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의 바다 위에서
이창래 지음, 나동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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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작가라 늘 관심을 두었고 몇 권을 책을 사놓았다. 첫 작품인 <네이티브 스피커>를 읽고 왠지 집중을 하지 못해 다음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합본으로 그의 책들이 나왔다. 몇 사람의 서평을 읽으니 좋은 평들이 올라왔다. 솔깃했다. 그 사이에 나의 책읽기 습관도 조금 바뀌어 자신감이 살짝 생겼다. 이 자신감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희미해졌다. 예상했지만 밀도 있고 세밀한 문장이 좀처럼 눈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디게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판을 둘러싼 모험이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주 무대는 미국이다. 이전에는 볼티모어라고 불렸던 도시지만 지금은 B-모어로 불리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 B-모어는 계급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중간계급도시다. 이곳은 신선한 야채와 수조에서 키운 물고기를 팔아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판은 바로 이 수조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중국계 잠수부다. 그녀의 애인이자 그녀가 이 도시를 떠나게 된 이유인 레그는 야채 등을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레그가 사라졌다. 아무도 왜 그가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의 연인이었던 판은 그를 찾기 위해 안전한 도시를 떠난다. 이 소설은 그녀의 모험 이야기이자 그 시대의 사회 풍경을 세부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B-모어를 떠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녀를 차로 친 사람은 예전에 차터의 수의사였던 퀴그다. 그는 현재 안전한 도시를 떠나 자치주에서 생활한다. 그의 직업은 이제 의사다. 물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의사는 아니다. 하지만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사람들이 쉽게 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그는 아주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치주의 사람들은 그의 치료를 받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가져와서 치료를 받는다. 물물교환방식이다. 줄 물건이 없으면 자신이나 가족의 누군가를 주어야 한다. 그를 정점으로 한 마을이 만들어질 정도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사실 퀴그의 사연이다. 차터에서 수의사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그에게 놀라운 일이 생긴다. 그것은 동물들의 전염병이다. 이 전염병에 대해 당국은 모든 애완동물을 살처분한다. 이 때문에 갑자기 수의사란 직업이 사라진다. 차터는 이에 대한 보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살기 위해 전혀 해보지 못한 일을 한다. 이때 그의 아내를 통해 치료용으로 쌓아둔 마약류를 팔라는 유혹이 들어온다. 이 일이 새롭게 부를 쌓게 하지만 어느 순간 경찰에게 밝혀져 차터 밖으로 추방당한다. 겨우 차에 실을 수 있는 몇 가지 물건만 가지고. 그리고 그의 가족은 한 여관에 들어가고 거기서 약에 취한 남자들에게 살해당한다. 그 이후 그가 의사와 같은 생활을 하기까지의 삶은 생략되어 있다.

 

자신의 눈앞에서 가족이 살해당한 후 그의 내면은 파괴되었다. 감정의 파편은 남아 있지만 따스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가 판을 구해주었을 때, 판이 운전을 하게 했을 때 로린이 놀랐다. 어떤 부분에서는 질투를 했다. 퀴그를 중심으로 한 자치주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떠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이 시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판은 다른 사람들이 퀴그에게 사람을 노예로 바친 것처럼 차터의 부유한 집안에 남겨진다. 후반부는 바로 이 차터에서 벌어진다. 그곳에서 벌어진 것은 상류계층의 은밀하고 왜곡된 삶의 모습들이다.

 

판이 주인공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그녀가 실제 활동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야기의 한 축은 그녀가 떠난 B-모어에서 이루어진다. 전설처럼 변한 그녀의 이야기와 그 후 B-모어 사람들의 삶이다. 그들 이야기 중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이곳의 아이들 중 2%가 성적에 따라 차터로 입양되었는데 그 비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벌어진 시위는 그들의 삶과 세계가 얼마나 종속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작게는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 입사나 대입을 둘러싼 풍경과 너무 닮아 있다. 공고하게 굳어진 계급사회 속에서 이 틀 자체를 바꾸기보다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라도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이 그대로 드러난다.

 

판의 모험은 레그를 찾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 레그는 다국적 제약 회사에 실험대상으로 억류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 사회를 위협하는 질병인 C-질환에 대해 그가 완전히 내성적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C-질환은 불치병인데 제약회사에서는 이 치료제를 개발하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다. 기업과 사람의 탐욕은 한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실험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이 사실을 은폐한다. 나중에는 임신한 판조차도 이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에 빠진다. 그것도 그녀의 가족에 의해서. 사람들의 욕심은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이니 가족이니 하는 것 너머에서 조금만 틈을 보여주면 그를 삼켜버리려고 대기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서 따온 것이다. 만조의 바다 위에서 조류를 타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란 대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판의 활약은 사실 거의 없다. 차터로 오는 도중에 퀴그 등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준 것을 제외하면 능동적인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이것이 어쩌면 그녀를 전설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 촘촘하게 짜인 문장과 서사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과 현재 우리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가볍게 읽기는 무리지만 차분하게 집중한다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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