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림픽의 눈물


평창 올림픽 유치 성공을 보면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아마도 우리 민족은 주기적으로 저렇게 하나된 마음을 쏟아 붓고 그 성공을 확인하고 또 같은 마음으로 얼싸 안아야 내일의 희망을 다질 수 있는 민족이 아닐까 싶다. 그때 공감하는 감격의 환희와 뿌듯함의 카타르시스야 말로 다른 무엇이 아닌 긍지높은 대한민국의 한사람인 걸 위안삼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모두 같이 동시에 울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 보면 우리의 그때 표정도 사뭇 다른 나라의 울컥과는 좀 다른 편인데 완전한 기쁨이라기 보다는 서러움에 복받치는 슬픔의 미학이 배어있다. 거기까지 올라오는데 고생했던 그간의 서러움이 목을 타고 동시에 올라오는 것이다. 많이 서러웠을수록 울음이 터지는 순간의 표정이 고통스러운게 아닐까. 이 심리 밑바탕에는 (식민지 국가, 분단국가로서)다분 오랜 열등감과 패배감등이 숨어 있는 듯하다. 어떤 핍박과 무시, 비난과 질타를 받아온 자 특유의 극적 해방감이 스스로를 옥죄던 열등감과 정면에서 대치하면서 스파크를 일으키는 순간의 본능적 고통일 터이다.

그러면서 자연 내 고생도 고생이지만 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뛴 동료의 고생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나는 우리네 고생방식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 얼싸안고 부둥켜 우는 성공의 습관만은 어느 나라보다 아름다운 관행이라 생각한다. 평창 올림픽이 2018년이니 그때가 되면 내 나이 오십을 바라본다. (그걸 자각한 순간 눈물이 싹 가셨지만 ㅋ) 지금의 내 세대는 올림픽 정신을 대학입시 다음으로 쑥쑥 함양하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의 올림픽을 더 구경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살면서 겪어온 올림픽은 분명 미래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것을 부인하지 못할 듯하다.

내가 중학생 때 84년 LA 올림픽, 고등학생 때 88서울 올림픽, 대학생 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솔직히 그 이후론 이전보다 선명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002년 월드컵까지 헝그리 스포츠정신은 개발도상국이라는 네이밍에 가장 부합하는 이데올로기였다는 생각이다. (그런면에서 전두환은 용의주도했다)

터져나오는 올림픽 눈물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먼저 84년 LA때 구기 종목사상 첫 은메달이었던 여자농구. 그때 중공을 물리치고 박찬숙이 공을 땅바닥에 꽂으며 동료들과 얼싸안고 부둥켜 울 때.(여름방학이었고 무지 더운 날 오후였다) 88년 양영자, 현정화 탁구 복식조가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모의고사를 앞둔 독서실 1층 동네 언니네 가게에서) 92년 스페인 몬주익-바르셀로나는 기억안나도 몬주익은 기억나네-광장에서 황영조가 마라톤 1위로 골인할 때.(알바하는 회사 회의실에서)

세 번의 얼싸안음을 마지막으로 나는 사회생활 이후엔 올림픽을 기억하지 못한다. 90년대는 나의 이십대였고 그땐 너무 바빴고... 하루하루가 올림픽보다 치열했으니까. 아마도 그렇게 나이들어 헝그리 정신을 잠시 잊고 한참 뒤 4강 신화에 놀라움과 우월감을 맛보았던 것 같다. 홍명보의 만세는 곧 대한민국의 만세였으니까. 우린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역대 모든 대회에선 항상 평소성적 이상의 기적같은 승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기특한 이력이 있었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치고박는 경기가 아닌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경기에서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과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미국보다 유럽에 가진 열등감도 많이 사그라 들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청소년 시절 도저히 범접할 수 없었던 독보적 존재 카타리나 비트를 만장일치에 가깝게 이겨버린 김연아를 보니 어찌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발표가 끝나고 비트는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는데 나는 그 눈물에서 아쉬움과 슬픔, 미련과 후회보다는 그저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 하는 선진국 舊 피겨여왕의 오만함을 엿보았다. 어찌 우리가. 어찌 내가... 저들과 저 친구에게... 하는. 

 

#2. 중년의 눈물


눈물을 정리하고 다시 눈을 떠본다. 엊그제 덮은 책(데리다 평전)에서 데리다라는 철학자는 우리의 눈이 무엇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굉장히 시적인 말을 했다.(내 보기에 데리다는 철학자가 아니라 시인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동종업계로부터 ㅋ 비난을 받은게 아닐까)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곧 눈이 머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순간엔 눈물 흘리는 나도 그것을 바라보는 상대도 볼 수 없지만 그렇게 나 자신을 알 수 없는 순간이 바로 세상과 타자에게 마음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라 말한다. 이는 곧 내 눈이 멀어야 내가 아닌 내 앞의 타자, 그리고 그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인 것이다. 우리가 눈뜨고 보는 것은 세상이 아니고 실은 그들에 비친 나라는 것이다.


우린 요 며칠
각자 눈이 멀어 내가 아닌 타인들과 그리고 그들이 속한 우리 세상으로 한껏 열려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열어젖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나도 그래왔지만 마찬가지로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고생해온 남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아닐까.

서로가 네 탓이오 소리를 높이다가 이럴땐 모두 그래 당신도 수고했소, 하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또 주말을 앞두고 있다.
이제 다시 눈을 떠 나를 바라본다.
조금은 더 달래고 싶은 마음에, 아직은 더 울고 싶은 마음에
달달한 에세이를 주문했고 마치 위로해 줄 사람이 내게로 달려오는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다.
신달자님의 위로는 (주제넘는 말이지만) 통속과 신파속에서도 순수의 눈물을 건질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엄마를 잃은 내게 이분의 한마디가 네 고생 먼저 해본 내가 잘 안다는 말씀으로 들려온다.

감동은 무엇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만나는 감동을 마음으로만 삭이지 말고 자신이 다시 감동이 되는 일로 연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음속에 그 어떤 이야기가 있어도 좋다. 가능한 독하게 마음을 추스르는 이야기를 앞세워서 자신이 지금 하려고 마음먹은 그 일의 계기로 삼아라.  


자기를 일으키는 일이 곧 모든 마음속의 화를 잠재울 수 있는 일이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자신을 심술로 가득한 독 안에 가둬 둔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13p, 신달자, 민음사>

 

몇 년전 마흔을 앞두고 이분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그때 많이 울었더랬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죽도록 사랑해 결혼한 남편을 먼저 보내는 순간이었는데 그때 작가는 이런 고백을 했다.

죽음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숨넘어가는 일이, 숨이 딱 멎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나는 그때 보았다. 내가 말했지.

“우리 다음에 다 만나요. 우리 다함께 만날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자 그는 순하게 눈을 감았다. 다시 만난다는 그 말에 그가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만나지 않으면 결코 죽지 않겠다는 듯이 죽음을 저항하다가 다시 만난다는 약속을 받고 그는 내 가슴에 안겨서 그 전쟁같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던 것이다.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215p, 신달자, 민음사 >


나는 저런 말을 돌아가신 내 부모님에 할 수가 없었다.(저 책을 읽은 시점은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생각해보니 그냥 ‘잘가라’는 말보다는 ‘다시 만나자’는 말이 참 따스하고 듣는 입장에선 외롭지 않게 눈감을 수 있겠다 싶었다. 먼저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따라간다는 생각을 건네지 못한 게, 그게 너무 후회스러워 가슴을 치며 울었던 거 같다. 이제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누가 죽으면 혹시라도 임종을 지킬 기회가 온다면 누구에게라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누구라도 내게 저렇게 말해준다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다시 만난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품고 순하게 눈을 감고 싶다.

주말을 견디자. 우리 모두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쯤이야 얼마든지 키워내며 잘 살고들 있지 않은가. 그 이루어질 수 없어 보였던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들 얼싸안은게 아니겠나. 국가의 희망과 개인의 희망을 동일시하는 이 민족주의적 가치관, 그것이 내가 지난시절 올림픽을 통해 배우고 쌓아온 정말 주장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서러운 방법이었다. 이번주까지는 배운대로 희망을 써먹어 보고 싶다. 나머지 서러움쯤이야 내게 달려오는 책들과, 그리고 이 글을 나누는 당신과 함께 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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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08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계 올림픽 유치된 게 의외로 덤덤해요.
물론 그들의 수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겠는데,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엔 명암이 있다고,
88때 그 화려함 이면에 가난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뤘다잖아요. 이도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저거 유치하느라 돈을 얼마를 썼을까 싶기도 하고,
암튼 아직 실감이 잘 안납니다.

