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베트남 - 생생한 베트남 길거리 음식 문화 탐험기
그레이엄 홀리데이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동남아 여행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도 가본 곳은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 대부분도 태국이었다. 베트남은 왠지 쉽게 가지 않게 된다. 회사의 지사가 있는 곳이지만 내가 하는 일은 그곳에 갈 일이 없다. 그래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쌀국수 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이 그곳에서 먹은 식당을 말할 때 호기심이 폭발한다. 하나같이 모두 맛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쌀국수를 좋아하기에 더 그 식당에 가서 포를 먹고 싶다. 또 한 번은 호치민 근처의 해산물 식당에서 아주 저렴하게 게와 새우를 먹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 놀러오면 자신이 가이드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왠지 불편을 끼치는 것이 싫어 쉽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지 않는다. 언제가 가게 되면 꼭 먹고 말겠다는 의지만 남겨 놓고 있다.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베트남 음식의 설명과 사진이 곁들여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는 책을 받고 펼치자마자 사라졌다. 표지에 나오는 사진을 제외하면 단 한 장의 음식이나 식재료 사진이 없다. 400여쪽의 책이 글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진을 통해 그 이미지를 얻으면서 다음에 가면 그 음식을 한 번 먹어봐야지 했던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자가 글로 표현한 것을 내가 알고 있는 한도 안에서 그 음식의 모양과 맛을 상상해야 한다. 알고 있는 베트남 음식이라고는 쌀국수 집에서 먹은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몇 가지는 태국 음식에서 그 이미지를 빌려온 것도 있다. 책 내용과 상관없이 이 불친절한 편집이 조금 많이 아쉬웠다.

 

저자는 베트남을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동남아를 갈 때면 길거리 노점상들을 자주 본다. 작고 허름한 식당도 적지 않다. 가능하면 이런 곳에서 먹으려고 한다. 물론 유명한 식당이나 푸드 코트에서 먹는 경우도 많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비위생적이란 생각과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 인터넷 카페의 정보를 통해 주문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한국 여행객들이 자주 가는 곳이다. 아니면 외국인들이라도.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서 현지인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주문한다. 상대적으로 입맛이 까다로운 내가 아예 먹지 못할 정도의 음식이 나온 적은 없다. 이때의 경험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저자가 베트남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길거리 음식을 하나씩 먹고 즐기는 과정을 보면서 나의 짧은 경험이 떠올랐다.

 

베트남 출장을 갔다 온 직원 한 명이 현지 거래처 직원과 해장용으로 닭피를 마셨던 이야기를 해줄 때 경악했다. 그런데 저자는 처음으로 현지인과 함께 간 곳이 바로 돼지 자궁을 요리하는 곳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가 베트남에 오기 전 전북 익산에서 일 년 정도 머물렀다고 하지만 이 정도의 것은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도 예전에 태반을 먹거나 애저 등을 먹은 적이 있으나 그가 그것을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니까. 그가 이 책의 첫 이야기를 이것으로 시작한 것은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 경험을 넘어가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든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분짜다. 나는 이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다. 그럼 왜? 아내가 하노이로 놀러가서 가장 맛있게 먹은 유일한 음식이 분짜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쌀국수조차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 음식이 목차에 나오니 반가웠다. 사진과 맛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는데 역시 앞부분이다 보니 실망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이 음식을 먹게 되었는지,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주지만 식당 정보와 사진이 없다 보니 혹시 하노이로 가게 된다고 해도 먹어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기 전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한 정보를 얻어가서 먹고 올 테지만.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고 했을 때 한국도 한때는 그랬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노점과 포장마차가 우리의 허기를 채워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기업처럼 변해가는 과정에 있지만 많은 곳에서 새로운 음식과 유행하는 음식들이 길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베트남만큼은 아니다. 또 하나 감안해야 할 것은 저자가 이곳에 간 시기다. 1997년 여름이었는데 이때만 해도 베트남이 덜 발전했었다. 한때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던 오토바이의 물결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하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물론 이 책을 내면서 다시 간 것 같은데 아직도 많은 길거리 음식점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문명화 혹은 현대화의 물결 아래 점점 길거리 음식점은 사람들의 삶에서 밀려나고 있다. 저자가 살던 때도 경찰의 단속을 피하고 벌금을 내면서 자기 가족을 돌보던 음식점이었는데 말이다.

