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어쩌다 발견한 책으로 

이런 책도 있다. 


library genesis에 pdf는 있는데 

아마존 중고는 초고가이고 

국내 도서관 중 소장 도서관은 없는 듯. 


제목에서 Notes가 

<계몽의 변증법>에도 책 말미에 있는 Notes and Sketches, 거기 실린 글들보다 

다 아주 더 짧은 편이다. 1문단. 길어야 한 3문단? 


유튜브에 있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생전 녹화 (영상 녹화) 중 했던 말들 클립들 모은 동영상에서 

"on pessimism"이라고 내가 쓴 글이 출전인데........... 라며 호르크하이머가 자기 공책에서 읽는 장면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실은 어쩌다 발견한 게 아니고 호르크하이머가 쓴 "on pessimism"을 찾아 별 검색을 다 하다 

찾은 책. 이 책에 "on pessimism"이 실려 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비교하는 노트가 있다. 

둘을 비교하다가, 이런 얘기를 한다. 비관주의가 성립하려면 

비관주의가 부정하는 그것이 실재함을 말하면 된다. 세계의 아름다움이라거나, 인생의 경이로움. 

니체는 바로 그것을 했다. 그것으로 그는 쇼펜하우어가 틀렸음을 말했다. 니체에게, 쇼펜하우어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비범한 통찰이 있었다. 그런데 누가 이것을 해명할 것인가. 니체의 저술에 더욱 근본적인 비관주의가 있다는 것을? 어쩌면 철학이라 불리는 그건 세상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오직 신화만이 있을 것이다. 




저런 얘기. 

지금 대강 막 원문 확인 없이 썼을 뿐이긴 한데 

사실 원문에서도 .... 좀 오락가락 한다는 감이긴 했다, 이거 도대체 앞뒤가 연결이 되기는 하는 겁니까? 

그럼에도 강하게 와닿던 그것. 세상에 철학이라는 건 없는지도 모른다. 오직 신화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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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말에서 9월초까지 아마존에서 중고 주문했던 책들 10권. 

며칠 전 도착했다. 그 중 이 책도 있다. <원자탄 만들기> 읽으면서, 그리고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전작주의 해야겠다 했던 리처드 로즈의 책. 


아주 조금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조금 읽은, 앞의 몇 페이지에 한정하여, 

지리멸렬한 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이면서 이런 감이 없는 책은 없을 거 같다) 

독자에게 강력히 쓰기 욕망을 자극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삶을 시작하기 전 

내게 분노가 있었어. 그 분노를 표현한다면 이 세계가 파괴될 거 같았어. : 이런 문장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왜인지 분명치 않은데, 읽는 사람을 자극한다. 어쨌든 나는 깊이 자극되었다.  



논문의 진도는 더디지만 강의록은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쓰고 있어서 

언제나 피곤하고 언제나 단 것, 아니면 탄수화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태. 고탄고당 하게 됨. 

오뚜기 냉동피자. 살던 중 처음 주문하여 아침 제외, 점심, 저녁으로 먹음. 아니 이거 맛있잖아요.  

오란다. 아시나요 오란다? 90년대 이후 출생이라면 구글이미지 검색으로나 알게 될 가능성 큰 오란다. 

오뚜기 피자의 디저트로 오란다. 아침은 켈로그의 모카 그래놀라로 고탄고당. 모카 그래놀라. 이것이 

(파맛첵스를 먹어보긴 해야겠지만) 내가 먹어본 최고의 시리얼이다. 


그러면서 6시, 7시에 자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11시, 12시. 

이렇게 일주일 정도 지난 거 같은데 오늘은, 내 이 고탄고당의 사슬이자 6시-11시의 사슬을 끊는다 작정하고 

새우깡 + 기네스 오리지널... 흡입하는 중이다. 최소 9시 반까지 버티면서 달립. 달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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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으론 

음대나 미대, 예술 전공 학생들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과학, 의학, 전공 학생들과 비교해서 

확연히 다르다 느껴지게 자기 전공에 관심이 많고 열정적인 편이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전공이던 학생들이 눈 반짝이면서 얘기하던 장면들 기억에 남아 있다. 

회화, 조소 전공 학생들이 비슷하게 그러던 경우도. 지난 학기에 비대면이라 토론을 대신하는 작문을 

매시간 쓰게 했는데 그러면서 더 잘 보이던 것이 이것이기도 했다. 물론 '날라리' 학생들도 있다. 아무말이나 

아무렇게나 하는. 그런데 그렇지 않고, 레이저처럼 집중하는.... 자기가 택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그런 방향으로 쓰기 좋게 토픽들을 주었다) 집중하면서 생각하는 글들을 쓰는 예술 전공 학생들이 있었다. 


