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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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미스터리 열혈 팬인 우리 누나는, 작품 평가에는 상당히 엄격하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 아닌 한, 칭찬도 않고 책을 권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나가 "재밌어, 꼭 읽어 봐!" 하는 작품치고 별로인 작품이 없다. <솔로몬의 위증>은 우리 누나가 극찬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우리 누나의 코멘트. "진짜 재밌어! 얼른 읽어. 결말도 최고임. 마지막 장면에선 울었다니까" ^^

 

누나의 엄밀한 검증을 거친 작품이라(ㅋㅋㅋ) 역시 재미있었고, '대작'이란 말도 과장이 아니었다. 특히 1) 중학교로 되돌아 간 듯한 기분을 느꼈을 정도로, 학생들의 미묘한 심리, 사춘기의 고민거리, 친구관계, 불량학생들의 행각 등을 정확히 그려낸 점, 2)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생동감을 불어 넣고, 개성 넘치는 조연을 창조한 점은 발군이었다. 하지만, 장기간 연재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약간의 문제가 있고, 공감하기 어려운 설정과 서술도 존재한다.

 

공감하기 어려운 설정이란, 바로 ‘교내재판’인데, 이 때문에 각 권마다 몰입도에서 차이가 컸다. (자세한 것은 3권 리뷰에서) 1권은 1권만 보면 <화차>, <낙원>에 필적하는 S급. 교내재판이 등장하는 2권은 A급. 교내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3권은 B급내지 C급이다. 2권은 주로 외부에서 조사활동을 하기에 3권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다. 1권 리뷰에서는 전체적인 감상과 뛰어난 점 위주로 이야기하고, 2,3권 리뷰는, 2,3권의 아쉬운 점만 이야기 하겠다. (따라서, 2,3권 리뷰만 보고, ‘단점만 가득한 책이야?’라는 오해는 마시길.)

 

 

2.

 

(1) 모리우치 에미코 (모리린)

 

1권은 가시와기 다쿠야 사망사건, 오이데 슌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고발장, 가키우치 미나에의 행각, 모기 에쓰오 기자의 활약상 등 굵직한 사건이 이어진다. 일련의 사건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가시와기의 담임인 ‘모리우치 에미코(모리린)’이다. 모리린은 협박장을 XXX XXX는 의혹을 받고, 사면초가에 빠진다. 가키우치 미나에가 쏜 (정신병적) 분노의 화살이, 모기 에쓰오라는 바람을 타고 제대로 명중한 결과였다.

 

2권에서는 XX까지 당하는데,(2권,p.601) 이쯤 되면 모리린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 고소한 기분도 들었다. (가키우치나 미야케가 빙의된 거?ㅋ) 왜냐하면, 모리린은 내가 가장 싫어했던 타입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학생들만 챙기고, 마음에 안드는 학생들은 벌레 취급하는 그런 선생. 고사카 유키오가 말하는 담임선생 모리린, 한번 들어보자. “모리우치 선생님은 훨신 노골적이었다. 교실에서는 완전 무시, 생활통지표나 시험지를 나눠주며 어쩔 수 없이 일대일로 마주할 때에는 얼굴 한가득 ‘짜증나’라고 쓰여 있는 게 보였다.”(p.538) 교사로서의 자질이 없다. 사건에 휘말려 XXX XX게 도리어 잘 됐다는 생각.

 

(2) 노다 겐이치

 

1권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가족관계나 외양, 성격, 친구관계 등이 계속 소개된다. 가장 비중있는 인물은 주인공 격인 ‘후지노 료코’지만, 왠지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노다 겐이치이다. 노다는 가시와기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같은 반 학생으로, 키도 작고 허약한 존재감 없는 소년이다. 미야베 미유키 표현에 따르면, ‘마음의 병을 앓는 엄마를 꼭 빼닮은, 수증기 덩어리 같은 무기력한 소년’(p.22).

