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강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스트>로 강한 흡입력을 보여준 강형규의 새로운 작품이다. 이야기가 지닌 힘이 상당한데 이번 작품도 그렇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만화에서 그런 것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기에 그렇다. 전작이 서열과 돈이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본 사람과 장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그럼 이번 작품은 어떨까? 실제 1권만 본 지금 섣부른 예단은 무리다. 하지만 결말에 대한 반전을 지운다면 예상하는 대로의 전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라고? 그럼 작가가 멋진 것이다.

 

두 남녀가 있다. 한 명은 아버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교육된 문혜린이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이주원이다. 혜린은 천재성을 지닌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이외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연습을 해야 한다. 그 대가로 천재 피아니스트란 호칭을 얻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친구도 없다. 있다면 피아노다.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음날 갈 장소를 다녀오다 차 사고로 죽는다. 누구나 연주하길 원하는 카네기 홀이고 그곳에서 딸이 연주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보고 싶어하던 아버지가. 이 사고로 그녀 마음 한 곳에 여유가 생기지만 손은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피아니스트의 생명이 끝났다. 그 여파로 그녀는 손목에 칼을 댄다. 그녀와 주원이 만나는 첫 장면이 바로 이때 일어난다.

 

홍대 인디 밴드 당나귀벤자민 세컨 기타겸 보컬인 이주원. 그에게 세상은 뿌옇다. 뇌에 종양이 있어 그의 기억을 갉아 먹는다. 수술을 해야 하지만 가난한 인디 밴드 멤버인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다.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다. 점점 그의 머리를 뿌옇게 만드는 뇌종양은 삶의 의지마저 갉아 먹는다. 이주원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 20대들의 삶이 조금 드러난다. 하루를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딱 그 이상의 돈이 모이지 않는 88만원 세대. 그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그것을 알리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남은 앰프를 팔기 전 혜린이 입원한 병원에서 마지막 연주를 한다. 엇갈린 길을 달려온 두 남녀가 이제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한다.

 

혜린에게 주원은 굳어있던 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녀에게 희망의 빛이 다가온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지만 돈의 굴레 때문에 죽음을 그냥 기다려야 하는 그에게 혜린이 다가온다. 도와주겠다고 한다. 분명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익인 결합이다. 새장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에게 주원의 말과 행동은 별세계와 다름없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려는데 1권이 끝난다. 앞에서 말한 예정된 진행을 과연 작가는 어떤 식으로 연출하면서 이 둘을 엮을 지 기대된다. 아니면 다른 반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최종평가는 마지막 권을 읽은 다음으로 미루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
박하와 우주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연쇄살인범의 사형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장면을 간단하게 보여준 후 이 살인범을 잡은 검사의 짧은 단상으로 이어진다. 이 단상을 보았을 때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갈 인물로 남기호 검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연쇄살인범을 쫓는 검사에서 피해자 가족으로 변한다. 이들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원장 장준호 박사에 의해 한적한 센터에서 외상후증후군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사실 이 부분이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앞에 등장한 인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인물 도아가 화자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검사와 형사 하드보일드에서 한정된 공간 속 스릴러로 변한다.

 

이 소설의 중심에 놓인 것은 범죄피해자들이다. 모두 10명이다. 이들의 가족들은 살인사건으로 죽었다. 혹은 어릴 때 살인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 이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한적한 센터에 모인 것이다. 약간 밋밋한 전개가 이어질 수 있는 순간 하나의 소포가 도착한다. 폭발한다. 이상한 가루가 날아다닌다. 이 가루는 사형당한 연쇄살인범의 재다. 살인범의 아버지가 보낸 것이다. 소심한 복수일까?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변한다. 연쇄살인범이 조디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정보가 제공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누구나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조디악 바이러스. 실제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작가의 창작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다. 연쇄살인범들에게서 발견되는 바이러스다. 이 정보는 센터를 폐쇄된 공간으로 만든다. 백신이 있지만 사전에 맞아야 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는 심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졌다. 한정되고 폐쇄된 공간 속에 누구나 조디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첫 살인에 대해서는 범인이 누군지 알려주지만 다음 살인부터는 미스터리로 남겨놓았다. 범인은 누굴까? 머릿속에 설마 하는 느낌이 지나간다.