신입생 시절에 이미, 음대 학생이라면 가령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 스타일과 카라얀의 지휘 스타일에 대해 

(클래식에 조금만 관심 있어도 알게 될, 알고 있을 사항이긴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걸 자기 문제로 여기면서 생각하는 건 또 어나더 레벨 아닌가?) 비교하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데, 그에 비해  


영문과 학생이 

버지니아 울프와 캐서린 맨스필드를 비교한다거나, 

... 국문과 학생이 

박완서와 오정희를 탐구한다거나 

같은 일은 드물지 않은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음대 학생들의 이런 에너지도 모두 낭비되지. 

미대 학생들의 에너지는 말할 것도 없고. 2학년만 되어도 모두가 자조하기 시작한다. 

레슨만 해도 먹고는 산다... 고 이제 더는 무엇도 중요하지 않아진 사람처럼 말할 수 있게 된다. : 이런 생각도 했었다. 


하워드 구달의 음악이야기. audible에서 무료 타이틀로 나온 책인데 

........ 이것이 음악 전공자가 만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의 최고 모범 사례로 

여기는 이들이 이미 천지빼까리. 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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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웨스트팔이 쓴 뉴튼 전기에서 

뉴튼의 연금술 주제로 얘기 시작할 때 꽤 긴 각주가 있다. 

이 전기는 80년에 나왔는데 90년대 이후 나왔다면 훨씬 짧게 쓰였을 거 같은 각주. 

내용도 달라졌을 거 같은 각주. 뉴튼이 연금술을 깊이 연구했던 것은 사실이고 깊이 연구했을 뿐 아니라 

오래 연구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러니 뉴튼 전기가 그 사실을 피해갈 수는 없는데 그러나 나는 이 주제에 영원히 

불편함을 느끼며 안할 수 있다면 안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임을 분명히 밝히어야 하겠고 그건 이 이질적 사유 세계를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어..... 


같은 내용의 각주. 이젠 

학자들의 연구 주제도 pc의 대상인 거 같다. 

그 주제가 이미 사회적 지위, 위신이 확립된 주제가 아니라면 

"이질적 사유 세계 alien world of thought" 이런 말 쓸 수 없는 거 같다. 문과충 ㅎㅎㅎㅎ 이 물리학이나 뭐 뇌과학에 

"이질적 사유 세계"라 부를 수는 있어도 서구 백인 남자가 인도 사상이나 연금술, 그리고 기타 비슷한 주제들에, 이제는 더는 저런 말을 아무 불편함 없이 하지는 못하게 된 거 같다. 


2018년에 나왔다는 위의 책 <연금술사 뉴튼> 앞부분 조금 보면서 

그렇다는 눈치가 채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쨌든 pc와 무관하게 (아닌가, 유관하게, 그것도 아주 유관하게인가?)

연금술은 이제 복권된 거 같다. 과학사의 중요한 주제가 된지는 이미 오래인 거 같고 

연금술의 안정화(?), 표준화(?), 부르주아의 사려깊은 욕망의 대상(?) 



연금술사 뉴튼. 

책은 사고 싶은데 4만 7천원. 

여보세요. 거기 헌책... 없. 

헌책은 아직 없다. 아마 오래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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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마음에 드는 로티의 이 책.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서평 에세이가 여기 있다. 


이런 문단이 있다. 

"마르크스를 말하면 비슷하게 어깨를 으쓱하고 말 뿐인 영어권 지식인들이 많다. 

대개 그들은 젊었을 때 마르크스를 열심히 공부한 적 없는 이들이다. 그리고 지금 그 공부를 시작할 

생각도 없는 이들이다. 나도 여기 속한다. 40세 근방이 될 때까지, 나는 <자본>과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리처드슨의 <파멜라>를 이젠 (내년 여름 전까지, 늦게 잡아도) 끝낼 거라는 단호한 결심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인생의 짧음에 대한, 중년에 흔히 하게 되는 자각을 나도 하게 되면서, 나는 이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작별을 고했다. (....)" 


이런 문장들. 

이런 게 백인 남자 지식인의 문장 아니냐 예로 들어도 될 문장 아닌가. 


똑같은 경험이 있다 해도 

백인 여자도, 흑인 남자도, 아마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그러니까 지적인 삶의 캥거루라서? 오천년 단일민족이라서?... 하튼 누구나 이런 문장 써도 되고 

누가 쓰든 이상하지 않고, 그럴 거 같다....) 어쨌든 백인 남자라서 훨씬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종류의 "무심함 + 자기탐닉"이 여기 있는 거 같다. 


그러니까 흑인이면 남자여도 

다름 아니라 정신의 삶에서까지, 일찌감치 족쇄에 채워지고 시작하는 거 같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 흑인엔 (적어도 이 맥락에서는), 베트남인, 한인, 파키스탄인 등도 포함되겠지. 


지난 여름이 두고 간 맥주. 

지난 여름을 기억하며 마시는 맥주. 

어찌하여 바로 얼마 전까지 "연초"였다가 오늘은 "연말"로 향하는 것 같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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