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옷의 남자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8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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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흰 옷의 남자>에 수록된 작품은 대부분 정통 쇼트-쇼트보다 약간 길다. 초반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긴호흡의 작품도 좋았다. 호시 신이치의 특유의 기발함은 여전한데다 스토리텔링의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호시 신이치의 장편도 읽고 싶다'라는 생각도^^

전체적으로 다양한 느낌의 작품이 고르게 실려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초반부엔 매스미디어, 특히 TV를 소재로 한 작품, 후반부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TV를 소재로 한 작품은 [악에 대한 도전](p.39), [노인과 손녀](p.61), [텔레비전 시트 가공](p.80)인데, 종이처럼 얇은 텔레비전이 일반화된 사회의 에피소드인 마지막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벽걸이 TV까지 등장한 오늘날, 이는 머지않아 실현될 이야기 아닌가? 호시 신이치의 선구자적 혜안에 다시 한번 감탄.

공포 분위기를 풍기는 [흥신소](p.110)도 멋진 작품이다. 신경과 의사 N박사는 R흥신소사장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사장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자기 아들이 밤마다 묘지로 향한다는 것, 넌지시 물어도 아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N박사는 몰래 아들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오싹한 분위기와 마지막 반전이 무척 인상적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중엔 [비약의 법칙](p.182), [그리고, 아무도](p.193)가 주목할 만하다. [비약의 법칙]. 갑자기 지구에 출현한 원반형 우주선, 그들은 이상한 메시지를 보낸다. "…어떤 무기라도 상관없으니 우리를 향해 쏴 보시지요.…"(p.183) 빈정거림에 화가 난 사람들은 총이며 미사일을 마구 쏘아댄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환영회를 열지만 그들은 지구의 음식, 음악, 과학, 모든 것을 비웃는다. "참 훌륭하군요. 이건 원시시대의 유물입니까? 아니면 어린이의 작품입니까?"(p.185) 수치심과 분노에 치를 떠는 사람들. 세계는 인종과 민족을 넘는 지구적 연대감에 똘똘 뭉친다. 그렇게, 두 세기가 흐른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아무도]. 일본 SF의 아버지다운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혹성을 탐사하기 위해 지구를 출발한 탐험대, 대원은 총 5명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탐험대장이 갑자기 사라진 것. 대장을 찾기 위해 우주선 안을 돌아다니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완전히 증발한 것이다. 이어 통신사마저 사라지고, 남은 이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힌다. 갑자기 사라진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간 걸까? 읽어 보시길. 대단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작품을 수십년 전에 썼다니…역시 호시 신이치!


* 뒤에 실린 해설은 플라시보 시리즈의 숨겨진 묘미다. 하지만, 해설자에 대한 소개가 전무하다. 해설자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해주면 좋겠다. 언제 쓴 해설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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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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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지만 일반적 의미의 소설은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주위를 둘러쌌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혈통을 따라 자신의 가족사를 써내려간 [에세이 혹은 자서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해설을 보니 <혈통>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작품인 듯하다. ('~자신의 문체까지 포기했다'는 부분. 원래 그의 문체와는 많이 다른 듯.) 처음 접하는 입장이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웠던게 사실.

초반부 수많은 인명이 등장한다. 조르주 니엘스, 클라우드 발랑디네, 즈느비에브 보두아예, 단테 비누치등등. 이에 대해 저자가 코멘트 한 부분이 있다. "이 모든 인명들과 뒤에 나올 다른 인명들에 대해 독자들의 용서를 바란다. 나는 혈통 있는 척하는 한 마리의 개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뚜렷한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너무나 파란만장하고 불확실해서 마치 반쯤 지워진 글자들로 신분증명서나 행정서식을 채우려 애쓰는 것처럼, 나는 이 흐르는 모래 속에서 몇 가지 흔적이나 몇 가지 표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p.10) 혈통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 속에서 흐릿해진 가족사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주목한 것은 두가지이다.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힘겹게 성장한 저자의 모습, 저자의 독서 이야기.

