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이면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1
이영훈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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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11권이다. 가끔 이 시리즈를 읽는다. 그때마다 다양한 작가들이 보여주는 평범하지 않은 경험에 놀란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는다. 이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가 부담없는 분량이다. 하지만 이 분량이 가끔 아쉬움이 된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랄 때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뒤끝이 그렇게 좋지 않다. 어느 정도 짐작한 연호의 정체가 너무 나간 결말로 이어지면서 앞에 나온 이야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이다.

 

우연희.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녀 곁에는 보영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거부하지 않는 삶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껴안고 있는 그녀에게 보영과의 만남은 잠시 동안의 휴식이었다. 그런 그녀가 스페인 남자 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다. 떠나면서 한 명의 남자를 소개해준다. 너무 순하고 착한 그녀에게 좋은 남자라고 하면서 만나보라고 한다. 이때만 해도 그냥 보통의 소개였다. 그러다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우연희 씨?” “통화, 괜찮으신가요?”라고 말하며 보영에게 전화번호를 받은 남자라고 소개한다. “언제가 좋냐?” 고 묻는다. 회사 일로 바쁜 그녀는 쉽게 말을 하지 못한다. 남자는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보통 기다리는 것은 연희의 일이었다.

 

약속한 날 남자는 보통의 남자들처럼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일이 많아 쉽게 몸을 빼지 못한다. 열두 시가 다 되어 약속한 커피숍에 가니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남자는 조용히 말한다. 약속한 날 만나고 싶었다고. 이렇게 이 둘은 만났다. 그리고 조용히 남자는 연희의 삶속으로 스며든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유연호. 둘의 초성이 똑같다. 남자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배려심이 많다. 그녀에게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같이 입사했던 유나다. 1년만 일하고 퇴사했는데 그 뒤로도 가끔 연락한다. 주말에 놀자고 말하는데 연희가 거부한다. 연호 때문이다. 유나가 커플끼리 보자고 말한다. 연호가 좋다고 한다. 주말에 약속이 잡힌다. 이들의 만남을 통해 연호의 직업이 드러나고, 둘이 사랑은 더 깊어진다.

 

연희는 참 착하다.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녀를 편하게 대하는 사람 때문에 그녀는 늘 일에 치인다. 회사가 바쁘다면 집에서는 엄마가 그녀의 삶을 힘들게 한다. 아빠가 갑자기 차 사고로 죽은 후 엄마는 병원을 전전한다. 특별히 아픈데도 없는데. 그녀의 삶은 회사와 병원으로 한정되어 있다. 착한 여자에게 나쁜 일만 가득하다. 이런 그녀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남자가 등장했다. 연호다. 그의 행동을 보면서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같다. 외모도 아주 잘 생겼다. 유나가 처음 만나기 전에 작업을 걸려고 할 정도였으니까. 연호는 연희에게 이때까지 불행을 보상하기 위해 나타난 존재 같다.

 

연호가 연희에게 결혼의 의사를 밝히고, 그녀의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는 괜한 트집을 잡고 반대한다. 남자가 처음으로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불안하다. 밤에 전화가 온다. 바빠서 그랬다고. 그리고 다음 날 엄마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연락온다. 그렇게 건강했던 엄마였는데. 연호의 도움으로 상을 치른다. 이때 그녀의 전 남자 친구 상호가 문상을 온다. 그는 그녀에게 아주 끔찍한 경험을 안겨준 존재다. 이때도 연호는 그녀 곁에서 그녀를 감싸고 도와준다. 멋진 남자다. 하지만 왠지 위험한 분위가가 풍긴다. 변호사가 인사할 정도의 성공적인 투자자문회사 대표라는 명함을 가진 그이지만.

