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절규
하마나카 아키 지음, 김혜영 옮김 / 문학사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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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NPO 대표이사 살해와 동거여성 행방 묘연이란 기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요코라고 추정되는 여성이 1인 가구용 맨션의 밀폐된 집안에서 고양이에게 먹힌 채 죽어있다. 이 집은 방음이 잘 되어 있어 이웃들이 어떤 낌새도 채지 못했다. 단순히 죽은 모습과 고양이들 시체만 보면 흔한 고독사로 보인다.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두 여성 중 한 명인 형사 아야노는 요코가 어떤 여성인지 궁금해 한다. 집에 있는 통장과 계약서 등을 가지고 요코의 이력을 조사한다. 이 조사가 한 여성의 대외적인 모습을 파헤치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을 가장 중요하게 끌고 나가는 인물은 요코다. 그런데 시점이 ‘나’과 아닌 2인칭 ‘너’다. 상당히 특이한 시점인데 왜 이런 시점을 사용했는지는 마지막에 나온다. 아야노의 조사가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너’의 이야기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다룬다. 그녀가 태어난 것은 1973년이다. 그녀의 엄마가 바란 것은 아들이었다. 바라던 아들이 세 살 터울로 태어난다. 동생의 이름은 준이다. 미녀인 엄마와 달리 그녀는 평범한 외모를 가졌고, 성적도 보통 정도다. 하지만 동생 준은 아주 똑똑하다. 준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요코는 건강하지만 준은 허약하고 아토피도 심하다. 엄마의 걱정과 기대는 준으로 향해 있다. 고도 성장기에 아빠는 회사 일로 아주 바쁘다. 전형적인 7~80년대 가정의 풍경이다.

 

이런 집안에 가장 먼저 생긴 불행은 준의 죽음이다. 자살처럼 보이지만 엄마는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차에 치여 죽었는데 운전수는 잘못이 없다고 무죄로 풀려난다. 요코는 준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냥 모른 채 한다. 엄마는 이런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가족과 준의 세계 속에 머문다. 이 세계와 다른 것은 부정한다. 도쿄로 가고 싶지만 성적이 되지 않다 보니 지방대를 다니고, 지방의 조그만 회사에서 일한다. 버블 시기의 투기에 아빠가 돈을 빌리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아주 평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가족 몰래 퇴사하고, 도망간다. 집은 담보로 넘어갔다. 엄마는 외삼촌 집으로 떠나고, 그녀만 홀로 남겨진다. 그러다 첫사랑과 만나고, 도쿄로 가서 둘은 결혼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있어야 할 텐데 남편의 불륜과 아기가 생긴 여자 때문에 이혼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그녀의 삶은 추락한다.

 

요코의 삶은 이혼 후 콜센터에서 일한다. 그러다 속아서 보험회사 직원이 되고, 그 점장의 노련한 계략에 당하고 다시 한 번 더 추락한다. 계약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것이다. 지인을 통한 보험 계약으로 이전보다 많은 돈을 벌지만 그것은 단지 아는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다. 그 인맥이 다하는 순간 그녀의 실적은 추락한다. 잘린다. 보험회사가 노리는 바가 아주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의 보험회사가 어떻게 컸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번 달콤한 소비의 맛을 본 그녀는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신용카드의 무서움도 잘 몰랐다. 빚이 늘어난다. 하지만 대부업에서조차 직업이 없는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대신 매춘을 알선한다. 이미 몸을 이용해 보험을 판 경력이 있다 보니 큰 거부감이 없다.

 

그녀의 추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출장매춘을 하다 호스트에게 빠지고, 그가 기둥서방이 되어 그녀의 등골을 빨아먹는다. 이때 콜걸 사냥꾼에게 납치되어 강간 폭행당한다. 최악의 순간이다. 하지만 반전이 벌어진다. 그녀가 이들에게 자신과 살고 있는 호스트를 죽이고, 보험료를 챙기는 사업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것은 동생의 죽음과 보험회사 근무 경험이다. 이 일을 진행하는데 파트너가 되는 인물이 바로 가장 먼저 나온 NPO 대표이사 고지로다. 그녀는 다시 추락한다. 이것이 끝일까? 분명히 고지로를 죽인 것도 그녀인데. 단순히 그녀의 일생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면 미스터리로 분류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읽는 동안 고양이 밥이 된 요코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끝없이 생겼다. 작가는 뚝심있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이 모든 사건의 가장 사적이면서 중요한 부분이다.

 

요코의 일생이 시간 순으로 천천히 단계별로 나온다면 아야노의 수사는 시간의 역순으로 공문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녀가 한두 번도 아닌 무려 네 번의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첫 결혼을 제외한 모든 남편이 죽었다는 것도 알아낸다. 단순히 사고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보험사기가 너무 분명하다. 이 조사는 미궁에 빠진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조사 과정에 그녀의 삶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완벽해지고픈 엇나간 모성애가 이혼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편이 남긴 토론의 일부분은 복지제도의 핵심을 짚어준다. 언론이 공격하는 부정수급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어렵게 복지제도를 누리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다고. 이 소설 속 일단의 사람들도 이 제도의 완고함과 완벽 추가가 만들어낸 비극의 희생자다. 요코의 수사가 중요한 것은 요코의 내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본 그녀의 삶이기 때문이다. ‘너’로 불리며 들려주는 이야기와 이것이 결합할 때 그녀의 삶은 더 분명해진다. 마지막으로 아주 큰 반전 하나.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그 반전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한 인간의 삶 속에 그 시대의 비극과 불행을 집어넣어 우리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아주 잘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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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0-1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코 이야기 들으니 우리 나라도 저렇게 남편 가족 모두 죽이거나 사고를 내 보험금 탄 여자가 생각나네요. 엄청 이쁜 여자라 남자들이 혹 했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