는 지도 모르겠다. 신파적인 결말로 피와 폭력이 난무했던 중후반부를 씻어내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는데 작중에 언급되는 그림 형제의 동화 <황금 열쇠>가 여운을 더해준다.


 기시 유스케 이후로 오랜만에 사이코패스의 무시무시함과 동시에 서글픔을 느낄 수 있던 반전 어린 작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사이코패스임을 자각한 주인공이 자기 운명을 이미 정한 듯 살아가는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안겨줬고 그 아이가 사이코패스일 줄 모르고 간절한 마음으로 낳았을 부모의 마음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사이코패스는 유전인가 배경인가, 그리고 설령 유전으로 이미 정해지는 거라고 한들 그런 사람은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재고의 여지 없이 거릴 두고 격리해야 하는 건 가당키나 한가.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작품이다 보니 오히려 객관적으로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된 굉장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한때 미치오 슈스케는 매너리즘이 의심될 만큼 애매한 결과물의 작품을 종종 발표했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잘 극복한 듯하다. 최근에도 국내에 작품이 활발히 출간되는 걸 보니 매너리즘 같은 건 완전히 나의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다. 사람의 운명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폼이 떨어지는 작가라든가 사이코패스로 판명된 사람이라든가 사람이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엔 안 봐도 비디오 같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요새 자주 드는 생각이다. 안 봐도 비디오라니, 누가 만든 말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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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아내
시라쿠라 유미 지음, 김자경 옮김 / 제이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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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최근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세보니 스무 번째 일본 여행이었고, 알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 블로그에 처음 남긴 여행기의 여행지도 후쿠오카였다. 그게 9년 전 글이고 그로부터 변한 건 방문해본 여행지의 수밖에 없다. 그런대로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만큼 더 가고 싶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다. 지금 한창 교토 여행기를 쓰는 중이라 언제 후쿠오카 여행기까지 다 쓸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은 짧지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여행이다.

 <스무 살 아내>는 서른 다섯인 아내가 스무 살인 척 대학에 입학한 걸 바라보는 남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연작 소설집이다. 서른 다섯이 맞나 싶을 만큼 응석받이인 아내와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내면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의 연약함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유발했는데, 내가 과연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건 11년 전이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뒤인 지금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나는 과연 더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적어도 뚜렷한 성과랄 게 없는 10년이었음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물론 변했다.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그 변화가 미래와 노후를 대비한 초석으로, 건설적인 노력과는 결이 다르다는 게 문제지만 나는 분명 10년 전의 나완 다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 부부의 모습이 10년 전보다 읽기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는 것인데 이는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버린 탓이겠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내가 감히 비교 대상으로 삼기엔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선 한가닥하기에 내가 이들을 평가질하는 것은 결국 독자라는 권위를 내세운 오만방자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은 여전히 좋지만 이대로 살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 요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단지 해외에서 온 여행자란 이유로 사람들한테 대접 받는 느낌이 짜릿해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여행을 그런 이유만은 떠나는 건 아니지만, 여행 중에 뜻하지 않게 트러블이 발생하거나 일정이 꼬이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을 보고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같이 간 친구는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무덤덤하던데, 그 이유로 여행이란 어차피 인생에 있어서 외전이기에 일정이 조금 틀어져도 자기 인생에 지장을 주지 않기에 라고 말했다.

 내가 여행 중에 유독 일희일비하는 건 어쩌면 여행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서, 혹은 현실을 외면한 채 몰입할 수 있기에 조금만 트러블이 발생해도 그토록 예민하게 구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 아내>에서도 만화나, 카스테라, 교복 등 온갖 자질구레하고 쓰잘데기 없는 것에 몰두하고 현실을 외면하려는 주인공의 아내의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묘사되는데 이 모습이 참 한심하게 여겨지다가도 여행에 집착하는 나와 뭐가 다른가 하고 반성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마음의 벽을 뛰어넘고 성장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결말 즈음엔 주인공 부부가 어느 정도 갈피를 잡고 성장할 여지를 남긴 것과 달리 나는 아직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는 중이다. 최근 심적으로 당황스럽고 허무한 일과 마주해 심란해진 나머지 블로그에도 신경을 못 쓸 정도다. 이 책을 비롯해 예전엔 즐겨 들었던 노래의 가사나 예능이나 유튜브에서 접하는 좋아하는 연예인/유튜버들의 말이 급소에 박힌 듯 나를 흔들고 아프게 한다.