 

신문기자 출신 도아를 중요 인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적 능력이 있는 수애가 불길한 상황을 미리 본다. 이 피해자 가족 중 가장 이성적인 인물들이다. 도아는 살인범에게 아내가 죽게 되었고, 수애는 방화사건으로 아이를 잃었다. 이런 과거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다. 이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에 한 명씩 죽게 된다. 죽음은 조디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살인방식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가여운 피해자 가족들이 어떤 알 수 없는 살인자에 의해 죽게 된다. 센터 속 누군가가 범인이다.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면서 뭔가 이야기 속에서 파탄이 난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착각일까?

 

사람을 가둬두기 위한 장치로서의 센터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피해자 가족들이 느끼는 아픔과 상실감과 혼란과 두려움 등은 이어지는 연쇄살인과 상관없이 우리가 너무 쉽게 잊게 되는 피해자 가족들의 감정을 알려준다. 이보다 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들이 다시 피해자가 된다. 누군가가 상황을 왜곡하고 피해자 가족들의 감정을 건드리고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조디악 바이러스 때문일까?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 의문보다 그들이 최후에 부딪히게 되는 장면에 눈길이 간다. 무엇을 의미할까?

 

마지막으로 다가가면서 범인에 대한 윤곽이 잡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절대 바라지 않은 것이다. 다행 중 하나라면 모든 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랄까. 반전을 위한 장치를 이해하지만 그 장치에 맞춰진 설정과 소재는 아쉽다. 이야기를 풀어가고 속도감을 높여가는 필력은 상당하다. 그렇지만 캐릭터를 만들고 관계를 긴밀하게 연결하고 아!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능력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것일까? 간결한 문장과 세부적인 묘사 등을 볼 때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스터리 작가로 먼저 알게 된 작가의 작품이다. 귀여운 고양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생각할 때 제목과 상관없이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상상해봤다. 그런데 아니다. 삶과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미스터리와 닮은 부분이 있지만 상당히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작소설이지만 고양이가 중심에 놓인 단편이 있는 반면에 시간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 어떤 공통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몽이란 고양이가 이 3부의 이야기를 이어주지만 말이다. 각 단편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전편에서 가진 의문들이 다음 이야기에서 풀린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로 이어져 있다.

 

제1부 <새끼 고양이>는 몽이란 이름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어떻게 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흔히 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혹은 불쌍하게 생각한 주인이 주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침을 당한 고양이가 다시 집을 찾아오고, 다시 내치는 과정을 통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노부에의 감정을 풀어낸다. 노부에가 가지고 있는 힘들고 어렵고 어두운 감정은 아기 유산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도 추스르지도 못하는 노부에가 몽이란 고양이를 통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겹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 그냥 살아가고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제2부 <절망이라는 블랙홀>은 5년 전 엄마가 도망간 유키오 이야기다. 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화목이나 단란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집안 풍경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밥을 제대로 지어준 적도 없고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떼운다. 점심은 800엔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침울해하고 절망하게 된다. 뒤틀린 감정은 결국 엄마와 함께 있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향한다.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키우게 되는 고양이는 유키오의 감정을 순화시켜준다. 그리고 유키오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던 사건 이후에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반응은 유키오의 시선을 통해 드러난 풍경과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간격이 단숨에 좁혀질 정도는 아니지만 공감대와 이해의 시간을 가진다.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절망의 깊이를 이 단편을 통해 들여다본다. 나에게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제3부 <멋진 이별>은 노부에의 남편 도지가 20살이 된 몽과의 이별을 다룬다. 고양이 20살은 인간 100세와 비슷할 정도다. 도도하고 난폭하고 마초적인 고양이였던 몽이 점점 힘을 잃고 집에만 머물게 되고 결국 죽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체한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점점 쇠약해지는 몽을 통해 간호하는 도지의 모습은 변한다. 최선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내가 죽은 후 몽과 함께 살면서 조그만 위안을 얻었던 그가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 죽음은 삶이 다하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몽이 자신을 지키면서 살다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도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을 그냥 무심코 바라보지 않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굿맨
A. J. 카진스키 지음, 허지은 옮김 / 모노클(Monocle)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대 경전 <탈무드>에 나오는 36명의 굿맨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쓴 소설이 있었다. <36인의 아틀라스>다. 개인적인 평을 내린다면 둘 다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한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36인의 아틀라스>다. 이 평가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다. <라스트 굿맨>의 후반부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단순히 몰입도와 속도감만 놓고 보면 더 좋은데도 말이다.

