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 클래식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송아리 옮김 / F(에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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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다보면 과거의 어떤 일이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절은 불과 몇 년 전 폴더폰이 낯설고, 버튼식이 아닌 돌리는 전화기는 더 낯설다. 이처럼 이 책 속 비행사의 실종과 추락도 내겐 낯설다. 가끔 대형사고가 나야만 언론을 통해 알게 되는 비행기 사고가 불과 7~80년 전에는 훨씬 빈번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텍쥐페리가 정찰 비행을 갔다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나의 전설처럼 알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 당시 비행기 조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려준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동항법장치도, GPS도, 뛰어난 무전기술도 없던 시절이었다.

 

비행기의 연료는 한정적이다. 밤에 달빛조차 없다면 시야는 더 좁아진다. 먼 거리를 날아가야 하기에 조금만 방향이 잘못되어도 다른 곳으로 간다. 날씨에 영향을 받고, 추락한다면 제대로 된 위치 정보가 없어 수색이 어렵다. 추락한 조정사가 며칠을 걸어서 생존했을 때 동료들이 흘린 눈물은 가슴에 진하게 와 닿는다. 생텍쥐페리도 추락했다가 리비아의 베두인에게 구조되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그들에게 다가갔다. 생존의지를 불태우고, 환각과 싸우면서 베두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 이전에 사막에서 낙하산의 천과 기온 차를 이용해 아주 적은 양을 물을 얻었다. 깨끗한 물이 아니지만 생명을 며칠 더 연장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때 그가 본 신기루와 환각은 아주 사실적이다.

 

그의 비행이 늘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 속에 나오는 모험과 사건들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사하라 사막에서 반도들에게 억류되고, 노예로 잡힌 사람을 풀어주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특히 노예 모하메드를 풀어줄 때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과 그것을 보는 생텍쥐페리의 모습은 자유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다. 노예라는 익명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개인으로 변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이 글들은 그의 경험들이 녹아 있다. 너무 극적인 부분도 적지 않아 소설이라고 해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 책의 낯익은 원제인 <인간의 대지>였던 것을 바꾼 것도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읽을 때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사막을 날고, 그곳에 추락한 경험을 적었을 때 자연스레 떠오른 작품은 <어린 왕자>다. 몇 번 읽은 책이지만 아직 나에게 너무 낯선 이 책이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잠시 떠올랐다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생텍쥐페리의 다른 소설을 읽은 적이 없기에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몇 편은 어둠속을 헤매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나의 경험과 취향에 맞지 않는 대목들이 나오고, 읽을 당시 나의 몸 상태가 몸살 감기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비행기 조종사가 얼마나 위험한 직업이었는지, 그 이후 과학의 발달이 이 직업에 얼마나 많은 안정성을 주었는지 떠올리는 정도로 머문 순간도 꽤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비행기 추락과 생존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던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들을 구한 베두인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다. 그 베두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 부분에서 보통 생명의 은인을 평생 기억하겠다는 통속적인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게 ‘인간’이고, 그렇기에 모든 인간의 얼굴을 동시에 하고 나타난다. 당신은 단 한 번도 내 얼굴을 유심히 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형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당신을 알아보리라.” 이 문장을 읽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 그가 느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위대함을 깨달았다. 적도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는다.

 

마지막 <인간들>이란 장의 마지막 부분을 몇 번 읽으면서 바뀐 제목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와 어린 모차르트를 같이 놓아둔 부분을 보고 <어린 왕자>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 수 있다.” 란 문장을 보고 그가 얼마나 인간의 정신에 많은 기대를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지 알 수 있었다.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몸 상태가 좋아진다면 몇몇 부분이라도 다시 읽으면서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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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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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의 농담집이다. 이 책에 나오는 꽤 많은 수의 농담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다. 짤로 만들어 길게 편집한 글들은 가끔 ‘천재 아니야?’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자주 가는 게시판에 자주 올라와 여러 번 봤는데 이 농담들이 많은 사람들의 꽉 막힌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어준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 나도 이 농담들을 읽으면서 그의 발상 전환과 진한 코미디에 깜짝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렇게 책으로 다시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다른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반전 같은 매력으로 나를 웃게 하고,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SNS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짧다. 하지만 그 내용까지 짧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내용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자조적으로 비하하고, 역설적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똥이 안 나온다./ 난 이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변비>나 “많이 쓰는 것이 아니다. 적게 버는 것일 뿐이다.”<과소비>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이런 글은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의 20대의 감성과 주머니 사정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자조적이지만 이 ‘웃픈’ 현실의 코미디에 그들은 박수를 보낸다. 이전처럼 노력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신화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현실을 모르는 꼰대 취급을 받는다.

