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뺏기 - 제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 살림 YA 시리즈
박하령 지음 / 살림Friends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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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은 좋아하지만 청소년 문학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흔한 말로 빤한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도 그런 점이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의 청소년 소설이 지닌 그 시절의 먹먹하고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란 부분에 눈길이 갔다. 내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아니라는 소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나의 과거와 비교하게 되고, 현재의 청소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의자 뺏기. 제목만 보면 치열한 경쟁을 다룬 소설 같다. 하지만 이 의자 뺏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 작가는 주인공 은오를 통해 살아남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자는 살벌한 의자 뺏기가 아닌 자생력을 가지고 자기 의지로 몸소 움직여 자기 몫을 낚아채자는 의미의 건장한 의자 뺏기를 말한다. 그것을 위해 일란성 쌍둥이 자매 은오와 지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둘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지오가 부모님 밑에서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살았다면 언니 은오는 외할머니와 함께 부산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 차이는 이 자매가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뺏는 역할을 한다.

 

처음엔 지오를 질투하는 승미의 작은 음모가 진행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 자뻑에 빠져 있는 지오는 이 음모를 무시한다. 이때 승미는 은오를 살짝 자기 편으로 당긴다. 상대적으로 지오에 대한 열등감과 반감이 있던 은오는 살짝 거리를 둔 채 승미 편에 기댄다. 부산에서 전학 온 후 제대로 된 친구가 없던 그녀에게 반의 실세인 승미를 거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임신한 동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은오를 외할머니 곁에 놓아둬야 한다고 설득하고 갔고, 그 후 오랫동안 부산에서 살아야만 했다. 어머니가 죽은 후 전학을 했다. 보통은 동생 지오가 언니와 친해지고 서로 도움을 줘야 하는데 이 둘은 서로 낯설기만 하다. 은오는 지오를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부산에서 살게 된 것이나 그 후 주변 가족이 그녀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과 양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승미는 자신이 가담한 밴드 짜장의 분장을 은오가 맡아줄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콜이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낯선 부산 생활의 힘겨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던 소년 선집을 다시 만난다. 선집과의 기억은 어린 시절 그녀의 기억을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녀의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주었던 그 소년은 이제 그녀 가슴 속에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파고든다. 감정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순간 거대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선집은 좋아하는 아이가 따로 있다. 바로 지오다. 이 둘이 만나게 된 것은 지오 탓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은오가 이 둘을 만나게 한다. 이후 여고생의 마음고생과 방황이 아주 짧게 나온다. 자기 몫을 찾으려는 소녀의 노력이 펼쳐진다.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녀의 밝은 성격과 행동이 그녀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쟁의 의자 뺏기가 아닌 건강한 의자 뺏기가 시작한다.

 

단순히 청소년들만 나오지 않는다. 은오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히 부모의 삶이다. 은오를 할머니에게 맡긴 것도 다른 속내가 있었다. 일거양득을 노린 것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성애의 진한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의 욕망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현실이 사실 불편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엄마의 재혼을 막고, 그 돈으로 한 재산을 쌓지만 한 순간 다 날려버린다. 사고도 생긴다. 그 이후의 몫은 살아남은 아이들과 할머니 것이다. 아주 참혹한 삶의 환경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몫을 찾으려고 하고, 그 와중에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일이 생긴다. 은오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가 더 많이 분노할수록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고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이 부분은 아주 좋았다. 다만 이 자매가 화해하는 것이 너무 급하고 도식적이라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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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쓴 음모론과 위험한 생각들
캐스 선스타인 지음, 이시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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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에 대한 책으로 잘못 알고 선택했다. 음모론이란 단어가 강하게 나와 있어 착각했다. 물론 음모론도 나온다. 원제도 ‘음모론과 다른 위험한 생각들’이다. 하지만 음모론은 열한 개 장 중에서 겨우 한 장만을 차지할 뿐이다. 음모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듯한 제목 때문에 목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실제 내용은 위험한 생각들에 대한 것이 더 많다. 그 위험한 생각들이란 것도 정치적 견해나 철학이나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는데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이 나왔다. 단숨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은 역시 음모론을 다룬 1장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건은 9·11 사태다. 저자는 이 사건이 음모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진행된 것이라면 그 많은 조사원들을 어떻게 모두 속일 수 있는지 의문을 드러낸다. 그리고 음모론에 대해 명백한 허위 음모론과 사실인 음모론을 구분한다. 당연히 9·11 사태는 명백한 허위 음모론이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음모론 모두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정보가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음모론이 정당성을 잃게 되고, 정보 창출 기관이 편향되거나 왜곡된 사회에서는 모든 공식적인 발표를 전부 혹은 대부분 불신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최소한 미국은 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련해서 무수히 많은 음모론이 나오지만 이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자료는 너무나도 없다. 발표된 것조차 너무 허술하다.

