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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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이었던 놈과 함께 1주기 기일에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튄다는 설정이 시선을 끌었다. 이 설정을 읽고 머릿속에서 시나리오 한두 개가 스쳐지나갔다. 소설과 비슷한 것조차 없었지만 이런 상상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연적이라고 하면 보통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남자가 먼저 떠오른다. 이 둘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연적은 그런 식이 아니다. 한 명이 먼저 사귀고, 다음 남자와 새롭게 사귄다. 연적보다는 오히려 이전 남자 친구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둘 다 그녀가 죽기 전에 차였으니 말이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출판사 편집자이자 죽기 전에 재연과 헤어진 고민중이다.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문자를 받는다. 죽은 그녀의 번호로 부고장이 온 것이다. 운전을 못하는 그는 힘겹게 빈소를 찾아간다. 그녀와 헤어진 이유 중 하나로 결정 장애를 꼽는데 이름처럼 그는 생각이 많고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리고 1주기 때 그녀의 납골당을 힘들게 찾아간다. 시외에 있고, 차가 없으면 찾아가기 힘든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재연의 또 다른 남자 친구 앤디를 만난다. 그녀를 추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온 것이다. 앤디의 차를 타고 오는데 앤디가 우발적인 제안을 한다. 그녀의 유골을 그렇게 좁은 납골당 속에 놓아둘 수 없다는 것이다. 민중도 동의한다. 함께 간단한 작전을 짜고 유골을 훔친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앤디의 본명은 병균이다. 성은 강 씨다. 그는 재연이 일했던 헬스클럽 사장이었다. 몸 좋고, 허세가 가득하다. 머리가 좋지 않지만 행동 하나는 재빠르다. 그런데 허술한 구석이 많다. 그와 함께 유골을 훔친 민중은 약한 체격에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비루한 식자다. 앤디의 등치를 보고 약간 겁을 먹지만 나름 머리를 써 위기를 넘어간다. 왠지 모르게 이 둘이 어느 순간 잘 어울리기 시작한다. 앤디가 첫날 재연의 유골함을 들고 도망가려고 할 때 약간의 갈등이 있지만. 그리고 이때 유골함이 깨어진다. 그녀의 유골함이 단백질 통으로 바뀐 것도 이때다. 무작정 훔친 유골을 그녀가 바라는 곳으로 데리고 가자고 서로 동의한다. 그렇게 처음 간 곳이 남해다.

 

그녀가 좋아했던 소요 해변은 개발로 변했다. 민중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둘은 술을 진탕 마시고, 앤디가 새로운 지역으로 제주를 말한다. 둘이 합의하고 여수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려고 한다. 여수는 앤디의 고향이다. 여기서 생긴 조그만 에피소드는 작은 재미를 준다. 허세 가득한 앤디는 중고 BMW를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 앤디의 멋진 몸과 붙임성 있는 말투는 여기저기에서 여자를 끌어당긴다. 재연 이전에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했던 민중에게는 부러운 일이다. 괜히 트집을 잡는다. 재연을 위한 여행이란 핑계를 댄다. 제주로 날아갔지만 그녀가 좋아했던 오름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앤디는 재연의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이 번호는 새로운 사건을 여는 열쇠가 된다.

 

