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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1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2008년에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제목이 주는 섬뜩함과 긴장감에 마음 졸이며 읽었지만 오래도록 감동이 남았더랬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감동을 또 맛보고 싶었다. 긴 말이 필요치 않은 '사랑받고 있다'는 그 느낌을...
요즘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된 청소년 폭력은 누구의 책임인가? 학교, 선생님, 부모, 가정, 사회, 국가...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돈을 최고로 치는 사회, 대학 입시를 목표로 치달리는 교육, 성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학교, 자녀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부모, 마음을 열어 놓을 친구를 갖지 못한 아이들,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 없는 낮은 자존감... 이 책을 읽고나면 문제의 청소년들이 악한 게 아니고 오히려 그들의 약함을 알게 되고, 그들의 아픔이 무엇이고 왜 그토록 힘든지 조금은 이해하게 될 듯.
이 책은 자신의 아픔을 소리없는 비명으로 보여주는 거식증과 약물중독, 자해라는 극한 상황까지 치달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손목을 그은 캘리와 같은 치료 그룹인 베카, 타라, 데비, 시드니, 아만다는 소위 문제 청소년들을 치료하는 병원 시 파인즈(See Pines, 바다 소나무)에 격리되었다. 시파인즈는 어느새 식 마인즈(sick Minds - 병든 마음)로 바뀌어 불린다. 캘리는 치료과정으로 정신과의사인 브라이언트와 상담하는데, 소리내어 말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이야기한다. 캘리의 혼자말은 오히려 독자들이 캘리의 마음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무엇이 그토록 힘들어서 자해하고 침묵하는지, 왜 속 시원히 털어내지 못하는지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상담의사 브라이언트와 그룹지도자 클레어, 간호사 루비는 절대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는 그들의 마음씀에 캘리의 마음도 움직인다. 전문가들이 서두르거나 다그치지 않고, 상처받은 그네들을 존중하고 기다려줌으로 문제를 바로 보고 치료하려는 의지를 갖고 극복하도록 돕는 과정이 참 좋았다. 진심어린 위로와 애정이 담긴 따뜻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제발 부탁인데, 네 몸을 아프게는 하지 마."(시드니, 71쪽)
"오, 아가, 너도 많이 무서웠을거야. 그렇지? 왜 이렇게 했니? 뭐가 널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말해 주면 안되겠니? 얘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보다 더 아프진 않을 거야."(간호사 루비, 86쪽)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에는 상처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얼마든지 있단다. 모든 것이 무기로 변할 수 있지. 그것들을 모두 모아 내게 가져다 준다고 해도, 항상 다른 무언가는 남아 있을 거야. 너도 알잖니? 난 너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어. 그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어."(상담의사 브라이언트, 202쪽)
'자녀들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이나 심지어 부모의 이혼도,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죄의식을 갖는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었고, 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부모가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엄청난 상처와 죄의식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나 역시 뒤늦게 깨닫고 아이에게 용서를 구한 일이 있었다. 부모의 잘못을 아이에게 떠넘기는 식의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하게 된다.
캘리는 동생 샘이 천식에 걸린 것과 부모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 다 자기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엄청 나쁜 아이가 된 자신을 벌주기 위해 자해하고, 짜릿한 통증과 솟구치는 피를 보며 만족스런 기분을 느낀다. 이런 자책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침묵했기 때문에 아무도 캘리에게 '니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픈 동생 때문에 부모의 충분한 사랑과 위로를 받지 못한 외로움이 죄의식으로 발전했고, 결국은 자해를 반복했던 것이다.
상담의사 브라이언트의 도움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 캘리는, 동생이 아픈 것은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부모님이 안계실 때 아픈 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한 누나였다는 걸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한땀 한땀 정성들여 만든 엄마의 퀼트선물, 아무 말하지 않는데도 듣고 있을거라 믿는 엄마의 전화, 자신이 아끼는 카드를 누나에게 보내는 동생 샘, 자기를 보러오지는 않지만 엄마와 동생을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아빠, 캘리는 자신이 가족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잘 있는지 보고 싶어 식마인즈를 빠져나와 두려움에 빠지지만, 전화를 받고 당장 달려온 아빠의 품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는 캘리. 캘리와 같은 마음이었던 나도 두번을 읽어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사랑받는다는 확인은 충만한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아빠에게 동생이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아빠는 샘을 돌보지 못한 아빠의 잘못을 고백한다. 비로소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위로 받은 캘리는, 자해의 원인을 알았으니 문제도 극복하고 가족과 행복을 가꾸어 갈 것이다.
두 가지 뜻을 가진 제목, 손목을 칼로 긋는 'Cut'과 자해를 끝내라고 외치는 'Cut'의 울림이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다. 청소년 성장소설은 독자가 주인공과 동일시되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극복하려는 의지를 제공하는게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된다. 흡연과 약물중독, 다이어트 폐해의 거식증이나 폭식증, 자해하는 소설 속 아이들은 이제 미국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녀들이 커 나갈수록 부모와 말이 잘 통해야 되는데 오히려 대화단절 소통부재의 현실과 맞딱뜨리게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고, 청소년들은 크고 작은 자기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이 책은 청소년들과 자녀를 둔 모든 부모와 선생님들이 꼭 읽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