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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 파티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있음.
<명왕성 파티>는 어떤 장르의 작품인가? '성장소설, 연예소설, 추리 미스터리, 감동의 드라마'라는 답이 가능하다.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느낌이 탄탄한 구성 속에서 완벽하게 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츠즈키 쇼코의 시점인 제1장 (여름 벚꽃)과 제2장 (이지러진 달)은 성장소설 요소가, 사쿠라가와 마모루의 시점인 제3장 (초대)과 중간에 삽입된 'In Pluto X월 X일'은 추리 미스터리 요소가 강하다. 그리고 감동의 마지막 장면까지. 어설픈 A-B-A-B식 구성이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제1장과 제2장은 츠즈키 쇼코가 고교생에서 대학생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다. 쇼코가 만나게 되는 남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쇼코를 둘러싼 남자들은 그녀의 삶에 결코 뗄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첫 남자, 사쿠라가와 마모루. 자의식 과잉에 관계도 서툴고 패션감각도 꽝인, 하지만 수상을 꿈꾸는 괴상한 소년, 마모루에 대한 첫인상은 '안경을 쓴 촌스런 남자'(p.18)였다. 그러나 쇼코는 마모루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은둔형 외톨이 같은 마모루를 바깥세계로 끌어내고자 나름의 노력도 한다. 둘의 관계는 갑작스럽게 결말을 맞는다. 고기덮밥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마모루의 집으로 간 쇼코, 관계의 갈림길에서 쇼코는 보고야 만다. 비정상적인 욕망과 상상으로 얼룩진 마모루의 일기를.
두 번째 남자, 모치즈키 신고. '젝스 자이텐'이란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쇼코와 모치즈키는 알게된다. 모치즈키는 쇼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림모델을 제안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 하지만 멋져 보이는 모치즈키의 숨겨진 본 모습은 추악함 그 자체였다. 과도한 집착, 스토커 행각, 쇼코는 두려움에 떤다.
쇼코는 모치즈키의 마수에서 벗어나고자, 피신하는 심정으로 같은 동아리의 요시나가를 만난다. 요시나가는 바람기 많고 경박한 인물이다. 쇼코가 절박한 상황에 몰리지만 않았다면 절대 만났을 리 없는. 흥미로운 것은 요시나가가 쇼코의 아버지와 비슷한 캐릭터라는 것이다. (쇼코의 아버지도 한 바람한다^^) 결국 쇼코의 주변 남자들은 [쇼코 아버지 = 요시나가 <--> 마모루 = 모치즈키]로 도식화할 수 있다. 특히 마모루와 모치즈키는 여러모로 비교(p.230)된다. 예술적 취향 (책 / 그림), 외골수적인 성격에 쇼코에 대한 강한 집착 (마모루의 일기 / 모치즈키가 남긴 장문의 편지)등등.
제3장 '초대'부터 시점은 사쿠라가와 마모루로 바뀌고, 쇼코는 행방을 감춘다. 마모루는 예전의 마모루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승장구하는 그의 곁에는 수많은 여자가 있다. 한 부분을 보자. '마모루는 무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중략) 증권맨으로서의 자신감이 확립되었다는 것이 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중략) 접근하는 여자들이 우스울 정도로 너무나 간단하게 손에 들어온다.'(p.259) 하지만 뭔가 비뚤어져 있다. 오랫동안 자신을 무시하던 여자들에 대한 복수심? 쇼코에 대한 증오? 마모루는 이런 말까지 듣는다. '당신은 텅 비어 있어'라고.
쇼코를 떠올리던 마모루는 어느덧 인터넷 검색창에 츠즈키 쇼코를 입력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을 본다. 츠즈키 쇼코의 이름으로 된 외설사이트 발견한 것이다. '이 여자가 과연 내가 아는 그녀일까?' 잠시 고민하지만, 일기형식의 글에 적힌 고기덮밥 집 추억을 보고 확신한다. 이 여자는 고등학교때 만나던 그 츠즈키 쇼코다. 츠즈키 쇼코는 왜 이렇게 된 걸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어지는 내용은 쇼코의 행방을 쫒는 마모루와 모치즈키의 추격기다. 쇼코를 상대로 비슷한 모습을 보였던 둘이, 콤비라도 되듯 함께 행동하는 설정은 흥미롭다. 이들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쇼코가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다는 코하라 노부유키(p.302), 세가 하루나를 만난다. 서서히 베일을 벗는 쇼코의 행적, 국제적 집단미팅과 의문의 사나이 나다슈 카로이(p.320). 과연 쇼코의 행방은?
<명왕성 파티>를 읽는 동안 묘한 흥분에 가슴을 떨었다. 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두근거림이었다. 돌이켜 보니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처음 접하고 느꼈던 그것이었다. 울컥울컥하던 감정을 힘겹게 다잡았지만, 끝끝내 쇼코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무너져 내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상처받고 희망을 갈구하며,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굴레에 전율했다. <명왕성 파티>, 삶의 갈림길에서 함께할 만한, 가치 있는 작품이다.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지만, 지명도와 작품성은 비례하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내 인생의 코스는 어딘가에서 커다랗게 일그러져 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정말로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겨우 그렇게 생각하게끔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해나갈 겁니다. ...(중략)...
그럼, 각자의 인생을 걸어갑시다.'(p.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