 

유병재의 농담은 단순히 자조적이고 자기비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문제에 강하고 큰 주먹을 한 방씩 날린다.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거나 사회문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그가 던진 말들은 사이다 발언처럼 다가온다. “딸 같아서 만졌다니,/ 딸 치려고 만졌겠지.”<딸 같아서 만졌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발언을 아주 직설적으로 풀었다. ‘니 딸이나 손녀를 데리고 오면 딸처럼 만져줄게’보다 훨씬 멋진 대응이다. 이런 글들은 순간적으로 빛나는 아이디어가 없으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양비론>은 우리 사회의 정치혐오를 불러오는 동시에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인데 자신의 경험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그 문제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감정들은 코미디라는 방식을 통해 새롭게 해석된다. 이때 우리는 각각의 경험치에 따라 그 반응이 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글들과 다른 독자가 좋아하는 글들은 분명 다를 것이다. 세대와 삶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형> 같은 글은 개인적으로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생각과 생각의 근원과 행동의 괴리를 아주 멋지게 표현한 것이다. <속 터지는 속담사전 #2>에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란 속담과 사랑을 연결해서 풀어낸 경험담은 바뀐 짝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쩌면 그 사랑도 성취감에 취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당연한 속담이나 격언들이 이렇게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언제나 신선하고 재밌다.

 

수많은 글들 속에 담긴 통찰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나도 가끔 한두 개 정도 멋진 말을 할 때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수없이 쏟아내지는 못한다. 이런 것은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글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하나는 ‘유병재도 그가 쓴 글처럼 살고 있을까?“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기반성을 의미한다. 나의 실수도 있을 수 있고, 실제 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글 하나를 더 인용하고 마무리하자. ”오해들 하는데, 내가 겁이 많아서 참는 거지 착해서 참는 게 아니야.“ <오해> 이 글은 나의 수없이 많은 행동에 대한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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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임무
할 클레멘트 지음, 안정희 옮김 / 아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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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SF소설의 재간이다. 이제는 전설이 된 시공사 그리폰북스 시리즈 중 한 권인데 나도 몇 권 가지고 있다. 이 시리즈 중 꽤 많은 수가 재간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다른 서평가들의 먼저 읽은 감상을 보면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실제 이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어려움을 느꼈다. 중력과 행성의 자전속도와 그곳에 사는 생물의 크기 등이 머릿속에 쉽게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자의 후기다. 물리학과 천문학 지식이 없다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물론 이런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 책을 읽는 데는 전혀 지장없다.

 