 

36명의 굿맨이 사라지면 종말이 온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못한다. 고대 유대민족에서 36명의 굿맨을 찾는 것이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현대는 개인적으로 100배 정도 더 많다고 본다. 이야기의 소재로 이것을 이용한 것은 좋은데 여기에 머물러 버리면 미스터리 장르가 판타지로 바뀌게 된다. 내가 이 소설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물론 이 굿맨들의 역할을 좀더 거창하게 만들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

 

좋은 사람. 굿맨. 이들은 흔하지는 않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 물론 가짜들도 많을 것이다. 닐스가 베니스 형사 토마소의 연락을 받고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의 굿맨을 찾으려고 할 때 이것은 잘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은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실제는 평범하거나 권위적인 인물이란 사실을.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바로 그가 마지막 굿맨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속도감은 대단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시간 단위 장면으로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닐스다. 그는 총을 싫어하고 여행공포증이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면 공포를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공간이 확장되지만 국경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을 통해 배운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장치다. 그의 직업은 경찰이다. 임무는 교섭인. 그는 강제적인 방법을 싫어하고 배운 것과 경험을 통해 상황을 잘 풀어간다. 누구나 가는 미국 FBI 연수도 여행공포증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다. 도입부에 그가 인질범과 대화하는 장면은 약간 도식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의 능력을 충분히 알려준다.

 

각 나라에서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한 가지 공통점은 등에 문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일련의 규칙을 파악한 인물이 있다. 베니스 형사 토마스다. 그런데 그의 역할이 미미하다. 닐스와의 공조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이 파트너로 등장한다. 천재 천체물리학자인 한나다. 굿맨을 찾기 위한 과정에 그녀를 만났다. 이후 그녀는 다른 굿맨들의 죽음에 대한 규칙을 발견한다. 여기에 도입된 것 중 하나가 대륙이동설이다. 약간 진부한 부분이 있지만 규칙성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제는 굿맨을 살인자로부터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굿맨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재미와 속도감은 올라간다.

 

유대 경전에 나온 이야기가 현실로 이어질 때, 그 규칙성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 이 감정은 어느 순간 공포로 이어진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하지만 굿맨이라면 어떨까? 이 소설의 후반부는 바로 이 부분을 말한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을 때 이성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튄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성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력한 힘이 작용할 때는 더욱더.

 