신달자씨가 또 에세이를 냈군요.
20때 시절에 참 많이 읽었는데...
그땐 에세이가 뭔지도 모르고 읽었던 것 같아요.
그다지 대접받던 분야도 아니고.
지금은 에세이가 좋아지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40대 때 읽은 신달자씨의 에세이는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올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한사람 2011-07-08 14:24   좋아요 0 | URL

ㅋ 저는 발표되던 순간에 아예 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같은데요 ㅋㅋ
제일먼저 트윗에 이외수 작가가 올려주시더군요
뱅쿠버도 적자였고..88 올림픽 때문에 노점상 철거된 것들도 생각났지만
그 순간엔, 기뻤어요 !!
(제 친구는 올림픽 꿈나무였는걸요~)

가끔은 신달자님 같은 시인이 쓴 여자만을 위한 에세이가 저는 좋더라구요
겉으로 보기와 달리 사연이 많은 분이더군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보물선 2011-07-0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진행하는 제주포럼에 신달자 선생님이 강연자로 오셔.
http://jejuforum.korcham.net

그래서 <나는 마흔에...>를 읽었어.
너무 기구하셔서 민망하기까지... 너무 그분의 힘든 과거를 다 알아버린것 같아서...

뵈면 그냥 막 좋아해 드릴라구~
따님이랑 동행하신대!
늙으막을 멋지게 보내시니, 복 받으신거겠지??

한사람 2011-07-08 17:31   좋아요 0 | URL

잠시 건너 갔다왔는데 시인으로서 인문학 강의를 하시는구나
어디서 들었는데 강연이 무척 감동적이라
다들 팬이 된다고 하던걸..부럽다 ㅋ

그책 좀 나이 들어서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야
허긴 어릴땐 그런 책들이 눈에 가지도 않지만~

주말 잘 보내!!!

마녀고양이 2011-07-08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중년이 주말을 견디는 방법'에 차마 댓글을 못 다는 것은,
한사람님과 동갑인 제가 이 글에 너무나 공감을 한다면.....
이제 빼도박도 못 하게 중년임을 자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한눈으로 홀끗거리며 갑니다. ^^

중년, 멋지게 견디시기 바랍니다.

한사람 2011-07-08 23:11   좋아요 0 | URL

그 심정 아주 잘 알거 같아요 ㅋㅋ
저도 중년이라는 호칭이 너무나 싫어서 일부러 붙여준다고 할까요
그냥 아무 감정없이 느껴지게 되길 바라면서요
죽는날까지 중년으로 살려구요 ㅋ

마녀고양이님이 저와 갑장인지는 몰랐어요
더 반갑고,
좋아요

좋은 주말 되어요^^

cyrus 2011-07-0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결과 발표에 대해서 긴장을 좀 했는데,, 발표 전부터 확정된다는 기사 내용 때문에
확정 소식을 들어도 뭔가 김이 샌 느낌이 들었어요.

한사람 2011-07-08 2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분위기가 되는 분위기였잖아요
솔직히 대통령까지 사활걸고 피튀기는데 거기서 안되었으면
어쩔뻔했어요~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발표되던 순간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ㅋㅋ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성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 고종석 일일연재, <해피패밀리> 제 2회 中에서

http://cafe.naver.com/mhdn/27456

 
   


솔직히 말하면 저 위의 문장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은 어줍짢은 시인들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소설가, 다음은 평론가, 다음은 출판 관계자...

즉, 가장 순수해야할 성정 순으로 저 법칙은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글을 잘쓰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만약 내가 글을 잘쓰는 사람의 범위안에 속한다면 나 역시 열외일순 없을 것이다. 글은 오로지 글로써만 신뢰하고 글로써만 감동받는다. 글을 그것을 작성한 사람의 삶이나 인격, 혹은 지식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이차 가공한 것이지 절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글은 글쓰는 사람이 글쓰는 순간에 자신을 정화한 것이지 그 이전과 이후의 자신을 바꾼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정화가 아니라 반성, 감동, 공감, 분노, 환희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동스런 글, 교양있는 글을 쓴 사람은 어쩐지 인격의 수준도 높고 감수성도 예민할 것이라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글이 곧 사람이라는 오래된 관습적 편견에 의해 글을 그 사람의 됨됨이로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꼭 착하라는 법이 없으므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꼭 인간성 좋으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교회는 다분히 행동적이고 글은 사고적이다. 사고는 행동에 우선한다. 깊은 사유를 풀어놓고 그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글은 그 사람의 사고과정이므로 곧 훌륭한 인격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까지 생각했으니 분명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는 무언의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사회의 상식이나, 뻔한 윤리, 표어같은 도덕성 쯤이야 기본이겠지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공동의 고민이나 善, 혹은 인권문제까지도 정의의 편에 설것 같고 자신 및 타자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엄격하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또 대부분은 글 잘쓰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할 터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럴려고 노력하고 그런 줄 믿고 싶은 것이지, 글은 여전히 위선과 폭력을 은폐하는 가장 손쉬운 도구이자 시스템, 소프트, 혹은 이 모든 걸 포함한 사회 및 개인의 재능에 불과한 것이다.

글 너머 그 사람의 실상은 글 안의 허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여지껏 살면서 글좀 써보려고 애써온 슬픈, 내 결론이다.

외려 글을 쓸수록, 글을 잘 쓰게 될수록 순수성과 독창성은 반비례해 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글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 글을 쓴 사람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 내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다. 미련이라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내가 꼭 그렇게 되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생각까지 한다.

적어도 아름답고 고통스런 글을 쏟아내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누구보다 진실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 후에 설령 그가 다시 위선으로 자신을 기만했다고 해도 다시 글을 쓰며 그렇게 살지 않으려 했다고 믿고 싶다. 책좀 읽고 글 좀 쓰다보면 위선보단 진선을 향하는 순간이 많아지리라 믿고 싶다. 평일 내내 다른 사람을 욕하고 거짓을 일삼아도 주일에 기도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를 존중한다. 그 사람은 주일마저 마찬가지 인 사람보다는 아름다울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고 책이 좋다고 떠들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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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7-0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문장이 있어요, "순간을 믿어요~!"


한사람 2011-07-06 12: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굿바이님도 오늘은 맑은 하루 되시길요^^

2011-07-06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6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맞아요.
글은 참 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 쓸수록 날카로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죠.
이 날카로움으로 누군가를 찌를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하지만 칼은 그 자체보다 가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처럼
글도 글 자체보다 쓰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리라고 봐요.
물론 글 잘 쓰는 사람이 다 고매한 인격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엊그제 읽었던 글에, 목사는 위선적으로라도 선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러더군요.
그렇게 되다보면 정말 선해진다고.
글도 그런 것 같아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위선적으로라도 잘 쓰다 보면
언젠간 좋은 인격을 갖게 되겠지요.
문제는 제가 그 글을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남의 서재에 들어와 댓글을 지나칠만큼 길게 쓴다는 것이고.ㅠ

한사람 2011-07-06 12: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걸요 ㅋ
길게 뿐인가요, 주렁주렁 참견에 부연에 .. 떠들어 대는 걸요

고종석 작가의 연재소설을 읽다보니
(그분 참, 찔리는 문장을 많이 풀어 놓으셔서 ㅋ)
글과 책, 그리고 작가...그리고...나..
그리고 이곳..
이렇게 생각이 연쇄적으로 이동하더라구요..

혹시나 나는 글로써 남의 눈물을 쏙 뺀적이 없을까..

그런 자책도 들구요..

달사르 2011-07-0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어느 작가분이 저에게, 너는 왜 글을 쓰니? 라고 물어봤어요. 물론, 일기같은 글이었지만!
그래서 "제가 마음수양하려구요. 글을 쓰다보면, 내 속의 마음을 들여다볼수 있거든요." 하고 대답했는데요.
한사람님 표현처럼 글 쓸 때는 마음이 많이 정화되는 듯해요. 그리고 실지 현실과 차이나는 지점도 발견하구요. 순결하다거나, 노력한다거나, 멋있다거나..하는 등의 글 속의 나 자신과 현실의 나 자신이 다르다는 걸 어느 순간에 자각하고나면 무~~척 부끄러워지더라구요. 그러면서, 아..내가 글 속에서 나를 속이기도 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더랬어요. 그렇게 계속 일기든 뭐든 글을 써나가면 나도 몰랐던 스스로에 대한 속임도 발견하게 되고, 또 아주 조금이나마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가 생기더라구요. 글을 쓰면서 드러운 내 성격을 조금이나마 고치고 싶다, 뭐 이런 거도 있구요. 헤

고종석 일일연재, 보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한사람님의 포스팅 보는 것도 좋은데요? ^^

한사람 2011-07-06 16:20   좋아요 0 | URL

저는 울면서 쓴 글은 울지 않을 때 보면
아주 가관이라는 생각을 해요 ㅋㅋ
나를 할수 있는 만큼 자학해놓고 스스로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며
연민에 빠지는 작태를 미칠만큼 경멸해요..

그래서 저런 문장은 꼭 저 들으라 하는 말만 같아서
이런 포스팅은, 실은 제 스스로에게 부치는 편지 같은 글인게죠..

cyrus 2011-07-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블로그에 글을 남기면서 글 속 내용에 담겨진 감정과 실제 감정이 정반대라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도 독서모임을 하면서 알게 되었구요,,
그렇다보니 글 한 번 쓰면 길게 써지게되구요,, 가끔씩 그 부분에 대해서 저 스스로 아쉬울 때가 많아요.

