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을 본 적이 있니? - 추상 회화의 선구자 피트 몬드리안이 만난 세상, 안데르센 상 수상작 예술톡
알렉산드로 산나 글.그림, 이현경 옮김 / 톡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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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파랑새)에서 예술가에 대한 또 한 권의 그림책이 나왔네요. 이번엔 네덜란드 출신의 피트 몬드리안에 대한 그림책입니다. 아마 몬드리안이란 이름이 조금은 낯설지라도, 사각형 도형 안에 원색으로 칠해진 추상화는 많이들 본 적이 있는 그런 화가랍니다.

 

물론,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그런 사각형에 원색을 칠하는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니고요. 이 책은 몬드리안의 작품들을 몇 점 소개함으로서 화가의 눈으로 본 세상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네요.

예를 들면, <햇빛 속의 풍차>(1908년)라는 작품을 통해, 화가가 본 풍차는 어떤 모습인지, <아마릴리스>(1910년)라는 작품을 통해서, 화가가 본 꽃은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보게 한답니다. 이 <아마릴리스>란 작품은 제목을 알고 나니, 아~ 하며, 왜 화가가 꽃을 이런 모습으로 그렸는지 알게 되네요.

 

그 외에도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여름, 제일란트의 모래 언덕: 모래 언덕 Ⅵ>(1910년경), <붉은 나무>(1908년), <빨강과 하양의 구성 No.1>(1938년), <큰 바다 5>(1915년), <뉴욕 시티 Ⅰ>(1941-1942년), <빅토리 부기우기>(1942-1944년) 이랍니다.

마지막 작품인 <빅토리 부기우기>(1942-1944년)는 몬드리안의 유작으로, 재즈 음악인 ‘부기우기’를 추상화로 형상화 시킨 작품이랍니다. 몬드리안은 재즈 음악인 ‘부기우기’를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말년의 작품들 가운데는 이처럼 음악인 ‘부기우기’를 그림으로 추상적으로 형상화시킨 작품들이 많답니다. 바로 이 작품들에서 그 유명한 원색의 사각 추상화들이 나옵니다. 마지막 작품인 <빅토리 부기우기>는 작가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하며 그린 작품인데, ‘부기우기’를 들으며, 춤을 추는 모습들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미완성이지만, 이 그림을 보면,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이나요? 솔직히 전 잘 안 보이는데, 모르죠. 여러분 눈에는 보일지 말입니다.

 

작가의 눈으로 사물을, 또는 음악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다보면, 우리 아이들도 이처럼 세상을 멋지고, 남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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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은 재미있다, 여기는 상상미술관 - 보고 생각하고 그려 보는 우리 명화 워크북
전영실 지음, 유설화 그림 / 토토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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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성장하며 제일 먼저 행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거죠(물론, 기는 게 먼저겠지만, 서고 걷기 전에 이미 그리기를 시작하죠.). 물론, 처음엔 단순한 선들을 끼적일 뿐이지만, 언젠가부터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얼굴을 그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시간을 대단히 즐기며 행복해 하죠. 저희 집 딸아이도 미술활동을 제일 좋아합니다. 미술은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아닌 하나의 놀이이기도 하죠. 그러니 그림은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그림이 어렵게 느껴지고, 특별한 사람들만의 영역으로 오해되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우리의 교육이 입시 위주이다 보니 미술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부분으로,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낭비의 시간으로 곡해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미술은 특별히 전공하는 분들만의 영역이 되어 버린 거죠. 어쩌면 한쪽으로 치우진 교육이 미술을 향한 아이들의 본능을 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책 『옛 그림은 재미있다, 여기는 상상미술관』이 참 고맙게 느껴지네요. 이 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옛 그림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책 제목에 상상미술관이라고 나와 있는 것처럼, 마치 미술관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옛 그림들을 감상하는 느낌을 갖게 한답니다.

책의 차례 역시 이처럼, “미술관 안내 지도”라고 꾸며 놓았고요. 이 안내 지도에 따라 하나하나 감상하며 배우고, 느끼고, 상상해보면 된답니다.

 

 

 

 그림에 대해 몰라도 괜찮습니다. 먼저, 원 그림을 소개하는데, 찬찬히 감상해보며, 느끼면 되죠. 그 다음에는 이 그림에 관한 설명을 듣고 배우면 되고요. 다음에는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또는 그림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해보면 되요. 첫 그림인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를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상상을 해보라고 하네요. 사신도의 네 수호신들이 만약 내 방을 지켜 준다면 어떨지를 말이에요. 그러면 오히려 무서울까요? 아님, 든든할까요?