 마냥 웃고 즐기기엔 인생은 너무 길고 세상은 그리 너그럽지 않다. 지금 내가 아무런 변화도 각오도 없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저 나이만 먹었다간 내 미래는 안 봐도 비디오다. 그건 아는데... 이 책을 읽고 이렇게 후기를 남기는 동안에 뭔가 결심을 하기엔 너무 거대한 고민인 것 같다. 독보적인 여운과 위로를 선사한 작품의 결말이 나에게 뭔가 깨달음의 실마릴 던졌더라면 참 좋았겠지만 인생의 변화를 책 한 권으로 계기 삼으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안일하고 위험한 생각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또 나는 나대로 충분히 사유하며 활로를 모색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한숨 쉬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고 나는 지금도 고민 중이다. 과연 어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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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언어를 만나다 - 당신의 시선을 조금 바꿔줄 스페인어 이야기
그라나다 지음 / 북스토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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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외국어는 배우기 어렵지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외국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면서 모국어만 사용했을 때완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접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언어를 잘하는 건 타고나야 하는 일이지만 언어에 관심을 가지는 건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다. 비록 언어를 진지하게 공부해본 적은 없는 나지만 언어 관련 책은 종종 찾아 읽는 이유는 바로 간접적으로나마 외국 문화를 접해 새로운 관점을 얻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제목에서 가리키는 '태양의 언어'란 바로 스페인어다. 스페인이 원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만큼 태양의 언어라 불러도 딱히 손색은 없을 듯하다. 물론 스페인어의 공식 별명은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스페인어를 그렇게 지칭한 이유는 스페인어란 언어가 퍽 따뜻하게 여겨져서 라고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느낀 바는 스페인어는 따뜻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정중한 언어란 것이었다. 속사포 같고 욕설도 자유롭게 뱉고 듣기엔 다소 자극적이지만 - 누군가는 스페인 사람들의 음색이 마치 누군가 목을 조른 채 말을 시키는 것 같다고도 한다... - 언어는 체계적으로 정중하단 인상을 받았다. 듣기엔 부드럽지만 냉소적이기 그지없는 프랑스어와는 사뭇 다르더군. 책 속 저자의 해석이 100% 공신력이 있진 않으나 참고 문헌의 양이라든가 출처를 부지런히 밝히기에 페이지를 넘길수록 신뢰하며 읽게 됐다.

 이 책은 특이하게 단순히 한국어와 스페인어만 다룬 게 아니라 영어와 일본어까지 다룬다. 저자의 약력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전공이 일본어고 두 번째가 스페인어인 듯 일본어 얘기도 자주 꺼냈다. 그런데 일본어도 정중하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운 언어인데 이 책에서 저자가 한 말에 따르면 스페인어도 일본어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정중하다. '나는 배고파' 가 스페인어론 '배고픔이 나를 괴롭게 해' 처럼 우리 기준에선 필터를 덧씌운 듯한 수동적 표현이 일상적이고 독자가 이 문장이 의문문인지 강조문인지 알 수 있도록 문장 앞에 를 적는다든가 아니면 'buenos dias'가 '좋은 아침들'이란 뜻인데 이걸 매일 아침마다 인사로 건네는 이유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의 아침이 좋길 바란다든가 라는 해석 등 스페인어에 대해 신선하고 정겨운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젠가 스페인어를 적힌 대로 읽으면 되는 난이도를 두고 친절함과 터프함이 공존하는 멋진 언어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젠 어디 가서 친절함과 터프함, 그리고 정중함이 공존하는 언어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스페인,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대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이다. 작가는 스페인에서만 생활해본 것이 아닌지 스페인 말고 다른 국가 얘기도 풀어내는 등 책이 짧지만 다채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나의 주제로 4페이지 미만으로 얘길 풀어내지만 대체로 밀도가 높고 유익하며 위에서 얘기했듯 꼭 스페인어가 아니더라도 일본어나 영어로도 예시를 들어 언어란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단 인상을 받기도 했다. 가령 잘 때 꾸는 꿈과 장래희망을 의미하는 꿈이 다른 나라에도 동음이의어 관계인 것도 신기하고 똑같은 뜻의 단어 같지만 무게감이 달라 완벽히 번역하기 힘든 사례들도 인상적이었다. 언어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복잡하다.

