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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물어주마 - 왜가 사라진 오늘, 왜를 캐묻다
정봉주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열 편을 추려 내었다. 이 팟캐스트도 내가 듣지 않은 것이다. 이전보다 시간이 더 부족해지다 보니 팟캐스트도 책도 편식이 심해지고 있다. 처음 팟캐스트에 이 방송이 올라왔을 때 시간내서 한 번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이 일상 속에서 어느 듯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사실 정봉주란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나는 꼼수다> 덕분이다. 그곳에서 정봉주가 보여준 깔데기는 무거운 이야기에 감초처럼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이 방송이 나왔을 때 냉큼 내려받아 듣는 것을 방해했다. 나의 마음속에서 너무 가볍지 않나 하는 선입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꼼수>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이제 각자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방송을 듣고 있지 않다. 다른 방송 듣기도 벅차고, 시간도 부족하고, 그것이라도 제때 듣자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송들이 요즘 책으로 한 권씩 나오고 있다. 현재 시세와 어울리는 몇 가지를 뽑아서 새롭게 정리했는데 읽을 때 나의 기억과 지식과 엇갈리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란다. 다른 방송과 시각과 해설이 다른 부분이 나올 때 왜? 라는 의문 부호를 달게 된다. 아마 이 의문 부호가 나에게 이 책이 유익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경제위기까지 이어진다. 내용을 간단하게 보면 전세값, 가계부채, 세월호, 쌍용자동차. 통합진보당 해산, 김영란법, 국정원 해킹사건, 한일협상 등이다. 비교적 출간시점이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의 이슈를 끌고 와서 편집한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저질 기억력이 그렇게 많은 것을 놓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서 아픔과 분노와 허탈함과 답답함과 무서움 등이 몰려왔다. 그것이 정치와 역사 부분으로 넘어갈 때 더 심해졌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지식은 갇혀 있던 나의 인식을 넓혀주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한일협상은 맞물려 있다. 속된 말로 자기 아버지를 떠받들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과 연결되어 있다.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맺은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국민을 위하는 협상이 아니다. 세월호 1주기 때 남미에 간 것이 단순히 세월호를 비껴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의 외교 협상이 엮여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의 아픔을 위로하기보다는 귀찮은 것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으로의 진군을 막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할 때 분노를 넘어 두려움마저 들었다.
전세값과 가계부채도 역시 이어져 있다. 물론 가계부채는 생계형 대출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불량채권 추심이 어떤 단계를 거쳐 최종 단계로 이어지고, 불량채권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줄 때 한 번 더 놀란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부동산을 떠받들기 위해 펼친 정책의 결과가 어떤 폭탄으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너무나도 아프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이 얼마나 1%를 위하는지 알 수 있고, 이들을 위해 99%가 피땀을 흘려 떠받들어야 하는지 생각할 때 암담해지고 우울해진다.
세월호는 지금 생각만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차가운 바다와 아이들의 농담이 겹쳐지면서 순식간에 눈시울이 불어진다. 그런데 아직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진실을 밝히는 것을 방해하려고만 한다. 쓰레기 언론들은 늘 그렇듯이 물타기로 유가족을 매도한다. 의혹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없고, 눈을 가리기 위한 대책만 조용히 흘러나온다. 인양조차도 유가족의 의견은 무시되고 있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복마전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읽으면서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가슴이 아파 이 기록에 대한 책 읽기를 그만두었는데 다시 용기를 내어 정면에서 마주 봐야겠다.
쌍용자동차와 통합진보당 해산은 우리의 법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종언을 고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헌법에 위배되는지 판별하라는 조직이 자신을 뽑아준 사람에게 충성을 하는 조직으로 변했다. 증거는 쓰레기를 채택하고, 헌법 정신은 훼손되었다. 이것은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법리나 증거는 권력의 힘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늘 놀라는 것은 그들은 이런 판단과 판결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가끔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올 때도 있지만 거대한 흐름 속에서 법원은 그 원칙을 너무나도 쉽게 무너트리고 있다.
국정원 해킹사건은 한국의 낮은 정치 수준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이전 정권에서 보여준 반민주적인 행동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의문으로 가득한 사건을 색다르게 해석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충돌이 일어났다. 하지만 정봉주 등이 주장하는 핵심과 논점을 흐려놓았다는 부분에는 동의한다. 누더기법으로 바뀐 김영란법의 역사를 새롭게 더듬어보았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이 법이 제대로 작용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원래 취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길들이는데 사용될 우려가 생긴다. 그리스 경제위기에 대해 새로운 정보는 현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상황에 빠지면 그리스처럼 극좌파가 정권을 잡을 수 있을까? 아마 힘들지 않을까? 얼마 전 유시민의 JTBC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 35%가 너무나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