한사람 2011-07-07 11:02   좋아요 0 | URL

저도 독서모임을 나가볼까 생각하는데..
말로 전하는 것과 글로 적는 것은 그 본질이 차원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는 다는 생각이어요
저 역시 제대로 설명을 다 못한다는 느낌때문에 서평이 길어지는 쪽이라 시루스님 말 통감합니다^^

또 말이나 글이 원래 생각과 다르게 나가는 경우도 많구요.
특히 글은 그 다음을 엮어야 하니까 원래 생각이 많이 가공되어 나타나게 되죠..

서평은 완전 사기가 아닐까, 어떨땐 그런 생각도 해요 ㅋ

마녀고양이 2011-07-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공감되는 페이퍼입니다.
글을 쓴다는 자체가, 자신을 가장하고 방어하게 되더라구요.
제 자신이 되고 싶은 측면, 보여주고픈 모습, 그리고 뒤늦은 후회일 경우도 많구요.

알라딘 서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때부터 글자라는걸 끄적거리게 되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실수하고 배우고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활자화도 중독인듯해요, 빠져나오기 힘들걸 보니 말이죠.
(사실 글쓰기가 좋은지 아니면 친한 알라디너의 호응이 좋은지 구분하라면, 음......... 자신이 없네요, ㅎㅎ)

한사람 2011-07-07 11: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글로써 자기논리를 만들다보면
그것이 자신을 변호하게 되고 자연스레 타자에게 상처 혹은 공격이 되는 글이 되게 마련이죠..
원래 그러한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글을 쓰다보면 그런 자신을 알아달라는 식의 내용이 되버리잖아요..참..

저는 알라딘 서재에 맘을 붙였더니
글쓰는 일이 좀 활력적이 된거 같아요
예전엔 독백이었는데 이제는 대화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것에 중독될까봐 겁이 나네요

달사르 2011-07-0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 오늘 저기 링크를 따라가서 고종석님 글을 읽어봤네요. 음..글을 무척 정돈된 스타일로 쓰시는 분이신거 같앴어요. 한사람님 덕분에 연재소설 하나 읽겠어요. ^^

한사람 2011-07-08 00:36   좋아요 0 | URL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자신의 사유를 풀어 놓는 스타일이라..
이야기 보단 사고하는 재미가 있는거 같아요 ㅋ
오늘까지 읽어보았는데..언제까지 갈지 몰라요 ㅋ
 

 


작가들에게 문학상을 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모르긴 해도 모두 잠든 그동안의 밤에 흘린 눈물이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로 화답하는 기분이 아닐까.

내가 아는 작가, 내가 읽은 작품이 상을 타면 괜스레 무언가 기여를 했다는 착각에 덩달아 벅찬 경우가 있었다. 바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의 경우 나는 작가의 소감을 읽고는 같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를 울린 독자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니. 나를 울려온 작가가 그런 말을 하니 나는 가슴이 터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는데 나에게 책은,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처럼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어떤 단정적인 문장으로 만날때 나는 그만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책 속의 추함이 현실의 추함을 따라잡는 법은 거의 없다. 책 속의 비참함이 현실의 비참함을 넘어서는 법도 거의 없다. 책은 내 아편이다. 술만큼이나.

- 고종석 일일연재, <해피패밀리> 제 1회 中에서

http://cafe.naver.com/mhdn/27416 

 
   


어제 늦게 연재소설을 시작한다는 고종석 작가의 첫 회를 읽게 되었다. 주제넘지만 그의 인텔리하고 히스테리컬한 문장들이 내 졸음을 가시게 만들었달까. 소설쓰시는 것도 반가웠고 연재까지 하시다니 좀 의외였다. 어쩐지 속세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작가여서 그랬을까. 위의 저 두어 문장을 어디다 적어 놓고 싶은 유혹을 참고 잠이 들었다.

아침 신문에 동인문학상 후보작에 관한 기사를 보며 자연스레 어제 덮고만 두 문장이 어른거렸다. 고종석은 2004년도 동인문학상 후보(엘리아의 제야)를 거부한 작가였다.

작년에 독고준이라는 소설 리뷰를 쓰면서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찾아본 기억이 난다.


   
 

 

"나는 조선일보가 수구 냉전 복고세력의 선전국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비도덕적으로, 현저히 정치적으로 드러내왔다는 판단때문에 집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조선일보를 읽지 않는다" 

"심사위원단의 종신화와 상금의 파격적 인상, 그리고 상시적 독회 평가의 기사화를 뼈대로 한 세 해 전의 체제 개편 이래 한국문단에 대한조선일보의 아귀 힘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도저히 이 상의 수상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고 그 얼굴을 지면에 실은 데 대해 조선일보 쪽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심사독회에 올랐을 뿐 수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거부라니 내 꼴이 얼마나 우스운가, 그렇다고 제가 비판해온 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는 꼴은 또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나쁜 뜻이야 없었겠으나 결국 조선일보 지면은 나를 조롱한 셈"


- 2003. 12.25, 한국일보 고종석의 칼럼 '동인문학상의 생각'

 
   


그 외에도 동인문학상은 2000년 황석영, 2001년 공선옥 작가가 후보를 거부했던 적이 있었다. 독고준 리뷰를 쓸 때는 그의 동인문학상 거부 사실을 다시 책의 홍보 헤드카피로 활용하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독고준 소설 앞에는 ‘동인문학상 거부 고종석’이 메인 카피였었다. 그는 아마도 작가하는 동안엔 거부사실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텐데 그럼 발표하는 소설마다 저 타이틀을 활용할 것인지 묻고 싶었다. 물론 그의 의견과 상관없이 출판사 마케팅 차원에서 적극 앞세우고 싶었겠지만 사실 독고준과 동인문학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은가.(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는 꼴은 또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라는 말만 안했어도...) 본인으로선 거부 사실이 사실이므로 기피하거나 숨겨야 할 사실이 아니었겠지만 어쩐지 뇌물을 안 받아 놓고 나 뇌물 안 받은 의원입니다, 하는 안보고 싶은 경우에 속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여, 그땐 독고준과는 별개로 침묵이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만 없었던 것으로 한다면(?) 나는 그가 수상작도 아닌 후보작을 거부할 때 인터뷰로 날린 저 멘트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또 하나 의문이 들었던 건 ‘도저히 이 상의 수상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이라는 부분인데 나로선 어떤 사람이 수상이 안되는 이름인지 알 수 없으므로(그해 수상자는 김영하 작가였는데 솔직히 고종석이 김영하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음이다) 그 어떤 사람의 기준이 몹시도 궁금했다. 독자 입장에선 솔직히 수상한 사람은 무언가 더 아우라가 크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작년에 같은 상을 수상한 김인숙 작가도 그러한 영역에 속해있다. 마치 영화제 주연상을 수상한 후 몸값이 올라가는 이치처럼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 상받은 작가라는 인식은 떡허니 선입견의 저장위치에 한 자리를 내주었다.

올해는, 누가 그 위치에 들어 오실런지. (사실 크게 궁금하진 않지만) 후보작들을 훑어 보니 그들 중 반은 내가 읽은 작품이라 나도 참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작 발표는 10월이고 7월말까지 출간된 소설까지 후보작을 선정한다고 하니 앞으로 두세 편은 더 포함 될 듯 싶다. 현재까지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총 열세 편이다.(작년은 열여섯 편) 

 

 

 

 

 



 

    

 

 

 

 

 

 

 

 

 

 

 

  

 

 

 

 

 

 

 

 

 

지금까지 후보작은 권여선 소설집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최제훈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같은 작가의 연작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김도연 소설집 '이별 전후사의 재인식', 강영숙 장편 '라이팅 클럽', 서준환 소설집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김숨 소설집 '간과 쓸개', 박민규 소설집 '더블', 박금산 장편 '아일랜드 식탁', 편혜영 소설집 '저녁의 구애', 윤영수 소설집 '귀가도', 염승숙 소설집 '노웨어맨'  

완전 소설집의 축제이다. 작년 수상작 김인숙의 <안녕, 엘레나>도 소설집이었다.  단편 많이 읽는 축에 속하는 나도 서준환, 염승숙의 소설집은 낯설게 느껴졌다. 등단한지 3년된 최제훈 작가의 돌풍도 놀랍다.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문서로 사기치는 능력이 남다르다 느꼈지만 두개의 작품을 후보로 올리셨다. (보통 후보작이 두개일 경우 이상하게도 수상확률이 낮은 편이지만 ㅠ.ㅠ) 

이들중 개인적으로 수상하였음 싶은 작가는 김도연 작가이다.  완전 내 기준, 그러니까 순수문학은 순수해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내 기준에서. (강원도 출신이고 작품에 유난히 눈내리는 마을, 눈 쌓인 배경이 많이 등장하는 덕이다)

눈에 띄는 작품 중에는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 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북쪽 향기의 내음이 났다.  

이야기는 함경북도에서 탈북해 벨기에로 밀입국한 청년 로기완을 쫓아 브뤼셀로 날아간 어느 방송 작가의 정체성 찾기라고한다. 다음 후보작이 선정되기 전에 읽어보고 싶다. (는 생각이지만 읽을 책이 쌓여있구나....ㅠ.ㅠ)

더불어, 이러한 논의에 언급되는 것 자체를 거부한 고종석 작가의 연재소설도 기대된다.  

