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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극성을 부릴 8월,  다양한 소설로 시원하고 즐겁게 보내고 싶다.

 

  1. 실업자 - 피에르 르메트르, 말이 필요없는 작가.

   내가 읽은 단 한 편의 소설로 그는 원너비가 되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내는 작업들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실업자. 이 시대 누구나 될 수 있는 비극적인 현상을 삼중에 걸친

   트릭으로 펼쳐내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절대 비범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은 늘 읽고 싶다.

 

 

 

 

2. 채텀 스쿨 어페어 - 토머스 H 쿡

   '슬픔의 미학'을 느낄 수 있게 한 절묘한 작품으로 평가받다니

   어떤 느낌일까? 작가의 이름이 낯익은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수많은 호평 때문이다. 나의 취향과도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믿고 보는 출판사 중  한 곳과 카페의 평을 생각하면 역시 그냥

   지나가기는 무리다.

 

 

 

 

 

 

 

3.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테드 창

  "SF 속 인공지능 로봇과 현실 속 기술의 발전 양상에 괴리를

  느꼈고, 그가 느낀 괴리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인공지능의 다른 형태를 제시한 작품이다"

  SF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괴리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미래에

  대한 좋은 예습과도 같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은 언제 꺼내 읽으려나?

 

 

 

 

 

4. 솔로몬의 위증 - 미야베 미유키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 오랫만의 현대 미스터리다. 개인적으로

 나를 압도한 <이유>를 떠올리면 속도감과 재미와 사회성 모두를

 충족시켜줄 것 같다.

 한 중학생의 죽음을 통해 밝혀질 현대사회의 어두운 이면은 결코

 유쾌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마주해야할 일이다.

 

 

 

 

 

 

 5. 그리고 산이 울었다 - 할레드 호세이니

  다시 아프카니스탄이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먹먹해졌던

  마음이 6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전작에서 조금 알게 된 아프카니스탄을 이번에는 60년의 세월을

  통해 풀어낸다고 하니 조금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그 먹먹함이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울릴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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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커포티 선집 3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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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기억난다. 이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매장 앞에 서 있는 장면이다.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 영화에 대한 소개 몇 장면이 나올 때면 꼭 포함되는 장면이다. 지금도 내가 과연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헵번과 이 장면은 내 뇌리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헵번의 이미지와 피타니 매장의 이미지가 엉뚱하게 결합하면서 정확한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소설로 읽으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이미지 파괴와 예상하지 못한 전개 때문이다.

 

이야기는 회상에서 시작한다. 홀리 골라이틀리. 발음도 힘든 이름이다. 그녀는 긴 시간이 흐른 후 한 사진작가의 아프리카 사진 속 목각 인형으로 등장한다. 화자와 술집 주인의 대화는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를 제멋대로라고 말한다. 이때 그녀에 대해 알았어야 하는데 영화 속 이미지가 계속 남아 있었다.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서 만난 그녀는 영화 속 이미지도 담겨 있지만 낯선 모습이 더 많다. 덕분에 읽는 재미를 더 누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화자가 홀리를 만나게 된 것은 홀리의 나쁜 습관 때문이다. 열쇠를 잊어버리고 제대로 가지고 다니지 않는 버릇 때문에 그녀는 다른 집 벨을 누른다. 그녀와의 첫 만남도 그렇게 좋지 않다. 한 남자가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데고 있고 늦은 밤에 돌아오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과감하게 남자를 돌려보낸다. 돈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이때 그녀는 유니오시와 다시 벨을 누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데 대신 화자의 집으로 들어온다. 이 만남을 통해 둘은 좋은 친구이자 이웃이 된다. 물론 작가 지망생인 화자에게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 되지만.

 

소설 속 홀리는 사랑스럽다. 어떻게 보면 매춘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존감이 강하다. 그녀에 대한 정보가 하나씩 흘러나올 때마다 그녀의 삶이 그렇게 평탄하지만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살에 뉴욕에서 남자들에게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그녀다. 영화배우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기만의 삶 방식을 고수하면서 즐기면서 살아간다.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리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소설 마지막에 그녀가 사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순수하고, 또 다르게 보면 영악하다. 남자들에게 돈을 얻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영악하기 그지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보면 어린 소녀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러니 얼마나 그녀가 사랑스럽게 보이겠는가!