 

노다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시와기의 최초발견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노다는 이후 벌어질 교내재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다, 2,3권의 핵심인물인 ‘간XX 가XXX’와 동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양이나 분위기가 유사한 것은 기본이고, 결정적으로 ‘강 건너편을 보고 온 눈빛’(p.564)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노다의 경험이란, 노다가 ‘부모라는 사슬에 묶인 외톨이’(p.419)라며 좌절하고,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계획’(p.417)을 실행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무기력 수증기 소년이 정의의 기사로 변모한 사건(p.343).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후지노 료코에게 치한이 접근한다. 옆자리에서 꿈지럭꿈지럭 료코의 몸을 터치하는 개시키. 료코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때마침 근처에 있던 노다에게 도움을 청한다. 치한은 도리어, “날 취한 취급 했잖아! 왜 갑자기 뛰쳐나가? 사과해”(p.347)라며 적반하장의 진수를 보여주고, 이에 노다는 “우리는 갈 때가 돼서 가는 것뿐이에요. 자기보다 어린 여자한테 시비를 거는 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에요.”(p.347)라며 당당하게 응수한다. 료코는 의외로 믿음직한 노다에게서 잠깐이나마 호감을 느낀다.

 

(3) 가시와기 히로유키

 

죽은 가시와기 다쿠야의 형이다. 히로유키가 중요한 이유는, 베일에 싸여 있는 다쿠야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바라보고, 그의 본성을 간파(p.133)해 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히로유키에 의해 이야기되는 다쿠야는 모습은 <솔로몬의 위증>의 결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KEY가 된다.

 

히로유키, 다쿠야의 부모(노리유키, 고코)는 비정상적으로 다쿠야를 편애하고 집착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다쿠야가 몸이 약하다는 것. 히로유키는 형으로서 인내하고 양보하지만, 딱 한번, 참지 못하고 폭발한 적(p.128이하)이 있다. 히로유키의 지망 고등학교를 정하기 위해 학교 면담 날짜가 잡힌다. “엄마, 내일 학교면담이야. 안 잊어버렸지?” 그러나. 고코 왈,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날짜를 바꿀 수 없을까? 네 쪽은 꼭 내일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고코는 히로유키가 어떤 고등학교에 가는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 ‘네 쪽’일 뿐이다. 오로지! 다쿠야만이 고코의 관심사였다. 결국, 히로유키는 ‘어떤 선택’(p.134)을 한다.

 

(가시와기家를 소개하는 p.121이하는 <이유>와 유사한 서술방식이다.)

 

(4) 미야케 주리

 

주리는 경찰이 자살로 단정한 가시와기 사건을 메가톤급으로 커지게 한 인물이다. 주리는 성격도 모가 났고, 여드름이 심해 ‘여드름 귀신’으로까지 불린다. 유일한 친구라곤 ‘아사이 마쓰코’뿐. 그런데 주리와 마쓰코의 관계는 대등한 친구관계가 아니었다. 주리는 마쓰코를 부하처럼 부리고, 죽도록 싫어한다.(p.201) 이런 점을 보면, 도저히 주리를 긍정적으로 봐줄 수는 없다. (더군다나, 2권,p.338에서는 자기를 위해 이미 XX 마쓰코를 이용하기 까지)

 

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리역시 피해자이다. 오이데 슌지한테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행한 편파적 서술의 피해자라는 의미다. 주리는 가시와기 사건의 목격자라고 주장하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이것이 거짓이라는 전제하에서 서술을 이어간다. (사실상 결론은 1권에서 났다. 2,3권은 ‘재판놀이’일 뿐.) 예쁘고 완벽한 료코와 주리를 대조시키거나, 사이코패스 수준인 가키우치 미나에를 교묘하게 주리와 오버랩(p.548) 시켜서, 주리의 주장을 왕따, 미친년의 헛소리쯤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단, 이 정도만 하겠다. 이 부분은 오이데 슌지에 대한 편향적 서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2권 리뷰에서 자세하게 이야기 하겠다.)

 

기록해 두고 싶은 2가지 장면, ① 오이데 패거리가 주리를 괴롭히는 장면. “뒈져라, 호박아! 병균 같은 게! 쳐다보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p.207) 심지어 남자화장실로 끌고 가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사정없이 짓밟고 걷어찼다.(p.215) ②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는 주리와 고민을 이해 못하는 엄마의 대화 장면.(p.210,211)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아버지와 절망하는 주리.(p.216) 읽으며 주리의 답답함, 절망감이 가슴 깊게 울렸다. 작가의 생생한 묘사에 감탄. ‘미야베 미유키는 학생들의 고민이나 심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구나.’

