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에서 놀라운 면모 하나가 

믿음에 "지적 품위" 이것을 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 

intellectual respectability. 듣는 강의에서도 (관련 주제 이것저것) 이에 대한 논의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경이로운 결실들이 있었다는 것. 


사실 지금 이 세계에서도 

신학만이 할 수 있는 게 있겠구나, 있는 거구나는 생각도 든다. 

철학으로는 역부족. 신학이 필요하다. 신학이 필요한 시간. 

인간의 어떤 불의, 어떤 우매함은 신학으로 온전히 이해되고 규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이걸 알았던 이들에게는 말이 필요없게 당연한 것일 듯하다. 늦게 알았다면 놀라며 알게 되는 것. 

그런지 아닌지는 실제 신학의 세계로 가보아야 알겠지만 지금 (슬로터다이크의 예가 있기도 하고) 

그럴 거 같다 쪽 된다. 


이것저것 서재에 쓰고 싶고 나눠 보고 싶은 생각들이 쌓이고 있는데 

얼마간 쓰지는 않고 읽기만 하면서 (부지런히 서재글들 읽고 다니면서) 페이퍼에 집중해야할 거 같다. 

"Is it 이직 yet?" - ing. 이것의 시간. (....) 좋은 날이 오게 하기 위한 침묵의 시간.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릴 ;;;;; 수도 있겠지만 돌아 옵니다. 

물론 그 전에, 돌아올 때가 아닌데 올 가능성 매우 높;;;; ㅋ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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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가 이 책 불어판을 위해 쓴 서문이 있다.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든 그에 빛과 찬란함을 보태는 화가의 시선, 현대 화가의 시선과 만난다. 그의 눈은 전설이 품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을 투시한다. 지난 시대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시대를 보는 우리 시대의 눈이 여기 있다. 생명의 여명기, 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강인한 나무처럼 자라던 시대, 인간이면 바로 초인이기도 했던 시대. 이 시대 사람들을 그가 우리를 위해 발견하고 보여준다. (...) 샤갈의 그림 속에서, 성경은 초상화집이 된다. 이 책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한 가족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형식의 창조자이며 천재인 화가에게, 천국의 (Paradise)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작업이란 어떤 특권일 것인가! 그러나, 볼 줄 알며 보는 걸 사랑하는 눈을 가진 이에게, 모두가 천국이다. 샤갈은 세계를 사랑한다. 세계를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더, 세계를 그릴 줄 알기 때문이다. 천국이란 아름다운 색깔들을 갖는 세계다. 새로운 색을 발견한다는 것, 화가에게 이것은 천국의 기쁨이다.  


그 기쁨과 함께 그는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응시한다. 그는 창조한다. 모든 화가에게 그의 천국이 있다. (....)" 






불어판 표지로는 이런 게 있는 거 같다. 


바슐라르가 쓴 이 서문, 거부감도 들고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었는데 

종교,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하고 

심오하고 진실하다는 ㅎㅎㅎㅎㅎ 감탄이 일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일인가요, 부정직하게? 부정직한 거 아닌가요. 신과 성경과 

천국을 이렇게 말한다는 건. (....) 이런 쪽이었다가 

읽고 생각하고, 침묵할 줄도 알게 되는 쪽으로. 

샤갈의 그림들에 바슐라르가 경탄하며 쓴 논평들이, 전엔 잘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이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끔 자극한) 

슬로터다이크에게 감사할 일이다.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열린 태도가 해방시키는 정신의 면모들도 있는데, 선, 면, 색의 체험도 

그에 속할 것이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의 책 이미지가 다르게 보인다. 

물론 세속주의가 수행하는 해방도 있을 것인데, 종류가 다르겠으니 

세속주의가 해주는 해방도 추구하고, 종교에 열린 태도가 가능하게 하는 해방도 추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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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덕질 위해 필요한데 

정영란 샘 번역하신 건 그 이유만으로도 필요하니 민음사 판부터 미리 사두어야지. 해서 알라딘 중고 나온 걸 

주문하는데, 이미 구입한 책이라고 알라딘이 알려주었다.


오늘 찾아냄. 

