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똑똑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미술은 똑똑하다 -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 카툰 클래식 13
댄 스터지스.리차드 오스본 지음, 나탈리 터너 그림, 신성림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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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이 무엇인지를 독특한 만화로 재구성한 책이다. 처음엔 만화라는 선입견 때문에 매우 쉬운 수준의 책이 아닌가 했었지만, 실제로 이 책의 그림은 만화라기보다 한두 컷의 심오한 그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넓은 범위의 미술사와 미술가를 폭넓게 아우른다. 생각보다는 무게가 있고 내용이 쉽지만은 않아 첫인상보다는 고전하며 읽었다. 물론 미술의 초보자이기 때문일 것이며, 미술 전공자라면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미술이란 무엇일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의 하나만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고, 액자 속의 정형화된 그림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이 미술이 될 수 있을까? 혹은 아름답다고 느껴야만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책은 이러한 미술의 본질에 관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무심히 사용해왔던 '미술'이란 낱말의 정의를 찾아 헤메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고대 그리스부터의 미술을 차근차근 섭렵해보는 길을 걷게 된다. 

미술에 재능은 없지만 보는 걸 좋아해서인지 어느 정도 되는 분량의 미술책을 읽었었다. 그런데도 이 책이 좀 어렵게 느껴졌던 건 지금까지 봐왔던 책이 한 작가나 한 시대나 한 유파라는 좁은 주제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술사를 다룬 책이라 할지라도 화가의 그림 위주로 소개된 책을 읽어온 까닭도 있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같은 설명이라도 좀 더 상징적이고 명쾌하다. 상징적이라고 느낀 것은 하나의 그림이 풍기는 인상이 그만큼 강렬하게 와닿기 때문이며, 중요한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굵게 표시해주고 있는 친절함으로부터는 명쾌한 설명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 권의 책에 폭넓은 미술사를 다루다보니 각 사조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은 감수하고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인상파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 책에서 인상파에 대한 설명을 찾아 읽다가는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아카데미 스타일과 다른 마무리와 대락적이고 즉각적인 붓칠 방식'이라는 특징과 인상파들은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두 컷의 이해를 돕는 만화가 있다. 미술의 좁은 범위를 깊게 파헤치는 책이 아니고, 전체적 사조를 훑어내려 전반적인 미술사를 포괄하는 넓은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므로 그 목적에만 충실하여 읽는다면 목적한 바는 충분히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문장의 딱딱함이다. 미술이란 학문을 다루다보니 읽기 편하고 부드럽게 다듬는 번역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되나 그래도 읽을 때 문장이 착착 와 감기는 맛이 없는, 그런 느낌이 있다. 어쩌면 그림이 곁들여진 책이라는 데에서 연유하여 지레짐작 풀어진 마음이 의외의 복병을 만나 깜짝 놀란 것인지도 모르지만.

미술의 개념과 방대한 미술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미술은 똑똑하다'이지만, 미술의 본질과 시대별 주요 개념 및 미술가에 대한 총체적 설명이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을 미술에 대해 똑똑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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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 고형욱의 영화음악 오디세이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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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을 들을 때면, 영화를 볼 때의 감동, 그 느낌, 같이 본 사람과의 추억 등 부가적으로 딸려오는 기쁨이 커서인지 일반 음악을 듣는 것보다 기분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런 느낌은 나만이 갖는 것이 아니어서 이 책의 저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의 음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애틋함, 아련함, 기쁨, 행복 따위의 온갖 감정을 물어다 주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음악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기 마련인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내 휴대폰 벨소리는 영화음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카사블랑카, 길 등의 고전 영화부터 화양연화, 맘마미아와 같은 1990년대 이후 영화까지 꽤 많은 수의 영화와 영화음악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략적인 느낌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약간의 줄거리 소개와 느낌, 특징, 영화음악에 대한 해설이 나와 있고, 영화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몇 컷의 사진들이 함께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 16곡의 영화음악이 담겨 있는 cd가 선물처럼 들어있다.