 

 

3.

 

<솔로몬의 위증>에는 개성만점인 조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들은 다소 늘어지는 흐름에 활기를 불어넣거나,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료코의 여동생인 쇼코와 도코는 귀엽고 깜찍발랄한 조연이다. 료코의 사무관 역할을 맡은 사사키 고로가 집을 방문하자, 쇼코, 도코 콤비는 엄마 등뒤에 숨어 큭큭거리고 “언니 남자친구야?”(2권,p.257)라고 묻기까지 한다. ㅋㅋㅋ 또한, 가XXX와 겐이치가 료코를 방문하자, “언니, 언니, 저 오빠들은 왜 온 거야? 누가 언니 남자친구야?(2권,p.564) 이런다. 언니 남자친구에 관심이 참 많은 콤비^^ 거기다, 방안이 소란스럽자, ”언니! 괜찮아? 설마 덮친 건 아니지?“(2권,p.568) 이런 저질 드립까지ㅋㅋㅋ

 

료코의 사무관 역할을 하는 하기오 가즈미 역시, 사랑스러운 조연이다. 사사키를 좋아하는 가즈미는 오로지 사사키의 관심을 받고, 그와 함께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사사키가 같이 조사를 나가자고 하니, 순간 얼굴을 반짝반짝 빛내며(2권,p.443) 좋아라 한다. 일편단심 사사키만 바라보는 가즈미는 남자들의 로망ㅋㅋㅋ

 

증인으로 출석한 3학년 B반 도바시 유키코도 재미있다. 증인 선서를 하라고 하자, “선서가 뭔데?”(3권,p.78) 이러질 않나, 판사가 방청석을 보지 말고 정면을 보라고 하자, “사람들이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점점 더 흥분한단 말이야. 이노우에까지 그렇게 화난 표정을 지으면 어떡해.”(3권,p.80)라며 혀 짧은 소리로 투정부린다. 방청석도 대폭소! 재판 내내 어리광부리고 촐싹촐싹대는 유키코가 귀여웠던 건, 3권에 등장하는 어느 등장인물보다도 중학생답기 때문이다. 중학생은 중학생다워야 하는거 아냐? (이 부분은 3권 비판과 관련 있음) 

 

 

 

 

 

* 이 리뷰는 어디까지나 1권 리뷰입니다. 평점도 1권만의 평점입니다. 2,3권 리뷰는 전부 비판점만 쓸 것이고, 평점도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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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매화
미치오 슈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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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매화>는 여섯 장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특정 주인공의 여섯가지 에피소드를 이어놓은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독립된 화자가 등장하며 핵심사건은 전부 다른 이야기이다. 물론, 특정 장의 인물이 다른 장에도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변 인물일 뿐이다. 이 점에서 같은 연작인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과는 약간 다르다.

 

2.

 

[제1장. 숨바꼭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독신 아들의 이야기다. 도장가게를 운영하는 아들(도자와 마사후미)은 중학생이던 때를 회상한다. 도자와의 가족은 매년 여름마다 별장에서 휴가를 보냈고, 도자와는 목공예를 하는 '그녀'와 만난다. 사춘기 도자와에게, '그녀'는 첫 키스(p.26)를 선사한 상상속 연인. 하지만, 충격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제2장. 벌레 쫓기]

 

강변 모래밭에서 곤충채집을 하는 두 남매가 있다. 이들에게 역한 냄새를 풍기는 사내가 접근(p.61)한다. 남매는 어떤 행동(p.70 스포일러 때문)을 하고, 깊은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두 남매의 다정한 모습, 서로 아껴주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섬세한 심리묘사가 일품인 작품.

 

[제3장. 겨울 나비]

 

곤충학자를 꿈꾸던 남자가 중학생 때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중학생이던 남자는 강변 모래밭에서 '사치'라는 여학생을 만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사치는 남자를 응원한다. "언젠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곤충을 잡고 싶다고 했지?" "네가 죽을힘을 다해 실행한다면 이 봉지 안에 온 세상 곤충을 다 잡아넣을 수 있어." "곤충만이 아니야. 세상을 전부 넣을 수 있어.'(p.111,112)

 

둘의 사랑은 신기루 같았다. 남자는 사치를 짓누르는 세상의 추악함에 분노하고 사치를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흐른다. 결국 마지막 키스(p.133)를 하고 떠나가는 사치.