나쁘지 않은 소재에 속도감 있는 구성과 재미는 충분히 시선을 끈다. 하지만 기본 설정이 뒤로 가면서 힘을 빼게 만든다. 물론 이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자 재미를 줄 수도 있다. 최소한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1부 사자의 서에서 인간적인 마무리로 이어졌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닐스와 한나 콤비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콤비가 나오는 소설이 출간된다면 손은 자연스레 나갈 것 같다. 왜냐고? 이 둘의 관계나 한나의 놀라운 추리력을 또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닐스의 여행공포증에 대한 후기도 역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랫랜더 래리 니븐 컬렉션 1
레리 니븐 지음, 정소연 옮김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작가다. 그런데 작품 목록을 보니 낯익은 소설이 보인다. <링월드>. 십 수 년 전 읽었던 sf소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대한 상상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 당시 출간작답게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 책을 들고 읽을 때 살짝 <링월드>처럼 거대한 세계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다. sf를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한국 sf 장르에서 가장 번역이 잘 되지 않고 있는 분야다. 그런 점에서는 상당히 반가웠다. 그리고 외팔잡이 길의 성격과 능력은 이 단편집에서 중심에 있으면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sf나 판타지에서 미스터리를 다루려면 나름의 한계를 정하고 설정에서 그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해답을 추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 때문에 sf 미스터리가 더 힘든지 모르겠다. 잘 쓴다면 일반 미스터리 장르와 다른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지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조금 어렵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개인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시대 배경은 2123년이다. 앞으로 백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 세계다. sf 작가답게 그는 지구뿐만 아니라 달과 소행성대도 같이 다룬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길 해밀턴의 이력에 소행성대 바위 캐기가 있다. 흔히 고리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인 플랫랜더다. 첫 작품 <절정의 죽음>은 바로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이 시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이 비록 충분하지 않지만 읽다보면 나름대로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링월드>가 너무 거대해 제대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세계다.

 

길은 ARM에서 일하는 경찰이다. ARM이 다루는 사건을 일반 사건이 아니다.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는 신체 및 장기나 무기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다. 이 시대는 인구가 이미 지구에 가득 차 산아제한이 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사람들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데 그 바탕이 되는 것이 재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다. 이 이식 때문에 늘 장기은행은 대체할 장기 등이 부족하다. 이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살인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장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장기는 법의 적용을 강화시키고 불법 거래를 활성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절정의 죽음>은 길이 소행성에서 같이 일한 동료 오웬 제니슨의 죽음을 다룬다. 이 시대 마약 중 하나가 전류 마약인데 그는 이것을 과다사용한 후 죽었다. 그냥 보면 자살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행성대 사람들과 일했고 그들의 특성과 오웬의 성격을 아는 길이 의문을 품는다. 의문은 조사를 통해 의심으로 변하고 계속된 추리와 조사는 사건의 실체로 다가간다. 다음 작품인 <무력한 망자>와 더불어 이 시대 장기 밀매 등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길의 초능력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와 한계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무력한 망자> 역시 장기 이식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야기는 냉동인간들을 둘러싼 인권과 재산 문제다. 과거에 이런 저런 이유로 냉동 보관된 사람들의 장기를 현재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사용하게 하려는 욕심은 섬뜩하다. 우리가 미래 사람들의 유산을 현재만을 위해 탕진하고 고갈시키는 것 이상의 참혹함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길의 초능력과 이 시대 의학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살짝 의문이 생기는 작품이다.

 

<ARM>은 어떻게 보면 가장 SF소설 같다.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SF적이기 때문이다. ARM이 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임무를 확실하게 알려주면서 SF적인 상상력을 미스터리에 강하게 도입했다. 사실 이 때문에 범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이유도 설명해줬을 때 겨우 이해하게 되었다. 길의 상상 손이 가진 엄청난 위력을 다시 한 번 더 경험하게 된다. 거리 제한만 없다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다.

 

<조각보 소녀>와 <델 레이 크레이터의 여인>은 무대가 달이다. <델 레이 크레이터의 여인>은 가장 작은 분량이고 <조각보 소녀>는 가장 긴 분량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작품은 앞의 작품에 비해 재미가 좀 적었다. 특히 마지막 작품의 경우는 이 세계를 조금 더 알려주는 소품 정도로만 느껴진다. 작품이 더 이어지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반면에 <조각보 소녀>는 법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고, 인간들의 탐욕이 개입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법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이 법이라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편리를 위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알려준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제목이 주는 의미를 알려줄 때 너무 끔찍했다. 미스터리적 재미보다 각각 다른 문화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고, 이 속에 담긴 다양함과 현재와 비교되는 윤리관 등이 더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