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락사스의 정원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0
이평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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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의 기억은 늘 이현세의 만화로 이어진다. 학창시절 만화방에서 본 한 구절이 나로 하여금 <데미안>을 읽게 만들었다.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다 그 유명한 문장을 만났다. 새와 알과 아브락사스의 그 문장 말이다. 그 이후 이 유명한 문장은 나의 뇌리 속에 박혔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책으로 나를 인도했다. 결론만 말하면 헤세와 나는 맞지 않았다.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을 거의 의무감으로 읽었다. 아마도 내가 예상한 것과 달랐고, 그 당시 내가 선호하는 내용도, 이해의 깊이도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의 저자는 <데미안>을 다섯 번 읽었다고 한다. 20대에 읽은 세 번째에야 겨우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지금도 희미한 기억의 일부만 남아 있는데 다섯 번이라니... 소설 속에서 데미안은 주인공 기연이 일하는 카페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 마리가 즐겨 읽은 책 제목이다. 마리도 다섯 번 읽었다고 한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마리에게 어느 정도 작가의 감성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유명한 문구를 기연의 성장과 변화의 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고 버둥거린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로망 컬렉션이란 시리즈 이름처럼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한 남자의 사랑과 성장과 변화다. 아버지의 몰락과 새어머니의 도망(살던 집을 팔았다)은 그를 빈곤한 삶으로 몰고 간다. 이런 그를 구해주는 것은 카페 ‘데미안’의 사장 장이다. 그의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기연으로 하여금 안정된 수익과 주거지를 제공받게 만든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의 외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빠트렸다. 모델 학원과 연기 학원을 다닌다고 설정한 것만 놓고 보면 키 크고 잘 생긴 외모를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도입부에 성공한 그가 다시 ‘데미안’에 와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가 생각한 것은 마리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앞에서 말한 <데미안>의 문장은 각각 하나의 장이 된다.

 

이 소설 속 몇 가지 장면들은 찌라시나 연예계 소문으로 들었던 것들이다. 게이, 마약, 성 상납 등이 대표적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널려 있다. 그 중에서 극소수만이 그 줄을 잡고 올라갈 수 있다. 소설 중반은 기연이 그 줄을 잡고 세상의 빛을 받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 빛의 이면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자신을 데뷔시킨 다이애나와의 성관계와 그녀의 집착,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성 상납, 이 과정에서 하게 되는 마약 등. 만약 그 자신이 다이애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다면, 사랑하는 여인 마리를 포기했다면 그의 미래는 당분간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중간했다. 그 둘을 모두 잡으려고 하면서 둘 다 놓친다.

 

아브락사스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인간은 그의 정원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 방황도 하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거대했을 때는 그 욕망에 굴복하지만 그 욕망이 채워지면 사랑의 욕망이 다시 자란다. 이 악순환은 두 사람 모두에게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장도 <데미안>을 다섯 번 읽었다고 말한다. 또 작가의 분신이 된 것이다. 그가 하는 충고는 아주 현실적이다. 기연의 기대를 깨트린다. 문밖으로 날아간 새는 그의 희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자극적인 내용과 소재들이 가득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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