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
나카가와 미도리 & 무라마츠 에리코 지음, 박규리 옮김 / 로크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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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는 내내 추억이 소록소록 자랐다. 내가 아이였던 때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여백 많은 그림 속의 행동과 대사는 그 추억을 되살려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어쩌면 이 추억들이 나만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와 친구의 아이들과 조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추억들이 이 한 편의 간결한 만화 에세이 속에서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감할 문장들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남자인 내가 이 정도라면 여자들은 어떨까? 마지막에 아빠도 살짝 넣어주었는데 이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나의 아버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지만.

 

책을 펼치면 언제나 역자를 한 번 힐끔 본다. 박규리? 낯익다. 여자 아이돌그룹 ‘카라’의 멤버였던 그녀다. 잠깐 동안 예전에 있었던 번역자 논란이 잠시 떠올랐다. 동시에 ‘카라’의 일본 활동 등을 생각하고 책을 몇 쪽 넘기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몇몇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만 일본어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번역에 대한 나의 오만한 생각이 덧붙여진 것이다.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니 현재까지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더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이 생각은 바뀔 것이다.

 

가슴에 와 닿은 문장과 장면들이 많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해도 엄마가 아니면 안 되는 일상의 걸들.”, “아마 엄마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육아’ 같은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같은 문장은 정말 공감하게 만든다. 내가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강요된 모성에 휘둘려 이상적인 육아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나도 포함해서)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매일매일의 노력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란 글에서 일상이란 것의 무서움과 힘겨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재밌는 장면도 자주 보인다. 힐끔 보다가 놀라 본 장면 중 하나는 엄마가 화장실에 앉아 있고 밖에는 다른 사람들이 대기 중인데 아이가 “엄마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당혹감이 한 컷 속에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아빠가 아이와 놀면서 아이가 삽이 없다고, 벌레 책이 없다고 할 때 아내에게 “어디 있어?”라고 물을 때 ‘나도 그랬지’와 우리의 아버지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물건을 정리하지 않으니 제대로 찾지도 못한다. 늘 놓아두는 곳에 두어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아빠들이 떠올랐다.

 

‘엄마와 나’과 원래 제목이고 ‘그리고 아빠’ 보너스다. 아빠인 나에게는 엄마와 나만 나와 살짝 불만이었는데 이 보너스로 불만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에도 영상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리고 계속 기억하고 싶은 엄마와 나의 많은 순간.”이란 문장을 읽으면서 옛 기억들 몇 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기억들은 추억이 되었고, 아련한 감정을 불러왔다. 잠시나마 추억에 빠져 감정의 늪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내 아이에게도 아주 많은,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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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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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카린 지에벨의 책은 처음이다. 워낙 이곳저곳에서 이 작가의 책과 서평을 보았기에 한두 권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산 책 중에서도 당연히 한두 권 정도는 있었다. 이 작가의 소설인줄 알고 있던 책의 작가를 찾아보니 다른 작가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나의 기억은 점점 퇴색해지고 부정확해지고 있다. 검색을 좀 더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이런 현상은 점점 많아질 것 같다. 왜 이런 글로 시작하냐고? 그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설정과 전개 때문이다. 단순히 로드무비 때문만은 아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이 먼저 유혹했지만 여기에 더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다. 그녀의 평소 작품과 달리 이번에는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책소개다. 사실 이 부분은 거의 책 후반부에 잠시 다루어진다. 로드무비 형식을 따라 진행되다 보니 다양한 프랑스 지역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문제라는 것이 하나의 작은 소재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또 이것이 사건의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주요 장치도 아니다. 현실의 한 면을 있는 그대로 아주 짧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기대와 달라 조금 아쉽다.

 

잘 나가는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 프랑수아 다뱅은 어느 날 뇌종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술도 완치도 불가능하다. 방사능 치료를 하면 조금 더 사는 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봐야 겨우 두세 달 정도다. 이 충격적인 사실이 그로 하여금 일탈하게 만든다. 차를 몰고 지방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한 남자를 태운다. 폴이다. 폴은 리옹으로 가려고 한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던 프랑수아는 그와 같이 간다. 자신의 죽음만을 의식하던 그이기에 폴의 행동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폴이 마음만 먹으면 프랑수아의 돈과 차를 쉽게 훔쳐서 달아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폴을 단순한 도둑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한 프랑수아다. 그런데 뇌종양이라니. 아내에게 연락도 하지 않는다. 폴과의 동행도 아주 우발적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리옹에서 평범한 로드무비가 액션으로 변한다. 폴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작가는 이 폴의 정체를 단숨에 밝히지 않는다. 도망치는 와중에 하나씩 그 정체를 흘린다. 왜 쫓기는지도. 그렇게 드러나는 정체는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놀랍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의 직업 때문이다. 그렇다고 폴의 정체를 두고 깊이 있는 고뇌나 갈등이 크게 대두되지는 않는다.

