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편대를 짜서 함께 날아가는 비행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비행기?"
"네 어떤 비행기가 고장 나거나 조종사가 부상을 입어 비행이 불가능해도 동료가 대신 조종해줄 수는 없죠. 옆으로 다가가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게 고작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실질적으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죠. 아무리 격려하고 응원해도 고장 난 기체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조종사가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비행기를 날게 하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거 참 삭막한 사람이구먼."
"인생은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설령 기체가 고장 나도 남의 비행기를 옮겨 탈 수는 없고, 대신 조종해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350,351쪽
"어머니, 그건 제가 아끼던 모자였어요.
그날 얼마나 분했는지 몰라요.
갑자기 바람이 불었거든요.
어머니, 그때 건너편에서 젊은 약장수가 다가왔죠.
남색 각반에 토시를 낀.
제 모자를 주워주려고 무척 애를 썼죠.
하지만 도저히 주울 수 없었어요.
깊은 계곡이었고, 풀이 어깨까지 무성하게 자라 있었으니까요.
어머니, 그 모자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 우리 곁에 피었던 말나리꽃은
벌써 저버린 지 오래겠지요.
그리고 가을에는 회색 안개가 그 언덕을 뒤덮고
그 모자 아래서는 밤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렸을지도 몰라요.
어머니, 분명 지끔쯤
오늘 밤 그 계곡에는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겠죠.
오래전 반들반들 빛나던 그 이탈리아 밀짚모자와
그 안에 제가 쓴 Y.S.라는 머리글자를 감추듯, 조용히, 쓸쓸하게."-495,4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