한 여자의 추억을 둘러싼 두 남자의 여행이 그렇게 긴장감 넘치고 재밌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로 몰입하게 만든다. 남들이 볼 때는 홀쭉이와 뚱뚱이처럼 보일 정도로 극과 극의 외형과 성격을 가진 둘이다. 서로의 기억을 말하고, 비교하고, 자신들의 삶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그러다 재연이 쓴 소설이 왜 출간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앤디가 제기한다. 소설 출간을 거부한 것은 사실 그녀가 먼저다. 명확한 이유를 민중조차 몰랐다. 하지만 앤디가 보여준 비밀번호가 이 답을 찾게 만들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실은 추악한 문화계의 모습이다. 작가가 이미 경험한 것을 각색한 것이다. 인간의 비열함이 묻어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작가는 곳곳에 아주 현실적인 장면들을 넣어 놓았다. 운동권 출신 아버지가 학원장이 되면서 보수골통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유체이탈 화법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에서 우리의 현실의 살짝 비틀었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이면에 도사린 문화적 폭력 또한 현실의 한 모습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약하고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민중을 등장시켜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것을 그대로 깨트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앤디다. 말보다 행동이다. 소설 곳곳에 이런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설정과 전개일 수도 있지만 이런 장면들이 균형을 잡아주면서 살짝 웃게 만든다. 소설 속 몇 곳은 바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물론 소요 해변은 개발로 엉망이 되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꾼 한 명이 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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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 처음 만나는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
서희석.호세 안토니오 팔마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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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공저로 쓴 스페인 역사 이야기다. 스페인에 정착한 한국인과 스페인 역사학과를 졸업한 여행 가이드가 힘을 합쳐 썼기 때문이다. 모두 일곱 장으로 나누었는데 전설의 헤라클레스부터 대항해 시절까지의 스페인 역사를 다룬다.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역사와 전설과 야사를 적절하게 섞어 상대적으로 딱딱할 수 있는 역사를 부드럽게 풀어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고, 낯선 이름들이 나오면서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읽는 속도가 떨어졌다. 그렇지만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하면서 이베리아 반도 이야기에 조금씩 젖어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스페인에 관심이 생겼다. 아마도 가우디의 건축물을 본 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전에 스페인 영화를 볼 때 강한 끌림을 받은 영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들 때문에 봤다. 투우를 둘러싼 논쟁과 그것에 강하게 끌린 작가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단편적인 지식을 쌓았지만 거기에서 항상 멈추었다. 여행에 관심을 두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려고 계획을 짤 때도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중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스페인이라고는 가우디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등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그 궁금점을 이 책이 채워주길 약간은 바랐는데 나의 무지와 엮이면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머리말에서 내가 알고 있던 스페인의 이미지를 산산조각내었다. 그것은 스페인이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그들의 조상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 부분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스페인의 이미지는 보통 이슬람이 기독교 세력에게 쫓겨난 이후와 그 유명한 무적함대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전과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까지 자신들의 역사에 끌고 들어왔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 다음이 바로 로마 시대였는데 왜 이 반도가 중요했는지 알려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의 은광과 대항해 시대 아메리카 대륙의 금광이 묘하게 연결되면서 역사의 한 장면들이 겹쳐보였다.

 

서고트 왕국을 지나 이슬람 시대로 넘어오면서 몇몇 낯익은 이름이 나오고, 몇 장의 지도를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명과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려웠다. 처음 접하는 스페인의 역사이다 보니 너무 낯설었다. 단편적인 지식으로 그 틈을 메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비슷한 왕 이름과 몇 세라는 단어가 붙게 되면서 더 어려워졌다. 외국 소설이나 역사를 읽을 때 늘 고전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이나 중국 역사를 읽을 때도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익숙해지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고 난 후의 역사도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단순한 분리주의 요구와 너무 달랐다. 스페인의 통일 이전에 왜 세비아가 중요한 도시였는지 알려주고, 이 작은 반도 안에서 어떤 왕국들이 대결하면서 권력을 잡았는지 보여줄 때 동북아시아의 그것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구축되지 않음으로서 일어난 수많은 반란과 전쟁은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리고 이 지역을 두고 주변 국가들이 보여준 대결 구도는 짧게 나오지만 그 시절 유럽사를 공부할 때 아주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권력을 잡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몰아내고, 형이나 동생을 죽이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역사를 보면서 권력의 비정함을 다시 한 번 더 느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콜럼버스가 식민지에서 어떤 악행을 펼쳤는지 다시 보여줄 때 우리가 배운 역사란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화가 역사를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 책에서도 수많은 정사와 함께 야사와 전설이 같이 다루어지는데 정확한 사료가 없다보니 해석에 따라, 혹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바뀐다. 전설과 함께 다루어진 역사 이야기이다 보니 딱딱함은 덜하지만 약간 산만한 부분이 곳곳에서 보인다. 스페인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입문용으로 차분하게 읽는다면 나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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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유나 린나 스릴러
라르스 케플레르 지음, 이정민 옮김 / 오후세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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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샌드맨>하면 닐 게이먼의 그래픽노블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유나 린나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이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악당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유레크 발테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 연쇄살인범의 무서움을 작가는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한니발 렉터와 견주어도 조금의 손색이 없는 악당이다. 어쩌면 더 잔인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살인을 하는 방식이 더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유나 린나라는 이름을 보고 여자라고 착각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남자 형사다. 13년 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연쇄살인범 유레크 발테르를 잡은 것도 그다. 하지만 유레크의 죄를 완전히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가 묻혀있던 사람을 끄집어내는 것을 발견하고, 실종자들과 그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성공했지만 딱 거기서 멈추었다. 법원은 현장범이었던 관계로 그를 구속하고 특별 보호 관찰하는 격리구역에 가둔다. 그는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불린다. 물론 그에 대해 아는 사람에 한해서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 그를 잡은 유나임을 감안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는 바로 유나가 아내와 아이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유레크의 무서움은 유나에게 직접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실종이다. 보통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협박하면 약간의 두려움을 가질지 모르지만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유레크는 다르다. 그와 함께 유레크를 잡은 사무엘의 아내와 자식들이 실종되고, 이들을 찾던 그가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항상 자기 가족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앞 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공포가 그대로 전달된다. 이런 공포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사연이 하나 더 나오는데 정말 무시무시하다.