제 딸아이는 이 책의 표지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네요. “어, 수염으로 그네 탄다.” 맞아요. 이 그림은 윤두서의 자화상이란 그림인데, 우리나라 국보 24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전남 해남 녹우당이라는 아주 멋진 곳에 전시되어 있답니다(녹우당은 은행나무가 멋진 곳이에요^^). 상당히 무서운 얼굴이죠. 그런데, 이처럼 무서운 얼굴의 멋진 수염을 토끼가 그네 타는 모습으로 그려놓았네요. 이러한 접근도 미술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좋은 시도라 여겨지네요. 수염으로 그네를 탄다는 이런 상상력으로 그림을 본다면, 윤두서 할아버지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친근한 할아버지로 다가올 수도 있겠네요.

 

이 책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상상미술관의 그림들을 잘 감상하고 보다 더 멋진 미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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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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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의 신작이 나왔다. 『속삭임의 바다』라는 제목의 소설. 소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속삭여줄까 설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본다.

 

외딴 섬 모라 섬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5살 소녀 헤티는 남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는 평범한 바다유리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형상들을 본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형상을. 그리고 바다에서 들려오는 속삭임도 듣는다. 누군가 마치 유령들의 속삭이는 것과 같은 소리들을.

 

그런 헤티가 살고 있는 모라 섬에 지독한 폭풍이 몰아치던 밤, 한 노파가 작은 배에 실려 떠내려 왔다. 이 정체불명 노파의 출현에 섬사람들은 점차 불안에 쌓이기 시작한다. 특히, 섬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인 파 노인은 노파의 출현을 악의 출현이라고, 이제 섬은 온통 불행이 시작될 것이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유일한 외부세상과의 소통의 도구인 배, ‘모라의 자랑’이 폭풍에 파괴되고, 노파를 죽이기를 외치던 파 노인은 헤티의 반대에 부딪치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런 불행의 일들이 겹치자 섬사람들은 노파를 불행의 단초로 여기기 시작하며, 살려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데.

 

한편 외딴 섬에 갑자기 나타난 이 노파의 얼굴을 본 헤티는 노파가 바로 자신이 바다유리 속에서 봤던 그 얼굴임을 알고 어떻게든 노파를 살리려 한다. 하지만, 점차 마을 사람들의 광기가 드러나게 되고, 헤티 역시 마을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으로 변해 가는데. 과연 헤티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

 

팀 보울러의 소설, 『속삭임의 바다』를 읽으며 몇 가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헤티라는 이 소녀의 용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이 점차 인간성을 상실해 가며, 광기에 휩쓸리는 가운데서도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노파를 지켜내기 위해 그 여린 소녀의 몸으로 맞서는 그 모습. 뿐 아니라 섬마을 공동체의 분열을 더 이상 볼 수도 없고, 노파를 모른 척 할 수도 없기에, 자신의 작은 배에 노파를 태우고 노파의 집이 있는 곳으로 여겨지는 본토를 향해 떠나는 용기는 대단히 감동적이다. 타인을 향한 관심을 끊어버린다면, 쉽게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지만, 헤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얼마나 숭고한 정신이며, 또한 불굴의 용기인가. 이런 용기 있는 발걸음은 또한 헤티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게 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을 희망하게 한다. 오늘 우리에게 헤티와 같은 멋진 용기와 헌신의 모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으로, 섬사람들의 광기에도 눈이 간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은 세계에 갑자기 들어온 한 죽어가는 노파를 악의 씨앗으로 간주한다(어쩌면 자신들의 안정을 위해 노파를 희생시키려는 그들이야말로 악의 씨앗이 아닐까?). 노파 때문에 자신들에게 불행이 거듭된다고 믿는다. 그리곤 노파를 살려둬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처음엔 그 동조가 몇 사람뿐이었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이 동조함으로 노파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도리어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이들이 노파를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정말로 노파가 악의 씨앗이라 믿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혹시 노파가 정말로 악의 씨앗이어서 자신들에게 재앙을 가져올까 그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이 광기로 변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발견하는 수많은 광기가 이런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문제는 어느 공동체의 우두머리, 즉 절대적 힘을 가진 이가 이런 두려움으로 인한 광기에 휩싸이게 될 때가 아닐까? 이러한 두려움의 광기가 우리 곁에는 없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속삭임의 바다』를 통해, 바다라는 대자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을 향한 진혼곡을 노래하고 있진 않은지 싶다. 남들과 다른 신비한 힘을 가진 헤티. 그녀가 바다유리에서 발견하는 형상, 그리고 듣게 되는 바다의 속삭임은 모두 이런 바다에 의해 희생된 생명과 연관이 있다.