 

3장에는 미쳐 설명하지 못한, 수많은 비유와 상징이 가득하다. 또한 어린 남녀의 순수한 연애감정이 고조되었다가, 철저하게 좌절되는 아픔이 아름답고 절절하다. 근래 읽은 작품 중 최고였고, <광매화>의 여섯 장 중에서도 가장 훌륭했다.

 

[제4장. 봄 나비]

 

웨이트리스인 '사치'(p.161)가 화자이며, 이웃 마키가와 할아버지와 손녀 유키가 등장인물이다. 마키가와 할아버지 집에 도둑이 든 사건의 진실, 손녀 유키가 듣지 못하게 된 이유(정확히는 유키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밝혀지면서 주제에 근접한다.

 

[제5장. 풍매화]

 

트럭운전기사 '료'가 화자이다. 료는 병에 걸린 아버지가 입원한 후, 변모한 어머니에게 불만을 품어 왔다. '아버지의 임종이 확실해지자 엄마는 급변했다.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 엄마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아버지에 대한 배신행위처럼 보였다.'(p.202,203) 동생을 챙기고,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료의 누나'가 대견해 보였고, 료가 어머니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좋았던 작품. (풍매화는 바람으로 꽃가루를 운반하는 꽃이다. 이에 대한 서술은 p.210)

 

[제6장. 아득한 빛]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의 이야기. 전과목 만점에 글 표현력이 뛰어난 아사요, 그러나 말도 없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 그러다 들려온 놀라운 소식. 아사요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p.263) 아사요는 개의 젖을 물며 자라는 새끼 고양이를 죽이려 했다. "동물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에요." "자기는 고양이면서 개를 부모처럼 따르거나 개 옆에 누워서 자는 거요."(p.269,270)라면서. 아사요가 한말의 의미는? 왜 고양이를 죽이려 했을까?

 

3.

 

각 장의 화자변화는 <광매화>구성의 백미다. 특정 장에서 주변인물로 등장했던 인물이, 다른 장의 화자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 (역자는 이를 '바톤 터치 하듯이~'라고 표현한다. p.305) 예컨데, 제2장에서 등장한 '곤충학자를 꿈꾸었던 노숙자'(p.75)는 제3장의 화자이며, 제3장에서 가슴아픈 선택을 해야했던 '사치'는 바로 제4장의 화자이다. (사치가 성장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음) 또한, 제4장에서 유키는 어떤 트럭이 치일 뻔 하는데(p.172), 이때 트럭운전기사가 제5장의 화자이고, 제5장의 '료의 누나'는 제6장의 화자이다.

 

4.

 

각 장마다 작가가 이어놓은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재미있다. (이런 구성은 '빈첸초 체라미'의 <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제3장의 화자가 '사치'를 만나는 '강변 모래밭'은 제1장에서 '도자와'가 '목공예 그녀'를 만났던 장소이고, 제2장에서 남매가 곤충채집을 하던 장소이다. 제1장의 핵심소재인 '조릿대 꽃'은 제2장에서도 등장(p.53,54)한다. 또한 제4장에서 '유키가 트럭에 치일뻔한 장면'(p.172)은, 제5장에서는 트럭운전기사 료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제6장은 연결고리가 넘실넘실댄다. '료의 누나가 고추잠자리를 보는 장면'(p.260)이 있는데, 이때 한 소년이 등장해서, 고추잠자리의 생태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 소년은 바로 제2장에서 곤충채집을 하던 남매의 오빠이다. 또한 소년이 이야기하는 '강변에 사는 아저씨'(p.261)는 바로 제3장의 화자이다. 제6장내내 등장하는 도장가게는 제1장의 '도자와 도장가게'이며, 료의 누나가 본 '노파를 업은 남자'(p.279)는 바로 제1장 도자와 마사후미와 그 어머니이다.

 

5.