 

2장은 정부의 개입을 다룬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시장 우선과 최소한의 정부 개입은 자신들의 부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의 개입을 가장 소리 높여 비난하는 사람들도 매일같이 정부에 의존한다. 그들의 권리는 정부의 산물이므로 정부를 최소화해서는 보장될 수 없다.” 그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자주, 또는 성공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요청한 한 것도 바로 이들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법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동원했는지 생각하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후 이어지는 장들은 바로 이런 정부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용·편익 분석이 이익집단의 압력을 막아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정책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돌아보면 더 분명하다.

 

이후 동물권, 동성결혼, 기후협약, 종교집단의 성차별, 신진보주의, 최소주의자, 중도주의자 등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어떤 것은 비교적 쉽게 다가오는 반면 어떤 것은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힘들었다. 아마 신진보주의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책보다 정치 또는 헌법의 문제로 넘어가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뚜렷해지기보다 논점에 더 비중을 두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 같다. 그가 동물권을 주장하고, 동성결혼을 찬성한다고 했을 때는 쉽게 다가왔지만 기후협약을 둘러싸고 논쟁거리를 나열할 때 명확한 답보다 문제점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물론 이 문제들이 나와야 해결책도 나온다. 저자의 생각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종교집단의 성차별을 다룬 장에서 종교와 법률의 충돌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종교가 작용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큰 틀은 법과 종교가 상충하지 않지만 문화와 종교 간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발전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 있었던 테러는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아직 여성들이 종교의 지도자 위치에 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천주교도 불교도 마찬가지다. 이슬람교는 더 하다. 이 성차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논쟁거리다. 저자는 종교의 자유는 자유 사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종교 집단에 성차별 금지법을 적용을 요구하면 지나치다고 살짝 한 발 물러난다. 그렇지만 이것을 정당화할 설득력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나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은 탓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나와 맞지 않은 탓인지 조금 힘들게 읽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미국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보니 많이 낯설었다. 논쟁들을 충돌시켜 그 의미를 깊게 파고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나열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깊게 생각하면서 읽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것은 후반부가 특히 심했다. 음모론만을 생각하고 읽으면 큰 실망을 할 수 있지만 정부와 정책과 다양한 사회, 문화적 논쟁거리를 생각하고 읽는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미국 보수주의자의 저자에 대한 평은 개인적으로 너무 과한 평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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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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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할런 코벤의 2013년 작품이다. 그의 이전 작품처럼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복잡한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제이크는 정치학 교수다. 제목에 나오는 6년은 그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운명의 여자 나탈리가 갑자기 그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날로부터 지나온 시간이다. 이 소설의 시작도 바로 6년 전 그녀가 결혼하던 장면부터다. 그곳에서 그녀는 제이크에게 말한다. “약속해줘요. 우리를 내버려두겠다고 약속해줘요”라고. 제이크는 약속한다. 그 약속은 6년 동안 지켜졌다. 그 약속을 깨트린 것은 학교 홈페이지에 뜬 한 명의 부고 소식이다.

 

제이크는 그날 이후 나탈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교수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 학교생활을 충실히 수행한다. 학생들과 면담을 하던 중 학교 홈페이지에 토드 샌더슨의 부고 소식이 뜬다. 평온했던 그의 세계가 잠시 흔들린다. 겨우 자신의 업무를 마쳤지만 그의 마음은 토드의 부고에 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토드의 아내인 나탈리에게 가 있다. 6년 전 그녀와의 약속을 기억하지만 토드의 죽음이 그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란 단어였음을 상기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사랑에 따라 움직인다. 토드의 장례식장에 간다. 그가 바란 것은 나탈리를 한 번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탈리를 보지 못했다. 토드의 아내는 다른 여자였다. 그럼 나탈리와 결혼한 토드는 누구지?

 

토드의 죽음은 나탈리 찾기로 이어진다. 제이크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나탈리다. 학교 교수 중 한 명이자 전직 요원인 산타에게 나탈리에 대한 최신 정보를 부탁한다. 그런데 그 어떤 정보도 나와 있지 않다고 말한다. 출입국 기록도, 세금을 낸 기록도, 신용카드를 사용한 기록도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그녀는 6년 전 그날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제이크는 그녀를 찾기 위한 첫 단계로 그들이 처음 만난 곳으로 간다. 다시 간 버몬트 휴양소는 아무 것도 없다. 그녀를 처음 소개시켜 준 쿠키도 자신을 모른 척한다. 그 당시 그녀와 함께 한 사람들이 그녀를 모른 척한다. 이상하다. 왜 이들은 그녀를 모른 척할까?