 

모라 섬의 역사는 늘 그런 상실의 역사죠. 그랜의 할머니나 다른 어른들은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고 말씀하곤 하세요. 그게 섬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래요. 죽은 자는 빨리 묻고 산 자는 계속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 그런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요. 저는 바라서는 안 되는 걸 소망하고 있어요.(291쪽)

 

헤티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다로 인해 상실된 자들, 그들을 기억 저편에 묻어버리기보다는 자신들의 삶 곁에 두고 여전히 기억하고, 다시 떠올려봄으로 소통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소망이 결국 헤티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할 형상을 보게 하고, 바다의 속삭임을 듣게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물론, 슬픔의 기억, 상실의 기억을 묻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슬픔과 상실을 뛰어넘어 우리 곁을 떠난 이들, 상실의 역사가 되어버린 이들을 여전히 오늘 내 삶 속에서 기억하며 회상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상실의 역사가 되어버린 영혼들을 다독여주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팀 보울러의 신작 『속삭임의 바다』는 모라 섬에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 그리고 한 노파가 표류된 사건을 통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두려움에 빠지고 광기에 휩쓸리고 있는지. 또한 이러한 인간성 상실의 모습과 그에 맞서는 자들의 용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바다의 속삭임을 통해, 바다로 인해 상실의 역사가 되어버린 희생자들의 넋을 향한 진혼곡을 들려준다. 바로 헤티라는 연약한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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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바이러스 LIV3, 책의 죽음 청소년시대 3
크리스티앙 그르니에 지음, 김영미 옮김 / 논장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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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대적 배경은 21세기 말이다. 유럽은 아카데미 정부가 통치한다. 이들 아카데미 정부의 위원들은 대부분 작가, 철학자, 지식인들로 구성된 문자족이다. 여기 문자족이란 독서와 책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 관심과 활동이라 생각하며, 책을 통한 독서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들이 유럽을 통치하기 시작하며, 모든 사람들은 종이책을 통한 독서를 의무화하게 되고, 반대로 컴퓨터나 전자 기기의 사용은 터부시된다. 아울러 이러한 문자족에 대한 반발로 책을 거부하며 컴퓨터나 영상에 몰두하는 컴족이 생겨나게 되며, 이들 컴족은 문자족에 의해 멸시받는 종족이 된다. 이런 상황 하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바이러스가 문자족을 휩쓸어간다(컴족이 아닌 문자족을 대상으로 한 바이러스다. 왜냐하면 이 바이러스는 컴퓨터가 아닌 종이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 이 바이러스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지만, 종이책의 글자를 사라지게 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책을 읽게 되면, 그 책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그 사람이 읽은 부분은 백지로 변해버린다. 또한 이 책을 펼친 또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고, 또 다시 다른 책으로. 이처럼 바이러스는 확산된다. 이제 문자족들이 다스리는 세상의 책들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이 책바이러스가 갖는 묘한 현상은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책 속으로 실제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책의 같은 부분을 읽게 되면,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책 속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바이러스는 또 하나의 축복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책이 백지화 된다는 현상을 해결할 방법이 없긴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 바로 주인공 알리스다. 알리스는 문자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컴퓨터를 멀리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알리는 듣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 컴퓨터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셀제로 알리스는 밤마다 웹상에서 몬다예라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몬다예에게는 놀라운 신분의 비밀이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출간한 알리스는 문자족이면서도 컴족들에 대한 우호적 성향을 띠고 있기에 아카데미 위원에 선출되게 되고, 책 바이러스 LIV3 문제를 해결할 미션을 받게 된다. 이에 알리스는 새로운 신분으로 위장하고 컴족들에게 다가가는데. 과연 알리스는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세상의 책들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까?

