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얘기 서재에 자주 썼지만
10여년 전 처음 알고 나서 아주 좋아했던 책이다. 세 권 갖고 있다. 하드커버 하나. 페이퍼백 하나. 독일어판 하나.
논문을 무슨 주제로 쓰든 아도르노 책이 (가급적 <부정변증법>) 반드시 참고문헌에
포함되게 쓰자. (....) 이런 다짐이 어쩌다 저절로 든 적도 있다. 그 다짐 후 쓴 (그냥 뭐 한 세 편 되나) 논문에 전부
아도르노 책이 포함되었다.
저 부제, <훼손된 삶에서 나온 성찰>
이거 아주 너무 좋음. 세상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걸 하는 누군가도 있는 것이다.
이걸 처음 읽던 때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이 책과 그 시절의 삶은 서로 녹아 있다.
여기서 저기로 바로 갈 수 있다.
이 책에 쓰인 세 개의 제사 중에, 다 좋지만 그래도 최고는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Where everything is bad, it must be good to know the worst).
논문도 부지런히 써야겠지만 논문 아닌 글도 쓰고 싶은데
논문 아닌 글에서는 가장 먼저 저걸 제목으로 써야 한다는 작정을 본격적으로 올해 하였는데 ㅎㅎㅎㅎㅎㅎ 이것에 대해 내가 나에게 올해의 작정상을 주려는 참이다.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제목이 다함. 아니 제목이 다하는데 뭘 써?
이 제목으로 쓰고 싶어지는 모두가 쓴다면 좋을 거 같다.
2,30년뒤 누군가의 논문 참고문헌이 이런 식으로 쓰인다면 보기에 아주 좋.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김--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나--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박--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이--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정--
존재하는 작품의 제목을 차용하는 건 표절이 아니고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저작권 법의 세계도 복잡하고 오묘한 듯. 암튼 누군가의 논문 참고문헌이 위와 같이 작성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었. 아직 저 제목은 책으로는 (책이 아니라면 하여튼 '작품'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 일단 하나가 존재하기 시작하자 다수가 존재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 그랬으면 좋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