심지어 조금 읽었던 책임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읽을 시간은 없지만 기대되는 책. 찾아내고 보니 조금 읽던 동안 답답하다 느꼈던 거 같은 기억이 있다. 

가톨릭 "영성"이라 불리는 그 요소에 반응하지 못함. 이제는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The Name of the Rose: Umberto Eco, William Weaver: 9780151446476:  Amazon.com: Books



기독교 역사에서 뭘 보았고 생각했냐에 따라 

아주 달라질 책 대표로 <장미의 이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도 미래에 대한 어떤 압박도 없는 시간, 떠나온 세계의 불행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는 시간 ㅎㅎㅎㅎ 하튼 그런 시간에 커튼 치고 스탠드 켜고 읽으면 너무도 좋을 거 같음. 






이 책은 성인전인데 

프린스턴 출판부에서 나왔고 

...... 극히 일부 보았지만 정말 재미있.; 

독특하다. 위인전도 (미화하거나 영웅화하는)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전기도 아닌데 

동시에 그 둘 다의 요소를 가지면서, 지금까지 나는 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서사. 성인전 읽고 나서 

성인들을 시시때때로 인용하는 사람이 되어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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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lando: A fantasy or fairy tale? | theneedofanescapade




세계로부터 도망쳐라. 

라틴어로는 fuga mundi. 


초기 기독교의 수도주의 (monastic movement), 로마라는 세속 권력에 기독교가 편입되는 걸 반대했던 이들의 모토. 

사막으로 갔던 이들의 모토. 


이게 바슐라르의 모토이기도 하다. 

그의 시학에서는 정말 그렇다. <짜라투스트라>에서 "친구여, 너의 고독으로 도망쳐라" 이것에 바슐라르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논평할 수 있었다는 것.  


여기서 가장 분명히 그렇겠지만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바슐라르가 보여주는 기독교 전통의 영향이 있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는 면모들이 있다. 

아주 독특한 맥락에서이긴 하지만 위계를 긍정적으로 말한다는 것도 ("위계주의"가 될 정도로), 아마 가톨릭의 영향일 것이다. 




울프의 <올란도> 상찬하면서 

올란도에게 긍지를 주는 참나무 이미지 분석할 때 

"그 자부, 그 긍지를 알려면 너는 너의 삶에서 한 웅장한 나무를 사랑한 적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말씀 하시는데 

그 자신이 사랑했을 그 나무는 그가 다녔던 성당의 ;;;;;; 나무였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다녔던 성당엔 

그런 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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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James: In the Maelstrom of American Modernism: Richardson, Robert  D.: 9780618919895: Amazon.com: Books




아래 포스팅은 윌리엄 제임스 얘기로 가려던 것이었. ;;;; 

윌리엄 제임스와 니체를 비교하는 에세이를 슬로터다이크가 쓰기도 했고 

윌리엄 제임스는, 적극적으로 종교를 가질 수는 없는 처지에서 (계몽된 사람이라면) 

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종교를 대신했던 사상가.... 같은 말을 거기서 한다. 



유신론자 시절, 70년대말-80년대초 ;;;; (와 어르신....) 

본당 신부님이 지식인이었다. 비슷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면 바로 떠올릴 거 같다. 

우울한 지식인 성직자의 삶. 나중 주교님 되심. 나름 국내 천주교 내에서 중요한 인물 되심. 


그런데 그 시절에도 온전히 유신론자는 아니었다는 게 아쉽다. 

신부님은 아니었는데 (어린이의; 눈으로도 알아보이던 그의 그.... 아이러니를 알던 정신.; 복잡함에 충실하게 진실을 전할 수 없을 거라면 진실을 감추기를 택하던 정신.... 하튼 그런 것) 다른 분들은 오락가락하셨다. 도대체 온전히는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 차라리 신부님이 모두를 맡고, 응 여긴 너희들의 이해 능력 밖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교리를 가르쳤다면 좋았을 것이다. knowing and believing, 이것에 대해 그 때부터 알았을 것이다. 


무엇도 온전히, all the way down, 이렇게는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회한이;;;;) 드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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