 

로드무비가 액션으로 본격적으로 바뀌는 것은 프랑수아가 자신의 위치를 아내에게 말한 후부터다. 이 사실을 폴의 적이 알게 되고, 그들이 머무는 집을 그들이 찾아온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희생자가 생긴다. 평범한 변호사인 프랑수아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갈등한다. 순간적으로 떠난다. 폴과의 동행을 통해 잊고 있던 삶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즐기는 그이기에 이 잠깐 동안의 이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곧 죽을 몸이란 사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삶의 의지를 남용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끔 곧 죽을 텐데 하면서 너무 쉽게 변하는 사람을 보면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섬세한 심리 묘사는 힘을 느끼게 만든다.

 

로드무비에 액션을 더하고, 나이 차이가 큰 두 남자의 강한 우정 혹은 부자의 정을 곁들였다. 낯익은 설정과 전개는 후반부로 가면서 속도감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폴의 과거와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액션과 버무려진다. 잔혹한 살인은 거침없이 진행된다. 첫 시작과 너무 달라진 마무리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바로 사회문제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자신들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버린 사건 말이다. 이 문제점에 대한 작가의 결론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암시는 폴의 새로운 등장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삶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인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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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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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이란 작가를 처음 인식한 작품은 <국가의 사생활>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때 쓴 리뷰를 읽으니 통일한국의 모습보다 장르소설에 대한 불만이 눈에 들어온다. 최소한 통일한국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은 작품은 <밤의 첼로>였다. 역시 나의 평가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부분보다 다른 곳에 눈길이 더 가면서 생긴 차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다. 늘 읽은 작품도, 작가도 잊어먹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역시 신경숙의 표절 시비다. 이때 두 문장을 보고 하늘 아래 새로운 문장이 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의도적인 것이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한두 작품이 아니라면?

 

이 책 아주 두툼하다. 800쪽이 넘는다. 얇은 종이를 사용했다면 부피가 덜할 텐데 비채에서 늘 사용하는 용지다. 표지를 보면 왠 촌스러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이설집이라니. 그는 이설(異說)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나의 산문들이 그저 그럴듯한 산문이 아니라 그 누구의 무엇과도 비슷하기를 거부하는 이설(異說)이기를 바랐”다고. 그리고 “내가 작가로서 치러낸 내 청춘의 모든 백병전들에 대한 수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어떤 책들보다도 이 책을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긴 세월을 담고 있고, 그 글들 속에는 그의 삶과 철학과 문학관과 절망과 비아냥대는 일과 독설과 냉혹한 현실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책은 일곱 부로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5부 ‘토토는 생각한다’와 6부 시‘인 함성호 씨’가 없었다면 읽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7부의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는 5부와 6부를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의 연장선 혹은 단서들이 나와 깜짝 놀라며 속도가 더뎌졌다. 처음에는 SNS 등에 올린 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글과 행동이 사뭇 다른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대표적인 것이 신경숙의 표절 시비를 두고 보여준 그의 인터뷰다. 날선 독설과 달리 그 사건이 불러온 파급효과가 그를 신중하게 만든 것 같다. 사건의 확대나 비약을 자제하려는 모습에서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4부 ‘참호에서의 책읽기’는 서평을 다룬다. 책은 그에게 동지이자 참호다. 많지 않은 서평이라 아쉽다. 읽었던 책에서는 다른 시각과 해설이라 재미있었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은 관심을 고조시켰다. 몇 권 더 사거나 다시 읽어야 할 책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의 <불구가 된 미국>에서 그가 말하는 몇 가지는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를 두고 다른 쪽에서 말한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 구분은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4년 동안의 미국이 과연 지난 8년 동안의 오바마 미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잘 지켜봐야 한다.