 

커포티를 말할 때 문장을 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조금 건조한 듯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다. 단문에 담긴 명확한 표현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렵지 않아 쉽게 읽히지만 순간 호흡을 놓치면 빨리 나간 진도를 따라가지 쉽지 않다. 짧은 호흡의 좋은 문장들이 보여주는 단점 아닌 단점이다. 사실 처음 커포티의 책을 읽었다. 몇 권 사놓았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몇몇 문장으로 유명한 소설가들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 그 간결함 속에 담긴 명확함이 살아있다. 가끔 흉내를 내보지만 아직 너무 미흡하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원서로 읽고 싶다. 영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뭐 읽지 않을 가능성이 휠씬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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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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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하일지의 <진술>이다. 하지만 <진술>이 같은 인물 둘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에 이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답변을 하는 사람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인지 두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그 끝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먼저 읽은 <진술>이 더 좋다. 하지만 이 작품도 마음에 든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는데도 전체적인 흐름과 재미가 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뒤로 가면서 흘러나오는 음모론과 판타지적 설정은 또 다른 재미의 포인트다.

 

시작은 한 쇼핑센터에서 일어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 기자와의 대화다. 기자가 본 것, 느낀 것, 아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방식이다. M이란 쇼핑센터에서 뭔가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이 정확히 뭔지 모른다. 처음 뉴스를 듣고 그 현장으로 달려가는 와중에 만난 사람도,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도 마찬가지다. 집단 공포 의식이 순식간에 쇼핑센터 안에 있던 사람들을 휩쓸면서 다양한 사고 원인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확한 원인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의심이 생기지만 정확한 원인이 아니다. 수십 명의 사망자와 그 이상의 부상자를 만들어낸 사건치고는 너무 불명확하다.

 

현장에 도착한 기자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 현장에서 살아나온 사람, 그 현장을 CCTV로 본 변호사, 그 현장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와 그 엄마, 그 주변에 살지만 그날 사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날의 분위기와 상황과 의혹을 풀어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확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음모론을 들고 나온다. 그곳에 귀신까지 등장한다고 말한다. 이제 이야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단순히 독립된 듯한 대화가 다른 사람의 대화 속에 이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심을 품을 수 있지만 그 어떤 확신을 가지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사건을 말하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 담긴 인상적인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은 그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빠르게 나가던 진도가 잠시 멈춘다. 생각에 잠긴다. 감탄한다. 이 대화 속에서 쌍방이 지닌 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갑자기 섬뜩한 장면을 연상시킬 때는 서늘한 기분에 잠긴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올 때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순수한 욕망이다. 이 욕망과 대조적으로 그 현장의 참혹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도 잠시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지만 사고가 난 쇼핑센터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 덕분에 쇼핑센터와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 피해자들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이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이야기에 대한 답도 중요한 인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대화 속에 그날 그곳에서 사람들이 보고자 한 것과 욕망한 것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리되고 있는 사회가 나쁘게 풀리게 되면 어떤 식으로 소문이 와전되고 의혹을 증폭할 수 있는 지 잘 보여준다. 뭐 그 수많은 대화 속에 정확한 답이 분명히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아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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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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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섬뜩하고 섬세하면서 반전이 있다. 섬뜩함은 24년 전 악마주의에 빠진 오빠가 막내 여동생 리비를 제외한 엄마와 여동생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섬세함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와 교차하면서 시간 단위로 나누고 엄마 패티와 아들 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마지막 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는 점이다. 거기에 살인범에 대한 예상을 무참하게 깨트리면서 그 사건이 단순한 일가족 살인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와 언론과 거짓말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려준다.

 

유일한 생존자 리비는 그날 밤 사건을 피하다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몇 개 잃었다. 하지만 더 크게 잃은 것은 가족이다. 겨우 일곱 살인 그녀에게 큰 그늘이 사라지고 가십을 노린 언론과 이에 동조한 기부자들만 주위에 가득했다. 물론 이모도 있었고, 그녀의 기금을 관리하는 관리인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날의 기억 속에 매몰된 채 살아간다. 언론의 주기적 방송으로 얻게 된 기부금은 그녀가 일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더 많이 흐르고 세상은 새로운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녀는 이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돈도 점점 떨어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그녀에게 점점 더 돈이 절실해진다. 이때 한 남자가 그녀가 오기만 하면 오백 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가 바로 라일이다. 그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에 총무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모임들은 단순히 한 사건만 다루지 않는다. 사건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있다. 라일이 속한 모임은 리비 일가족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료를 조사하고 추론하면서 오빠 벤이 살인자가 아니라 아빠 러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하지만 돈이 절실한 리비에게 이들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구성은 현재 리비의 생활이 한 축이고, 사건 전날 아침에서 그날 밤에 있었던 그 순간까지 엄마 패티와 벤의 시점이 한 축이다. 두 축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리비다. 리비가 오빠 벤을 처음 면회하고 정보를 하나씩 수집한다면 과거의 두 모자는 그날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 단위로 끊어서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이 과정에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혹시 범인이 누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반전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 반전이 놀랍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 한발씩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다. 일곱 살 리비는 절대 몰랐을 과거를 하나씩 파헤치면서 이 거대한 어둠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든다. 동시에 긴장감도 같이 고조된다.