(연재소설 끊은지 얼추 일년인데 다시 불을 지피는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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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7-0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연재소설 안 쓸거 같은 작가들이 쓰는 연재소설은 정말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당. 저도 고종석 일일연재 따라가볼까요? 접때 문동에서 허수경 일일연재 시작했더랬는데 한 두 번 따라가다보니 지쳐서 말았지 뭡니까. 일일연재 따라가면서 읽는 거 이거..독자도 대단하지 말입니다. 작가도 대단하지만, 독자도 대단하다! 에 한 표. ㅎㅎ

문학상..이 우리나라에 종류가 많은가요?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언급하신거 말고도 또 있을까요?
위에서 저는 더블이랑 저녁의 구애랑, 두 권이나 읽었네요. 히

한사람 2011-07-05 11:00   좋아요 0 | URL

어휴~ 작년에 몇개월 하루도 안빠지고 일수찍듯 해봤는데요
보통의 에너지가 필요한게 아니더라구요 ㅋ
완전 그 시간에 맞추어 하루 일정이 짜지던걸요 ㅋㅋ
첨에 멋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가 그땐 그 다음이 궁금해서 마치 드라마에 빠져들듯
그랬죠..

제가 생각하기에 연재소설에 더 적합한 작품이 있고
그냥 전작으로 더 감동적인 작품이 있는 거 같아요
몇 회 읽어보다가..스스로 결정했죠^^

이번은 몇회까지 갈지 모르겠는데..
저는 고종석 작가의 칼날같은 관념적 사유가 좋아서..그거 찾으려고 또 몇번은 클릭질을 할거 같다는 ^^

글구, 저도 문학상은 이름 외우는거 그거 두개가 다 일껄요?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고민의 흔적


7월의 추천 페이퍼를 쓰려고 하는데 아래의 댓글이 퍼뜩 떠올랐다. 잊고 있었는데  나도 참 뒤끝 작렬이다.

아래의 댓글을 보면 내가 추천한 책이 다른 분이 추천한 책보다 수준이 낮다는 것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소위말해 자신처럼 수준 높은 사람이 택하는 책과 내가 추천하는 책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과 같다. 지난 달 <인지 자본주의>가 버거워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웃님 방에서 맞장구좀 쳤다가 (내가 생각하는)평가단 책을 추천하는 과정상의 문제점이 공론화 되면서 어떤 분이 이렇게 답을 단 것이었다.

   
 


한사람님이 선정하신 책과 내용물을 살펴본 결과, 한사람님은 그저 자기 수준보다 어려운 책이 온다고 불평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엉뚱한 댓글을 달면서 '미션오류' 같은 퇴행적인 발언을 할 것이 아니라, 신간평가단을 탈퇴하시는게 맞지 않은가요? 고생하시길.                           - 예전 평가단이라는 어느 익명의 알라디너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되지 않아 자기 논리를 만들어 투정부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투정을 부린 건 사실이므로 부끄럽지 않으나 계속해서 책을 추천하는 페이퍼를 써야 하는 입장이므로 그냥 무시하자니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가 택한 책이 곧 나의 수준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평가단이 있다는 사실이 나로선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소설쪽 페이퍼 쓸 땐 어떤 책이 선정되어도 상관이 없었기에 거의 다른 분들을 따라하는 쪽이었다. 마음의 부담도 없었고 또 내가 생각하지 않는 책이 선정되어도 걱정이 되거나 실망이 되지 않았다. (소설분야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도 분명 어려운 소설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다분히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 못한다고 해서 수준낮다고 비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문제제기를 한 쪽이라 또 누군가는 나를 주목하고 있을 거라는 소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도 일단은 남들 보기 멋있고 근사하라고(?) 위화감 조성차원에서 부러 어려워 보이는 책위주로 페이퍼를 쓸 수는 있으나 그건 옳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대응일 뿐일 터이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둘 것은 어려운 책을 읽어낸 것과 어려운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문제임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해 서평은 책을 안 읽고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평 마감 시간 때문에 책을 다 못읽고도 얼추 때려잡아 소설 완성하는 경우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할 사람 누구인가) 그건 내가 주로 긴 서평을 쓰고 있고 (기록차원에서)책의 컨텐츠를 부러 꼼꼼하게 파헤치는 쪽이라 누구보다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속된 말로 대충 넘겨보고서도 어느 정도 필력과 기존 독서량이 있는 사람은 언뜻 보기에 잘된 글의 서평을 쓸 수가 있다는 말씀이다. 즉, 서평을 잘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그 책을 꼼꼼히 읽었고, 완벽하게 이해했고, 또 감동까지 받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임을 서로들 인지하자.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혹시나 나같이 남들 의식하는 평가단이 서평의 의무와는 상관없이도 (복합적인 이유로)어려워 보이는 책을 추천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읽기도 좋고 쓰기도 좋고 평가하기도 무난한 책이면 모두가 해피하겠지만 여러번 작업도 반복해보니 이젠 책받으면 절로 견적이 나온다. 이 책은 읽기는 수월하나 쓰기는 만만치 않은 책. 이건 읽기는 쉬워도 평쓰기가 난감한 책. 읽는 건 고충이었으나 보람과 감동으로 서평을 써내고 싶은 책. 뭐 이건 대략 읽기도 쓰기도 감히 토달기도 어려운 책 등등.  

위의 같은 평가단 익명자는 당연히 화제가 되는 책이 궁금하고 그 책을 읽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 말씀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 모두가 신정아, 고현정 에세이를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이번엔 (수준낮은)내 기준에서 여러 기준으로 범위를 확대해보기로 했다.  이른바 객관성의 확보가 중요다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내 성향이 반영된 결과이며 궁극적으로는 내가 읽고 싶은 범위에 국한 되겠지만 어떻든 운영측에까지 투정을 부린 입장이므로 내 스스로 기준을 좀 엄격히 하고 싶다는 바램이다. 이 모든 건 내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벌어진 상황임을 인식하고 앞으로 나부터 추천에 신중함, 객관성, 공신력, 다양성, 형평성 등을 고려해 페이퍼를 작성하겠다.(그러자니 죽을 맛이다)  혹시라도 내 페이퍼로 마음이 상하는 평가단 분들은 없기를 바란다. 나도 남의 글을 스쳐지나가는 입장에서는 콕 집어 나라고 하진 않았지만 괜한 자격지심에 흠칫거릴 경우가 있었다. 내가 예로 든 것은 당신과 나는 아닐 수 있으나 우리 모두일 수는 있는 일 아닐까. 나는 평가단이 무슨 벼슬인 마냥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런 나를 웃기다고 해도 할 수 없다.

  

#2. 고민의 결과


1.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 이택광 / 자음과 모음 ................ (사회과학>문화이론)

이 책은 보기 드문 비평 에세이다. 무엇보다 표지에 끌렸다. 이 사진(손을 수리하는 손, 샤인 윌리스)은 <인지 자본주의>에도 실린 사진으로 인지가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사진이라 하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이 사진은 기억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는 2004년 부터 2010년 까지 한국사회에 벌어진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 문화구조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심도높은 문화비평이 가득하다. 이 책을 통해 벤야민과 유영철과 신세경의 관계도를 한국적으로 그려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게한다. 사실 문화란 말처럼 언제 어디서나 에두를 수 있고 쉽고 편하게 통속적인 장르적 언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일분 일초가 멀다하고 대중문화를 실시간으로 소비하고 있는 문화시민들이고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근거없이 우리끼리의 잣대로 대중문화를 비판, 추종, 수용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문화현상을 어떻게 제대로 비판하는 것인지를 친절히 가르쳐주는 실용성을 미덕으로 갖춘 듯하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문화비평이 곧 정치적 사유와 연결되었음을 주장한다. 대중문화야 말로 정치를 위해 발명된 하위구조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문화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여론에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꽤 지적이고 흥미로운 선택이 아닐까.  

http://wallflower.egloos.com/  이택광 교수의 블로그에 가면 어제 날짜로 임재범 퍼포먼스를 비판한 진중권에 대한 평가가 있다.

"역시나 진중권이라는 '잠수함의 토끼'는 뭔가 숨이 막힌다 싶으면 경고음을 울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가수와 그에 이어지는 '폭풍감동'을 보면서 뒷맛이 떨떠름했던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중권씨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 격이니 도리어 시원했을 수도 있겠다."(2011. 6.30)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더욱 그가 궁금해졌다.     

참고로 이 책은 자음과 모음에서 발간한 하이브리드 총서의 시리즈인 책이다. 그동안 지식인들에게 주목받았던 하이브리드 시리즈에 대한 소개를 첨부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181910515&code=900308 

 

 2. 아렌트 읽기  / 엘리자베스-영 브루엘 / 산책자.................... (인문학>현대철학)

내가 아는 한나 아렌트는 정치 철학자, 하이데거의 연인 정도에 불과하다. 한가지 더 있다면 자신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는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 아이히만에게 ‘무사유성’(thoughtlessness)의 혐의를 강력하게 추궁한 것인데 이는 주로 우리 사회에서도 조직과 나라를 앞세우며 민간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공직자들을 논리적,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근거로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출간되자 마자 로쟈님, 인문 MD를 비롯해 알려진 알라디너 분들이 강력하게 추천하던 것을 기억한다. 궁금하긴 했지만 내 수준에서 그들이 공통으로 추천하지 않았다면 감히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하여 일찌감치 7월에 추천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던 책이기도 하다.  

