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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대단하단 말밖에 할 수 없다. 환상적인 터키의 분위기,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얽혀 있는 치밀한 구성, 흥미진진함, 나아가 철학적 사유까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앞에서 '당대의 이야기꾼'이니 하는 수식어는 우습게만 느껴진다. '터키 독자들이 꼽는 최고의 작가'라는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그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한국에도 그를 최고로 꼽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그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의 절묘한 구성은 경이롭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등장인물사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한 사건이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어떻게 관찰되는지, 저자가 펼쳐내는 몽환적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구성.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알리바즈는 우준 이흐산 에펜디의 집이 예니체리들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p.86)한다. 여기에선 제3자격인 알리바즈의 관찰만이 제시될 뿐, 그 이상의 설명은 없다. 읽는 입장에서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넘기게 된다. 그런데, 우준 이흐산 에펜디의 아들 '뵌야민'이 땅굴부대에서 활약하다 사고를 당한 직후 서술(p.117)에서 왜 예니체리들이 뵌야민 아버지의 집을 파괴했는지 이유가 밝혀진다. 결국, 이 사건은 이후 이어지는 뵌야민 행적의 근본원인이 된다. 한편, 뵌야민이 첩자 쥘피야르에게 받게 되는 '의문의 동전'은 변장의 달인인 도둑 '흔즈르예디', 정보기관의 수장 '에브레헤'등과 연관되어 이야기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치밀한 구성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신비한 구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페이지 전부를 채울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줄거리를 요약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일단 등장인물 면면을 살피는 것으로 만족하자. '아랍 이흐산' 뵌야민의 진외종조(아버지의 외삼촌이라 함)인 쾌남아, '우준 이흐산 에펜디' 소설의 주인공격인 인물로 세계지도를 만들려고 한다. (소설의 끝부분과 관련 '우준 이흐산 에펜디'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게 있다. 추후 언급) '알리바즈' 도둑질을 하다 아합 이흐산에게 붙잡힌 아이. 아이들을 이끌고 '아이들의 반란'이라 불리는 사건을 주도하게 된다. '뵌야민' 우준 이흐산의 아들. 땅굴부대에서 활약하다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는다. 사실상의 주인공. 이외에도 '쥘피야르', '와르다페트', '쿠베릭', '흔즈로예디', '에브레헤'등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넘쳐난다^^
이런 염려도 할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성이 혹시 소설을 산만하거나 지루하게 하진 않을까?'라는. 전혀. 터키 최고의 작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를 무시하는 걱정이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이후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이슬람 특유의 이국적 분위기와 놀라운 이야기전개에 빠져 버린 것이다. 생소했던 등장인물의 이름조차도 읽어 갈수록 친근해졌을 정도니…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는 '우준 이흐산 에펜디'가 아들 뵌야민에게 보내는 편지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부분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가 선보인 독특한 구성의 절정이자 마침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편지에는 '우준 이흐산 에펜디가 뵌야민에게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라는 책을 주었다'고 나온다. 저 책은 지금껏 우리가 읽었던 이 소설과 '같은 소설'이다. 이제까지 소설 속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던 두사람이 소설 밖으로 나와 소설자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반전'처럼 놀라운 이야기. 나아가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두사람의 실제 경험인지, 꿈인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난 뵌야민의 마지막 모습을 볼 때, 이 환상적인 작품은 아버지-우준 이흐산 에펜디는 저자의 다른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인생이야기이자, 보여주고 싶은 세계이다. 그것이 꿈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그 미지에 세계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헤쳐왔다는 사실,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 그것이다.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대단히 매력적인 책이다. 그 이상의 수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작품이 포괄하는 흥미로움, 문학적 완성도, 몽환적 분위기등은 격을 달리 한다. 왜 터키 독자들이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를 최고의 작가로 꼽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이 작품의 제목을 듣고도 읽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 이난아 역자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난 터키어도 모르고, 원문을 읽을 능력도 없다. 하지만 느꼈다. 이난아님께서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를. 깊이있는 각주덕에 터키 고대어, 관직명등을 이질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문장은 얼마나 부드럽고 깔끔하던지…이런 멋진 작품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던 건 이난아님의 뛰어난 번역덕이다. (뒤에 실린 이난아님의 글을 보니 '정확한 작업을 위해 저자와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