 

둘의 장애였던 엄마가 죽은 후 결혼하기로 한다. 동화에서 보면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끔찍한 결말로 이어진다. 약간 낌새를 챘던 것이 생각 이상으로 발전하면서 앞의 이야기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불만이다. 보통의 반전이라면 반겨야 할 텐데 너무 비약적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이때까지 너무 착한 존재였고 제대로 선택도 하지 않던 연희가 완전히 변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행운이라고 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끔찍한 현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지막 한 문장은 연희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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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전명진 글.사진 / 북클라우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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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전명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탁피디의 여행수다>에 나왔을 때다. 이 방송의 첫 게스트가 사진작가 김홍희였는데 이때만 해도 전명진이 사진작가인줄 몰랐다. 방송이 거듭되고, 전명진이 방송에 녹아들 때 즈음 그의 직업과 작품이 눈에 하나둘 들어왔다. 하지만 한 번도 방송 녹음에 가 본적이 없는 나이기에 그의 외모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그가 출연한 세계테마기행 모로코 편을 보면서 <여행수다>에서 낙타를 닮았다고 놀림을 받던 그의 외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혀 닮아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상상하던 외모는 분명히 아니었다. 반가운 것은 뒤로 하고.

 

ROTC를 마친 후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서 세계여행을 한 그가 <여행수다>에서 들려준 경험들은 결코 얕지 않다. 수많은 출연진이 나와 각 나라의 경험을 들려줄 때 그가 겪었던 일들과 지식들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방송에서 늘 개드립을 치고, 허허거리던 그와 잘 연결되지 않았다. 결코 바람직한 방향으로 그의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 이미지 때문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여행수다>의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순간순간 보여준 경험과 통찰들이 곳곳에 녹아 있고, 잘 몰랐던 사진작가 전명진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기회를 주었다. 사진의 문외한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멋진 사진들로 말이다.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방송에서 워낙 많이 나왔지만 그렇게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왠지 끌렸다. 아마도 <여행수다>를 들으면서 익숙해진 이름과 순간순간 빛을 발휘했던 기지와 재치가 글에 녹아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이 기대는 대부분 맞았다. 글보다 사진이 더 많아 읽기 편했고, 방송 등에서 이미 경험한 것들이 다시 나와 반가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역시 그가 찍은 사진들이다. 빛과 구도가 역시 사진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문외한의 시각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한 인상과 경험을 자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책은 잘 몰랐던 전명진의 모습이 더 많이 나오지만 곳곳에서 <여행수다> 등에서 들었던 그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가 방송에서 단편적으로 말했던 작업들이 더 자세하게 나오고, 그 결과물이 사진으로 일부 실려 있다. 단순히 몇 개월의 시간을 두고 쓴 일반의 여행서와 달리 몇 년 동안 그가 다녀온 나라와 만난 사람과 자신의 생각들이 녹아 있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낯익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낯선 모습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드러난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진작가의 삶이나 점점 노련해지는 방송 등을 생각하면 약간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렇게 심오한 것이 아니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실천하기를 주저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지금 여기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으로 내가 늘 들었던 <여행수다> 속 전명진이 아닌 사진작가 전명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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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절규
하마나카 아키 지음, 김혜영 옮김 / 문학사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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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NPO 대표이사 살해와 동거여성 행방 묘연이란 기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요코라고 추정되는 여성이 1인 가구용 맨션의 밀폐된 집안에서 고양이에게 먹힌 채 죽어있다. 이 집은 방음이 잘 되어 있어 이웃들이 어떤 낌새도 채지 못했다. 단순히 죽은 모습과 고양이들 시체만 보면 흔한 고독사로 보인다.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두 여성 중 한 명인 형사 아야노는 요코가 어떤 여성인지 궁금해 한다. 집에 있는 통장과 계약서 등을 가지고 요코의 이력을 조사한다. 이 조사가 한 여성의 대외적인 모습을 파헤치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을 가장 중요하게 끌고 나가는 인물은 요코다. 그런데 시점이 ‘나’과 아닌 2인칭 ‘너’다. 상당히 특이한 시점인데 왜 이런 시점을 사용했는지는 마지막에 나온다. 아야노의 조사가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너’의 이야기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다룬다. 그녀가 태어난 것은 1973년이다. 그녀의 엄마가 바란 것은 아들이었다. 바라던 아들이 세 살 터울로 태어난다. 동생의 이름은 준이다. 미녀인 엄마와 달리 그녀는 평범한 외모를 가졌고, 성적도 보통 정도다. 하지만 동생 준은 아주 똑똑하다. 준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요코는 건강하지만 준은 허약하고 아토피도 심하다. 엄마의 걱정과 기대는 준으로 향해 있다. 고도 성장기에 아빠는 회사 일로 아주 바쁘다. 전형적인 7~80년대 가정의 풍경이다.