중력과 시간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에서는 중력과 시간의 연관성은 다루지 않는다. 이것까지 함께 다루었다면 더 어려운 소설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이 행성의 중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가장 적은 적도 부분이 3G이고, 가장 높은 곳은 700G이다. 1G는 지구의 중력을 의미하는데 실제 인간이 3G만 되어도 생활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700G라니... 이 행성에 사는 생물체는 크기가 크지 않다. 인간이 도움을 요청한 무역선의 선장 크기가 40cm이다. 애벌레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 약간 당황한 것은 인류와 다른 생명체가 주인공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스클린인 발리넌의 무역선은 이 놀라운 행성을 돌아다니며 무역한다. 이 발리넌이 지구의 찰스를 만나 거래한다. 지구가 중력 700G에서 잃어버린 관측 로켓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이 무역선은 수만 킬로미터를 오가는데 사실 겨우 40cm 생명체가 어떻게 이런 항해를 할 수 있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3G와 700G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다족류 생명체이고, 결코 높은 곳을 올라가지 않는 이 발리넌이 자신의 승무원을 데리고 어떻게 그 먼 항해를 할지 들여다보는 것은 아주 낯설지만 익숙한 경험이다. 낯선 것은 다른 생명체라 다른 움직임과 생각을 하는 것 때문이고, 익숙한 것은 이들의 모험이 기존 모험 소설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 별의 가장자리로 가는 항해는 결코 쉽지 않다. 거리도, 자연환경도 낯설고 처음이다. 바다로 불리는 곳의 액체는 물이 아니라 메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물질을 찾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후기에 나오니 참고하길. 자전과 중력 등으로 바다는 태풍이 불고, 가끔 심해에서 아주 큰 생명체가 바다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생명체의 두께는 일반 도구로 자를 수 없다. 반면에 메스클린인들의 도구는 비교적 쉽게 자른다. 이것은 인간이 입은 우주복을 그들이 쉽게 구멍 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중력 700G를 견딜 우주복이나 비행선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설정했다. 후기에서 말했듯이 이런 우주복이나 기술을 간단하게 설정할 수 있지만 그랬다면 이 소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발리넌의 엄청난 모험은 결코 혼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구인이 준 무전기를 통해 진로를 설정하고, 동료들과 함께 이 모험을 진행한다. 이 모험 속에서 발리넌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종족이나 비슷한 종족의 카누나 글라이드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자신의 크기의 반 높이에서 떨어져도 큰 충격을 받는 이 매스클린인들은 투척 무기나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찰스를 만나면서 하늘을 나는 것을 처음 보았고, 그들의 과학이 전하는 놀라운 모습에 경이감을 가진다. 물론 그 자신들이 이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그 단계까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른 SF소설에서 지구의 과학이 외계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앞부분의 중력이나 행성이나 메스클린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가면 한 편의 모험소설처럼 진행된다. 하드SF의 외피 속에 모험소설이 담긴 것이다. 하지만 이 모험 속 곳곳에 과학은 똬리를 털고 앉아 있다. 100미터 높이에서 돌이 떨어지는 시간이 0.5초라는 것과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는 등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왜 메스클린인들이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부력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발리넌 등과 그곳에서 관측 로켓을 찾아 중력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이것이 마지막에 생기는 갈등이지만 한 행성에서는 위대한 도약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계속 꼬리를 무는 생각들 중 하나는 무전기를 통해 교신하는데 중력은 어떤 방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를 생각하면 시간도 상당히 다르게 작용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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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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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앤디 위어의 신작이다. <마션>을 구해놓고 묵혀둔 것이 꽤 되었다. 뭐 이런 일이 빈번하다보니 점점 감각이 무뎌진다. 이 작품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참 재밌게 풀어낸다. 영화의 일부만 본 <마션>도 구성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화성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존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들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으로 담긴 이 책은 실제 지식이 없다고 해도 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아는 부분이 많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달에 인류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다룬다. 그곳의 이름이 아르테미스다. 몇 개의 돔으로 구성된 이 달 도시는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다. 8천 명 정도다. 하지만 매번 지구에서 달 관광을 오고, 아르테미스는 하나의 작은 도시로 자생한다. 지구 밖에서 인간이 생존하는데 가장 필요한 산소는 예상보다 훨씬 쉽게 구해진다. 알루미늄 생산 과정에 발생하는데 이 용량이 아르테미스 전체 필요량을 초과할 정도다. 각 돔의 벽은 두껍게 쌓여 있고, 시스템으로 도시는 관리된다. 하지만 높은 건설비용은 공간에 대한 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부자들만으로도 살 수 없다. 부자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재즈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재즈의 직업은 포터다. 물건을 옮겨주는 일을 한다. 단순히 물건만 옮기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밀수도 같이 한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이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와 재즈에 대한 설명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 트론 란비크를 만나고, 그의 놀라운 의뢰를 들으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무려 백만 슬러그짜리 의뢰다. 밀수 같은 작은 불법을 저지르지만 이런 놀라운 액수를 주는 불법은 처음이다. 그 일은 도시에 산소를 공급하는 산체스 알루미늄 공장의 수확기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지구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폐쇄도시 아르테미스라면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천재성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재즈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아버지의 직업은 용접공이다. 여섯 살에 달로 이민을 왔다. 그녀의 몸은 달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경제력은 아니다. 아버지와 싸워 밖으로 나온 후 혼자 힘들게 벌어 생활한다. EVA길드 시험에서 장비의 노후로 떨어진 후 그녀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그녀에게 트론의 제안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그녀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모든 준비를 갖춘 후 실행에 옮긴다. 언제나 그렇지만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체스의 수확기에게 발견되고, EVA마스터들에게 쫓긴다. 트론의 요청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성공했다. 트론을 찾아간 그녀가 그 집에서 발견한 것은 그와 그의 보디가드의 시체다. 이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다.

 

이 소설에서 누가 살인자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복잡하게 이야기를 꼬아서 독자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수많은 과학 지식들이 나와 그 상황을 설명하고, 이런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줄 뿐이다. 트론이 죽은 이유도 너무 빨리 나온다. 재즈의 목숨도 위험하다. 보통의 여자라면 달아나려고만 하겠지만 재즈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다. 누가 범인인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산체스 알루미늄이 어떤 곳인지도 알게 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반격이 시작된다.