 

미치오 슈스케는 각 장을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절묘하게 연결했고, 하나의 주제의식을 관통시켰다. 특히 주목한 것은, 부모나 어른들이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1장 도자와의 아버지는 XX행각을 벌여 비극적 사건(스포일러 때문에 이 정도만)의 원인을 제공하고, 제2장에서는 어린 아이를 상대로 못된 짓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제3장에서는 가장 극명하게 부각되는데, 남자(곤충학자를 꿈꾸던)와 사치의 애틋한 사랑이 좌절되고 사치가 고통받는 것은, 바로 사치의 어머니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꽃이나 풀, 나비가 중요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목과 밀접한 관련!) 제1장,제2장의 조릿대 꽃(p.17,53,54), 제2장의 하얀나비(p.96), 네발나비(p.117), 제4장의 토끼풀(p.162)내지 서향꽃(p.181), 제5장의 금방동사니(p.207)내지, 수국(p.231), 제6장의 하얀나비(p.302) 등등.

 

말이 나온 김에, [광매화]라는 제목의 의미를 고민해 보자. 충매화나 풍매화에서 착안한 듯한 이 제목은 '빛으로 꽃가루를 운반하는 꽃' 즉, 곤충이나 바람없어도 빛이 있으면 피는 꽃을 뜻하는데 이는 바로 어린아이들이다. (제1장의 중학생이던 도자와, 제2장의 어린 남매, 제3장의 남자와 사치, 제4장의 유키, 제5장의 중학생이던 료와 누나, 제6장의 아사요) '료의 누나'가 보았던 '하얀 빛'(p.276)은 광매화인 자신을 성장시키는 빛이 아닐까? 하얀 빛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것(p.300)은 '료의 누나'의 성장, 즉 어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런지?

 

6.

 

<광매화>는 성장을 위해 빛을 찾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 과정이 눈물겹고, 슬프지만, 우리들의 광매화는 기어이 꽃을 피워냈다. p.262 하단7의 서술을 보고 느꼈다. '아, 미치오 슈스케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구나.'라고. 누가 내게 미치오 슈스케의 베스트를 꼽아 달라고 한다면, <광매화>, <구체의 뱀> 이 두 작품을 꼽겠다.

 

 

 

 

 

 

* 마지막 문단, 'p.262 하단7의 서술을 보고 느꼈다'에 대해 부연 설명하겠습니다. (<구체의 뱀>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읽지 않으신 분은 패스해 주세요.)

 

제가 저렇게 느낀 것은, <구체의 뱀>과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제2장의 어떤 설정은 <구체의 뱀>의 설정과 동일합니다. 그것도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엄청 가슴 아픕니다. 여운이 일주일 이상 가더라고요. 그렇기에, 미치오 슈스케가 p.262 하단7에서 친절하게 저런 설명을 추가한 것은 -그것도 제6장에서는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명백히 <구체의 뱀>과는 다르게 쓰겠다는 의도입니다. <구체의 뱀>의 절절한 슬픔을 제2장의 남매들이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저는 그것을 희망으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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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기즈 아이트마토프 <백년보다 긴 하루>

 

제가 가진 판은 2000년도에 나온 양장본입니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음ㅋㅋㅋ

 

시간이 좀 되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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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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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월담'이란 묘한 제목에 처음 미스터리를 떠올렸다. 왠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은가? (새로운. 달의(달을). 이야기(이야기하다). / 하얀. 밤을. 걷다.) 거기다 작가는 <통곡>으로 데뷔한 누쿠이 도쿠로. 그러나, <신월담>은 미스터리가 아니다. 뒷표지에는 '연애소설'이라고 써있지만, 단정지을 수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애소설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젊은 편집자(와타베 도시아키)가 절필한 유명작가(사쿠라 레이카)를 찾고, 작가가 갑자기 절필한 이유, 특정작품([어스름 너무 저편])을 기점으로 작풍이 급변한 이유를 듣는 것이 <신월담>의 구성이다. 도시아키가 사쿠라를 찾는 [프롤로그] - 사쿠라의 이야기 [(본문의) 신월담] - 이야기를 들은 후인 [에필로그].