영화에서 영화음악을 뺀다는 가정조차 감히 상상하기가 싫다. 좋아하던 명작들이 갑자기 무미건조한 영화로 전락하는 것을 보기 싫어서다. 생각해보자. 록키 발보아가 시합을 앞두고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운동하던 순간에 그의 마음을 긴 대사보다 잘 나타내주었던 힘찬 음악과, 영화 '졸업'을 들었다 놨다 하며 요리해내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를. 영화 라붐은 'reality' 없이 사춘기 소녀의 풋사랑과 여린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테마음악 없이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에 감동을 받으려면 러닝타임을 두 배는 늘려야 하지 않았을까? 'moon river' 없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얼마나 허전할까? 일반 영화도 이런데, 쉘부르의 우산, 플래시 댄스, 사랑은 비를 타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따위의 뮤지컬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한 편의 영화를 기억하면서 특징적인 장면, 대사와 함께 영화음악을 떠올리는 것은 공감각적인 영화라는 문화에 있어 당연한 코스인지도 모른다.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감상했던 기억이 그대로 저장되었다가 영화를 생각하는 순간에 함께 나타난다. 영화의 장면을 생각하면 노래가, 영화음악을 생각하면 그 순간의 장면과 느낌이 쌍으로 튀어나오는 내 인생의 보너스 같은 즐거움. 이것이 바로 영화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같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영화를 다루다보니 각 영화에 할애하는 지면이 길진 않다는 거다. 한정된 지면을 두고 욕심부리는 격이지만, 어쨌든 그런 탓에 각각의 영화에 대한 기억 속으로 깊이 빠지게 되기보다는 한번씩 좍 훑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의 감동을 이 책을 통해 최대한 끌어내려는 것은 욕심이겠고, 영화와 영화음악에 대해 몰랐던 정보나 사라졌던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로서 생각하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cd를 듣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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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콘서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건축 콘서트 -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
이영수 외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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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란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다른 사람의 일인 것으로 나도 모르게 치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째서 건축이라고 하면 밋밋한 사각형의 건물이 층층이 올라가는, 머리 대신 힘을 쓰는 작업으로 여겼을까? 사실 살고 있는 집은 물론이고, 거주하고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건물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도 말이다. 온갖 상상력과 재능을 건축이란 영역을 위해 발휘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것을 몰라봤던 소산이다.

스페인의 건축가인 가우디라는 사람의 이름과 그가 설계한 실험적이면서도 멋진 건물을 오래 전에 사진에서 본 적이 있다. 멋지다고 감탄하면서도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기도 힘든 다른나라의 일로만 치부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뜻밖이다. 아직 가우디의 건물같은 멋진 건물이 관광객을 유혹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도 건축에 대한 확 트인 생각 아래 여러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는 건축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각종 건물의 사진들은 주로 외국의 사례가 많은 한계는 있지만, 건축과 주거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 경직된 사고가 확장되는 희열을 맛보게 되는 경험은 외국과 국내 사례를 구분하지 않는다. 책에는 크기가 크지 않더라도 양적으로 많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어떤 건물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실물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자료로 밑받침되고 있어 책을 읽어나가기가 답답하지 않다.

이 책의 지은이는 한 명이 아니다. 모두 12명의 건축 관련 종사자들이 하나의 꼭지를 맡아 각 주제에 맞춰 개성 있는 글을 펼치고 있다. 건축의 상상력과 공간, 빛과 색, 자연과의 조화, 미래를 향한 건축에 대해 독자의 사고방식을 넓혀준다. 책의 초반에 나온 상상력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부터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면서 한 번도 건축에 대해 눈여겨본 적은 없었는데, 날아다니는 인공섬과 걸어다니는 하울의 성 역시 건축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현실로 돌아와서도 자연과 조화되면서 편리하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건물에 대한 연구 영역은 넓고도 넓으니, 그동안 꽉 막힌 생각으로 건축을 대해온 것이 미안하기까지 하다.