 

비교적 쉬운 이야기 구조다. 이 구조 속에 살은 채워나가는 것은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다. 재즈와 데일, 스보보다, 루디 등의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직업들이다. 여기에 중간중간 재즈가 지구인 친구 캘빈과 나누는 이메일 통신이 있다. 처음에는 이 통신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는데 이 이메일이 재즈의 성장과 현재 삶에 비워진 부분을 채워준다. 여기에 작가의 유머 있는 문장과 탁월한 과학 지식을 부드럽게 풀어낸 장면들이 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도시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그 속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읽으면서 가장 먼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니 영화에 최적화된 소설이다. 그의 출세작 <마션>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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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 종활 사진관
아시자와 요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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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활이란 인생을 마무리 짓지 위한 활동의 줄임말이다. 이것은 쉽게 말해 영정사진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바로 영정사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미스터리들이다. 모두 네 편이고, 가벼운 미스터리에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특별히 꾸미지 않고 소소한 미스터리 구성되어 있다. 어떤 이야기의 트릭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이라 쉽게 알 수 있었고, 다른 이야기들도 진실이 밝혀지려는 순간 바로 전에는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만약 이 책을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했다면 아쉬움이 더 컸겠지만 이 미스터리들이 한 가족의 사연을 재밌게 풀어내기 위한 설정이다 보니 그 아쉬움은 그렇게 커지 않았다.

 

하나가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아마리 종활 사진관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마작의 중을 들고 영정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재밌지만 그보다 할머니의 유산 상속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마음이 더 컸다. 아마리 종활 사진관의 코디네이터 유메코를 만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쉽게 단서가 풀리지 않는 와중에 그녀의 연애사와 가정사가 조금씩 풀린다. 제목과 사진관 이름을 생각하면 아마리가 아주 큰 역할을 할 것 같지만 그는 사진사로 있으면서 가끔 그 존재감을 보여줄 뿐이다. 실재 중요한 역할은 유메코와 카메라와 상담 보조인 도톤보리가 다 한다.

 

하나가 이 영정사진을 들고 찾아온 이유는 엄마가 유산 상속에 빠졌기 때문이다. 단지 돈 때문이라면 소송으로 자신의 지분을 찾을 수 있지만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이 더 강하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품은 하나가 아마리 종활 사진관을 찾아와서 상담 내용을 뒤돌아보고, 자료를 내놓고, 추억을 더듬다가 숨겨져 있던 미스터리를 해결한다. 이 미스터리는 너무 유명한 것이라 쉬웠지만 특이한 이력을 가진 할머니의 삶과 하나의 최근 연애사가 엮이면서 재밌게 풀려나왔다. 매년 손자들을 위해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던 할머니다운 삶이라고 해야 하나. 하나가 이 사진관의 일원이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아들과 손자와 함께 찍고 싶다고 하면서 생긴다. 어린 손자가 그린 그림과 불행했던 과거사가 풀려나온다. 손자보다 자신의 명성에 더 신경을 쓴 과거가 나오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이 이야기부터 도톤보리의 공감 능력과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매력이 폭발한다. 오해와 이해 부족과 뒤틀린 가족 관계가 엮이고 꼬이면서 만든 현실이 단 하나의 단서로 너무 쉽게 풀린다는 느낌은 있지만 짧은 단편 속에 잘 버무려진 상태다. 영정사진이 꼭 한 사람만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재밌고 신선한 발상이다.

 

방송국 감독이 화제성으로 종활 사진관을 다루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경영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메코는 반전을 노리지만 감독의 마음을 끄는 사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임신한 여자와 남자가 찍은 사진이 발견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엄마나 아빠의 시한부 삶이지만 그렇게 쉬운 미스터리가 아니다. 방송 출연을 목적으로 과거 연락처로 전화를 하면서 설정이 하나씩 깔린다. 연락이 닿아 풀린 이야기는 기대와 다르다. 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고, 조사가 진행되면서 그 영정사진의 비밀이 밝혀진다.

 

한 남자와 두 번 영정사진을 찍었다. 한 번은 미인과 함께 왔고, 다음은 아내가 있는 집으로 불러서 찍었다. 뭔가 이상하다. 영정사진임을 감안하면 한 번으로 충분할 텐데. 물론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 모두 읽고 난 후다. 하나의 과거사가 또 하나 흘러나오면서 두 번의 영정사진을 둘러싼 하나의 감정이 섞인다. 일과 개인사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미스터리는 그 대상이 다가오는 순간 풀린다. 생각도 못한 반전이다. 다른 작품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너무 잘 녹아 있다. 물론 결국 다른 이야기처럼 가족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하나의 결심이 만든 결과를 생각하면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진다. 아마리가 어떤 모습을 계속 보여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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