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고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있을지도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한 남자가 있다. 나탕 팔. 그는 북극 빙하지대 잠수작업도중 사고를 당했고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의혹의 연속이다. 정체불명의 스트룀 박사(p.33),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상한 분위기, 나탕의 목숨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사내들(p.43), 나탕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는 도대체 어떤 비밀을 간직한 걸까?

병원을 탈출한 나탕은 말라테스티아나 도서관장 '애실리 우즈'를 만나고, '엘리아스의 필사본'(p.84)에 대해 알게 된다. 엘리아스의 필사본을 보고 나탕은 뭔가 강렬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막의 모래, 어린아이, 고양이등. 양자의 접점은 무엇인가? 한편,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우즈의 옛동료를 통해 신원조회를 해보지만 나탕의 흔적은 전혀 없다. 이제 남은 실마리는 잠수작업을 주도했던 히드라사社를 찾아가는 것 뿐.

<피의 고리>를 읽으며 가장 놀란 것은 방대한 스케일이다.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제1부)에서 시작해 프랑스 생클레르, 드골공항(제2, 4부), 런던(제3부), 이집트, 수단(제5부)을 넘나든다. 다 읽고 나면 마치 세계일주를 한듯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특히 북극의 빙하지대와 수단 사막의 강렬한 대조는 인상적이다. 이런 방대함은 10년 이상 전 세계를 누비며 다큐멘터리 제작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제롬 들라포스의 경력이 바탕이 된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의 배경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이 있다면 답은 전 세계, 지구 전체이다.

노르웨이 롱예르비엔으로 향하던 나탕은 '로다'라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난다. 어디선가 만난듯한 친근함을 느끼는 나탕, 놀랍게도 로다는 나탕을 알레상드로라 부른다. 나탕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이들은 어떤 관계였을까? 그리고 잠깐 이어지는 나탕과 로다의 러브모드. 나탕은 엘리아스의 필사본, 로다의 증언, 경험 등을 종합하여 사건을 중간정리(p.204)한다. '1693년' 엘리아스, 폐와 뇌가 사라진 시체발견, '1994년' 대학살이 자행되던 자이르에 있던 나탕, '2002년 2월' 폴 익스플러러호, 엘리아스의 필사본과 상태가 동일한 시체 3구 유기. 시체 인양에 참가했던 의사와 선원 의문사. '2002년 3월' 세 달사이 나탕을 살해하려는 시도 두 차례 있었음.

<피의 고리>의 백미를 꼽으라면 두 장면을 꼽겠다. 첫 번째는 나탕이 르완다 카탈레 난민캠프인근의 '악마가 산다는 지하동굴'을 조사하는 장면(p.280이하), 두 번째는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악의 근원 '피의 결사단'의 본거지 '암흑의 수도원'으로 향하는 장면(p.465이하)이다. 모두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핵심중의 핵심인데다, 긴박감이 절정에 달하기 때문. 아무튼 나탕은 카탈레 인근 지하동굴 참사에서 모든 사건의 열쇠를 발견(p.313)한다. (스포일러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겠다. 읽어보시길) 그랬군.

한편, 우즈는 나탕의 지문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한다. 나탕의 어린 시절 이름은 '쥘리엥 마르텔', 프롤로그에 벌어졌던 사건은 역시 나탕의 어린 시절과 관련 있었다. 양호선생 뮈르노를 통해 밝혀지는 어린 시절, 힘겨운 가족관계. 한편, 악의 근원으로 추정되는 자선단체 '원 어스'의 비밀과 창립자 압바스 모르쿠스의 비밀도 서서히 드러나고, 나탕은 최후의 결전을 위해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 '암흑의 수도원'으로 향한다. 이 작품의 백미중 백미. (압바스 모르쿠스와 나탕의 만남에서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의문은 속시원하게 해소된다.)

제롬 들라포스의 데뷔작, <피의 고리>는 욕심이 많은 작품이다. 전 세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스케일, 실감나는 대추격전(p.43이하, p.181이하), 저널리스트 다운 생생한 배경지식(바이러스, 기억상실, 난민구호활동 등)까지, 놀라운 것은 저것이 단순히 욕심에 머무르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제롬 들라포스는 한편의 작품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흔히 말하는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소설'을 찾는가? 고민할 필요 없다. <피의 고리>를 읽는 순간, 당신의 무더위조차도 행복하게 느껴질 것이다.

 

* <피의 고리>는 끝없는 찬사를 들어 마땅한 작품이지만, 화려한 수식은 최대한 배제했다. 제롬 들라포스의 매력, 직접 느껴보시길.

* 제롬 들라포스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저널리스트 출신이라는 점부터, 작품스타일까지. 실제 제롬 들라포스는 선배작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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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1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연상시키는 작품인것 같네요. 물론 책의 스케일이 훨씬 방대한것 같지만요. 리뷰만 읽어도 얼핏 어려운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 들어요^^

쥬베이 2008-06-16 18:14   좋아요 0 | URL
아악!!!!! 칼리님 보고 싶었어요^^
칼리님 서재에 몰래몰래 가보곤 했는데, 바쁘셨나봐요~

네, 배경이 굉장히 방대해요. 북극부터 사하라사막까지 다나옴ㅋㅋㅋ
그런데 정말 재미있답니다^^ 추천 추천!!ㅋㅋㅋ

Apple 2008-06-1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오늘 샀어요..^^책 받아보니 꽤 두툼해서 왠지 돈을 뽑은듯한 느낌이..=_=;푸핫...지난번에 쥬베이님 서재에서 본 그랑제의 "황새"도 함께 샀답니다.흐흐흐흐흐..^^
요즘 프랑스 스릴러 굉장하죠~?

쥬베이 2008-06-20 01:43   좋아요 0 | URL
시즈님이다!!!ㅋㅋㅋ
맞아요. 요즘 막심 샤탕,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요 들라포스까지 대단합니다^^
그랑제 >> 들라포스 >> 샤탕 이라고 하고 싶어요~ㅋㅋㅋ
그랑제 작품은 뭐든 걸작!! <황새>도 짱이에요ㅎㅎㅎ

lazydevil 2008-06-2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여기저기서 대단한 이야기꾼들이 불쑥불쑥 등장하니 정신이 없네요. 관심목록 추가 또 하나요!

쥬베이 2008-06-23 07:32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책을 읽을때마다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
블랙펜클럽은 다 괜찮으니 읽어보세요^^

칼리 2008-06-2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 저도 보고 싶었어요^^
저는 쥬베이님 서재에 몰래몰래가 아니라 대놓고 왔었어요~~~ 제 서재는 안가도^^

쥬베이 2008-06-24 15:57   좋아요 0 | URL
칼리님!!!^^ 칼리님이 계시기에 알라딘을 떠날 수 없어요ㅋㅋㅋ
정말 고맙습니다. 칼리님 안계시면 알라딘 서재 할 맘도 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