책에서 만난 인상깊었던 건축 사례들은 많았다. 외국의 한 건축가는 사람이나 물건을 위아래로 겨우 실어나르기만 했던 좁은 공간인 엘리베이터에 대한 굳은 사고방식을 산산조각내며, 책상과 의자가 존재하는 널찍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각 층의 공간으로 옮겨갈 때마다 그 방의 용도에 맞게 어우러지는 엘리베이터의 신개념에서 건축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그뿐이랴! 주택의 겉면이 레일로 왔다갔다 움직이면서 골조를 포함한 내부공간에 겉면이 덧씌워지거나 분리되는 집도 있다. 그러고 보면 아파트로 대변되는 현대의 주거공간은 효율성과 편리성만을 중시해서인지, 아니면 좁은 공간의 한계성 때문인지 상상력과 창의력을 의도적으로 발휘하지 않고 있는 것만 같다. 비싼 주택 가격 때문에 들어가서 몸을 누일 곳만 있으면 황송하다는 너그러움이 확산되어서일까?

건축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예술의 영역이며 문화이고 삶의 도구이기까지 한 복합적인 대상이란 걸 깨닫는다. 젊은 세대가 이 책을 보고 건축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 당대 멋진 건축가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한국의 가우디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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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극과극>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진의 극과 극 -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상상충전 사진 읽기
최현주 지음 / 학고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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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사진의 또다른 세계를 본다. 디카나 휴대폰으로 일상을 찍어올리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서 사진 찍는 일 역시 누구나 하는 특이한 것도 아닌 작업이 되어버렸지만, 사진의 세계를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작가들의 사진에는 일반인들의 사진에서 찾기 어려운 함축된 의미가 존재한다. 그 의미들은 한 순간을 밀도 있게 포착한 사진에서도, 사진과 사진을 현대적 툴의 힘을 빌어 합성한 사진에서도, 사진에 채색을 더한 복잡한 과정을 거친 사진에서도 어김 없이 나타난다.

사진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같은 문외한에게 책 속의 사진들은 낯선 세계다. 사진은 알듯 모를듯한, 거창하거나 소박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앞에 선다면 필경 요리조리 쏘아보며 작가의 의중을 읽어내느라 정신 없이 바빴을 것이다. 그 중, 몇 개의 작품에는 꽤나 가깝게 접근하여 해석의 뿌듯함을 즐겼을 수도 있겠으나, 몇 작품은 나만의 안드로메다로 데려가 독창적인 해석의 결과를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감상은 개인적인 몫이니 그것이 나쁘다 할 순 없지만, 작가의 문화적 시각을 배우고 습득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의도를 읽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알록달록 사탕으로 만들어낸 모란도와 포실포실하고 정겨운 느낌의 실타래, 오랜 세월의 여정을 거쳐온 돌 하나가 사진 속에서 각각 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데, 그것을 받아줄 마음이 없다면, 아니 마음은 있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말을 듣는 것처럼 해석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스스로의 내공을 쌓거나 도움을 받거나 두 가지의 길이 존재한다. 내가 느낀 감상을 좀 더 폭넓게 만들어 작품과 세상의 연결 고리를 읽을 수 있으려면 그대로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이때, 바쁜 시간 속에서 짬을 내어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한다. 박물관에서 이어폰을 끼고 준비된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사진도 그런 도움이 있을 때 감상의 충만함을 느끼기가 쉽다.

이 책은 많은 작가들의 사진을 친절하고도 감성적으로 설명해낸다. 국문학과 출신의 카피라이터가 쓴 글이라 읽는 맛이 난다고 할까? 사진의 세계를 글로 펼쳐나간 문장력이 보통이 아닌 느낌이다. 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책에 보여지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일 것이다. 