 

저자는 괜히 아는 척하기보다 아는 만큼만 글로 적었다. 자신이 그곳에 생활하면서 먹고, 인터뷰한 것을 적었는데 외국인이라는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허브에 대한 부분은 더 그랬다. 약간은 알고 있던 부분이지만 하노이와 사이공(호치민)의 음식 및 문화의 차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분명해졌다. 묵직하고 직선적인 하노이의 음식에 비해 다채롭고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호치민의 음식에 대한 비교와 설명은 나의 취향은 어디일까 하는 궁금점을 드러내었다. 호치민이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영향을 받다 설탕을 많이 쓴다고 했을 때 라오스에 가고 싶은 나의 의지를 살짝 흔들었다.

 

재미있는 인터뷰가 하나 있다. 저자가 길거리 식당의 아줌마를 인터뷰하는 것인데 엄마와 딸의 답이 다른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정통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딸은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바꾼다고 말한다. 맛있다고 말하는 다른 음식점 주인들이 모두 자신이 정통적인 방식으로 만든다고 말했기에 이 부분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육수를 직접 만들지 않고 치킨 스톡 같은 것으로 맛을 낸다고 했을 때 머릿속은 조미료가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육수나 국수를 만드는 방식을 보면 한국의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음식이 떠올랐다. 이럴 때면 식당과 음식과 주인들의 사진이 없는 것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누구나처럼 동화를 참 좋아했다. 집에 있는 동화책을 다 읽고 친구집에서 새로운 동화책을 발견하면 빌려 읽었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살아오는 동안 많은 힘과 재미를 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그렇게 좋아했던 동화의 이면을 조금씩 보면서 어릴 때 느꼈던 감동과 안타까움이 완전 다르게 다가왔다. 한때는 아예 잔혹동화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오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그림형제의 동화가 원작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했던 적도 있고, 디즈니가 원래의 이야기를 망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동화를 읽는 그대로 재미를 느낄 나이가 지나간 것이다.

 

그림형제가 각 마을을 돌며 이야기를 모아 동화를 낸 것처럼 현대도 이 동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비틀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다. 단순히 예쁘고 연약한 공주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전사의 이미지를 씌운 동화도 있고, 아예 그림형제에게 퇴마사와 같은 역할을 부여하는 작품도 있다. 동화 속에 담긴 상징을 새롭게 해석하여 현대 속에 재해석한 작품도 가득하다. 한때 텔레비전을 켜면 신데렐라 스토리로 가득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구전문학이 텍스트로 바뀐 후 다시 시대 속에서 변주를 시작하고 있다. 이 단편집도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모두 여덟 편의 나쁜 동화가 실려 있다. 나쁜 동화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마도 우리가 동화에서 기대하는 전개와 행복한 결말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내용도 그렇게 동화스럽지 않다. 제목만 놓고 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단편도 있다. 동화 속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작품들이다 보니 이 단편집을 단순하게 동화를 재해석했다고 말하기도 조금 어색하다. 표제작 <빨간구두당>의 경우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에서 멈추지 않는 소녀 이야기를 빌려 색이 사라진 세상 속에 색을 보는 사람을 등장시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만든다. 흑백만 존재하는 세계에 빨간 구두를 신은 아가씨의 등장은 혁명과도 같다. 하지만 이 색을 보고 느끼는 사람은 일부다. 지배세력은 이들을 처벌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길지 않은 이야기인데 그 속에는 전체주의 혹은 근본주의 종교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 인간들의 이기심과 사악한 욕심도 같이 곁들였다.