 

3부 ‘전장에서’는 눈길을 끄는 몇 편의 글이 있다. 일단 그의 작품을 둘러싼 인터뷰가 있고, 산문가 김수영에 대한 글이 있다. 인터뷰는 솔직히 말해 평범했다. 다른 작가들보다 조금 날이 선 듯한 표현이 보이지만. 김수영 전집 2권에 대한 그의 집착(?) 혹은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과연 나는 이런 적이 있었나, 하고 물어볼 정도다. 그의 문장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 작품을 읽고 문장의 아름다움이란 것을 처음 깨달았다. 늘 다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국가의 사생활> 이탈리아판 서문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모습이라 놀랐다. 신경숙의 표절을 둘러싼 이야기도 여기에 나온다.

 

2부 ‘광장에서’의 날선 글들은 자극적이다. 그는 묻는다. 보수, 진보, 중도, 국가, 민주주의, 지식인, 김구와 이승만, 20세기, 이념, 통일 대한민국, 인간, 신문맹인 등. 이 글들을 읽다 보면 그가 정치적으로 좌와 우 양쪽을 다 비판하는 양비론자처럼 보이지만 전체를 차분하게 읽다 보면 자신의 주장처럼 중도를 걷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솔직함은 진영의 논리를 초월한다. 통섭과 융합에 대한 글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했던 그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작가도 말했듯이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유행을 쫓아 끄적였던 그 글들 말이다.

 

1부 ‘보리수 아래에서’는 1996년 10월에 쓴 스무 살 청춘에 대한 글로 시작한다. 이 긴 글의 시작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부에서는 7부의 글들과 이어지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오지만 1부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억이 희미해서 그런지, 아니면 시간적으로 더 앞서 있어서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어려운 시간을 헤쳐나가는 과정 속의 모습은 나의 시간과 어느 부분 겹쳐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과도한 감정이입 혹은 끼워 맞추기 일수도 있다. 그리고 함성호의 발문을 읽으면서 시인이자 건축가인 그의 내공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응준과 함성호의 시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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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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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음반을 사지 않고 있다. 음원을 구해 듣거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집을 둘러봐도 CD플레이가 음악을 듣기 위한 곳에 놓여 있지 않다. 예전에 산 수많은 CD는 어딘가에 처박혀 있고, 카세트테이프는 꽤 많이 버렸다. 실제 어디에 놓아두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에 앨범을 몇 장 넣어두었지만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이 조금씩 내 곁을 떠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음악을 조금씩 멀리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차에서 MP3로 음악을 듣고는 했는데 말이다.

 

삶은 변한다. 취향도 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추억을 떠올려주는 앨범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푸디토리움이나 푸딩이라는 밴드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인디밴드 이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클래식이나 재즈의 경우는 이제는 고전이 된 경우를 빼면 거의 아는 이름이 없다. 한동안 가요만 줄기장창 들어 그래미상을 수상한 가수의 노래도 몰랐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어떤 가수의 노래를 요즘 즐겨듣는다고 하면 그때서야 찾아서 듣는 정도였다. 지금도 그래미에는 별관심이 없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지나가다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외국 가요를 듣고 좋은데 하면 이미 그 음악은 세계적으로 유행한 뒤였다.

 

저자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음반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서 말했듯이 모르는 음악가와 음반이 대부분이다. 영화 OST의 경우는 영화를 봤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워낙 유명한 OST의 경우 사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만 영화 음악을 감독한 저자처럼 크게 몰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처럼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한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느낀 감성과 이해의 폭 등이 부러울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곡은 유튜브를 찾아서 들었다. 그의 말에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덕분에 폰 속에 있던 음반 하나도 같이 들었다. 오랜만에 음반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주 가끔 듣는 음악은 한정적이다. 학창시절 주말에 FM라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을 듣고 비몽사몽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시절은 이제 사라졌다. 가끔 이 시기를 아련하게 그리워한다. 저자가 과거의 기억을 불러와 추억하는 글을 보면 음악은 기억과도 맞물려 있다. 재즈를 알고 싶어 몇 장의 앨범을 사서 그냥 틀어놓고 들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도대체 몰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모른다. 그때의 습관인지 이 책에 나오는 앨범 몇몇은 시간내서 듣고 싶다. 그의 설명이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플레이리스트의 숫자가 늘어났다.