파트릭 모디아노와 부모의 빗나간 관계는 충격이다. 특히 어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모성애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어머니에 대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코멘트는 이렇다. "어머니가 내게 번번이 보여주었던 그 공격성과 쌀쌀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한 번도 아는 어머니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그 어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혈통도 없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졌던 개처럼, 이따금 나는 어머니의 매몰참과 모순된 행동 때문에 내가 겪어야 했던 일을 분명히 그리고 상세하게 글로 쓰겠다는 치졸한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p.94) 약혼자가 선물한 차우차우가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자살을 할 정도니 참. 아버지와도 원만하지 않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을 불량배라며 경찰에 넘기기까지(p.111) 한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군데군데(p.35,40,47,70등) 나온다. 위대한 작가가 어린시절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에 감명을 받았는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부분을 보자. '아캉부레 신부는 내게 모리악의 소설 <바다로 가는 길>을 권했는데, 무척 좋았고 특히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도 마지막 문장 "……옛날 캄캄한 새벽처럼"을 기억할 정도로.'(p.70,71)

자전적 이야기답게 충격적 고백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도둑이었음을 고백(p.123이하)한다. 그(와 어머니)는 아버지 친구가 벽장속에 넣어둔 물건, 도서관의 책등을 훔친다. "나는 개인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훔쳤고, 돈이 없어서 그 책들을 팔았다. (중략)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사소한 좀도둑질도 저지르지 않았다.'(p.125) 좀도둑에서 위대한 작가로, 거의 인간극장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다.

'저자가 그간 써 온 작품의 열쇠'라는 <혈통>, 이 작품으로 파트릭 모디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불운이었다. 전작을 읽고 이 작품을 읽었다면 훨신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의 전작을 읽고나서 천천히 다시 읽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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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악몽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7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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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먼저 표지얘기부터 하겠다. 플라시보 시리즈의 표지는 알록달록한 색동비단을 떠올리게 한다. 비단조각을 이어놓은 듯한 느낌 아닌가. 표지를 찬찬히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색색의 비단조각(^^)은 곧, 다양한 매력이 가득한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다. SF, 풍자, 공포, 유머등을 넘나드는 천재적 다양성은 다채로운 비단조각으로 제대로 형상화 됐다.' 뭐 이런거. 억지춘향? 뭐 해석은 내 맘대로^^

표지의 검은 고양이를 보고, 공포 분위기의 작품이 많겠거니 했는데 그다지 많지는 않다. [수집가](p.26), [밤의 승객](p.54)정도. <어떤 이의 악몽>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 풍자적인 작품이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1권부터 6권까지도 물론 풍자적인 작품이 있지만, 7권엔 말 그대로 '대단히 많다'. [문제의 장치](p.38), [선전 시대](p.71), [경원](p.86), [무서운 아저씨](p.106), [억지를 부려 얻은 득](p.121), [이익의 확보](p.126), [불쾌한 인물](p.146), [텔레비전의 신](p.181)등등.

놀란 것은, 수십년 전에 행해진 사회풍자가 오늘날 관점에서 보아도 날카롭다는 것이다. 대단하다. 이는 작가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의 차원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뇌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호시 신이치의 선구자적 성찰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 갈지, (혹은 뻗어 갔는지) 가슴이 설랜다.

[선전 시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던 작품. 배경은 '대부분의 사람이 반사 신경 중 하나, 혹은 몇 개를 기업의 선전매체로 빌려주는 시대'(p.72)이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바로 광고노래를 불러 제끼는 소년, 키스의 조건반사를 선전매체에 빌려준 아리따운 아가씨, 설정은 과격하지만 황당무계 하지 않다. 간접광고에 Subliminal Advertising에 이미 우린 광고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머지않아 호시 신이치의 상상은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