 

리비가 돈을 위해 진실을 찾아가듯이 과거 속 두 모자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다. 엄마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고, 벤은 가난 때문에 남들에게 무시된다. 엄마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에 벤을 둘러싼 아동 성추행 소문까지 퍼지면서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무력하고 술에 절어있었던 전 남편에게서 모두 네 남매를 낳은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삶의 시련이다. 삶의 수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가고 그 흐름 속에 한 개인은 너무나도 무기력하다. 그녀를 따라가면서 그날의 현실과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벤은 10대다. 겨우 열다섯 살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그렇게 좋지 않다. 여기에 여자 친구 디온드라의 임신은 또 다른 고민이다. 늘 돈이 궁해 무료 급식을 먹고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반면에 여자 친구 디온드라는 돈을 팡팡 쓴다.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끌린다. 하루란 시간 속에 벤의 과거가 거의 모두 담겨 있다. 이 과거가 현재에 다시 살아날 때 그날 밤 살인 사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진실이 드러난다. 진실과 거짓과 소문이 뒤섞이고, 목적을 위해 왜곡되고 유도된 살인사건의 진실이 말이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날 밤 사건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는 그 과정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몇 가지 조건만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살아남은 자는 어둠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하고,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 진실을 찾게 만드는 것이 돈이란 점이다. 그 가족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 돈인 것처럼. 또 사실과 거짓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흡입력이 재미가 <나를 찾아줘>보다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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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강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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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로 강한 흡입력을 보여준 강형규의 새로운 작품이다. 이야기가 지닌 힘이 상당한데 이번 작품도 그렇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만화에서 그런 것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기에 그렇다. 전작이 서열과 돈이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본 사람과 장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그럼 이번 작품은 어떨까? 실제 1권만 본 지금 섣부른 예단은 무리다. 하지만 결말에 대한 반전을 지운다면 예상하는 대로의 전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라고? 그럼 작가가 멋진 것이다.

 

두 남녀가 있다. 한 명은 아버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교육된 문혜린이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이주원이다. 혜린은 천재성을 지닌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이외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연습을 해야 한다. 그 대가로 천재 피아니스트란 호칭을 얻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친구도 없다. 있다면 피아노다.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음날 갈 장소를 다녀오다 차 사고로 죽는다. 누구나 연주하길 원하는 카네기 홀이고 그곳에서 딸이 연주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보고 싶어하던 아버지가. 이 사고로 그녀 마음 한 곳에 여유가 생기지만 손은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피아니스트의 생명이 끝났다. 그 여파로 그녀는 손목에 칼을 댄다. 그녀와 주원이 만나는 첫 장면이 바로 이때 일어난다.

 

홍대 인디 밴드 당나귀벤자민 세컨 기타겸 보컬인 이주원. 그에게 세상은 뿌옇다. 뇌에 종양이 있어 그의 기억을 갉아 먹는다. 수술을 해야 하지만 가난한 인디 밴드 멤버인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다.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다. 점점 그의 머리를 뿌옇게 만드는 뇌종양은 삶의 의지마저 갉아 먹는다. 이주원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 20대들의 삶이 조금 드러난다. 하루를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딱 그 이상의 돈이 모이지 않는 88만원 세대. 그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그것을 알리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남은 앰프를 팔기 전 혜린이 입원한 병원에서 마지막 연주를 한다. 엇갈린 길을 달려온 두 남녀가 이제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한다.

 

혜린에게 주원은 굳어있던 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녀에게 희망의 빛이 다가온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지만 돈의 굴레 때문에 죽음을 그냥 기다려야 하는 그에게 혜린이 다가온다. 도와주겠다고 한다. 분명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익인 결합이다. 새장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에게 주원의 말과 행동은 별세계와 다름없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려는데 1권이 끝난다. 앞에서 말한 예정된 진행을 과연 작가는 어떤 식으로 연출하면서 이 둘을 엮을 지 기대된다. 아니면 다른 반전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최종평가는 마지막 권을 읽은 다음으로 미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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