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언어를 만나다 - 당신의 시선을 조금 바꿔줄 스페인어 이야기
그라나다 지음 / 북스토리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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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외국어는 배우기 어렵지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외국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면서 모국어만 사용했을 때완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접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언어를 잘하는 건 타고나야 하는 일이지만 언어에 관심을 가지는 건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다. 비록 언어를 진지하게 공부해본 적은 없는 나지만 언어 관련 책은 종종 찾아 읽는 이유는 바로 간접적으로나마 외국 문화를 접해 새로운 관점을 얻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제목에서 가리키는 '태양의 언어'란 바로 스페인어다. 스페인이 원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만큼 태양의 언어라 불러도 딱히 손색은 없을 듯하다. 물론 스페인어의 공식 별명은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스페인어를 그렇게 지칭한 이유는 스페인어란 언어가 퍽 따뜻하게 여겨져서 라고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느낀 바는 스페인어는 따뜻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정중한 언어란 것이었다. 속사포 같고 욕설도 자유롭게 뱉고 듣기엔 다소 자극적이지만 - 누군가는 스페인 사람들의 음색이 마치 누군가 목을 조른 채 말을 시키는 것 같다고도 한다... - 언어는 체계적으로 정중하단 인상을 받았다. 듣기엔 부드럽지만 냉소적이기 그지없는 프랑스어와는 사뭇 다르더군. 책 속 저자의 해석이 100% 공신력이 있진 않으나 참고 문헌의 양이라든가 출처를 부지런히 밝히기에 페이지를 넘길수록 신뢰하며 읽게 됐다.

 이 책은 특이하게 단순히 한국어와 스페인어만 다룬 게 아니라 영어와 일본어까지 다룬다. 저자의 약력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전공이 일본어고 두 번째가 스페인어인 듯 일본어 얘기도 자주 꺼냈다. 그런데 일본어도 정중하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운 언어인데 이 책에서 저자가 한 말에 따르면 스페인어도 일본어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정중하다. '나는 배고파' 가 스페인어론 '배고픔이 나를 괴롭게 해' 처럼 우리 기준에선 필터를 덧씌운 듯한 수동적 표현이 일상적이고 독자가 이 문장이 의문문인지 강조문인지 알 수 있도록 문장 앞에 를 적는다든가 아니면 'buenos dias'가 '좋은 아침들'이란 뜻인데 이걸 매일 아침마다 인사로 건네는 이유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의 아침이 좋길 바란다든가 라는 해석 등 스페인어에 대해 신선하고 정겨운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젠가 스페인어를 적힌 대로 읽으면 되는 난이도를 두고 친절함과 터프함이 공존하는 멋진 언어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젠 어디 가서 친절함과 터프함, 그리고 정중함이 공존하는 언어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스페인,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대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이다. 작가는 스페인에서만 생활해본 것이 아닌지 스페인 말고 다른 국가 얘기도 풀어내는 등 책이 짧지만 다채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나의 주제로 4페이지 미만으로 얘길 풀어내지만 대체로 밀도가 높고 유익하며 위에서 얘기했듯 꼭 스페인어가 아니더라도 일본어나 영어로도 예시를 들어 언어란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단 인상을 받기도 했다. 가령 잘 때 꾸는 꿈과 장래희망을 의미하는 꿈이 다른 나라에도 동음이의어 관계인 것도 신기하고 똑같은 뜻의 단어 같지만 무게감이 달라 완벽히 번역하기 힘든 사례들도 인상적이었다. 언어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복잡하다.

 언젠가 일본어와 스페인어는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데 이 책을 읽고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더욱 높아졌다. 스페인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발음에 있어서는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놈의 문법 때문에 깊이 파고들수록 어려운 언어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체 불가한 매력이 있는 언어란 건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확실히 느끼며 매료당한다. 배움은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고 하니 늦어도 올해 안엔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할 생각이다. 부디 다짐으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힘들게 이해하고 외워서 알게(saber) 된 철학, 역사, 수학 공식은 왜 그렇게나 쉽게 휘발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같이 공부한 친구들, 여행 등의 특별했던 경험은 지식보다는 오래 남는다.
saber는 금방 휘발되며 conocer는 무모하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를 갖고 saber와 conocer를 조화롭게 해나가면 삶은 계속 풍요롭지 않을까. - 141~142p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로 희망과 기다림은 서로 통한다. 희망하며 이루어질 날을 기다린다. 희망이 없으면 더이상 기다리지도 않는다. 인생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의 모임이다. - 154p

빈손으로 온 인간의 사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어린 시절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도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설령 ‘열심히‘란 단어가 조롱으로 쓰여도 그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햇빛으로 나오려고 한다. ‘포기자‘보다는 ‘노력가‘라는 말이 낫지 않은가. -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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