 

다양한 앨범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나처럼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나 음악을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다. 실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속에 녹여 내었기에 참고할 부분도 상당히 많다. 저자 자신이 영화 음악 감독을 했다는 사실은 무심코 듣던 영화 음악을 다른 방향에서 돌아보게 만든다. 악기와 연주에 대한 설명은 쉽게 가슴에 와 닿지 않지만 그가 느낀 놀라움과 감정들은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남미의 음악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와 설명했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서 브라질 음악에 대한 설명을 조금 들은 적 있지만 이처럼 활자로 된 음악 이야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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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고향 -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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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났다. 저자의 들어가는 글을 읽고 장소란 곳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공간이 장소로 변하는 순간을 “‘나’가 그곳에 있어 경험될 때”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공간과 장소를 구분했다. 물론 공간과 장소라는 말뜻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경험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공간에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소는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열두 곳의 장소는 작가만의 장소가 아니다. 이미 저자도 그곳에서 작품과 관련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독자의 한 명인 나도 이 책을 통해 그 장소를 간접적으로 느끼고 생각했다.

 

일단 하나를 고백하자. 나는 한국 미술을 거의, 아니 전혀 모른다. 학교 교과서에 나온 화가나 언론이나 책을 통해 만난 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면 아주 낯설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이름을 대부분 몰랐다. 어쩌다 이름이나 작품 때문에 알게 된 몇 명을 제외한다고 해도 삼분의 일이 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책 속에 나오는 그림들이 낯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했다. 내가 흔히 본 그림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들과 그들이 사랑했던 장소에 빠져들었다.

 

불국사와 박대성을 다룬 첫 장에서부터 놀랐다. 불국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대성과 박대성을 약간 헛갈렸다. 최근에 이렇게 비슷한 이름을 만나면 맥을 못추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진짜 놀란 것은 박대성의 그림이다. 작품 <현율>을 얼핏 보았을 때는 왠 숯을 이렇게 꽂아두었나 했는데 아니었다. 부감법을 통해 장소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왜 경주에 머물게 되었는가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최근에 들은 몇 가지 이론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한 해 지진으로 큰 고생을 한 것이 떠올랐는데 빠른 시간 안에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겸재 정선의 인왕산은 그냥 지나가자. 판화가 오윤이 그린 지리산은 아주 친숙하다. 자주 본 그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주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리고 역사 속의 지리산과 이 산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보는 동안 나의 경험이 겹쳐지면서 다양한 느낌을 불러왔다. 허씨 삼대의 진도는 솔직히 말해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아직 나의 감식안이 평범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용선이 그린 영월의 모습은 너무 강렬하다. 단종애사의 이야기 탓일가? 강요배의 제주 그림에서 받은 스산함과 평화로움이 묘한 대조를 이루지만 <파도와 총석>은 감정이 마음껏 뛰어놀게 만든다.

 

황재형이 그린 태백은 광부로 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그림으로 표출되어 있다. <선탄부 권씨>를 보면서 삶의 슬픔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석탄으로 검게 된 얼굴에서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는 나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렸다. 이것은 <아버지의 자리>에서도 느낀 감정이다. <광부 예수>는 무심코 봤다가 설명을 읽고 깜짝 놀랐다. 김기찬이 찍은 중림동 골목의 풍경은 추억을 불러왔다. 단순히 추억만 불어온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골목에서나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기 힘든데 이 당시는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사진 속 아이들처럼 환하고 밝게 웃는 아이들을 보기도 쉽지 않다.

 

송창의 임진강 그림도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아 생긴 부분이다. 하지만 쌀부대에 고향을 그린 이종구의 그림은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놀란다. 처음에는 사진처럼 정밀해서 놀라고, 그 다음에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면서다. 물론 두 번째의 경우는 대부분 실패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한 화가 전혁림의 통영은 표지에 나온다. 추상화에서 민화 같은 그림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역으로 보여줬는데 개인적으로 최근 그림들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다. 강렬한 코발트블루가 예상하지 못한 인상과 여운을 전달한다. 소나무를 소재로 작업하는 두 작가 김경인과 이길래는 이름보다 소나무 그림을 그리는 사람만 알고 있었다. 어느날 신문으로 기사를 한 번 본 적이 있기에 기억한다.

 

저자는 이렇게 열두 곳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 중 일부를 책 속에 넣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조금씩 갈리지만 그들이 정착한 그 공간이 그들의 경험과 결합하여 의미 있는 장소로 변한 것을 들여다보았다. 단순한 이야기만 넣었다면 재미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깊은 이해와 여운은 없었을 것이다. 이 한 권으로 내가 한국 미술가들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아주 멋진 작품들이 있음을 알았다. 재작년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났다. 미술관에 조금 더 자주 다녀야겠다. 그리고 나의 장소는 어딘지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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