 

이런 집안에 가장 먼저 생긴 불행은 준의 죽음이다. 자살처럼 보이지만 엄마는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차에 치여 죽었는데 운전수는 잘못이 없다고 무죄로 풀려난다. 요코는 준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냥 모른 채 한다. 엄마는 이런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가족과 준의 세계 속에 머문다. 이 세계와 다른 것은 부정한다. 도쿄로 가고 싶지만 성적이 되지 않다 보니 지방대를 다니고, 지방의 조그만 회사에서 일한다. 버블 시기의 투기에 아빠가 돈을 빌리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아주 평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가족 몰래 퇴사하고, 도망간다. 집은 담보로 넘어갔다. 엄마는 외삼촌 집으로 떠나고, 그녀만 홀로 남겨진다. 그러다 첫사랑과 만나고, 도쿄로 가서 둘은 결혼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있어야 할 텐데 남편의 불륜과 아기가 생긴 여자 때문에 이혼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그녀의 삶은 추락한다.

 

요코의 삶은 이혼 후 콜센터에서 일한다. 그러다 속아서 보험회사 직원이 되고, 그 점장의 노련한 계략에 당하고 다시 한 번 더 추락한다. 계약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것이다. 지인을 통한 보험 계약으로 이전보다 많은 돈을 벌지만 그것은 단지 아는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다. 그 인맥이 다하는 순간 그녀의 실적은 추락한다. 잘린다. 보험회사가 노리는 바가 아주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의 보험회사가 어떻게 컸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번 달콤한 소비의 맛을 본 그녀는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신용카드의 무서움도 잘 몰랐다. 빚이 늘어난다. 하지만 대부업에서조차 직업이 없는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대신 매춘을 알선한다. 이미 몸을 이용해 보험을 판 경력이 있다 보니 큰 거부감이 없다.

 

그녀의 추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출장매춘을 하다 호스트에게 빠지고, 그가 기둥서방이 되어 그녀의 등골을 빨아먹는다. 이때 콜걸 사냥꾼에게 납치되어 강간 폭행당한다. 최악의 순간이다. 하지만 반전이 벌어진다. 그녀가 이들에게 자신과 살고 있는 호스트를 죽이고, 보험료를 챙기는 사업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것은 동생의 죽음과 보험회사 근무 경험이다. 이 일을 진행하는데 파트너가 되는 인물이 바로 가장 먼저 나온 NPO 대표이사 고지로다. 그녀는 다시 추락한다. 이것이 끝일까? 분명히 고지로를 죽인 것도 그녀인데. 단순히 그녀의 일생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면 미스터리로 분류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읽는 동안 고양이 밥이 된 요코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끝없이 생겼다. 작가는 뚝심있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이 모든 사건의 가장 사적이면서 중요한 부분이다.

 

요코의 일생이 시간 순으로 천천히 단계별로 나온다면 아야노의 수사는 시간의 역순으로 공문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녀가 한두 번도 아닌 무려 네 번의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첫 결혼을 제외한 모든 남편이 죽었다는 것도 알아낸다. 단순히 사고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보험사기가 너무 분명하다. 이 조사는 미궁에 빠진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조사 과정에 그녀의 삶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완벽해지고픈 엇나간 모성애가 이혼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편이 남긴 토론의 일부분은 복지제도의 핵심을 짚어준다. 언론이 공격하는 부정수급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어렵게 복지제도를 누리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다고. 이 소설 속 일단의 사람들도 이 제도의 완고함과 완벽 추가가 만들어낸 비극의 희생자다. 요코의 수사가 중요한 것은 요코의 내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본 그녀의 삶이기 때문이다. ‘너’로 불리며 들려주는 이야기와 이것이 결합할 때 그녀의 삶은 더 분명해진다. 마지막으로 아주 큰 반전 하나.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그 반전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한 인간의 삶 속에 그 시대의 비극과 불행을 집어넣어 우리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아주 잘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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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0-1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코 이야기 들으니 우리 나라도 저렇게 남편 가족 모두 죽이거나 사고를 내 보험금 탄 여자가 생각나네요. 엄청 이쁜 여자라 남자들이 혹 했다던데,,,,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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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한 소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가 아직 살아 있는데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이 조금 의외다. 언젠가 다시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전에 다른 유명 작가들이 가끔 한 것처럼. 물론 그때까지 번역된 그의 소설들을 모두 읽고 싶다. 이 책 이외에 읽지 않은 일곱 권이 더 있는데 몇 권은 사 놓았다. 더 사야 한다. 언젠가는 그의 전집이 출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장에 꽃아 놓으면 멋질 것 같다.

