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 사람은: 버트란드 러셀. 존 메이너드 케인스. 리튼 스트래치. 


비트겐슈타인 전기 읽으면 

러셀도 다시 보게 되지만 케인스도 다시 보게 된다. 

케인스는 1차 대전 참전 중이던 비트겐슈타인에게 "지금쯤 넌 아주 편리하게도 적의 포로가 되어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멍하고도 걱정없는 상태일 거라 예상한다"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서 그를 분개하게 했다. 저 내용은 정확한 건 아닌데 (찾아서 정확하게 쓰려니 아이고 어떻게 다 뒤적여 찾아내나 막막하다) 어쨌든 저런 느낌이고, 레이 몽크가 이렇게 그의 편지에서 인용하는 문장에 자기 논평을 달기도 한다. "이런 것이 비트겐슈타인과 상대할 때 케인스의 특징이었다. 그의 진정한 내적 삶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경박하게 농담한다..."  


케인스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그럼에도 그에게 (그가 요청한다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었다. 


그 도움을 주는 방식이 또한 인상적인데 

레이 몽크에 따르면: "이것이 케인스의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가장 상부와 접촉하기." 

러시아에 가고 싶어하던 비트겐슈타인이 러시아에 입국조차가 어려울 거 같아져서 케인스에게 연락하자 

러시아 대사와 바로 연결시켜준다던가. 


아 이거정말. 케인스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이었을까. 

진심 궁금해지던 부분. 


블룸스베리 그룹에서 중요 멤버였고 그러니 버지니아 울프와 바네사 벨이 남긴 기록들에 

케인스가 중요하게 자주 등장한다. 거기서 보던 케인스와 비트겐슈타인 전기에서 보는 케인스가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뭐 당연하다 한 사람이 상대에 따라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는가) 같은 사람인데 

케인스도 그와 가까웠던 모든 이들에게 은총이었던 사람이었겠다고 알아보인다. 알아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를 실은 얼마나 좋아했던 것일까도, 그러니까 "싫어하면서" 좋아했을까도 알거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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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인물.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이고 연인이었던 프랜시스 스키너. 

이 관계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놀라운 기록이 있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 

연인이기도 했나는 분명치 않은데, 30년대 후반에 비트겐슈타인이 노르웨이 섬에서 

(그는 이십대이던 13년에 노르웨이 섬에 갔었고 이제 중년의 나이로 또 노르웨이 섬에) 

지내던 동안 스키너가 방문하고 이 때 둘이 연인이었다(섹스했다)는 기록은 비트겐슈타인의 일기와 

스키너의 편지로 전해진다. 


스키너는 극히 명석했지만 그리고 진지했지만 ("진지하다 serious" 이게 또 비트겐슈타인적 미덕이라고 한다) 

동시에 아이같이 순진하고 소박하고 어쩌면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도 서른이 되기 전에 요절하는데 

그가 죽고 나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가 그에게 썼던 편지들을 전부 찾아내 없앴다. (사실 나는 이것도 

좀 놀랍다. 스키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그 편지들에 그들이 나누었던 삶에 대한 무슨 얘기가 있든 

고인이 된 사람의 공간에서 자기가 고인에게 쓴 편지들을 다 찾아내고 파괴한다... 이거 좀 잠시 멈춰 생각할 부분). 


이들 관계는 비트겐슈타인이 압도적으로 우위인 관계였다. 

레이 몽크가 그렇게 보일 것을 경계하면서 말을 가리면서 쓴 것 같음에도 

이건 비트겐슈타인이 수시로 "가스라이팅"하던 관계라고 외치는 페이지들이 이어진다.  

스키너는 솜사탕같이 달콤하게 느껴졌을 수많은 편지들을 비트겐슈타인에게 썼다. 

오늘도 당신을 생각했어요. 당신이 내 삶의 일부에요. 당신과 보냈던 시간들이 날 행복하게 해요. 

(......) 저렇게 옮길 때 전혀 담기지 않는 심쿵하는 해맑음... 있다. 아니 여기 Call Me by Your Name 이 있네. 이탈리아 그 하늘의 해맑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의.... 육체들. 



하여튼 앞에 적은 놀라움이 뭐냐면 

노르웨이 섬에서 두 사람이 같이 열흘의 "밀월" 같았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스키너가 영국으로 돌아간 다음. 비트겐슈타인은 일기에 


"그(스키너)가 지금 죽는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다면 내 "folly"도 사라지게 된다"고 쓰는데 

이 극히 자기중심적 사고가 가혹하다 느껴졌는지 옆에 덧붙인다. "물론 이건 반만 진심이다." 



이것도 멈춰서 오래 생각해 볼 부분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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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페르미가 노벨상 수상하면서 페르미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 없이 도피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스톡홀름을 거쳐 뉴욕에 도착했다. "우리는 페르미 일가 미국 지부를 창설했다"고 페르미는 농담했다."


<원자탄 만들기>에서 리처드 로즈가 페르미 가족 위의 사진에 붙인 주석이 

대략 저런 내용이다. 이탈리아 인들이다보니 "패밀리" 이 말 좀 다르게 들린다. 