일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은 이 책의 저자가 (제자로서) 아렌트의 사상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아렌트의 핵심 저서를 대표화하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정신의 삶>을  통해 그 사유의 흐름을 밀도높게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에 한명의 철학자의 책을 여러 권을 읽기 힘든 현실이므로 이 책은 실속면에서도 꽤 알찬 구성인 것이다. 아마도 아렌트가 제시하는 사유의 렌즈를 통해 작금의 (상식과 정의가 사라진)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는데 유용한 팁을 제공하리라 믿는다.  

아렌트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와 테러에 기초한 신종 통치 형태’이며  20세기 중반의 전체주의 유산이 살아 있는 곳,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제국주의의 역사가 아직도 잘못 가르쳐지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적 이념의 영역 바깥에서 예를 하나 찾자면, 일본의 역사 교과서들은 한국의 잔혹한 식민화를 초래했던 일본의 1890년대 제국주의 역사를 부인한다. 동일한 역사 교과서들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중국 동북부를 점령하여 1000만 명가량으로 추정되는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누락하고 있다.   -84p

그러나 추천에 비해서 네티즌들의 리뷰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언론기사나 온라인 서점들의 소개보다는 출판사의 보도자료가 가장 잘 정리되 있었다. http://flaneurs.tistory.com/73   



 3.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 폴 블룸 / 살림.............................. (인문학>심리학)

일단 이 책은 심리학의 하위분야에 속한다. 저자도 심리학자이고 부제가 '인간 행동의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는 쾌락의 심리학'이다. 심리학이 제목은 흥미로와도 뚜껑을 열면 난해하기로 대표적인 분야이다. 이 책도 직접적인 질문에 비해서 제시하는 답들은 상당히 본질을 추구하는 케이스라 쉽지는 않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철학, 신경과학, 아동발달, 행동경제학을 동원해 사람이 몰입하는 쾌락을 분석한다고 하니 다양한 잣대가 등장할 터이다. 언제나 잣대가 중요하다.

저자는 음식, 예술, 섹스, 물건, 영화, 이야기, 과학, 종교까지  인간이 추구하고 몰입하는 쾌락에 대해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이끌고 움직이는지 풍부한 실험을 제시하였다.

와인 연구는 자주 논란을 일으킨다. 한 종류의 와인에 상표를 다르게 붙이고 와인전문가를 비롯한 사람들의 맛 평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볼 수 있다. 어느 연구에서는 똑같은 보르도 와인이지만 한쪽에는 최고급 와인을 의미하는 ‘그랑 크뤼 등급’을 붙이고 다른 하나에는 일반 와인을 의미하는 ‘뱅 드 따블’을 붙였다. 와인 전문가들 가운데 40명이 최고 등급이 붙은 와인을 좋은 와인이라고 평가하고 12명만 낮은 등급이 붙은 와인을 좋은 와인으로 평가했다.   _82p

'본질주의'가 모든 원인의 답은 아니겠으나  사람의 심리를 대변하는  각종 '본질'에서부터 원인을 정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 언론은 꽤 많았는데 그중에 가장 성의있는 기사를 첨부한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04/2011060400227.html?b_zinefr 

 
 
4. 확신의 함정 / 금태섭 / 한겨례.................................... (사회과학>법과 생활)

이 책을 인문 MD가 자세히 소개할 때부터 눈여겨 보았다. 
http://blog.aladin.co.kr/bookeditor/4880832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건 제목때문인데 성격상 하나의 정답을 고집하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많이 부딪혀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더욱 실감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만이 정답인 듯하다. 그런면에서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좀 배웠다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유효한 충고가 아닐까. 논쟁을 하다보면 어떻게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차, 삼차 논리를 만들어 궤변을 늘어놓고는 상대를 몰아부치는 사람들이 있다. 법조인이라면 더더욱 누구보다 논리 만드는데 전공자들이므로 확신이라는 덫에 빠질 경우가 많을 듯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검사시절 다루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자신이 빠질 수 있었던 딜레마를 마치 소설처럼 전개하는 문학적 구성력이 느껴진다.  

조국교수와 소설가 공지영의 추천도 구태의연해 보이지 않았다.  

금태섭 변호사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늘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재치와 예리함을 잃지 않는다. 이 책도 그를 닮았다. 여러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 편견 없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쉽게 내린 결론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간의 얼굴이 지워진 법과 정의란 얼마나 공허한지 흥미롭게 전한다.    - 공지영

살인·강간·강도 등 중범죄는 사형집행, 형량상승, 거세 등으로 근절될 수 있는가, 체벌은 학생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성매매는 금지되어야 하는가, 혼인의 충실은 형벌권을 사용하여 지켜져야 하는가, 문학과 예술의 표현에 형벌권을 통해 개입하고 통제하는 것은 정당한가, 테러범에게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첨예한 사회적 논쟁사안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인 저자는 국내외의 사례와 문학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난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문학청년’의 기질과 소양을 가진 저자가 쓴 책이기에 술술 읽히고 흥미만점이다.   -조국

  

 5. 책의 미래 /  로버트 단턴 / 교보문고............................. (역사>문명/문화사)

마지막으로 요즘 전자책을 사용해 보면서 더욱 궁금해진 책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집에서 볼 수 있게 되고 극장이 아닌 곳에서도 볼 수 있다면 영화관에는 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 말했지만 세상은 영화관을 첨단의 멀티플렉스로 발전시키면서 시스템과 음향, 화질의 기회비용으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나같은 사람은 스마트 폰으로 조선일보 앱을 확인하는 것과는 별개로 꼭 야들야들한 신문 종이를 손가락으로 넘겨가며 아날로그적 하루를 시작하는 쪽에 속한다.  오랜 세월 형성해온 습관의 힘을 거스르기는 늦었다고 생각된다.

전자책을 두어개 다운 받아 보면서 느낀 것은 접속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내 책은 없다는 물질적 소유감의 상실이었는데 책은 읽었다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가졌다는 인식도 중요한 상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활자가 아닌 화면상의 글은 이상하게도 나중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회성의 속성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화면상으로 확인한 뉴스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세대간 매체 노출빈도에 의한 감성적 격차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대 도서관장이다. 제시하는 견해는 기술의 변화를 통한 매체의 혁명이라기 보다는 주로 책의 보존과 영구출판, 라이브러리 환경에 대해 미래비전을 언급하고 있다. 아무래도 도서관장이니 그 많은 책들의 관리와 운영 및 처리가 중요한 화두였던 것이 아닐까.  관장님이 말하는 '책 없는 도서관'이란. 그리고 그를 통한 자아 발견이란.

‘전자책’은 인쇄된 코덱스와는 달리 피라미드 모양의 여러 단계로 배열되어 있다. 독자들은 텍스트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가장 높은 단계를 대충 훑을 수 있고 일반 논문처럼 읽을 수 있다. 그 텍스트가 마음에 들면, 인쇄해서 책으로 제본할 수 있고제본기는 컴퓨터와 프린터에 장착될 수 있다, 사용자 정의대로 단행본 형태로 간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텍스트를 찾게 되면 아래 단계에 있는 추가적인 에세이나 색인을 클릭할 수 있다. 독자들은 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문서, 참고서적, 역사기록, 도해, 배경음악 등 내 주제를 완전히 이해하도록 내가 제공하는 모든 것들 속으로 샅샅이 계속 파고들 수 있다. 결국 독자들은 그 연구주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연구주제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횡적으로, 종적으로 또는 대각선으로, 전자적 링크가 연결되어 있는 곳이면 어디나 클릭해서 읽을 것이다.  -114p

 

로쟈님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http://blog.aladin.co.kr/mramor/4891190 

'독서의 역사와 함께 책의 미래에 대해서 잠시 숙고해 보는 것도 독서가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욱 종이책을 구입하게 되지 않을까.

그건 꼭 손바닥안에서 보는 동영상도 있어야 하지만 가끔 표끊어서 극장에서 보아야 할 영화가 있듯이
사람은 그때그때 다양한 욕망을 기 등장한 매체로부터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전자책의 등장으로 전체 도서 매출은 늘어났다고 하니 이는 출판계에 희소식임이 틀림없다.
미래는 그렇게 한 분야가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존하며 서로를 보완한 상태로 발전하는 패턴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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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2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2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0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즈음 소설이나 에세이쪽을 택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님 말씀처럼 두 권의 책중 하나는 그래도 대중적이고 읽힐만한 책이고,
하나는 디따 어려운 책이거나 별로 흥미롭지 않은 책이거든요.
이즈음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실제로 포기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예술쪽 배송이 18명이고 보면.
쓸데없이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확듭니다.

