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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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의 농담집이다. 이 책에 나오는 꽤 많은 수의 농담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다. 짤로 만들어 길게 편집한 글들은 가끔 ‘천재 아니야?’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자주 가는 게시판에 자주 올라와 여러 번 봤는데 이 농담들이 많은 사람들의 꽉 막힌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어준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 나도 이 농담들을 읽으면서 그의 발상 전환과 진한 코미디에 깜짝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렇게 책으로 다시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다른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반전 같은 매력으로 나를 웃게 하고,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SNS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짧다. 하지만 그 내용까지 짧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내용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자조적으로 비하하고, 역설적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똥이 안 나온다./ 난 이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변비>나 “많이 쓰는 것이 아니다. 적게 버는 것일 뿐이다.”<과소비>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이런 글은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의 20대의 감성과 주머니 사정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자조적이지만 이 ‘웃픈’ 현실의 코미디에 그들은 박수를 보낸다. 이전처럼 노력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신화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현실을 모르는 꼰대 취급을 받는다.

 

유병재의 농담은 단순히 자조적이고 자기비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문제에 강하고 큰 주먹을 한 방씩 날린다.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거나 사회문제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그가 던진 말들은 사이다 발언처럼 다가온다. “딸 같아서 만졌다니,/ 딸 치려고 만졌겠지.”<딸 같아서 만졌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발언을 아주 직설적으로 풀었다. ‘니 딸이나 손녀를 데리고 오면 딸처럼 만져줄게’보다 훨씬 멋진 대응이다. 이런 글들은 순간적으로 빛나는 아이디어가 없으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양비론>은 우리 사회의 정치혐오를 불러오는 동시에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인데 자신의 경험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그 문제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감정들은 코미디라는 방식을 통해 새롭게 해석된다. 이때 우리는 각각의 경험치에 따라 그 반응이 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글들과 다른 독자가 좋아하는 글들은 분명 다를 것이다. 세대와 삶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형> 같은 글은 개인적으로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생각과 생각의 근원과 행동의 괴리를 아주 멋지게 표현한 것이다. <속 터지는 속담사전 #2>에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란 속담과 사랑을 연결해서 풀어낸 경험담은 바뀐 짝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쩌면 그 사랑도 성취감에 취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당연한 속담이나 격언들이 이렇게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언제나 신선하고 재밌다.

 

수많은 글들 속에 담긴 통찰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나도 가끔 한두 개 정도 멋진 말을 할 때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수없이 쏟아내지는 못한다. 이런 것은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글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하나는 ‘유병재도 그가 쓴 글처럼 살고 있을까?“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기반성을 의미한다. 나의 실수도 있을 수 있고, 실제 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글 하나를 더 인용하고 마무리하자. ”오해들 하는데, 내가 겁이 많아서 참는 거지 착해서 참는 게 아니야.“ <오해> 이 글은 나의 수없이 많은 행동에 대한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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