 

단 한 편의 동화를 재해석하기 보다는 여러 편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내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 경우도 있다.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가 대표적인 경우다. 기본적인 모티브는 개구리 왕자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동화를 짧게 인용하면서 개구리 왕자의 여정을 재미있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 결말까지 따라가지는 않는다. 또 화자를 맹목적인 하인 하인리히로 만들어놓고 동화의 이면을 비틀고, 주변 인물이었던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기슭과 노수부>는 명확하게 떠오르는 작품이 없지만 영웅의 모험담이 결코 모든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현실의 높은 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모두가 행복했다는 동화의 결말을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카이사르의 순무>는 읽으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농부의 기지가 수탈을 피하게 만들지만 결국 보복은 피할 수 없다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알 수 없는 존재의 죽음과 그가 묻힌 곳에서 자란 거대한 순무와 그곳에 붙은 뼈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잔혹하고 서늘하다. 거대한 순무를 진상받고 상을 내리기보다 그 땅을 수탈하는 모습은 거대한 자본의 탐욕과도 닮아 있다. 긴 세월 속에 부당함과 거짓 등을 한두 번 정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넘어갈 수 있지만 지속적인 탐욕 앞에는 너무 무력하기만 하다. <헤르메스의 붕대>는 자신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 질투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 읽으면서 뜨끔했다. 가장 좋은 것을 나눠 가지지 못하고 숨겨야 했던 부분과 권위로 포장한 질투심이 엇나갈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보여준다. 이야기 속 한 부분은 아주 섬뜩하다.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는 한때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농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한때의 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만 힘이 없는 여자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떤 일을 당하는지 보여주는데 녹아 없어진다는 말 속에 담긴 의미가 심상치 않다. <거위지기가 본 것>은 거위지기의 시선에서 어린 공주와 왕의 결혼을 지켜보고, 그의 진심어린 조언이 뒤틀린 관계를 바로 잡는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욕망이,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자신을 어떻게 만들지도 알고 있다. 그의 욕망은 불나방과도 같다. <화갑소녀전>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새롭게 해석했다. 행복한 결말과 환상은 사라지고, 산업재해와 성추행 등이 그 속을 채운다. 익명으로 처리된 공장의 생산현장은 어딘가 떠오르는 곳이 있다. 현대 기업이 요구하는 몇 가지 가치가 실제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보여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서술 트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산산조각나면서 순간 멍하게 만들다 보니 감탄을 자아내기보다 뭐야? 하면서 욕을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단서를 곳곳에 심어놓고 구성을 잘 짠 서술 트릭이라면 순수한 감탄과 함께 어디에 그 단서를 숨겨놓았을까? 하고 찾게 된다. 이 책은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거대한 얼개 속에 독자가 먼저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고, 그 사실의 일부가 드러났을 때 반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서술 트릭은 선입견 없이 읽게 되면 금방 그 어색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속에 책을 읽는 독자라면 대부분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다. 처음에 살짝 어색함을 느낀다고 해도 이어져 나오는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새롭게 나오는 단서와 상황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서술 트릭은 잘 짜인 구성과 필력이 없으면 금방 그 트릭이 들통 난다. 나의 경우 대부분의 서술 트릭을 다룬 미스터리를 읽을 때 속아 넘어가는데 아주 가끔 그 어색함이 계속 잔상처럼 남아 불편함을 느끼면서 트릭을 발견한다. 이것은 나의 추리력이 탁월해서 라기 보다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단련된 유형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운이 좋았다.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 7월 7일 오후 7시에 사카이 마사오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자살이 아니면 밀실살인이다. 겨우 반쪽의 글 속에 프롤로그를 마무리한 후 7월 7일 오후 7시 고묘소 빌라의 3층에서 살던 사카이 마사오라는 남자가 자기 집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1부인 사건의 도입부다. 그리고 사카이 마사오가 어떤 남자인지 간단하게 설명한다. 청산가리를 먹고 고통스러워하다 창밖으로 뛰어내렸을 것이라고 경찰은 판단한다. 사카이 마사오는 신인 추리소설가로 어느 잡지의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뒤로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 친구는 자살을 부인하지만 경찰은 창작의 고통으로 인한 자살에 더 무게를 둔다. 여기에 작가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하나 슬쩍 흘려놓았다.