지난번, 책 선정에 있어 주최측이 수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거의 권한이 없는 것처럼
말해서 좀 실망했어요. 물론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그저 모든 것을 추천에 의존한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모든 사람의 취향을 고려할 수 없다. 이것도 좀 그렇고.
그냥 대체로 모든 사람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책을 수위로 잡는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보편적이 된다는 게 평가단에선 좀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하긴 이말처럼 애매한 말이 어딨겠습니까?
책을 많이 만지다 보면 감각이란 게 생기는 법인데 이것도 개인의 취향이라고 말해버리면
주최측으로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닐텐데. 한마디로 저의 느낌은 알라딘이 이 부분에 관해서는
손을 놔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초기 때 비하면 많이 체계를 잡은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행정적인 거지 책을 보는 안목, 추천의
안목 이런 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사람님 추천의 수준은 결코 퀼리티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일목요연 하게 잘 쓰시는데요?
그런데 비하면 전 정말 대충하는 거죠.>.<;;

한사람 2011-07-02 20:21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보편적? 이라고 생각되는 중간수준? 의 책을 추천하는 편이어요
것도 완전 제 수준에서지만..
인문분야는 에세이와 예술분야의 책과 살짝 겹칠때가 있어요
예를들면 어려운 에세이, 그리고 예술의 인문학적 해석.

그래서 전 애매한 것 같아서 사회과학쪽으로 눈을 돌려보지만
거의 선정되고 있지 않지요 ㅠ.ㅠ
대부분 철학이나 정치쪽을 많이 추천해주시고 또 그 책들이 많이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읽고 싶기도 하고 소장용으로도 근사하고, 내용도 풍부하지만
그런 책들은 서평쓰기가 쉽지가 않아요. 어짜피 처음부터 훌륭한 책들이었기에
뭐라고 할말도 별로 없어요. 서평은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도 들구요

저는 좀 평가단 작업에 엄숙주의를 버리려구요..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하는게 꼭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오늘 들더군요 ㅠ.ㅠ

교고쿠도 2011-07-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8기때도 평가단 인문사회팀 안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특정분야 편중(사회과학 책이 주로 선정되고 자연과학은 찬밥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개인적으로 저는 사회과학을 훨씬! 선호합니다)

항상 가장 논란이 많은 쪽이 인문사회인거 같아서, 7,8기 인문사회팀에서 활동했던 저로서는 그런것에 염증을 느끼고 9기때는 소설이나 실용/취미 분야를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다시 인문사회팀에 도전해 9기로 활동하게 되었지만...(그만큼 사회과학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

그런데 타인의 취향 or 선호에 대해 수준 낮다고 매도하는 것이 참 어이가 없는 사람이네요. 물론 어떤 책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수 있고, 선정된 책이 마음에 안 들수도 있지만 타인을 저렇게 깔아뭉개는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즐겁게 책읽고 글쓰고 싶어서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는 건데, 저런 사람들 보면 스트레스만 쌓여요. 흑. (그러고보니 인지자본주의, 제가 추천한거라 왠지 죄송한 마음이...)

한사람 2011-07-02 20: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교고쿠도님
<인지 자본주의>가 쉬웠다는 분(추천하셨더라도 ㅋ)은 드물것 같아요.
제가 그 책때문에 걱정이 많아서 투정을 하는 바람에 괜히 그 책을 추천하신 분들이 맘 상하지
않으셨을까 모르겠어요. 어려운 책 읽어보겠다는 게 무슨 잘못이겠어요
그 분들에게 서운했다기 보다는
저 댓글을 쓰신분이 제 수준을 운운하는 바람에 자격지심에 괜히 저도 모르게
지난 달 미션이었던 <인지 자본주의>와 생각이 연결지어 진 것이지요 ㅠ.ㅠ

오래동안 인문분야를 하셨으니 제가 외려 조언을 받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겠는걸요
좋은 말씀 많이 새길께요..

앞으로는 책에 대한 마음을 좀 열어 보려구요^^
(마음을 비우는게 상책인 듯해요)

암튼, 댓글로 힘 주셔서 고마워요
(이런 글에 글 달기가 쉽지 않잖아요 ㅋ)

교고쿠도 2011-07-02 20:49   좋아요 0 | URL
사실은 인지자본주의, 제가 추천해놓고도 아직 리뷰를 못 썼습니다. 뭐랄까 항상 모든 글은 첫 문장이 잘 쓰여지면 그 뒤로는 편한 마음으로 쓸 수 있는데, 아직 첫 문장도 못 떼고 있어요. 그 외에 리뷰해야 할 다른 책들도 꽤 쌓여 있고...

때로는 제가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신간평가단이나 여타의 서평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저런 논란들로 인해 때로는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염증이 느껴져서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제가 좀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듯 합니다. ㅜ.ㅜ

사실 글 수준으로 보면 다른 신간평가단 분들보다 제가 좀 떨어지는데, 아직까지 글 수준낮다고 욕얻어먹은 적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한사람 2011-07-02 22:22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책에 적응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다 읽고는 그냥 내가 아는 부분만 쓰자고 결심했고 책에 어떤 패배감을 처음 느껴봤어요 ㅠ.ㅠ
하지만 그렇게 쓰고나니까 뭔가 지식이? 쌓인 것 같은 ㅋ 느낌은 들었어요 참~
인문분야가 그런가봅니다..

그리고 저는 글 수준 높은 사람들이 꼭 많은 지식, 높은 인격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요
글과 사람이 같지 않다는 것도 알구요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가공한 것이지, 절대 그 사람 자체의 수준이 아니어요..
특히나 문장력의 구성이나, 텍스트에 현학적인 표식만으로 글쓴이의 수준을 가늠하는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절대 글보고 그를 판단하지 않아요
(물론, 이런 저도 여기선 오로지 글을 보고서만 무언가를 판단하지만요 ㅠ.ㅠ)

만약 혹시나 상대가 쓴 글을 보고 그의 수준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딱 그 수준인 사람인 것입니다.

cyrus 2011-07-0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고쿠도님과 함께 활동하면서 평가단 활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이제는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어서 만할 수 있었지만,, 나름 선정도서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어요.
논란의 중심에 끼어들려고(?) 해봤지만,,^^;; 그 때는 알라딘 블로그 활동한지 얼마 안 되었고,,
평가단 활동도 처음 해 본,, 짬도 안 된 독자라서,,ㅎㅎ;; 긍정적인 마음으로(?)
읽고 빠짐없이 리뷰를 작성했어요. 읽으면서 솔직히 어렵다는 것은 솔직하게 얘기했구요,,
물론 부족한 내공으로 인해 빈약한 소개에 대해서 사과의 내용도 적었구요,,

저도 교고쿠도님 말씀처럼 타인의 취향과 선호를 가지고 그 사람의 독서 수준과 연관되어 평가하는 것은,,
아닌거 같아요.

한사람 2011-07-02 22:26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이 지난번에 인분분야셨죠^^
가끔 리뷰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그때 서로의 추천책을 보고 책을 택하고 그랬던거 같은데요 ㅋㅋ

불만이라는 게 없는 사람은 없을 거 같고 문제는 드러내느냐의 여부와
드러내는 방식인것 같아요
저는 좀 솔직해보자고 마음을 열였던 것이 외려 부작용을 가져왔던거 같습니다..
저도 시루스님처럼 이번이 처음이었다면 그냥 구경만하고 있었을 거 같고
딴에는 몇번 했다고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아마도 저 글을 쓴 분은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그냥 저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목적이 컸던거 같습니다
원하는 바는 이루었으니 글이 효과를 본것이죠
그런데..저도 소싯적에 독설을 많이 해봐서 알지만..그게 다...
부메랑이 되어 저에게 돌아오더군요..언젠가는요..

네오 2011-07-0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칼을 가셨군요^^ 책선정이 후덜덜하네요~ 한사람님의 인문학을 보는 시선응축에 대한 감각에 진화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시네요 ㅋㅋ

한사람 2011-07-02 22:29   좋아요 0 | URL

좋아라~
네오님의 칭찬을 받으니 어깨가 으쓱하네요..
인문분야 책 좀 읽었다고 진화라는 소리를 들으니 그간의 맘고생이 확 다 날아가는걸요 ㅋㅋ

안그래도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수준낮다는 말 들어서
더 속상했나봅니다..
결과적으로 저 분이 저를 성장 시키셨네요 ㅋ

네오 2011-07-02 23:08   좋아요 0 | URL
지금 인문신간 페이퍼 작성중인데 한사람님 책들중에 고르고 싶은게 많네요~ 아~ 그리고 저 위에 "시선응축에 대한 감각에 진화하는 속도" 이렇게 써놓고도 이것이 문법적으로 맞는 말일까라고 한참 고민했어요 ㅋㅋ 그래서 다시 수정할려고 했는데 이미 한사람님이 저 창피한 글을 보셨으니 그냥 놔둘래요~ 얼마나 제가 부족한지를 보려고요^^

그런데 너무 마음 상하지 마세요~ 이러한 경우에는 전 그냥 쿨하게 넘어가는 편이긴한데 뭐 그때마다 다르겠죠~ 컨디션이 않좋으면 험담한 블로거하고 붙고싶고 좋으면 웃어넘기면서 주위사람에게 하소연하고 ㅋㅋ