 언젠가 일본어와 스페인어는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데 이 책을 읽고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더욱 높아졌다. 스페인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발음에 있어서는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놈의 문법 때문에 깊이 파고들수록 어려운 언어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체 불가한 매력이 있는 언어란 건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확실히 느끼며 매료당한다. 배움은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고 하니 늦어도 올해 안엔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할 생각이다. 부디 다짐으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힘들게 이해하고 외워서 알게(saber) 된 철학, 역사, 수학 공식은 왜 그렇게나 쉽게 휘발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같이 공부한 친구들, 여행 등의 특별했던 경험은 지식보다는 오래 남는다.
saber는 금방 휘발되며 conocer는 무모하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를 갖고 saber와 conocer를 조화롭게 해나가면 삶은 계속 풍요롭지 않을까. - 141~142p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로 희망과 기다림은 서로 통한다. 희망하며 이루어질 날을 기다린다. 희망이 없으면 더이상 기다리지도 않는다. 인생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의 모임이다. - 154p

빈손으로 온 인간의 사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어린 시절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도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설령 ‘열심히‘란 단어가 조롱으로 쓰여도 그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햇빛으로 나오려고 한다. ‘포기자‘보다는 ‘노력가‘라는 말이 낫지 않은가. -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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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두의 악마 2 학생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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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스포일러 거의 없음 


 <쌍두의 악마>는 매우 성실한 추리소설가, 덕업일치를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 작가의 출세작이자 작가의 데뷔작이 포함된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흥행으로 회사와 집필을 병행하던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전업 작가가 됐고 1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은 나는 완전히 작가의 팬이 됐다. 당시 나는 군인이었는데, 1권을 읽고서 2권이 궁금한 나머지 그래선 안 됐음에도 외출 시 허용 지역을 벗어나 서점이 많던 서울로 점프를 하게 만들었던 용기와 아찔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번에 교토 여행 중에 이 작품을 가져가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읽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교토에 있는 유명 사립대 도시샤대학교의 추리소설 동호회 소속이었다는 얘길 기억하고서 여행 때 읽을 책으로 선정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도시샤대학교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보고자 실제로 여행 중에 도시샤대학교를 방문했다. 그 여행기는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부지런히 진도를 빼서 그날의 감상을 들려주도록 하겠다.



 이건 도시샤대학교 내에 있던 서점에서 발견한 <쌍두의 악마> 원서와 번역본을 함께 찍은 사진이다. 원서는 두 권으로 분권하지 않고 한 권으로 합쳐서 출간했더군. 문고본이라 작고 가벼워 사고 싶었지만, 좋게 말해 그림의 떡이고 결국 애물단지로 전락해 먼지만 쌓일 걸 잘 아는 터라 그냥 구경만 열심히 했다.



 어쨌든 10년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기에 오히려 좋았다. 처음 읽는 기분으로 추리하며 읽었지만 요번에도 속절없이 추리는 빗나갔다. 사실 난 그렇게까지 근면한 추리소설 독자는 아닌 지라 어느 순간 스스로 머릴 굴리기보단 나도 모르게 인물들의 추리에 쫓아가기 급급했지만 말이다...ㅋㅋ

 비록 추리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지만, 탐정역을 맡은 에가미 부장만이 아니라 아리스를 비롯해 여러 인물이 건설적으로 추리를 전개하고 지혜를 모으는 과정은 사뭇 의미 있고 낭만적인 연출이었다. 추리소설의 본분인 추리하는 재미를 정말 잘 구현했으며 결과와 반전에만 힘주느라 과정이 약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여타 추리소설에 경종을 울리는 실로 모범적인 작품이라 생각됐다.