 

그 다음부터 이야기 구성은 간단하다. 나카다 아키코와 쓰쿠미 신스케가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추궁, 전개, 진상으로 이어지는 구성 속에서도 이것은 변함이 없다. 아키코는 의학책 편집자이자 사카이의 연인이었다. 그녀가 볼 때 사카이가 자살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자신과 결혼을 약속하고 큰돈이 생긴 후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의문을 품게 된 것 중 하나는 이전에 사카이의 집에서 만난 한 여성이 그에게 전달한 적지 않은 돈이다. 도가노 리스코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업무상 출장을 갔다가 잠시 둘러 그녀를 만나고,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리스코가 그를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쓰쿠미 신스케는 르포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느 날 사카이와의 관계를 안 잡지사 편집장이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의뢰한다. 그와 사카이는 추리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다. 그냥 아는 사람을 만나서 몇 가지 정보를 덧붙여 글을 쓰면 되는데 <산악>이란 잡지에 실린 한 편의 소설 때문에 사카이의 표절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뀐다. 소설계의 거장 세가와 고타로가 산을 배경으로 쓴 <내일 죽을 수 있다면>과 사카이의 사후 발간된 <추리세계>의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 거의 같은 작품이란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사카이가 이것을 표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추리세계> 편집부에는 사카이를 증오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야나기사와다. 그의 동생이 사카이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다.

 

사카이 마사오란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사람들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들을 추궁하고, 단서를 뒤지고, 증거를 모은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두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자신의 추리를 뒷받침할 단서와 증거를 찾아 돌아다니고 조사하고 추리하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 물론 약간 허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자신들이 지목한 인물에 상황을 맞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설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다. 선입견에 빠진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한 설정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하나씩 트릭을 끄집어낼 때마다 읽으면서 내가 세운 가설들은 산산조각났다. 다 읽은 후 복기를 하면서 더 감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라 다이어 1
미셸 호드킨 지음, 이혜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라 다이어. 주인공 이름이다. 3부작 시리즈라고 하는데 아직 그 정체가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는 채 끝난다. 이 때문에 읽으면서 뭐지? 뭘까? 하는 궁금점이 계속 생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작가는 굉장히 영리하다. 마지막에 앞에 나온 미스터리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살짝 제공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 이전까지는 중간중간에 환상을 집어넣어 현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새롭게 시작하는 불안한 연인들의 티격태격하는 싸움을 곁들였다. 어떻게 보면 10대의 로맨스 소설 같지만 판타지적인 장면을 넣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시감처럼 죽는 사람을 등장시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거대한 이야기의 도입부라 아직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한 소녀가 병원에서 깨어난다. 자신에 일어난 일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전에 이 소녀와 친구들이 위저보드를 가지고 노는 장면이 나온다. 한때 유행했던 분신사바 놀이와 비슷한데 뭔가 낌새가 심상찮다. 현실 속 병실에서 소녀는 자신과 함께 간 친구들이 죽었다는 것을 이야기 듣고 놀라 비명을 지른다. 건물이 무너졌는데 에어포켓 사이에 있었던 관계로 목숨을 유지한 것이다. 이 소녀의 이름이 바로 마라 다이어다. 그녀는 부모에게 전학을 요구한다. 절친했던 친구들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이애미로 이사한다.