[불쾌한 인물] 한 청년이 있다. 5성 호텔 최고급 객실에서 미녀들을 거느리며 느긋하게 삶을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떠받든다. 애원하고 부탁하고, 마치 봉건시대 군주를 보는 듯하다. 청년은 뭘 하는 사람일까? 왜 사람들은 그에게 매달리는가? 왠지 건방지고 불쾌한 청년의 정체는 곧 밝혀진다. 역시 대단한 상상력. (하지만, 현실에선 더 불쾌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권력자의 사주를 받은 어깨들이 청년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분명 의문의 실종사건이 발생하겠지)

[꿈속의 여자](p.205) 사회풍자보다도 구성과 서술트릭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악몽에 시달리는 SㆍH씨와 F박사가 주고받는 편지로만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SㆍH씨가 시달린다는 악몽은 수많은 미녀가 그를 유혹하는 꿈이다. 의사는 의아해 한다. '저게 어떻게 악몽이란 말이지?' 하고. 도대체 SㆍH씨는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읽어 보시길. <어떤 이의 악몽>, 날카로운 사회풍자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호시 신이치가 왜 위대한 작가인지 설명을 원하는가? 이 작품을 읽어라. 답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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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카페 오픈 기념 이벤트에 응모했던 것^^

하다보니 베스트 5가 아닌 베스트 6가 되어 버렸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희망 -상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9년 11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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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희망 - 양귀자

제 젊음과 함께한 책이에요. 지금까지 몇 번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혹시 저 책 읽으신 분 계신가요??? 많이 울었고, 많이 공감했고, 결국 새로운 희망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오래전 KBS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어요. 정말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쥬베이의 감동문학 베스트 1위!!! 양귀자님의 <희망>!!! ^^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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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로드 - 코맥 매카시

요즘 최고의 화제인 코맥 매카시의 <로드>가 2위입니다. 이 책에 대해선 딱 한마디만 할께요.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죠.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지구 종말의 그 날, 이 책과 함께 최후를 맞겠다'고.
검은 선 1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8년 08월 0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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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검은 선 -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처음 접한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작품입니다. 탄탄한 작품성과 압도적인 스릴에 내내 감탄했었어요^^ 아직도 충격과 흥분이 가시지 않네요. 아직도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달려 가세요. 서점으로~ 문학동네 본사로~ㅋㅋㅋ

* <검은 선> 서평 http://blog.aladdin.co.kr/zetipao/2008561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8년 08월 02일에 저장

4위.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사실, 이 작품을 1위로 하려고 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의 절묘한 구성과 탄탄한 작품성은 '최고의 작품'이란 수식이 결코 부끄럽지 않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어찌나 놀랐던지^^ 4위인 이유는 결말에 약간 황당하다 해야하나, 그런게 있어서ㅋㅋㅋ 1위 등극 실패. 하지만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정말 아끼는 작품입니다.

*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서평 http://blog.aladdin.co.kr/zetipao/191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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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 파티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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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스포일러 있음. 

<명왕성 파티>는 어떤 장르의 작품인가? '성장소설, 연예소설, 추리 미스터리, 감동의 드라마'라는 답이 가능하다.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느낌이 탄탄한 구성 속에서 완벽하게 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츠즈키 쇼코의 시점인 제1장 (여름 벚꽃)과 제2장 (이지러진 달)은 성장소설 요소가, 사쿠라가와 마모루의 시점인 제3장 (초대)과 중간에 삽입된 'In Pluto X월 X일'은 추리 미스터리 요소가 강하다. 그리고 감동의 마지막 장면까지. 어설픈 A-B-A-B식 구성이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제1장과 제2장은 츠즈키 쇼코가 고교생에서 대학생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다. 쇼코가 만나게 되는 남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쇼코를 둘러싼 남자들은 그녀의 삶에 결코 뗄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첫 남자, 사쿠라가와 마모루. 자의식 과잉에 관계도 서툴고 패션감각도 꽝인, 하지만 수상을 꿈꾸는 괴상한 소년, 마모루에 대한 첫인상은 '안경을 쓴 촌스런 남자'(p.18)였다. 그러나 쇼코는 마모루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은둔형 외톨이 같은 마모루를 바깥세계로 끌어내고자 나름의 노력도 한다. 둘의 관계는 갑작스럽게 결말을 맞는다. 고기덮밥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마모루의 집으로 간 쇼코, 관계의 갈림길에서 쇼코는 보고야 만다. 비정상적인 욕망과 상상으로 얼룩진 마모루의 일기를.