 

네메시스. 천벌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왜 이 제목을 사용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천벌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유행병이었던 폴리오가 전염되었다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1944년 여름 뉴어크와 인디언 힐의 풍경과 삶들을 그려내면서 하나의 유행병이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의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뉴어크의 놀이터 감독을 맡은 스물세 살 버키 캔터다. 그가 바라는 것은 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되는 것이지만 삶은 그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버키가 살고 있는 동네는 유대인들의 거리다. 버키의 아버지는 도박꾼이고,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죽었다. 그는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외할아버지다. 그에게 운동을 배웠고 강한 체력을 키웠다. 하지만 그의 시력은 아주 나쁘다. 그가 바라는 것은 유럽으로 가서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지만 시력 때문에 군이 면제다. 지금의 한국이라면 좋다고 했겠지만 그 당시 버키에게는 부끄럽고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실패가 그가 감독한 놀이터에서 폴리오가 번지고 아이들이 죽게 되면서 분노 폭발로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이것은 독실한 유대인에게 있을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 혹은 분노로 발전한다.

 

1944년 여름의 폴리오는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 점점 더 많아지는 폴리오 환자들로 인해 부모들은 공포에 질려 있다. 사그라지지 않고 무더위와 더불어 점점 늘어나는 폴리오 환자는 부모들로 하여금 히스테리 같은 반응을 자아낸다. 거리의 핫도그 가게를 비난하고, 놀이터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보건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욕하고, 그 외 이것저것을 탓한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버키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학생들의 죽음이 큰 충격이다. 제대로 된 치료제도, 예방약도 없던 시절 이 병에 걸린다는 것은 죽음 아니면 장애인의 삶이 전부다. 자신과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는데도 아이들은 병에 걸린다. 버키는 이런 연속적인 죽음과 병에 걸린 아이들 때문에 고뇌하고 두려워한다. 이때 그의 여자 친구 마샤가 자신이 여름방학 동안 일하는 인디언 힐에 올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버키가 병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버키는 양심과 공포 속에서 갈등한다. 이 갈등은 현실적 도피 방법으로 이어진다. 마샤와의 약혼이란 핑계로 인디언 힐로 가는 것이다. 시력 때문에 갈 수 없었던 군대와 달리 이제 그는 유행병에 굴복하고 시원한 산으로 간다. 놀이터와 아이들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과 함께. 인디언 힐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면서도 그의 마음 한 곳에는 죄책감이 남아 있다. 이것이 천벌로 발전하는 것은 인디언 힐에도 폴리오가 번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 탓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병균을 가지고 와 퍼트렸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폴리오에 감염되어 평생 힘들게 장애인으로 살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의 대부분을 버키의 한 여름 이야기로 채웠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버키의 놀이터에서 놀던 화자와 버키가 다시 재회한 장면에 나온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남 탓하기 바쁘다. 그런데 버키는 몇 가지 사건과 동기가 겹쳐지면서 자기 탓을 한다. 자신이 만진 더러운 호러스에게서 병균이 옮았고, 이 병균이 자신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염되었다고 생각한다. 키는 작았지만 강하고 건강한 몸을 가졌던 그가 폴리오로 장애인이 되면서 자신의 약혼녀 마샤를 떠나보내고, 운동 경기도 보지 않으면서 과거의 자신을 외면한다. 하지만 그의 삶속에 살아 있는 마샤의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더불어 하느님의 개념을 새롭게 세운다. ‘좇같은 새끼와 사악한 천재가 합쳐진’ 모습이다. 작가는 여기서 몇 가지 가정을 세운다. 의미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가정은 망가진 착한 소년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당시 어린 소년들에게 버키는 ‘무적으로 보’인 인물이었다. 이 문장이 마지막 문장인 것이 의미심장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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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데르 시리즈 한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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