작품으로서의 사진, 얼핏 보기에 난해하고 뜻 모를 사진도 저자의 설명을 거치면 결국 일상에서 파생된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험적으로 보이는 사진도, 자연의 일상을 잡아낸 사진도 그 모든 시작은 대상과 사람과의 관계를 읽어내고 우리의 모습을 한번 더 돌아보게 해준다. 사진으로의 충실한 안내자, 또는 성능이 매우 좋은 번역기와 같은 저자의 설명을 거쳐 사진이라는 낯설었던 예술적 영역에 발을 담궈 보자. 새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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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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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란 책제목을 보았을 때, 영화가 아무리 역사를 담아내도 일부분일 뿐이니 우리 역사를 총체적으로 알아보는 작업은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영화가 담아낸 역사를 띄엄띄엄 읽게 되겠다는 생각을 내멋대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기우였다. 이 책은 각 단원의 소제목에 해당하는 주제에 따라 우리 역사를, 그리고 영화의 역사를 친절히 알려주며 깨닫게 한다.

역사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은 문학도 대중가요도 마찬가지지만 그것을 영화만큼 뚜렷하게 보여주는 문화매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역사에 대입된다. 그만큼 대중과 가깝고 시각과 청각으로 인한 자극이 강해서인지도 모른다. 정치가 암흑기였던 시절은 영화도 암흑기였고 각종 검열에 시달렸으며, 민주화 바람이 불던 시절에는 영화의 상상력도 늘어만 가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탄생되었다.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은 영화의 국시조차 반공이었지만, 민주화는 역사를 바라보는 열린 시각과 관점이란 선물을 함께 준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영화는 있었다. 그 시기의 많은 지식인들이 해방을 절망적으로 생각하여 친일노선을 걸었다고 하는데, 영화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노골적인 친일영화를 만들다가 해방과 동시에 한국의 독립을 다룬 영화를 만든 약삭빠른 감독도 있었다. 친일을 한 사람들이 미군정 시절에도 여전히 득세한 오욕의 역사가 영화판에 없으리란 법이 없다. 그런가 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다루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뻔한 문제를 정면으로 제시한 영화들도 있다. 이런 영화는 대개 독립영화라서 많은 관객들이 보기엔 한계가 따른다는 약점이 있지만, 영화의 힘으로 역사를 증거하고 문제를 제시하는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이어서 영화는 국가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인 분단과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꾸준히 다뤄왔다. 그러면서 제주 4.3 항쟁과 빨치산, 비전향 장기수, 조총련의 문제를 제기했고, 우리 기억에도 생생한 이산가족 찾기의 실상을 스크린으로 옮겨놓았다. 영화에는 연출가의 관점과 시각이 반영되므로 관객의 시선과 다를 수 있으나, 충분한 고민과 합리적 역사관이 반영된 경우 영화는 깊이 있는 질문으로 우리 사고를 활발하게 하는 생산적 활동을 해준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게 되는데, 책의 저자인 강성률 씨는 영화평론가로서 각 영화에 대한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해줘 영화 이해가 한결 수월하다.

2000년대의 영화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을 소개하고 있다. 영화를 이리저리 재고 파헤치며 연출의 의도를 꿰뚫어 전달하는 영화평론가의 분석으로 더 많은 영화들을 평가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지면이 한정된 것이 아쉽다. 마지막 장에서는 우리 시대의 거장인 임권택 감독론을 다뤘다. 우리 민족과 전통의 힘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그러면서도 '장군의 아들' 류에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헷갈렸던 차라 이 부분도 관심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로 우리 근대사를 전달한 책의 내용이 매우 수작으로 여겨진다. 영화만 봐도 우리 근대사가 이리도 훤히 보이는 걸 보니, 역시 영화의 힘과 영화평론의 힘은 둘 다 대단하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감돌았던,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는 자녀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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