두 번째 남자, 모치즈키 신고. '젝스 자이텐'이란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쇼코와 모치즈키는 알게된다. 모치즈키는 쇼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림모델을 제안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하지만 멋져 보이는 모치즈키의 숨겨진 본 모습은 추악함 그 자체였다. 과도한 집착, 스토커 행각, 쇼코는 두려움에 떤다.

쇼코는 모치즈키의 마수에서 벗어나고자, 피신하는 심정으로 같은 동아리의 요시나가를 만난다. 요시나가는 바람기 많고 경박한 인물이다. 쇼코가 절박한 상황에 몰리지만 않았다면 절대 만났을 리 없는. 흥미로운 것은 요시나가가 쇼코의 아버지와 비슷한 캐릭터라는 것이다. (쇼코의 아버지도 한 바람한다^^) 결국 쇼코의 주변 남자들은 [쇼코 아버지 = 요시나가 <--> 마모루 = 모치즈키]로 도식화할 수 있다. 특히 마모루와 모치즈키는 여러모로 비교(p.230)된다. 예술적 취향 (책 / 그림), 외골수적인 성격에 쇼코에 대한 강한 집착 (마모루의 일기 / 모치즈키가 남긴 장문의 편지)등등.

제3장 '초대'부터 시점은 사쿠라가와 마모루로 바뀌고, 쇼코는 행방을 감춘다. 마모루는 예전의 마모루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승장구하는 그의 곁에는 수많은 여자가 있다. 한 부분을 보자. '마모루는 무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중략) 증권맨으로서의 자신감이 확립되었다는 것이 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중략) 접근하는 여자들이 우스울 정도로 너무나 간단하게 손에 들어온다.'(p.259) 하지만 뭔가 비뚤어져 있다. 오랫동안 자신을 무시하던 여자들에 대한 복수심? 쇼코에 대한 증오? 마모루는 이런 말까지 듣는다. '당신은 텅 비어 있어'라고.

쇼코를 떠올리던 마모루는 어느덧 인터넷 검색창에 츠즈키 쇼코를 입력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을 본다. 츠즈키 쇼코의 이름으로 된 외설사이트 발견한 것이다. '이 여자가 과연 내가 아는 그녀일까?' 잠시 고민하지만, 일기형식의 글에 적힌 고기덮밥 집 추억을 보고 확신한다. 이 여자는 고등학교때 만나던 그 츠즈키 쇼코다. 츠즈키 쇼코는 왜 이렇게 된 걸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어지는 내용은 쇼코의 행방을 쫒는 마모루와 모치즈키의 추격기다. 쇼코를 상대로 비슷한 모습을 보였던 둘이, 콤비라도 되듯 함께 행동하는 설정은 흥미롭다. 이들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쇼코가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다는 코하라 노부유키(p.302), 세가 하루나를 만난다. 서서히 베일을 벗는 쇼코의 행적, 국제적 집단미팅과 의문의 사나이 나다슈 카로이(p.320). 과연 쇼코의 행방은?

<명왕성 파티>를 읽는 동안 묘한 흥분에 가슴을 떨었다. 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두근거림이었다. 돌이켜 보니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처음 접하고 느꼈던 그것이었다. 울컥울컥하던 감정을 힘겹게 다잡았지만, 끝끝내 쇼코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무너져 내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상처받고 희망을 갈구하며,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굴레에 전율했다. <명왕성 파티>, 삶의 갈림길에서 함께할 만한, 가치 있는 작품이다.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지만, 지명도와 작품성은 비례하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내 인생의 코스는 어딘가에서 커다랗게 일그러져 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정말로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겨우 그렇게 생각하게끔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해나갈 겁니다. ...(중략)...


그럼, 각자의 인생을 걸어갑시다.'(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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