 

어느 밤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나탈리를 찾아온 남자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나탈리가 어디 있는 가 하는 것이다. 제이크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을 그도 알고 싶어 한다. 제이크가 차에 타기를 거부하자 밥이란 남자는 총을 꺼내고 폭력을 휘두르고 협박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간다. 그런데 차 속에 있는 도구와 바닥을 보니 고문을 한 장소 같다. 거의 2미터의 키에 클럽 기도 역할을 했던 적이 있던 제이크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한다. 그리고 이들과 싸운다. 잘못하면 총에 맞을 수도 있다. 이 격투는 오토라는 남자를 죽이고, 힘들게 달아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사건은 단순히 추억 속 사랑했고 사랑하는 여자 찾기에서 폭력과 살인과 고문이 뒤섞인 사건으로 바뀐다.

 

보통의 남자라면, 보통의 연인이라면 여기서 아마도 나탈리 찾기를 멈췄을 것이다. 그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라던 것을 향해 움직이게 만든다. 이제 그만해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얼마 가지 않는다. 밥을 만난 날 있었던 폭력 사건 때문에 휴직을 해야 하는 사태까지 생겼다. 이때 그녀를 소개시켜 주었던 쿠키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녀를 찾아간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그를 잡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이 제이크를 협박한다. 나탈리는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토드는 과연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의문이 점점 쌓여간다. 그 사이로 조금씩 단서가 흘러나온다.

 

나탈리를 가장 찾고 싶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제이크다. 하지만 나탈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이들의 정체는 마피아의 하수인이다. 잔혹한 킬러다. 그리고 경찰도 나탈리를 찾는다. 제이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탈리를 찾는다. 그에게 나탈리가 있는 곳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모두가 바라지만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와중에 제이크는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단서를 하나씩 발견하고 비워져 있던 퍼즐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탈리는 보이지 않는다. 믿었던, 알고 있던 사실이나 관계가 흔들리고 새로운 사실이 나온다. 어느 순간 나탈리가 과연 살아있는지, 실재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이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나탈리다. 하지만 그녀의 적들도 그녀를 원한다. 전형적인 미스터리 공식대로라면 제이크를 따라가서 나탈리를 찾겠지만 이 소설은 그 형식을 따라가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잘 짜인 구성은 역시 코벤이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들의 사랑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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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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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대통령 시절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 공사라는 4대강은 너무 흔한 것이었고, 가장 먼저 문을 연 것은 당연히 자원외교였다. MB 지지자들은 언론을 도배한 이 실적을 자랑스럽게 되풀이하면서 대통령을 잘 뽑았다고 자찬하기 바빴다. 4대강 공사가 한창일 때는 신문에 나온 4대강을 극찬한 교수의 사설을 오려서 놓아두기도 했다. 홍보용으로 만들어 놓은 보나 자전거 도로를 구경하신 분들은 잘 만들어놓았다고 좋아했다. 어떤 분은 이제 비가 많이 와도 물이 범람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 말들 속에는 사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진실은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었고, 실제 효과는 더없이 많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졸속으로 처리하면서 수많은 법을 무시하고 바꾸기까지 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유산에 대한 끔찍한 기록을 담고 있다.

 

MB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은 정말 기본이나 기준이 없었다. 누군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렇게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그 빤한 모습에 감탄했다. 분명하게 문제가 눈에 보이는데 이것을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이 소문과 사실 속에 엄청난 비리와 비용에 대한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단순히 말 뿐이었다. 나중에 감사를 했을 때 혹은 소송이 일어났을 때 분명하게 보여줄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다. 대통령이 바뀔 때 엄청난 자료가 소각되었고, 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음모론이 득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비리와 비용에 대해 개괄적인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국회 등에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읽으면서 받게 될 스트레스다. 수십, 수백 억이 아닌 최소 수십 조 원을 날려버린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보통의 정신 상태로 견딜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또 반드시 읽어야만 했다.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최근에 많이 나왔던 자원외교에 대한 엄청난 비리와 손실이다. 자원외교 협상은 부풀려서 요란하게 홍보했지만 성과를 냈다는 소식은 찾기 힘들었고, MB 정부가 세일즈 대상을 외국이 아닌 국민으로 정했다고 지적할 때 단순한 대국민 정치 이벤트 이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리한 투자의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자신들이 정당하게 계약을 맺었다면 국정감사에 계약서를 숨길 필요도 없을 것이고, 100년 뒤에 그 성과를 알 수 있다는 황당한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절차와 법에 따른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지만 이 과정이 수많은 의문과 비리로 점철된 이상 반드시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정권은 이명박근혜다. 자신들의 비리가 가득한데 과연 밝히려는 의지가 있을까? 지금까지만 봐서는 전혀 없다.