늦었지만 문학동네 리뷰대회 수상 축하드려요~

한사람 2011-07-02 23:01   좋아요 0 | URL

잠시 다녀왔는데 다행히 저와 같은 책이 한권 있더군요 ㅋㅋ

문법에 전혀 저촉? 되지 않아욧~

저는 사실 중간의 인간관계보다는 호불호가 분명한 편에 속해요..
온라인에서도 제 문법, 제 댓글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이 있는지
저런 테러를 가끔 당하곤 합니다..
나름 정중하게 예를 갖춘다고 생각하는데도 저런일은 운명처럼 저를 따라다녀요..ㅠ.ㅠ
그냥 넘기고 허허 웃고 그러자 하다가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가 대충 그려지거든요..
거의 누군지 어떤 위치에 있는 분인지도 알거 같구요
(사실 그래서 한번 더 상처를 받아요)

온라인 결벽증같은게 있어서 아무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니까.. 제가 맘 바꿔야죠

리뷰대회는 네오님도 수상하셨잖아요 ㅋ
저는 언젠가부터 아는 분이 상탔다 해도 인사도 안하고 또 축하안해 주셔도 안서운하게 되었어요
이번에 네오님 리뷰를 보았는데 저와는 완전 다르게 해석하시는 걸 보고 어떤 기준을 어떤 과정을 통해
배우셨을까 궁금했어요, 그런 글은 쓰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써지는 글이 아니죠(그저 감탄할뿐)


네오 2011-07-02 23:25   좋아요 0 | URL
지금 계속해서 페이퍼 업데이트중요ㅋㅋ 이택광 교수님 책 추가요~ (금태섭의 책 훌륭하죠? 그런데 이미 리스트에 작성해서 일부러 제외시켰어요 ㅋ)

음~ 그런 상황에 대해서 한사람님의 마음 충분히 동감합니다~ 저는 논리적으로 엉망인 사람이라 누군가가 저의 논점이 잘못됐네요 그러면 저는 아무말 못하는데요 ㅎㅎ 그리고 댓글을 길게 쓰고 싶어도 저는 무진장 오타가 속출하는데 알라딘의 댓글기능은 계속해서 스크롤을 왔다갔다해서리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짧게짧게 쓰는거라 부디 양해를 바랄께요 꾸벅꾸벅~

아~ 리뷰리뷰 진짜진짜 한사람님한테 상담받고 싶어요ㅠㅠ 그냥그냥 요새에 글이 너무 안써져어요!! 한사람님하고 해석방법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ㅋㅋ 혹시 소설평론가들 글 보세요? 저는 처음봤을땐 완전 짜증이었지만^^(완전 일반대중하고에 거리차때문에요) 자꾸자꾸보면 문학평론은 이렇게 해야하는구나라고 생각이 어떤때는 들더라구요~

한사람 2011-07-03 00:38   좋아요 0 | URL

리뷰도 자기 패턴이 생겨서 그걸 벗어나기가 힘든거 같아요
저는 최대한 제가 느낀 것들을 쪼개어서 그걸 세심하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둬요
설사 제 느낌이 틀리거나 남들과 똑같거나 말도 안되고 너무나 개인적인 것일지라도 그걸 잡아내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힘든건 매 리뷰마다 결론을 내고 있다는 거여요
언제나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적고 끝내려고요
물론 결론의 방향은 비슷한 쪽으로 흘러가게 되지만
저만이 내리는 결론이니 그걸로 만족해요
결론이 없으면 저는 리뷰를 쓰지 않거든요

그리고 저는 평론가의 글보다는 사설이나 소설가의 산문 같은 것이 더 좋아요
네오님의 글이 저는 문학평론가의 뉘앙스가 느껴졌었는데
거기다가 독특한 작법이 있으시잖아요

저는 완전 그런 기본같은 건 없고 그냥 보편타당한 대중의 감성에 지극히 호소하는 위주라서
절대 제가 무언가를 느끼지 않으면 글을 쓸수가 없어요..
저는 전에 네오님, 왕을 찾아서 리뷰 좋았습니다^^

루쉰P 2011-07-03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한사람님의 리뷰에 반가운 손님들이 많이 늘었네요. ㅋ 그러나 저러나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군요. 타인에 대한 수준을 지적 하는 사람들은 무슨 신인지 아니면 '신의 리뷰'를 쓸 수 있어서 그런 건지, 그냥 주는 책이나 쓰라는 무슨 리뷰 하청 업체라고 생각지 이해를 못 하겠네요. 평가단이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자유가 주어지지 않고 그냥 맞춰서 쓰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 거 싫어하거든요. ^^ 어디다 껴 맞추고 하는 것은 취미가 아닙니다.
그래도 한사람님은 리뷰에도 쓰셨고 댓글에도 쓰셨지만 책을 현미경으로 낱낱이 파헤쳐 조근 조근 씹어서 다 소화를 시키시고 쓰는 스타일이신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 ㅋ) 맞지도 않는 책을 쓰시는 것은 꽤 힘드실 것 같아요. -.-
문학동네 리뷰 상 받으신 것 축하드리요. 여기는 비 엄청 오네요. ㅋ 저 비에 모든 상처 다 씻어내시기를 ^^
전 요줌 서재를 안 들어와서 밑에 있는 한사람님 리뷰도 다 읽어 볼려구요. ㅋ

한사람 2011-07-03 10:48   좋아요 0 | URL

여기도 비가와요. 오늘은 비때문에 마음이 잠잠해 질듯해요^^

아주 오래전에 블로그 초창기 시절에 저만 아는 어떤 이웃분이 우연히 유명해지셔서
많은 이웃이 생기자 이상하게도 저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저같이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당연한 거였는데
저는 꼭 여학교때 단짝 친구가 다른 친구를 사귀기라도 하는 것처럼
싫더라구요 ㅠ.ㅠ 유치하죠?

그런데 그분은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부담스러웠는지 얼마안가서 블로그를 접고 잠수를 타셨어요..
그분의 글을 볼수 없다는 슬픔이 생각보다 크더라구요
그런데 그 서운함을 잊어먹을 만한 시기에 우연히 제 블로그에 방문하시곤
그때 인사도 없이 문을 닫아서 마음에 걸렸다고 해주시더군요, 울컥 눈물이 핑돌았어요


저는 많은 분들과 많은 양의 교류를 일상에서 주고받는 것에 많은 경계를 하는 쪽에 속해요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잡고 라고 할까..
제게 용기 주시고 관심가져주시는 이웃분들이 참 고맙고 가서 손이라도 잡고 싶지만
일부러 거리를 두고 적정선의 친분만을 유지하려고 꽤 애쓰는 편이어요 ㅋ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지만요..)
그것이 더 진득하고 오래가는 관계임을, 살면서 깨닫는 중이어요

아마도 제 서재에 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은 저를 오래동안 지켜보시던 분들이 대부분일거라고 생각해요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많은 분들이라 저의 이런 성향을 짐작하시고 섣불리
아는 척하기가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걸 알기 때문에 꼭 루쉰님처럼 아는 척을 해주시고 발자국 남겨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끔 루쉰님이 보는 그대로 마음 그대로의 글을 남겨주실때 저는

너무 좋아하지 말자, 너무 좋아하지 말자 ~~~~

그런답니다^^
그건 참 피할수 없는 행복인 것 같아요~

2011-07-05 0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사르 2011-07-05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다 어려워보여요!

음..근데 한사람님의 꼼꼼하신 추천서를 읽으니 왠지 한 권 정도는 도전해보고 싶기도 합니닷!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는 좀 많이 끌립니다요. 이런 류의 페이퍼, 괜찮은데요. 앞으로 종종 이런 페이퍼, 올려주시와요~ 뒤끝작렬..ㅋㅋ 귀엽사옵니다. ^^

한사람 2011-07-05 19:43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저는 어려워 보이는 레벨에 속하는 책은 그래도 제하고 추천한 거랍니다ㅋ
문화비평이다도 제목이 끌려서 그렇지 들여다보면 어려울거 같기도 하구요 ㅠ.ㅠ

소설은 어느 정도 책 받아 보기전에 수준? 을 예상할수 있는데
인문쪽은 제목과 저자만 보고는 알수가 없어요
심지어는 추천과도 많이 다르고
정말 뚜껑 열고 부딪혀 봐야 하더라구요

근데 이런 페이퍼는 어떤 것이옵니까?? ㅋㅋ

뒤끝 페이퍼를 말씀 하시는 겁니까??? ㅋ

달사르 2011-07-06 15:27   좋아요 0 | URL
히..둘 다?
짤막하게, 한 분야에 해당하는 여러 종류의 책에 관한 소개글, 괜찮아요.
그러니까..이게, 그 무슨 평가단의 추천책을 뽑아놓은거로군요. 근데, 평가단이 아닌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거 같애요. ^^

한사람 2011-07-06 16:22   좋아요 0 | URL

예..이런 추천의 페이퍼는 더 신중을 기해서 작성해야 함을 절실히 느껴요..
더 완벽하게 하려면 실제 서점에 가서 책도 들추어 보고 한 다음이라야 하겠지만
여전히 책은 다 읽어보지 않고서는 알수가 없죠..

