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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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삼은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었다.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삼은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그들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에 주목해 스릴을 연출한다. 주인공을 추적하는 살인마로든, 아니면 주인공이 사이코패스든 이 공식은 정해져 있다. 대개 이 경우 사이코패스는 불가해한 선천적 살인마로 그려진다. 사이코패스라고 다 살인마인 건 아니라고들 하지만 픽션에서 다뤄지는 모습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 일색이다.

 미치오 슈스케는 사이코패스의 정의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고 그 단어가 어떻게 오용됐으며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주목하며 집필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원래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일컫는 의학 용어에 지나지 않았던 사이코패스가 현재는 거의 극악무도한 살인마와 동의어로 여겨지는데 작가는 그 원인을 그들의 공감 능력 부족과 더불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미친 계획 실행력 때문이라고 본 것 같다. 특히 '주저하지 않음'은 이 작품에서 엄청난 스릴을 안겨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객관적으로 말해 약간 식상한 축에 들었다. 하지만 그를 연출하는 방식과 사이코패스라는 소재에 접목시키는 기술, 거기다 에필로그에서의 애틋한 분위기와도 이어지는 등 여러모로 완성도 높은 반전이란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거침없는 행동과 그 행동이 불러일으킨 후폭풍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이고 멈출 수 없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게 됐다. 도입부에선 인물이나 배경, 그리고 사이코패스에 대해 작가가 연구했을 내용을 히카리 누나의 입으로 대신 설명도 해주느라 이야기의 발동이 다소 늦게 걸리는 편이었지만, 발동이 걸린 이후부턴 거의 뭐... 가독성만으로 따지만 내가 접한 작가의 작품 중 단연 최고였다.

 반대로 제목은 미묘했다. 센스 넘치지만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작품이 여러모로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나는 터라 이 묘하게 잘 들어맞지 않는 제목은 약간 마음에 걸린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소설은 뻔하디 뻔하다는 나의 편견을 멋지게 부순 작품이기에 더 마음에 걸리는 지도 모르겠다. 신파적인 결말로 피와 폭력이 난무했던 중후반부를 씻어내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는데 작중에 언급되는 그림 형제의 동화 <황금 열쇠>가 여운을 더해준다.


 기시 유스케 이후로 오랜만에 사이코패스의 무시무시함과 동시에 서글픔을 느낄 수 있던 반전 어린 작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사이코패스임을 자각한 주인공이 자기 운명을 이미 정한 듯 살아가는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안겨줬고 그 아이가 사이코패스일 줄 모르고 간절한 마음으로 낳았을 부모의 마음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사이코패스는 유전인가 배경인가, 그리고 설령 유전으로 이미 정해지는 거라고 한들 그런 사람은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재고의 여지 없이 거릴 두고 격리해야 하는 건 가당키나 한가.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작품이다 보니 오히려 객관적으로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된 굉장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한때 미치오 슈스케는 매너리즘이 의심될 만큼 애매한 결과물의 작품을 종종 발표했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잘 극복한 듯하다. 최근에도 국내에 작품이 활발히 출간되는 걸 보니 매너리즘 같은 건 완전히 나의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다. 사람의 운명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폼이 떨어지는 작가라든가 사이코패스로 판명된 사람이라든가 사람이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엔 안 봐도 비디오 같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요새 자주 드는 생각이다. 안 봐도 비디오라니, 누가 만든 말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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