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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훈민정음이란 것은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해야 할 귀찮고 어려운 것으로만 여겼지 한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고만 알고있지 그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수도 있는 일인데....
선초 명과의 사대관계를 유지하려던 사대부 학자들에게 밀려 그 뜻을 펴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뿌리 내리기 시작한 유학과는 정 반대의 학풍이었으니 세종이 실학을 장려하고 백성들을 위해 과학기술을 지원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장영실같은 양반이 아닌 사람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물심양면 밀어줄때 유학파 신료들이 얼마나 공격을 퍼부어댔을지도 지금에서는 상상이 간다. 세종이 살아있을 당시 잡학이 인정받고 중인들이 등용되었던 것이 왜 그 이후에는 사라졌을까 생각을 안해봤다. 그저 당연한 것처럼 기록된 사실을 외웠을뿐....
단순히 큰 전쟁이나 별다른 사건이 없어 ‘세종때 살기 편했겠다. 위대한 왕이구나’ 생각했던게 창피할 정도다.
백조는 우아한 모습으로 물에 뜨기 위해 물속에서 쉴새없이 발버둥친다고 한다. 그런 우아한 백조가 세종일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우리에게 비쳐지는 모습 이면으로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신경전을 치열하게 벌였을까....
이정명의 소설은 분명 흥미를 자극하고 빠져들게 하는 소설에 불과하나 읽고난 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시의 사건들에 감추어졌을 이면, 사람들의 감정, 군왕의 위치, 생생한 정계의 알력다툼....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이토록이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누가 상상이나 해볼수 있었을까... 새삼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새록새록 존경이 솟는다. 남들은 한번 읽고 덮어버릴 소설로 치부할 이 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료를 참고하고,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을까....
소설 뿌리깊은 나무는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며 세종이 당시 얼마나 힘들게 새로운 문자를 창조했는지 보여준다. 비록 100%사실은 아니더라도 그 당시의 어려움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현재에 와 우리는 이리도 험하게 대하는 이 문자를.....
문자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잘 모른다. 요즘처럼 영어에 목메어 국어를 홀대하는 사회라면 더 그렇겠지. 새 문자가 창조되면 10년 이내에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책 속 최만리의 예언은 틀린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글은 새로운 사고를 부르고 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문자가 가진 힘이기에 고대로부터 문자를 문명의 기본요소로 꼽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나 ? 국어가 가진 위기감을 알고 있나 ? 국어학자들이 염려하는 바가 헛된 망상은 아니다.
몇백년도 전에 우리를 위해 갖은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밀여붙여 문자를 완성시켰던 집현전 학자들과 그들을 보호하고 이끌어 주었던 세종대왕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 ?- 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은 추리소설답게 범인을 감추면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전면에 세워 글을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범인일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황에 한패의 자백도 있는데다 그 스스로조차 범인이 아님을 부인하지도 않는 상황에서도 끈질긴 겸사복은 기어코 가려진 범인의 모습을 밝혀내고야 만다. 책 속의 인물들만 놀란 것인 아니라 보고 있던 나도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추리소설로서도 역사소설로서도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