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베트남 - 생생한 베트남 길거리 음식 문화 탐험기
그레이엄 홀리데이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동남아 여행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도 가본 곳은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 대부분도 태국이었다. 베트남은 왠지 쉽게 가지 않게 된다. 회사의 지사가 있는 곳이지만 내가 하는 일은 그곳에 갈 일이 없다. 그래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쌀국수 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이 그곳에서 먹은 식당을 말할 때 호기심이 폭발한다. 하나같이 모두 맛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쌀국수를 좋아하기에 더 그 식당에 가서 포를 먹고 싶다. 또 한 번은 호치민 근처의 해산물 식당에서 아주 저렴하게 게와 새우를 먹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 놀러오면 자신이 가이드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왠지 불편을 끼치는 것이 싫어 쉽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지 않는다. 언제가 가게 되면 꼭 먹고 말겠다는 의지만 남겨 놓고 있다.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베트남 음식의 설명과 사진이 곁들여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는 책을 받고 펼치자마자 사라졌다. 표지에 나오는 사진을 제외하면 단 한 장의 음식이나 식재료 사진이 없다. 400여쪽의 책이 글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진을 통해 그 이미지를 얻으면서 다음에 가면 그 음식을 한 번 먹어봐야지 했던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자가 글로 표현한 것을 내가 알고 있는 한도 안에서 그 음식의 모양과 맛을 상상해야 한다. 알고 있는 베트남 음식이라고는 쌀국수 집에서 먹은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몇 가지는 태국 음식에서 그 이미지를 빌려온 것도 있다. 책 내용과 상관없이 이 불친절한 편집이 조금 많이 아쉬웠다.

 

저자는 베트남을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동남아를 갈 때면 길거리 노점상들을 자주 본다. 작고 허름한 식당도 적지 않다. 가능하면 이런 곳에서 먹으려고 한다. 물론 유명한 식당이나 푸드 코트에서 먹는 경우도 많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비위생적이란 생각과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 인터넷 카페의 정보를 통해 주문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한국 여행객들이 자주 가는 곳이다. 아니면 외국인들이라도.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서 현지인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주문한다. 상대적으로 입맛이 까다로운 내가 아예 먹지 못할 정도의 음식이 나온 적은 없다. 이때의 경험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저자가 베트남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길거리 음식을 하나씩 먹고 즐기는 과정을 보면서 나의 짧은 경험이 떠올랐다.

 

베트남 출장을 갔다 온 직원 한 명이 현지 거래처 직원과 해장용으로 닭피를 마셨던 이야기를 해줄 때 경악했다. 그런데 저자는 처음으로 현지인과 함께 간 곳이 바로 돼지 자궁을 요리하는 곳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가 베트남에 오기 전 전북 익산에서 일 년 정도 머물렀다고 하지만 이 정도의 것은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도 예전에 태반을 먹거나 애저 등을 먹은 적이 있으나 그가 그것을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니까. 그가 이 책의 첫 이야기를 이것으로 시작한 것은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 경험을 넘어가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든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분짜다. 나는 이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다. 그럼 왜? 아내가 하노이로 놀러가서 가장 맛있게 먹은 유일한 음식이 분짜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쌀국수조차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 음식이 목차에 나오니 반가웠다. 사진과 맛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는데 역시 앞부분이다 보니 실망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이 음식을 먹게 되었는지,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주지만 식당 정보와 사진이 없다 보니 혹시 하노이로 가게 된다고 해도 먹어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기 전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한 정보를 얻어가서 먹고 올 테지만.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고 했을 때 한국도 한때는 그랬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노점과 포장마차가 우리의 허기를 채워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기업처럼 변해가는 과정에 있지만 많은 곳에서 새로운 음식과 유행하는 음식들이 길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베트남만큼은 아니다. 또 하나 감안해야 할 것은 저자가 이곳에 간 시기다. 1997년 여름이었는데 이때만 해도 베트남이 덜 발전했었다. 한때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던 오토바이의 물결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하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물론 이 책을 내면서 다시 간 것 같은데 아직도 많은 길거리 음식점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문명화 혹은 현대화의 물결 아래 점점 길거리 음식점은 사람들의 삶에서 밀려나고 있다. 저자가 살던 때도 경찰의 단속을 피하고 벌금을 내면서 자기 가족을 돌보던 음식점이었는데 말이다.

 

저자는 괜히 아는 척하기보다 아는 만큼만 글로 적었다. 자신이 그곳에 생활하면서 먹고, 인터뷰한 것을 적었는데 외국인이라는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허브에 대한 부분은 더 그랬다. 약간은 알고 있던 부분이지만 하노이와 사이공(호치민)의 음식 및 문화의 차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분명해졌다. 묵직하고 직선적인 하노이의 음식에 비해 다채롭고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호치민의 음식에 대한 비교와 설명은 나의 취향은 어디일까 하는 궁금점을 드러내었다. 호치민이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영향을 받다 설탕을 많이 쓴다고 했을 때 라오스에 가고 싶은 나의 의지를 살짝 흔들었다.

 

재미있는 인터뷰가 하나 있다. 저자가 길거리 식당의 아줌마를 인터뷰하는 것인데 엄마와 딸의 답이 다른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정통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딸은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바꾼다고 말한다. 맛있다고 말하는 다른 음식점 주인들이 모두 자신이 정통적인 방식으로 만든다고 말했기에 이 부분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육수를 직접 만들지 않고 치킨 스톡 같은 것으로 맛을 낸다고 했을 때 머릿속은 조미료가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육수나 국수를 만드는 방식을 보면 한국의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음식이 떠올랐다. 이럴 때면 식당과 음식과 주인들의 사진이 없는 것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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