 

유레크가 격리수용된 구역에 한 명의 정신과 의사가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안데르스 뢴이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유레크의 방에서 그가 만든 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가 일반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연쇄살인범이란 것을 알려준다. 근육주사를 놓아 무력한 상태의 유레크지만 안데르스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 그의 상사는 옷을 뒤져 편지를 찾으라고 하지만 유레크가 주장하는 의견에 동조한 그는 편지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 편지를 붙인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편지 한 통이 지금까지 잊고 있던, 1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한 아이를 현실 세계로 불러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하나는 유나, 다른 한 명은 여형사 사가, 마지막은 레이다르다. 13년만에 나타난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레이다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아이들의 실종과 이혼과 아내의 자살로 살아있는 시체처럼 사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처럼 그가 자살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 있다.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깨닫고 딸이 돌아오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초반과 마지막에 상당한 비중을 지니고 등장하는데 이 사건의 원인을 알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가는 일반적인 형사가 아니다. 비밀경찰이다. 미카엘이 살아서 돌아온 후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유레크로부터 동생 펠리시아를 구해낼 방법을 찾지 못하자 차선책으로 선택한 대안이다. 격리구역에 넣어서 유레크로부터 정보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사가는 아주 아름답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 격리구역에서 유레크와 만나면서 그녀의 내면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유레크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잘 아는 유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가가 격리구역 안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은 이 소설의 또 다른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유나. 그는 유레크를 잡았지만 그의 그 어떤 정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카엘의 귀환과 그에게서 얻게 된 정보와 사라가 잠입한 후 설치한 도청으로 13년만에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의 두려움과 경계심과 끈질긴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사건을 하나씩 밝은 곳으로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 순간도 유레크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미 파트너 사무엘의 죽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느끼는 공포는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잠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형사다.

 