책이 재미있어서 자꾸 보게 되는데 (이거 말고 더 급한 일들이 있는데도) 

페르미 등장하는 부분은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뉴트론이 핵분열의 열쇠일 것임을 밝히는 것에.... 라 대강 이해되는 내용 다음) 

"페르미는 준비되어 있었다. 만일 이탈리아가 물리학의 중심이었다면 그는 실험실 운영과 관련한 

세밀한 계획을 미리 짜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페르미를 맞았던 이탈리아 물리학은

폼페이처럼 말라붙고 쓸쓸한 폐허였다. 그는 청소부터 해야 했고 그리고 시작해야 했다." 


그를 맞았던 이탈리아 물리학은 폐허였다.

이 말이 왜 웃긴지. 클클클클. 자꾸 웃게 되었다.

한국 물리학도 비유해 주시죠.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벌써 8월 7일. 

이 한 해도 몇 달 남지 않았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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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탄 만들기>는 닐스 보어가 쓴 글에서도 적지 않은 인용을 한다. 

보어는 글도 꽤 많이 남겼다. 인용하는 글 중 1960년의 강연 원고, The Unity of Human Knowledge, 제목의  

글이 있어서 찾아보았는데 


"철학에 반대한다" (스티븐 와인버그) 

"철학은 죽었다" (스티븐 호킹) 

"철학은 이제 필요 없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 


위와 같은 요즘 물리학자들의 철학 적대 성향과 정반대 성향을 보여주는 글. 

현대 물리학이 우리에게 알게 한 건,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우리가 더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러니 우리는 신비주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비주의와 실용주의의 가교로서 시를 탐구할 수도 있겠고.... 


같은 말씀 하신다. 

Lost in Math. 자비네 호센펠더가 18년에 출간한 이 책. 물리학이 수학의 과잉으로 

오래 정체했고 이 늪에서 나갈 길은 철학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주장 하는 책. 

"지금 물리학의 곤경은 실은 철학적 가려움이다 (philosophical itches). 이 불편함은 

철학이 해결해야 한다" : 이런 문장이 결말로 향해가면서 나오기도 한다. 보어의 글들엔 "철학의 과잉"이 

있을 거 같고 그게 기대가 되므로 나는 보어가 저자인 책들을 앞으로 사모으기로 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의 전기도 사두었었다. 

보어의 전기가 이미 있다. 뉴튼의 전기도 있지 참. 아인슈타인은 2종이 있다. 

철학자들의 전기도 고루 사두었다. 데카르트 전기. (형이 거기서 왜 나와. 같은). 

데카르트 전기만 있을 뿐이랴. 흄 전기도 있다. 니체는 전기만 한 5종 정도 있지 않나. 더 될 수도 있다. 

쇼펜하우어 당연히 있고 키에르케고르도 아마 1종 이상 있다. 아도르노도 2종의 전기. 사실 이 중 데카르트와 

흄의 전기는.... 뭔가 각별히 더 부담된다. 꼭 읽어야 해? 이들보다는 스피노자가 더 읽고 싶다. 


그런데 철학자의 전기 중 흥미진진하다... 느꼈던 전기는 없었던 거 같다. 

아도르노의 2종 전기는, 아니 이걸 이렇게도 재미없게 쓰시네........... 같은 반응을 자극하는 대목들이 

둘 다에 넘쳐 났었다. 아니 이걸 이렇게 쓰시면 아도르노를 직접 읽지 누가 전기를 읽는담. 지루하기만 하고. 


철학자의 전기를 쓰는 전기작가들 중에 

그 철학자의 삶과 저술에서 끝없이 영감을 받는다, 그런 전기작가가 드물기 때문 아닐까는 생각이 지금 든다. 

과학자의 전기를 쓰는 전기작가들 중에는 그러지 않는 전기작가가 드문 반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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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천국보다 낯선> 느낌 사진 속의 인물들은 

(좌) 로버트 오펜하이머, (우) 어니스트 로렌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물리학과에서 동료였다.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 위대한 실험 물리학자. 두 사람은 극히 다르기도 했지만 극히 비슷하기도 했고 

아주 가깝게 지냈다. 두 사람은 같이 버클리 캠퍼스에서 "위대한 미국 물리학"을 시작한다. 


<원자탄 만들기> 참 재미있는 책이다. 

물리학 얘기 많이 나오는데 심지어 그 중에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이 책에 담긴 물리학은 진짜 물리학 맞다고, 물리학자가 보증한다고 어느 물리학자가 쓴 걸 보기도 했는데 (학부 역사학 전공이 다인 역사 전문 저자가 전문적인 현대 물리학 내용을 얼마나 잘 다룰 수 있을까 다들 의심이 들겠으니 저런 보증 필요하다) 저자가 물리학을 직접 공부하면서 깊이 이해하고 썼겠다 생각이 든다. 얕게 대강 알면서 이것저것 기존 문헌들에서 오려내 짜맞춘 느낌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니 와중, 저자 자신이 깊이 흥미를 느꼈을 대목들이 있고 그 '흥미로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오펜하이머를 괴롭혔던 악령들. 그것들이 무엇이었나. 

그의 고통은 그의 물리학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했고 멈추게 했는가. 

그는 어떻게 파멸하는가. (....) 등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주 빠져들게 쓴다. 


좋은 책일 걸로 예상은 했는데 

예상을 훨씬 넘어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생, 세계가 이 책 이후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같은 말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아직 1/5도 읽지 않은 지점이지만) 생각한다. 뭔가 내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거 같은 책이라는 예감(무려..... 예감!)도 든다. 




<천국보다 낯선> 포스터 이미지는 이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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