 

현실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은 마이애미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그전에 있었다. 전학 온 그녀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상적인 상태라도 쉽지 않을 텐데 그녀는 그날의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거기에 그녀는 환각을 본다. 그 대상은 주로 그전의 남자 친구였던 주드다. 주드는 학교에 간 그녀를 쳐다보고, 밤에 그녀의 집으로 찾아온다. 당연히 이 현상을 트라우마에 의한 환상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현상은 그녀로 하여금 현실의 학생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첫 등교에서 한 남자가 시선을 끈다. 바로 노아다. 작가가 묘사한 노아의 이미지에 딱 부합하는 배우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가장 궁금한 부분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주드나 다른 친구를 보는 것을 단순히 환각이라고 치부하면 약을 먹고 치료될 수 있다. 실제 그 증상이 심해지면서 의사를 만나 상담하고 정신병 약을 먹는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오는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 심한 일이 일어난다. 개를 학대하는 한 남자가 죽은 모습을 보고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 똑같이 죽어 있는 그 남자를 본 것이다. 여기서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해진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예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복수로 스페인어에 F학점을 준 교사에게 분노하고 죽는 모습을 상상한 후 일어난 죽음은 단순히 예언이나 기시감 정도가 아니다. 그녀에게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기운이 있다. 어렴풋하게 이것의 정체가 드러나지만 실제 어떤 모습일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다.

 

마라 다이어는 그전에 낡은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사건을 하나씩 기억한다. 이 기억 속에는 그녀 자신이 숨기고, 잊고 싶었던 비밀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을 안다는 것은 그날의 비밀을 직접 파헤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작가는 그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마치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맛보여주는 예고편처럼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중심을 잡고 있다. 바로 노아와의 연애다. 영국에서 전학 온 엄청난 부자의 아들이자 멋진 모습을 가진 소위 말하는 킹카다. 학교의 모든 여학생이 사귀길 원하고, 그에게 상처받은 여자가 수두룩하다. 그런 그가 마라에게 다가온다. 어설프고 전형적인 연애가 펼쳐진다. 물론 이 둘 사이에는 운명같은 힘이 살짝 흐른다. 이제 이 둘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약간 말랑말랑한 십대 연애물이 미스터리와 공포의 힘으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오랜만에 킹의 소설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킹의 광팬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책이 나오면 산다. 밀리언셀러클럽에서 그의 소설들이 나오기 전에 이미 그의 소설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한참 헌책방을 다닐 때 사계 시리즈를 보고 사지 않았었다. 그의 다른 장편이나 단편을 산 것과 비교하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의 이름을 잘 몰랐을 때도 그의 소설을 잡고 읽으면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기이한 이야기에 홀린 것이다. 읽고 나서 그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의 책이라면 사고 읽었다. 한때 무협을 제외하고 집에 가장 많은 책을 가지고 있던 작가였다. 지금도 적지 않은 킹의 소설들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중단편집이다. 모두 네 편이 실려 있다. 모두 분량이 다른데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첫 작품인 <1922>다. 처음에 읽으면서 왠지 낯익은 분위기를 느꼈다. 한 부자의 살인 사건이 우리의 귀신 이야기와 닮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살인 사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왜냐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이것을 아들이 돕기 때문이다. 이때 아들의 나이는 열네 살이다. 아내를 죽인 이유도 아내의 부정이나 사치 때문이 아니라 아내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남편 제임스는 아내의 땅이 돼지 도축업을 하는 패링턴 사에 팔리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아내 알렛은 이 땅을 팔아서 도시로 나가고 싶어한다. 각자 자신의 재산을 가진 채 이혼해도 되겠지만 제임스는 자신의 땅 옆에 패링턴 사에 들어오는 것이 싫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생긴다.