읽는 내내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유레크는 사람들을 납치한 후 바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미카엘이 동생과 함께 캡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13년 동안 살았던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그리고 자식들의 실종과 죽음이 과연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의 강한 충격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레이다르처럼 거의 시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잊으려고 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의문이 이어지는 와중에 드러나는 진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소설로 가장 특이하면서도 잔혹한 살인마를 한 명 만났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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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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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이후 두 번째로 읽은 나카마치 신의 소설이다. 이 소설의 원작은 <산책하는 死者>였는데 재간하는 과정에서 <천계살의>로 바뀌었다. 이 살의 시리즈는 아직 세 편 정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원래는 살의 시리즈가 아니었는데 재간되는 과정에서 시리즈로 묶인 모양이다. 비채에서 이 시리즈를 내면서 이 소설을 응용편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잘 모르겠다. 다 읽고 난 후 뜬금없이 등장한 인물이 명탐정이 되는 장면들을 읽고 약간은 어색했다. 앞에 깔아둔 설정들을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한 존재라는 부분에서는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 깔끔한 마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잘 짜인 소설이다. 서술 트릭을 이런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을 알고 있지만 이 작품보다 뒤에 나왔다. 그 부분을 생각하면 대단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작가가 의도한 방식으로 나의 추리가 이루어졌다. 한 마디로 작가에게 끌려다닌 것이다. 물론 하나의 가능성을 계속 생각했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길을 차분하게 따라간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고 상당히 신경을 쓴 채로 읽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다른 가능성을 예상한 것은 늘 말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의 경험 덕분이다. 추리 실력 때문이 아니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건, 추궁, 수사, 진상 등으로. 사건은 이 소설 속 작가인 야규 데루히코가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한 추리 소설을 <추리세계>란 잡지에 문제 편으로 내놓은 것으로 가미나가 아사에 살인 사건을 다룬 부분이다. 아사에 살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준다. 이 장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범인을 작가는 다음 부분에서 뒤집는다. 이런 작가의 치밀하게 연출된 지시에 따라 나의 추리는 심하게 흔들린다. 예상한 인물이 범인이 아니라고 할 때 다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너무 빤한 부분이라 실망할 수도 있었는데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추궁은 <추리세계>의 미녀 편집자 하나즈미 아스코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아스코는 야규의 해결 편을 얻고자 하지만 그는 자살한 것으로 밝혀진다. 놀라운 것은 야규가 제안한 추리소설 집필 방식이다. 문제 편을 읽고 자신과 다른 작가가 해결 편을 쓴다는 것이다. 해결 편 작가로 야규가 추천한 인물은 오노미치 유키코다. 탤런트 겸 소설가다. 오노미치가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지만 과연 수락할지는 의문이다. 아스코는 그녀를 찾아간다. 작가를 밝히기 전에는 좋아했지만 문제편 작가가 야규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거절한다. 아스코는 다른 작가를 찾아갔다가 문제 편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실명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가 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재미난 설정 중 하나가 추궁에서 아스코가 조사하는 것과 별개로 수사란 장이 있다는 것이다. 아스코는 문제 편을 기초 삼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만나고, 현장을 둘러본다. <추리세계> 잡지 편집자답게 이런 조사 내용을 가지고 추리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용의자가 된 사람이 죽는다. 범인은 다른 사람이 분명하다. 조사가 더 깊게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나오고, 이 모든 살인 사건이 누군가를 범인이라고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추리가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죽음이 일어난다. 범인을 누굴까?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이야기는 수사 장으로 넘어간다.

 

수사 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들이 또 바뀐다. 이제는 형사들이다. 진짜 프로들이 본격적으로 사건을 수사한다. 그들의 수사는 아스코 등이 추리한 것을 다시 확인하고 사실임을 밝혀낸다. 더 많은 전문 인력과 수사가 덧붙여져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여기서 나의 추리는 또 한 번 농락당한다.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면서 남는 것이 몇 없다. 설마라고 생각한 것이 진짜로 변한다. 읽으면서 어색하고 돌출되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하나씩 단서로 바뀐다. 숫자, 사람, 날짜, 살인의도 등이 힘을 조용히 발휘한다. 앞에서 말한 아쉬운 부분은 뒤로 하고. 결코 낯설지 않은 서술 트릭의 매력이 읽고 난 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며 나의 추리가 어디에서 잘못되었을까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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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질문 - What is Your Wish?
오나리 유코 글.그림, 김미대 옮김 / 북극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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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의인화한 남녀를 등장시켜 ‘만약에’란 단어를 넣어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것을 다룬 그림책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질문들은 흔히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다. 이것을 작가는 간결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문장으로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닭살이 돋을 질문도 있지만 극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은 담담한 그림체와 답으로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데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질문은 작은 벌레로 변해 코 위에 앉았을 때다. 답변은 기발하다. “한 번 날아봐”와 더불어 여행비용이 반값이라고 좋아한다. 그리고 살며시 입 맞추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말한다. 작은 벌레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림은 간략한 선과 가벼운 색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처음 읽을 때는 따뜻하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쓰기 위해 뒤적이다 보니 섬세하게 느낌을 표현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위에 말한 작은 벌레 이야기에서 붉게 물든 얼굴을 보여준다. 남자가 침대에서 책을 열심히 읽을 때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사랑하지”라고 답했을 때 그 표정은 정말 사실적이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지는데 역시 닭살이 돋는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한 질문들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던질 수 있는 질문들로 읽고 보다보면 입가에 미소가 살짝 떠오른다. 책을 받아서 단숨에 읽었는데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내다. 그녀가 읽으면서 보일 반응 한두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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