 

이런 구성은 몰입도 면에서 유리하다. 독자가 도시아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에. 또한, 필연적으로 프롤로그와 본문의 신월담 사이에 시차가 생기는데, 만약 <신월담>이 미스터리였다면 이는 상당히 중요한 점이다. 자세히 보자. 57세의 사쿠라가 과거를 회고하고 있으니, 20대 초반이라면 30여년 전 이야기이다. 현재(도시아키가 사쿠라의 이야기를 듣는 시점)가 2010년 10월 20일(p.658,659)이므로 1970,80년대가 이 작품의 실질적인 배경인 셈이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서 하도 호되게 당한지라 주목해 보았지만, <신월담>에선 큰 의미는 없다.

 

(신기하게도 시대적 배경을 의식할 만한 소재도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1970,80년가 실질적 배경이니 뭐니 했지만, 그냥 배경을 2010년으로 놓고 읽어도 문제는 없다. 유일하게 시대적 배경을 추측한만한 소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p.646에서 언급되는 휴대전화의 크기.)

 

2.

 

(1) 운명의 남자, '기노우치 도루'와의 만남

 

<신월담>은 기노우치 도루를 향한 고토 가즈카의 미묘한 심리양상, 둘의 관계가 핵심이다. 기노우치란 인물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작품의 메시지를 꿰뚫을 수 있다. 

 

기노우치에 대해 자세히 보자. 외부적으로 보이는 기노우치는 사장이란 지위를 이용해 여직원들을 유혹하고, 가지고 놀고, 바람을 피는 카사노바의 전형이다. 오죽하면 조카(야스하라 고스케)가 "사장님(기노우치)은 여자를 휘두르는 스타일 ... 처음에는 친절할 거야. ... 시작할 땐 엄청 공을 들이고 그러다 여자가 자기한테 넘어오면 그때부터 마음대로 굴지. 언제나 그런식이다 보니 이젠 웃음밖에 안 나온다니까."(p.100)라고 할 정도니. 거기다, 큰 키에 준수한 외모, 폭풍매너까지.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할만한 인물이다.

 

가즈코도 선배 직원인 야마구치에게 '사장이 여성편력이 심하기에 조심하라'는 충고를 받는다. (p.57) 하지만, 가즈코는 자기의 못난 얼굴에 체념하고는 "걱정은 마세요. 사장님과 골치 아픈 관계로 발전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p.58)라고 한다. (가즈코의 자기비하적 태도는 하나의 테마로 후술)

 

기노우치는 친절하고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해 주었다. 가즈코에 대해서는 얼굴은 예쁘지 않을지라도, 몸매가 아름답다며(p.67) 충분히 매력적이라 하고, 독서가 취미인 점을 칭찬해 준다. 가즈코는 처음듣는 칭찬에 '황홀경에 빠지고'(p.67) 자신감 내지 미래를 대면할 용기까지 얻는다. 자기의 못생긴 외모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장점을 찾아주는 기노우치에게 가즈코는 서서히 빠져든다.

 

"기노우치는 나를 인정해 주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가 내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내 모든 것을 긍정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기꺼이 그런 존재가 되어 준 기노우치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마웠다. 설사 내일 당장 우리 관계가 끝난다 할지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기노우치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겠다고 맹세했다."(p.95)

 

(사실, 기노우치 분석만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울 수 있고, 작품 전체를 조망해보면 도리어 저것이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그 정도로 중요인물- 또한, 내 주변에 기노우치와 유사한 인물이 있기에 처음에는 일일이 비교해 가면서 서술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이 정도만 하겠다. 너무 길어져서 지쳤음-_-)

 

(2) 가즈코의 외모컴플렉스와 성형

 

가즈코의 자기비하에 가까운 외모컴플렉스는 읽는내내 가슴 아팠다. 혹자는 "참 답답한 여자네. 외모에 괴로워할 시간이 있으면 다른쪽으로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이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즈코와 마찬가지의 고민을 해왔던 나는 가즈코를 이해할 수 있다. 작품곳곳에 자기비하가 있어 일일이 페이지를 나열하기 어렵지만, 그 중 자기를 '된장국 같은 여자'라고 한 부분(p.107)이 기억에 남는다. (자세히 소개하진 않겠다.)