 

첫 번째 비극은 그가 예상한 대로 아내가 쉽게 죽지 않는 것이다. 돼지 목을 따듯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는다. 몇 차례 시도를 한 끝에 겨우 죽인다. 아내의 시체를 아들과 함께 사용하지 않는 우물 속에 넣는다. 어린 아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아내가 가출한 것처럼 꾸민다. 아내를 찾아 패링턴 사 직원과 보안관이 온다. 아내는 우물 속에 묻혀 있다. 집에서 키우는 소 한 마리가 우물 속에 빠지면서 그의 계획은 더 좋아진다. 겉으로 볼 때 이야기다. 우물 속에 사는 쥐들은 아내를 파먹고 축사에까지 들어온다. 그에게 이 쥐들은 아내의 부하다. 그리고 두 번째 비극이 생긴다. 바로 아들의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한 것이다. 겨우 열다섯 살인데. 부모들이 이들의 결혼을 반대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진다.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개인의 농장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 한 가정의 파멸과 죄의식에 의한 환상이 교차한다. 대공황을 앞둔 시대를 작가가 선택한 것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농장을 헐값에 팔려고 했을 때 거절했던 이웃도 결국 무너지고 만다. 대공황은 사람을 가려서 다가오지 않는다. 살기 위해 농장주도 공장으로 가야한다. 이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제임스는 유서처럼 남겨 놓았다. 그가 죽인 아내 알렛의 환상과 그녀의 부하들인 쥐들 때문이다. 킹은 언제나처럼 이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아내를 죽이고, 묻는 과정을 읽으면서 서늘한 공포와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의 신문 기사는 제임스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빅 드라이버>는 <1922>를 읽고 난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나를 놀라게 했다. 코지 미스터리물 작가 테스를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처절한 복수극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파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작가다. 이 시리즈가 상당히 많이 팔렸고, 적지 않은 팬들이 있다. 어느 날 강연회에 초청받는다. 다른 유명 작가 자넷 에바노비치의 대타다.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와 강연료를 받고 브라운 베거스 북 클럽에 온다. 그냥 평범한 강연회다. 잘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이 클럽의 회장인 라모나 노빌이 지름길을 알려준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테스는 그 길로 돌아간다. 불행은 바로 이때 생긴다. 그녀는 지름길로 가다가 폐자재의 못에 타이어가 찔린다. 휴대폰도 되지 않아 보험사도 부를 수 없다. 이때 거대한 한 남자가 다가온다. 순진한 첫 마디가 끝난 후 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그녀를 때리고 강간하고 때리고 강간한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버린다. 테스가 죽은 척한 것뿐이다.

 

보통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강간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녀는 탈출하는 과정에서 혹시 그가 좇아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고, 자신이 언론의 먹이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킹은 이 과정을 탁월한 테스의 심리 묘사와 행동을 통해 아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킹의 최고 매력은 인물의 심리 묘사와 기묘한 상황으로 독자를 자연스럽게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당연히 스릴과 긴장감은 같이 따라다닌다. 여기에 미스터리 작가의 복수극을 집어넣어 반격을 가한다. 우연으로 생각했던 불행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차분히 되짚으면서 단서를 쫓는다. 비극과 통쾌한 복수 뒤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는 현실의 씁쓸한 단면을 보게 만든다.

 

<공정한 거래>는 악마와 거래를 한 남자의 소원이 풀려나가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과 엮어서 보여준다. 한 가족의 처참한 몰락 뒤에 있는 숨겨진 거래가 예상한 반전을 뒤집는다. 가장 짧은 작품인데 그 속에 우리가 알고 있던 악마나 반전을 없앴다. 제목 자체가 역설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맞는 거래다. 이야기가 끝난 후 이 거래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비밀을 다룬다. 남편의 정체는 열한 명을 죽인 연쇄살인마다. 하지만 집에서 그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다. 이것을 발견한 아내 다아시가 느낀 공포와 혼란은 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성적 판단보다 항상 앞서는 것이 감정이다보니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남편이 결혼과 동시에 한 동안 살인을 멈추었다는 것과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에게 다시는 이런 살인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그대로 덮어둔 채 살아갈 수 없다. 마지막에 비디의 연쇄살인 사건을 쫓는 은퇴 형사를 등장시켜 감정을 위로한 것은 약간 혼란스럽다. 깔끔한 결론이라는 생각도 있지만 여운을 없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