 

자원외교보다 더 문제가 많은 것은 4대강 사업이다. 공사는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지류 문제부터 보의 유지와 유속이 느려지면서 생긴 녹조 문제까지 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낙동강 오염으로 다른 곳에서 식수를 끌어와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니 엄청나다. 이 공사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턴키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비용을 낭비했으며 이 공사로 얻고 있거나 얻게 될 이익보다 앞으로 들어갈 비용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온 MB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업적들을 홍보하는 낯 두꺼운 행동을 보여주었는데 정말 대단한 철면피 신공이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낯을 들고 다니는 현실은 우리의 수준이기도 해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MB의 무식한 추진력의 하나가 바로 제2 롯데 월드다. 자신의 의견을 반대한다고 공군 참모총장을 바꾸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는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뭐 이 정도는 역대 정권에서 한두 번 정도는 있었던 일이니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국가 안보와 교환할 정도는 아직까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영부인의 한식 세계화의 금액은 상대적으로 소액이지만 전형적인 홍보성 행사에 비용 낭비임을 보여줄 때 방향보다 과정에서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의도로 포장한 영부인 홍보 행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문화재 앞에서 벌어졌던 만찬행사가 갑자기 생각나는데 정말 법이나 규정은 이 부부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가 엄청 자랐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었다. 나의 한계를 넘어간 것이다.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한때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MB니까, MB인데 어쩔 거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책처럼 좀더 세부적으로 MB의 비용을 파악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문제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현재 정권에서는 더 날카롭게 혹은 더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지만 기록되었던 것처럼 최소한 기록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청산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MB 정권의 실정에 대한 대담을 담은 글은 개괄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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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문이 있었다
태극문 20주년 기념위원회 엮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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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협의 시작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좌백의 <대도오>를 꼽는다. 그런데 이 <태극문>을 효시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용대운은 구무협 시대의 작가였다. 야설록이란 이름으로 몇 권의 무협을 내었고, 본인의 필명의 몇 권을 낸 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공장무협 시대의 내막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일상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태극문>이란 무협으로 돌아왔다. 이전처럼 만화방용이 아닌 서점용으로 말이다. 그때 많은 무협 팬들은 열광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몇 년 동안 이어진 출판사 뫼의 성공은 바로 이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출판사 뫼에서 나온 무협은 믿고 보는 책이었다. 기존 무협과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당시 PC통신을 달구었다. 하이텔 무림동은 그 중에서 최고였다. 나도 이때 여기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이 당시 출간된 뫼의 무협을 열심히 모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뫼도 몰락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공장무협처럼 하나의 필명으로 여러 작가들이 소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무협의 대명사였던 사마달처럼 말이다. 무협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가들에게 이것은 배신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의 무협 대명사가 사라졌다. 이 책은 좌백의 글을 통해 그 이면의 역사를 짧고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반가운 대목이다.

 

미친 듯이 읽은 <태극문>이지만 이 책은 고룡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때 고룡 작품의 표절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 고룡의 작품을 읽었을 때 세부적인 묘사는 다르지만 기본 줄거리는 크게 변함이 없어 표절을 주장한 사람의 말에 공감했다. 그 당시 무림동에서 작가와 독자들이 다투면서 탈퇴하고 절필 등을 선언한 사건도 있었다. 그 영향인지 지금도 문피아에서는 작품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요즘은 거의 들어가지 않지만 GO무림 시절에는 이 규칙이 상당히 황당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표절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 명확하게 이 부분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에 글을 쓴 작가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용대운, 좌백, 이재일 등은 모두 좋아하는 작가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세 작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완성하지 않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다시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후속작들을 내고 있지만 팬들로 하여금 절필로 인한 주화입마를 수차례 경험하게 한 전력들이 있다. 부디 글을 계속 써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주길 바란다. 최근에 다시 중간부터 읽고 있는 <군림천하>가 28권까지 나왔는데 아껴가면서 읽고 있다.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다. 이들 외에 전성기 뫼의 작가들이 판타지 등으로 전업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인데 최근 무협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신작을 잘 모른다. 언젠가 한 번 리스트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고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뫼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다. 잘 몰랐던 이야기와 반가운 작가들의 글이다. <태극문>에 헌정한 진산의 <태극비전>은 재밌었고 반가웠다. 그녀가 얼마나 무협에서 멀어진 삶을 살았던가. 그리고 하이텔 무림동 이야기는 아련한 기억 속 추억을 불러왔다. 미친 듯이 텍스트 파일을 다운 받아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당시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이다. 감상이다. 90년대 이 글들은 이전 무협에 대한 수많은 애증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무협을 읽었던 고수들의 감상과 비판이다. 만화방에서 도서대여점을 거쳐 이제 이북으로 변하고 있는 시장을 생각할 때 용대운의 대담에서 나왔듯이 좋은 글을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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