사람과 같은 거 같아요
겉으론 멀쩡해도 겪어보면 전혀 다른 사람인 경우가 많듯이요^^

윈터 2011-07-0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9기 인문/사회/과학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해'라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출판, 유통에 관심은 많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에서 어떤 책을 추천하거나 리뷰를 쓰는 등의 활동을 직접 해보는 게 처음이다 보니 모든 게 좀 새롭네요. 실제로 어떤 책을 읽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도 중요하지만, 추천하기에 좋은 책, 리뷰를 쓰기에 적당한 책... 등등을 선정하면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되네요. 며칠 전부터 한사람님의 고민(?)을 읽다 보니 인사드리고 싶어져서 글 남겨봅니다. ^^

한사람 2011-07-07 21: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해님, 닉이 흥미로와요 ㅋ
같은 분야군요, 반갑구요

고민자체가 공부가 된다는 말씀이 무척 소중하게 들리네요
가끔 원치 않았던 책으로 고생은 하지만
읽고 써내고 나면 얻는 건 있더라구요
특히 이 분야가 공부하는데는 좋은 것 같습니다

같은 고민 계속 같이 나누어요^^
 

  

#1. 그들은

 아침에 올 상반기 베스트 셀러 도서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 참고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4/2011062402200.html
 ) 

아쉽게도 이곳, 알라딘의 통계는 반영되지 않은 결과였다. (4대 서점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음. 온라인으로는 들겠지만)

놀라웠다. 놀라워.  

가장 놀라웠던 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제외하곤 올해 신간으로 50위 권에 든 한국소설은 김진명의 <고구려>와 정유정의 <7년의 밤>이 유일했다.(솔직히 김진명 작가 다시 보았다) 그외 가뭄에 콩나듯 <허수아비춤>, <덕혜옹주>등 작년에 베스트 셀러가 된 작품들이었고 100위 권에 최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의외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소설을 이렇게들 안읽으시다니... 대부분 소설은 일본, 미국 대중소설이었고 그 판매부수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슬펐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이 참 어이없어 보였고, 새삼 고현정, 신정아, 백지연이 대단해 보였다. (정확히는 고현정의 피부, 신정아의 남자들, 백지연의 미모가 대단한 것이지만) 그렇게들 욕하더니 신정아 책의 판매부수를 보라. 우리는'정의'만큼 그녀가 궁금했던 것이다.  김제동의 책이 많이 팔린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대체로 유명해지고 볼 일이 아니던가. 그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마케팅에 의해 한번도 화제성을 창출하지 못하고 먼지 날리고 있을 순수문학 작가들이 안스럽다는 말이다.  

어제, 문학동네 편집부장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김남일의 소설 <천재토끼 차상문>은 참 좋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던 차에 하필 현빈이 시크릿 가든에서 한번 품에 안아주었더니 그 다음날로 하루에 이백권씩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김남일 작가가 위암으로 투병하고 있던 터라 그 소식이 너무 반가워 현빈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만약 현빈이 그 책 말고 다른 책을 가슴에 품었다면 그 책 또한 비슷한 운명이었으리라. 그렇다면 그건 현빈의 공이 아니고 현빈손에 그 책을 쥐어준 김은숙 작가의 공일 터인데, 앞으로 편집자들은 드라마 작가들과 연계를 하는 것이 어떠한가, 싶을 정도다.  

또 한가지, 작년에 이어 상반기 2위인 <정의를 무엇인가>는 끝까지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고 하며, 그 책을 사는 이유는 정말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정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고보는 보상심리의 일환이며, 니가 사니 내가 산다식의 패션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1위인 <아프니까 청춘이다> 역시 저자인 김난도 교수가 다름아닌 서울대 교수인 것이 위로가 되었다고 하며, 이러저러한 분노를 치유하기 위해 스님 시리즈가 합이 십만부 이상 팔려나간 것이라고 한다. 이 틈에 한국소설이 위치할 곳은 그저 사람들이 많이 보았기에 나도 한번 보아야 할 것 같은 초대형 베스트 셀러 정도에 국한되며(3년째 엄마를 울궈먹고 있는 사람들은 독자인가, 출판사인가) 신간 같은 건 좀 두고 볼일로 미루어 지는, 확실히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안 읽어도 큰 상관없는 책으로 전락한 듯하다.  

 

#2. 나는  

상반기에 내가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는 세어 보지 않았다. 그런 건 잘 안한다.
그런데 내 맘대로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국내작가의 베스트를 뽑아 보고 싶었다. 
 (마치 그들의 리스트에 항거라도 하는 심정으로 ㅠ.ㅠ)


 

  

 

 

 

 

 

 

천운영의 <생강>이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주제가 너무 무겁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하나, 제목이 주제와 조금 동떨어져 보인다는
낯설음도 무시 못 할 것이다. 안타깝다. 정말 수작이었는데.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칼날과 붓끝이 예리한 소설이다. 워낙 고정독자가 많아 초기 마케팅에 성공한 듯하다.
그러나 쉽지 않기 때문에 이도 오래 확산될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 드는 건 뭘까. 연말까지 롱런하시길 빈다.
글쓰기 하는 분들은 꼭 최일남의 에세이를 한번씩 읽어 보셨음 싶다. 국어라는 언어의 위대함을 새삼 확인할수 있을 테니까
박숙희의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치 문단에서 버려진 소설처럼 이 책을 읽었다는 분을 거의 보지 못했다. 재미도 괜찮고
문장도 매력있다. 대형출판사와 유명작가에 밀린 작품이라 안타깝다.


그밖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으로 서경식의 <언어의 감옥에서>와 시집<오늘 아침 단어>도 좋았다. 사실 시집은 올해 끝까지 독파한 적이 거의 없고 내 의지로 집어든 신간이 없지만, 만 하루 동안 정들었던 시집이라도 읽었다고 생색은 내고 싶다.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을 끌지 않는가. 물론, 오늘 아침 나의 단어는 '베스트 셀러'였음이다.   

<언어의 감옥에서>는 처음으로 논리의 아름다움이 눈물을 자아낼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쓸 때 나는 살짝 설레기 까지 했고 다 쓰고 나서 무언가 내 논리의 틀을 깨부순 느낌이 들었다.

 

 

 

 

 

 

많은 책을 읽었던것 같은데,  

막상 꼽으려고 하니 기준도 애매하고, 주제넘는다는 생각도 든다. 또 내 독서의 취향이 무척 편향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걱정되는 건, 누군가는 저런 베스트 셀러의 목록을 확인하곤 그 안에 든 책을 또 의무방어전 치르듯 서점가서 집어 들 것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다 읽었다 하니 행여 뒤질세라 피곤한 심정으로. 그럼 알려진 책은 더 잘 팔리고 반대로 뜨지 못한 책은 더 묻혀지게 될 것이다.  

 

하여튼, 베스트 셀러의 소식은 언제나 우울하다.
언제쯤 베스트 소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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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6-2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현빈이 아니라 김은숙 작가에게 고마워해야죠.
어떤 사람은 드라마에 특정 책이 클로업 되서 나오는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던데,
난 아직 그게 나쁘게 생각되진 않아요.
그렇게해서라도 좋은 책이 알려지면 좋은 거 아닌가?
어떤 면에선 어쩔 수 없는 방법 중 하난 것 같기도 하고.

조경란 작가가 베껴쓰기 보다 좋은 책을 소리내서 읽어보라고 했는데
최일남 선생님 책 소리내서 읽어보기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잘 보고 갑니다.^^

한사람 2011-06-25 21:36   좋아요 0 | URL

그렇게라도 알려지면 좋죠
이번에 독고진이 뭐하나라도 터뜨려 줄줄 기대했는데..
그냥 시에 그치고 말았죠..따라하는 느낌이 들까봐 안그랬을수도 있고..
그래도 윤필주 정도는 책 한권 읽고 있어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ㅠ.ㅠ

베껴쓰기보다 읽어보라는 말씀이 새롭네요, 그러고보니
최일남 작가의 글을 소리내서 읽어볼 가치가 있는거 같아요
몰랐던 국어가 너무 많았어요^^

달사르 2011-06-2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생강>은 제 손에 있군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무언지 알기에 기대를 갖고 있는 책인데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군요. 아쉽네요..

음...저 시집이..자꾸 눈에 들어옵니다용~ ^^

한사람 2011-06-26 01:06   좋아요 0 | URL

요즘 시집들 중에는 <이별의 재구성>말고는 읽어본게 없어요
소설은 읽겠는데 저는 시가 어렵더라구요..
<오늘 아침 단어>는 제목때문에 생각을 좀 하게 되네요..
맘에 드는 시가 많습니다^^

cyrus 2011-06-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어의 감옥에서>가 이전 책들보다는 크게 알져지지 않은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 역시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들을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

한사람 2011-06-26 15:40   좋아요 0 | URL

앗, 시루스님 오랜만이어요^^
공부하느라 바쁘죠? 곧 방학이네요~

아마도 <언어의 감옥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일동포에 대한 편견때문에
쉽게 집어들게 되지 않는 책인 것 같습니다..
평가단 말고는 읽어봤다는 사람 찾기가 힘든데 역시 시루스님이 안목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