 전개를 위해 작위적으로 인물 수만 채워넣은 게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존재감과 개성이 특출나 작품이 전체적으로 생동감이 넘쳤던 것이나 에가미 부장이 진실을 밝히려는 원동력은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는 지적 욕구 때문이 아닌 범인의 악마 같은 계략에 분노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였던 것도 이 작품의 여운과 호감을 증폭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자극적이고 휘발적이며 비인간적인 작품 일색이라는 오해를 사곤 하는 추리소설계에 이런 인간적이고 읽을 맛 넘치는 작품이 있다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이 정도면 거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작품이지 않은가 싶었다.

 논리적이면서 깔끔한 범인 지목 과정도 일품이지만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도 압권이었다. 단절된 두 마을에서의 살인을 다뤘고 몇몇 장면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독자가 상상으로 풀어나가게끔 여지를 남겼다. 이때 범인이 살인을 범하기 위해 혹은 범하기 직전에 지었을 표정과 광기까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쌍두의 악마>는 밀도 높은 세계관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다.


 수상하기 그지없던 예술가들의 마을은 알고 보니 예술을 향한 형이상학적인 목표 못지않게 인간적인 욕망도 버젓이 있던 탓에 연쇄살인의 물꼬가 터졌던 것, 반대편 마을은 평범한 줄 알았더니 꿈을 향한 광기가 도사리고 있는 등 이 소설에선 두 마을의 대비가 시종 돋보였다. 꽤나 많은 등장인물,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사건, 적잖은 수수께끼가 나왔고 그 수수께끼를 전부 풀어내지도 않았지만 상술했던 이 작품만의 분위기에 지배당해 오히려 설명이 부족하다는 결핍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공정하게 추리의 도구를 제시한 덕에 머릴 굴릴 수 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같이 만들어내는 기분마저 느끼게 해줬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용두사미에 무책임한 작품처럼 들리겠지만 실상은 정교한 구성과 세계관이 빛나는 작품이라 강조하겠다. 두 단절된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의 이면엔 범인의 악마와도 같은 계략이 있었고 그 계략의 이면엔 독자의 추리를 유도하는 작가라는 이름의 운명의 신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출세작인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여왕국의 성>도 올해 안에 읽을 생각이다. 그 작품도 읽은 지 10년이 지나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나저나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언제 출간하려나? 십 년 넘게 소식이 없는데... 작가가 완성도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시리즈인 만큼 시간이 더 걸려도 이해는 간다. 부디 대미를 장식할 그 작품을 차질 없이 접해볼 수 있길 희망한다.


서로 자신의 운명을 담보로 내놓고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상대를 믿는 행위는 남녀의 사랑과도 흡사합니다. - 2권 338p

공상의 날개가 점점 더 커지네요. 마치 자기가 탄 차가 이미 절벽에서 떨어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운전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개그로군요. 그 경우 운전사가 바퀴 밑에 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차는 계속 달릴 수 있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당신은 깨닫지 못했나요?
앞만 보고 있으니까요.
밑을 보세요.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보겠습니다. 그곳에 땅이 있다면 그 사이에도 땅 위를 달린 셈이 되니까요. - 2권 341p

인간을 조종하는 건 신이나 운명만으로도 충분해. - 2권 3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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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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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9 