 

외모컴플렉스의 원인 중 하나는 볼에 나 있는 사마귀이다. 이에 대한 가즈코의 이야기를 보자. "사마귀는 어릴 적부터 내 외모 컴플렉스의 원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나만의 결함. 이것 때문에 유치원 때부터 철없는 남자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 상대방의 시선이 한순간이라도 사마귀로 향하는 것 같으면 곧바로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p.147)

 

가즈코는 외모컴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형을 선택한다. '악의 근원'으로 까지 여겼던 사마귀를 먼저 떼어내고(p.157), 상꺼풀 수술을 받고(p.175), 얼굴 전체를 고친다.(p.245) 스스로 넋이 나갈만큼 아름다운 미녀로 변모한 가즈코. 이후 p.251부터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보는 듯, 미녀 가즈코를 둘러싼 극적변화와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한 것은, 가즈코가 처음 성형을 결심하고 부모에게 허락을 받는 장면(p.154-6), 얼굴 전체를 뜯어고친다며 수술비를 요구하고, "날 때부터 예뻤던 엄마가 내 기분을 어떻게 아냐"며 갈등하는 장면(p.236-242)이다. 고민하는 가즈코, 그런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감정이 뭐낙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작가가 이런 것을 어떻게 형상화 했지?'란 의문(좋은 의미의.)이 들 정도였다.

 

가즈코의 성형은 두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가즈코가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점(p.269 참조) 둘째, 가즈코가 소설을 쓰는 이유 / 작풍이 변한 이유/ 갑자기 절필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 읽은 후에야 '아하, 결국 이거였군'하고 깨우치게 되지만 말이다. (성형한 이유 = 소설을 쓰는 이유 = 작풍이 변한 이유 / <-> 정반대 의미에서 = 갑자기 절필한 이유. 결국 모두 같은 이유이다. 후술함.)

 

(3) 고교동창 도키코의 존재

 

도키코는 가즈코의 유일한 친구인, 고교동창이다. 도키코는 이후 친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행각을 벌이는데, (사이코패스가 연상될 정도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이 정도로 하고, 다른 차원에서 하나만 이야기 하겠다.

 

도키코와 관련된 일화가 소개되는 부분(p.192)이 있다. 고등학생이던 가즈코와 도키코는 여름방학 특강을 들을 것인지 고민한다. 의외로 도키코는 "난 안들어. ... 내년에는 못 노니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번 방학에 실컷 놀아 두려고."(p.194)라고 한다. 이에 가즈코 역시 여름방학 특강 대신 아버지가 사 둔, 세계문학전집을 읽기로 한다. 방학이 끝나고 가즈코는 의외의 이야기를 듣는다. 특강을 듣지 않겠다던 도키코가 버젓이 특강을 들었다는 사실. 전후사정으로 보아 가즈코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부분은 구성상 아주 훌륭하다. 과거의 과거란 '이중의 회고'를 통해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소 평이하게 이어지던 사쿠라의 이야기는 활력까지 얻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런 장면이 더이상 없다는 점이다. p.192가 전부다. 개인적으론 본문의 신월담 사이사이에 도시아키가 등장하는 현재나, 가즈코가 회상하는 과거(정확히는 과거의 과거)를 삽입해, 과거의 과거, 과거, 현재를 넘나드는 입체적 구성을 시도하는 것이 나아보인다. 그렇다면 왜 누쿠이 도쿠로는 우직하게 본문의 신월담을 이어갔을까?

 

이런 추측을 해본다. 누쿠이 도쿠로가 의도적으로 추리소설적 요소를 배제한 것이 아닐까?라는. 철저하게 추리소설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신월담>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는 느낌. 사실, <신월담>에는 추리소설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도키코는 '어떤 사건'(p.420 스포일러 때문에) 이후 더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도키코를 계속 등장시키면서 가즈코와 도키코의 학창시절에 숨겨진 비밀(이는 필자의 가정임)을 부각시키는 구성이 가능하고, 사쿠라의 절필의 이유도 고스트라이터인 쌍둥이 자매가 존재한다던지, 사쿠라와 기노우치가 얽힌 살인사건이 원인이라던지, 뭔가 극적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는 비판의 대상이 전혀 아니다. 애초에 추리소설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한 작가에게, 왜 추리소설적 요소를 부각시키지 않았지? 라고 따지는 것은, 웃기지 않은가.) 

