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아내
시라쿠라 유미 지음, 김자경 옮김 / 제이북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9.0



 최근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세보니 스무 번째 일본 여행이었고, 알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 블로그에 처음 남긴 여행기의 여행지도 후쿠오카였다. 그게 9년 전 글이고 그로부터 변한 건 방문해본 여행지의 수밖에 없다. 그런대로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만큼 더 가고 싶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다. 지금 한창 교토 여행기를 쓰는 중이라 언제 후쿠오카 여행기까지 다 쓸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은 짧지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여행이다.

 <스무 살 아내>는 서른 다섯인 아내가 스무 살인 척 대학에 입학한 걸 바라보는 남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연작 소설집이다. 서른 다섯이 맞나 싶을 만큼 응석받이인 아내와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내면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의 연약함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유발했는데, 내가 과연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건 11년 전이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뒤인 지금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나는 과연 더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적어도 뚜렷한 성과랄 게 없는 10년이었음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물론 변했다.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그 변화가 미래와 노후를 대비한 초석으로, 건설적인 노력과는 결이 다르다는 게 문제지만 나는 분명 10년 전의 나완 다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 부부의 모습이 10년 전보다 읽기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는 것인데 이는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버린 탓이겠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내가 감히 비교 대상으로 삼기엔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선 한가닥하기에 내가 이들을 평가질하는 것은 결국 독자라는 권위를 내세운 오만방자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은 여전히 좋지만 이대로 살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 요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단지 해외에서 온 여행자란 이유로 사람들한테 대접 받는 느낌이 짜릿해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여행을 그런 이유만은 떠나는 건 아니지만, 여행 중에 뜻하지 않게 트러블이 발생하거나 일정이 꼬이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을 보고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같이 간 친구는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무덤덤하던데, 그 이유로 여행이란 어차피 인생에 있어서 외전이기에 일정이 조금 틀어져도 자기 인생에 지장을 주지 않기에 라고 말했다.

 내가 여행 중에 유독 일희일비하는 건 어쩌면 여행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서, 혹은 현실을 외면한 채 몰입할 수 있기에 조금만 트러블이 발생해도 그토록 예민하게 구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 아내>에서도 만화나, 카스테라, 교복 등 온갖 자질구레하고 쓰잘데기 없는 것에 몰두하고 현실을 외면하려는 주인공의 아내의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묘사되는데 이 모습이 참 한심하게 여겨지다가도 여행에 집착하는 나와 뭐가 다른가 하고 반성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마음의 벽을 뛰어넘고 성장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결말 즈음엔 주인공 부부가 어느 정도 갈피를 잡고 성장할 여지를 남긴 것과 달리 나는 아직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는 중이다. 최근 심적으로 당황스럽고 허무한 일과 마주해 심란해진 나머지 블로그에도 신경을 못 쓸 정도다. 이 책을 비롯해 예전엔 즐겨 들었던 노래의 가사나 예능이나 유튜브에서 접하는 좋아하는 연예인/유튜버들의 말이 급소에 박힌 듯 나를 흔들고 아프게 한다.

 마냥 웃고 즐기기엔 인생은 너무 길고 세상은 그리 너그럽지 않다. 지금 내가 아무런 변화도 각오도 없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저 나이만 먹었다간 내 미래는 안 봐도 비디오다. 그건 아는데... 이 책을 읽고 이렇게 후기를 남기는 동안에 뭔가 결심을 하기엔 너무 거대한 고민인 것 같다. 독보적인 여운과 위로를 선사한 작품의 결말이 나에게 뭔가 깨달음의 실마릴 던졌더라면 참 좋았겠지만 인생의 변화를 책 한 권으로 계기 삼으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안일하고 위험한 생각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또 나는 나대로 충분히 사유하며 활로를 모색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한숨 쉬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고 나는 지금도 고민 중이다. 과연 어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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