 스포일러 있음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능수능란하게 발표하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추리소설 <소문>은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처럼 술술 읽혔다. 캐릭터며 전개며 반전이며 못해도 80% 이상은 기억이 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가독성의 비결로 아주 바람직하면서 흐뭇한 경찰 두 명의 캐미를 꼽을 수 있겠다. 흔히 일존 추리소설 속에서 캐리어 경찰과 논캐리어 경찰이 콤비를 이루면 십중팔구 마찰이 생기는데 이 소설은 너무 순조로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둘이 잘 맞아 수사가 척척 전개된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유능한 캐릭터들이 경찰의 본분, 그리고 가족의 본분을 다하려는 모습은 이미 알고 있는 맛임에도 속절없이 탐을 내는 음식처럼 두 번째 접함에도 흡수가 잘 됐다. 요새 심리적으로 지친 탓에 갈등이 비교적 적은 이 작품 속 캐릭터들에 흠뻑 매료된 듯하다. 
 최근 히틀러와 나치의 몰락을 다룬 영화 <다운폴>을 관람하고 난 직후에 이 작품을 읽으니 주요 소재인 'WOM', 일명 소문을 통한 마케팅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이 마케팅을 적극 구사한 컴사이트의 사장 쓰에무라는 이렇게 변명하는데, 자기네들이 칼을 팔 때 당연히 누군가 이 칼로 사람을 죽이리라 생각하며 팔지 않으니 그 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문제라고. 정말 그럴까?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건 좀 팔아보겠다고 연쇄살인마 이야길 꾸며 소문으로 퍼뜨린다는 것도 그리 정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라이벌 회사의 제품을 인위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이 아닌 이상 그 행위를 법적으로 제지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 소문을 퍼뜨린 것말곤 딱히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쓰에무라나 약쟁이에 불과한 아소가 죽거나 검거당할 때 통쾌함을 느낀 이유는 어째서일까? 그건 바로 그들이 인간을 이성적으로만 이해하려는 오만무도함,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경우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뿐 들키지 않을 여지만 있다면 더한 짓을 하고도 남을 작자들이란 인상을 강하게 준 탓이리라 본다. 물론 후자의 발언은 당사자들에게 지나친 발언일 수 있겠다. 어쨌든 그들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도 저지르라 부추긴 적도 부추길 생각 자체도 없었으니까. 허나 분명 누군가 영향을 받아 살인마로 각성되고 말았는데 과연 WOM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광고 전략인 걸까? 쓰에무라의 비유처럼 과연 칼처럼 무해한 것일까? 글쎄, 칼과 달리 말엔 아무리 허무맹랑할 지라도 분명히 의도가 있잖은가. 그럼 완벽히 무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소문에 부화뇌동해 쓰에무라와 컴사이트를 비방하고 실제로 살해를 저지름으로써 복수를 완수한 여고생들도 마찬가지다. 쓰에무라는 입을 잘못 놀린 대가, 여고생들은 단순하다 얕본 대가를 치른 것이나 다름없다. 좀 지나친 대가지만 WOM의 힘을 맹신했다면 그 부작용도 충분히 경계해야 하지 않았을까.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 못지않게 소문만 믿고 바로 복수에 옮긴 여고생들도 문제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쇄살인마만 죗값을 치르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취한 채 죽고 말았군. 어쩌면 이게 제일 코미디였다. 그 어떤 향수로도 가리지 못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코미디 말이다. 

 여고생들의 은어를 비롯해 광고계의 은어, 형사들의 은어 등 다양한 분야와 업계의 은밀한 요소를 다뤄낸 작가의 시도와 딱히 막히는 구석 없는 문장은 무난함 그 자체라 독서를 어려워하거나 추리소설에 부담을 느끼는 초보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될 만한 요소라 생각됐다. 나도 1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을 땐 아직 독서 경험이 일천해 이 두꺼운 책을 빠르게 독파하는 스스로에 뿌듯함을 느꼈는데, 이렇게 진입 장벽이 낮은 소설은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면 허접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소문>은 오히려 그 낮은 진입 장벽이 확고부동한 장점으로 다가왔다. 쉽게 쓴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니까. 
 작가의 약력을 보니까 최근에도 활발히 신작을 발표하고 나오키상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한동안 잘 읽지 않았는데 앞으로 종종 작품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일단 나오키상 수상작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부터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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