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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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파스텔 빛 여행집’이란 설명에서 여행 에세이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다. 여행 에세이가 6편 들어있지만 12편의 단편소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단편 사이사이에 에세이를 삽입한 구성이다. 처음 만난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응! 에세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닫게 된 것은 몇 편의 단편소설을 더 읽은 다음이었다. 하지만 단편소설을 에세이로 착각하면서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오해는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었다. 작가의 상상력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12편의 단편 중에서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사실 몇 편 되지 않는다. 모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과 내용이라 단숨에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책을 읽은 후 목차를 펼쳐 다시 보니 가장 먼저 나온 <소원>과 <춤추는 뉴욕>과 <베스트 프렌드의 결혼식> 등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소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비행기 속에서 소원을 비는 행동과 그곳에서 만난 예전 애인과의 짧은 만남이 조용히 가슴 한 곳에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단편을 실제 일어난 에세이로 생각해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춤추는 뉴욕>은 친구와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불화를 다룬다. 이 불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란 부분이 눈길을 끈다. 여행의 마지막 지점에서 일어난 불화가 그에게 새로운 만남을 제공하고 살짝 연애의 기운을 풍긴 것이 재미있다. 조그만 에피소드가 주는 즐거움은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대응이 웃음을 자아낸다. <베스트 프렌의 결혼식>은 내용보다 처음 혼자 외국에 나간 여자의 결심이 과거 나와 현재 친구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두려움 속에 움츠려 있던 그녀가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다른 여행지를 가려고 하는 그 모습은 친구에게 보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그 외 자전거를 도둑맞은 후 편지를 훔친 여자 이야기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몰랐던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나 작가로 성공한 친구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심적 변화를 다룬 단편이 흥미로웠다. 타이페이를 배경으로 펼쳐진 옛 연인의 흔적을 담아낸 것이나 대학 입학 후 부모의 품을 떠난 아들을 만나러 간 엄마의 심리를 다룬 이야기가 가슴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신혼여행을 온 여자가 남편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하늘색을 볼 때 느낀 감정은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만든다. 이 외 다른 작품도 간결한 이야기와 장면으로 가득하다.

 

12편의 단편소설과 달리 6편의 에세이는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방콕에서는 몇 번이나 갔지만 한 번도 갈 생각을 못한 곳이 눈길을 끌고, 최근 가장 가고 싶은 곳 중 한 곳인 루앙프라방은 올해는 꼭 가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한 번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못한 오슬로는 가슴 한 켠에 자리를 잡았고, 타이베이는 나와 다른 입맛을 가진 작가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겨우 며칠만 머문 그곳에 다시 가고 싶게 만들었다. 호치민은 회사 직원들의 말 때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곳의 비를 보고 싶어졌다. 친구가 엄청난 추천을 했던 스위스는 한적한 마을의 여유있는 휴식과 멋진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일본 항공사 ANA 기내지에 연재된 것을 다듬어 낸 책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을 하나 인용하자. “불안함이란 절대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문득 이 감정을 느꼈을 때 다음에 보는 풍경이 기대 이상으로 선명하고 강렬하여 잊기 힘든 것이 될 때가 있다.”(215쪽) 여행지에서 목적지를 찾다 헤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글에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 느낀 감정을 기대에 따라 엇갈릴 수 있지만 먼 훗날 아주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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