 

(4) 갑자기 절필한 이유, 작풍이 급변한 이유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사쿠라가 절필한 이유 / 작풍이 급변한 이유 / 소설을 쓰는 이유 / + 성형한 이유까지 모두 같은 것이고, 이는 (1)에서 이야기한 사쿠라와 기노우치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 사쿠라의 고백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기노우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싶었다. ... 아쓰코(기노우치의 부인임)에게 밀려 우선순위를 빼앗기지 않도록 끊임없이 소설을 썼다. ... 나는 자리에서 밀려났다. 기노우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p.656)

 

'끝났다. 기어이 끝나 버렸다. 나는 기나긴 꿈을 꾸고 있었다. 기노우치와 함께 살아가는 꿈. 꿈은 깨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꿈을 꾸어 왔으니 행복은 그것으로 족했다. 꿈속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소설을 쓰고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 모두가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더는 소설을 쓰지 못한다. 나를 창작의 세계로 인도해 줄 존재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p.656)

 

(5) [어스름 너머 저편]의 탄생

 

[어스름 너머 저편]은 고노이케가 사쿠라에게 고백(p.500,1)하고 기노우치가 사업을 위한 것이라며 '어떤 결정'(p.522)을 하는 과정에서 탄생(p.530)한다. 사쿠라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자신을 속박하던 굴레를 하나씩 벗겨버린다. 기노우치라는 굴레. 얌전한 소설이라는 굴레.

 

'... 내가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정념이 휘어지거나 축소되지 않도록 가능한 한 그 모습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 것. ... 독자의 감정을 집어삼킬 정념을 활자로 옮겨 낼 작정이었다. (중략) 좌우간 나는 어떤 속박도 원하지 않았다. 속박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눈앞에 장애물이 있다면 쓰러뜨리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고픈 충동이 일었다.'(p.528,9)

 

3.

 

<신월담>은 추리소설적 요소를 배제하고, 일방과 다른 일방의 미묘한 관계양상, 가짜 달이 되어버린 인물에 주목한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여성화자의 세밀한 심리묘사에 성공하는데, 이는 누쿠이 도쿠로가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은 어느 특정 性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난 사쿠라에서 대학 새내기때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설래고, 조바심내고, 가슴 아파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성화자를 통해 남성,여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을 그려냈다는 것이 바로 <신월담>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다.

 

소설 속 사쿠라는 작가로써 한차원 도약하기 위해, 자신의 틀을 부수기 위해, 고뇌한다. 이런 사쿠라의 모습에서 누쿠이 도쿠로를 찾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누쿠이 도쿠로가 갑자기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을 쓴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틀을 깨기위한 노력은 눈물겹지만, 아름답다. <신월담>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 '新月譚' (새로울 신 / 달 월 / 이야기 담) 의미는?

 

이는 <신월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인용하는 걸로 답을 대신한다.

 

[달은 바로 나였다. 사쿠라 레이카는 큰 상의 후보에 올라 쏟아지는 주목을 받지만 그 실체인 고토 가즈코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녀 작가라는 허구의 옷을 뒤집어쓴 나. 기노우치와도 남몰래 만나야 하는 나. 고토 가즈코를 똑바로 봐 주는 존재는 이 세상에 기노우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악착같이 기노우치에게 매달렸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 달이 없는 새로운 달, 신월의 밤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p.557)

 

 

* 중요하지만,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 

 

- 사쿠라가 작가로써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 고뇌하고, 결국 해답을 얻는 과정(p.494,495)
- 편집자 다카이와 작가 사쿠라의 관계
- 고노이케와의 만남(p.464),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 이때 미묘하게 변하는 기노우치에 대한 감정
- 가즈코를 응원해주고, 필명까지 지어주는 기노우치(p.334) (이 부분은 내 경험과 연계해서 자세하게 쓰고 싶었다. 나도 가즈코처럼 열렬한 응원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 기노우치의 여성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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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품절


 달은 바로 나였다. 사쿠라 레이카는 큰 상의 후보에 올라 쏟아지는 주목을 받지만 그 실체인 고토 가즈코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녀 작가라는 허구의 옷을 뒤집어쓴 나. 기노우치와도 남몰래 만나야 하는 나. 고토 가즈코를 똑바로 봐 주는 존재는 이 세상에 기노우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악착같이 기노우치에게 매달렸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달이 없는 새로운 달, 신월의 밤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5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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