 

책의 문자가 사라지는 바이러스라는 색다른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이 책, 『책바이러스 LIV3, 책의 죽음』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흥미진진하게 사건이 진행되기에 중간에 책장을 접기가 힘들 정도로 재미있다. 아울러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책과 컴퓨터는 서로 대적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둘은 서로를 보완해 주고 함께 가야할 관계다(소설의 결말이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난 과연 문자족에 속하는지, 아님 컴족일지를 생각해본다. 과연 어느 쪽일까? 물론, 둘 다가 아닐까? 이 서평을 읽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전자책의 장점은 많은 분량이 작은 공간에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이책이 전해주는 느낌을 주기에 전자책은 뭔가 부족함이 있다. 그렇다고 종이책만이 답인가? 물론 아니다. 우린 컴퓨터나 다양한 영상들을 통해, 더 풍요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그럼에도 여전히 내 몸은 오프라인에 존재하기에 오프라인의 맛을 그리워하고 요구한다. 그러니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요, 공생의 관계여야 한다.

 

또한 소설을 읽어 가는 가운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고전들을 발견하는 것 역시 독자에게 전해주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된다. 21세기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소설 속에 온갖 고전들이 등장한다. 이야기 속에서 책 바이러스를 통해, 책 속의 책을 읽고, 쓰는 것처럼, 독자들은 책 속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또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이 소설은 문자족이 세상을 지배하고 컴족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는 시대를 그려내고 있지만, 반어적으로 오늘 우리의 시대는 점점 컴족이 흥왕하고 문자족은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떠올려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과연 오늘 우리의 청소년들은 1년에 책을 몇 권이나 읽을까? 청소년들은 그렇다 치고, 성인들은 또 얼마나 책을 읽고 있나? 온 종일 스마트폰에서 눈과 손가락을 떼지 않으면서 말이다.

 

오늘 우리의 삶은 이 두 영역이 공존해야 할뿐더러 한 사람의 삶 역시 이 두 영역에 기반을 둬야만 하지 않을까?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것은 또 하나의 장애를 낳게 된다. 둘이 함께 내 삶에 공존해야 한다. 어쩌면 오늘 우리 시대가 첨단기기에 홀릭하며, 책을 멀리 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바이러스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미 우린 또 다른 형태의 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우리 모두 책을 가까이 함으로 이 바이러스를 몰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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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일기 - 어쩌다 내가 회사의 가축이 됐을까
강백수 지음 / 꼼지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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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참 아프고 서글프다. 『사축일기』라니. 책날개에는 이런 설명이 덧붙여진다.

 

직장인을 위한 1인용 감정이입 에세이

“무직 이상, 가축 이하의 웃픈 삶”

 

그러니 책 제목의 사축은 분명, 社畜의 의미로 사용되어졌다. 가축들이 집에서 길러지기에 가축이라 불리듯, 회사에서 사육당하는 인생인 직장인들의 애환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실, 저자는 회사원은 아니다. 글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많은 회사원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 푸념, 현실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전해준 회사생활에 대한 글들을 적어낸다. 길지 않은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에세이들을 읽어나가며, 많은 회사원들은 아마도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될 것이다. 또한, 회사원이 아닌 분들이라면, 아, 이렇게 힘겹게들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며 역시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물론, 회사생활이라는 것이 모두 부정적이지만은 아닐 게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이 책은 너무 부정적인 접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여겨지기도 한다. 아울러 이 안에 적힌 수많은 푸념과 한숨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누리고 싶은 꿈일 수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부정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면, 직장인들, 특히, 말단 직원들의 애환이 그만큼 깊고 아프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렇다고, 이 책 전체가 부정적 회사생활을 그려내고 있진 않다. 그 안에 가슴 뭉클한 글귀들도 많다. 물론, 이런 뭉클함 역시 힘겨움을 담보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회사생활이 행복하지 않고 힘겨운 분들이여. 『사축일기』를 읽으며, 함께 상사를 험담하고, 함께 고단한 삶을 안주 삼아라.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진짜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터. 어쩌면 작가는 당신만 힘겨운 것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그 힘겨운 길을 걷고 있노라고 작지만 힘 있게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내고 버텨보자고, 견뎌보자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비록 회사생활을 통해 사축(社畜)이 되어가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어쩌면 사축(社祝)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바라기는 지금 이 시간에도 힘겹게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의 삶이 이제는 사축(社畜)에서 사축(社祝)으로 넘어가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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