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과 짐 에디션 D(desire) 6
앙리 피에르 로셰 지음, 장소미 옮김 / 그책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영화로 먼저 만난 경우 원작 소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잘 못할 때가 있다.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들었다면 영화 광고에 원작 소설이 들어가겠지만 오래전에 출간된 소설이거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소설이 아니면 그냥 조그맣게 표시될 뿐이다. 어떤 영화는 원작보다 더 유명해져서 원작 소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줄과 짐>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한때 영화를 미친 듯이 본 적이 있는데 이때도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봤지만 솔직히 보면서 많이 졸았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영화의 장면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줄과 짐이란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인지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앞부분에 이 둘을 헷갈려했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를 정확히 몰라 그들의 연애생활이 특이하고 낯설게 다가왔다. 짧은 문장은 읽기는 편했지만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순간적으로 방해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체인데도. 하지만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역시 이 둘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들이다. 자유연애와 연인이 뒤바뀌는데도 둘 사이의 우정이 전혀 흔들림이 없어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초반에 줄의 연애 상대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올 때는 ‘뭐지’하는 마음이 먼저 들 정도였다.

 

영화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여자 주인공을 루시로 생각했다. 줄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였고, 청혼을 했다가 실패했고, 짐과 잘 되어 그녀를 늘 볼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줄의 경우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고, 루시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면서 둘의 관계는 평행선을 유지한다. 이때 짐이 루시와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줄이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삶은 변수가 늘 생긴다. 바로 카트린의 등장이다. 독일에서 놀러 온 세 명의 여자 중 한 명인 그녀가 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둘은 독일로 돌아가 결혼한다. 그리고 제1차 대전이 벌어지면서 줄과 짐의 연락은 잠시 끊어진다.

 

전쟁 후 다시 줄과 짐이 만났을 때 짐이 사랑에 빠지는 인물은 카드린이다. 이때 이미 줄과 카트린의 관계는 단순히 두 아이의 아빠라는 것과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접점이 없던 시기다. 줄의 엄마 때문에 그녀는 결혼 전에도 외도를 하고, 전쟁 전후에도 다양한 연애를 한다. 줄은 그냥 지켜볼 뿐이다. 왜 이런 관계를 유지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짐이 다시 카트린에게 반하고 이 둘이 연인 관계로 이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줄이 지켜본다. 오히려 이혼한 후 이 둘이 결혼하는 것을 바랄 정도다. 이 심리 상태와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나의 의식이 그만큼 넓지 못하다. 그냥 지켜볼 뿐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살고, 항상 같이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그 지역에서 다른 연인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이 기묘한 관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이들의 삶을 그냥 그대로 볼 뿐이다. 감정과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도 있고, 현실이 이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게 한다. 줄과 짐과 카트린의 삼각관계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짐과 카트린의 관계로 변하고, 카트린의 좀더 자유로운 연애가 짐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어느 순간에는 카트린의 분노와 질투가 폭발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순간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게 간단하게 묘사한다. 자전적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작가는 74세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첫 소설이다. 노년에 젊을 때의 욕망과 관계를 건조한 단문으로 표현했다. 바로 여기에 내가 이 소설에 깊게 빠지지 못한 이유가 있다. 노년에 과거의 관계와 욕망을 경험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먼 곳에서 지켜보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감정과 욕망의 파편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지만 섬세하고 깊게 파고들지는 않은 것이다.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여운을 남길 것 같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졸지 않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