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제2의 맥주 마시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페이퍼를 거의 다 끝냈는데 거의 다가 아니라 아예 다 끝낸 후에나 마시려던 맥주를 

내일이면 아예 다 끝나겠음을 알겠으니 오늘 마시기로 했다. 페이퍼 끝나는 날만 맥주 마신다. 

이게 강력한 유혹이 되려면 맥주 마시기가 지고의 쾌락이어야 할 텐데, 19년을 지나면서 그게 그렇지가 않게 되었다. 술보다 잠. 술보다 잠이 더 좋은 이상한 세계로 진입했다. 


그렇다고 술이 싫은 건 아니고 

어쩌면 나도 스트라빈스키처럼 80대까지 술을 즐길 수도 있겠고 (이거 기억했으니 이제 계속 사무칠 것이다. 80대까지 스카치 위스키를 즐겼다던 그 사람. 케네디가 백악관 초청했을 때, 79세? 매우 노령이었음에도 혼자 홀짝 홀짝 만취하게 마셔서 거의 결례였다더라던 그 사람) 만일 그런다면 술이 전처럼 강한 유혹이 되는 세계에 재진입할 수도. 




하여튼. 올해 1월의 발견들.  

몇 달 전 syo님께서 비밀댓글로 알려주신 사이트가 있다. 

기원은 러시아 과학자들이 결성한 모임에서 만든 사이트라든가 하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은 곳. 

library genesis project로 시작했다던가. 아무튼 그런 곳인데, 그러니까 그들이 만든 저작권 무법지대? 

세상에 나왔던 모든 책들의 전자책 버전들을 드립니다..... 사이트. 


몇 달 전 syo님께서 알려주신 사이트인데 왜 이제야 "발견"한 것이냐 하면 

당시에 잘, 제대로, 찾을(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들이 아마 어둠의 경로에 속하기 때문이어서인지 

주소가 고정된 게 아닌 듯했다. 그 왜 토렌트라는 것도,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 안되던 1인이던 나님이라서

..... 아 여기 이거 알면 좋을 거 같은데 대체 가긴 어떻게 가는겨? 좌절하다 포기함. 


그리고 며칠 전 재발견했고 이번엔 안정적으로 제대로 쓰고 있다. 

그리고 엄청난 곳임을 실감하는 중이다. 러시아 과학자들 결성 모임 기원설 기억하면서 

러시아에 호의적이 되기도 한다. pdf로 여러 책들 받아서 보고 있는데, 도덕적 거리낌 같은 것은 들지 않는다. 

나중에 들 수도. 지금은 아니고, 이 곳이 무료 이용 세계 전자책 도서관 총본산 같은 곳이 되기를 기원하는 중. 





유튜브가 추천했던 이 동영상 보고 나서 

이 채널 업로드 영상들 거의 정주행했다.

유튜브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이런 생각 들었다. 유튜브 없이 어디서 내가 이걸 보겠는가. 

어렸을 때 동네 냇가에서, 잡아온 물고기 담아 둘 작은 웅덩이를 물 옆 모래 파서 만든 다음 그 작은 웅덩이 

가장자리에 돌멩이 놓아서 동그랗게 경계 만들고 잡아온 물고기 그 웅덩이에 담아 놓고 들여다보던 일.   

그런 게 참으로 재미있고 신비롭고 그랬다. 그런가 하면 화덕에 나뭇가지로 불 때던 일. 이것도 나는 참으로 

재미있고 신비롭고 그래서 어디서든 불 땔 일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 자청했다. 누가 딴 사람이 할까봐 얼른 달려 나가서 불 땔 권리 획득함. 80년대엔 불 땔 일이 많았다. (....) 당신도 비슷했다면 당신도 이 채널을 정신없이 보고 있게 될 것입니드. 






철학이 바둑같은 고급(고차원) 취미에 불과하게 된다면. 

그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들던 채널. 그런다면 비로소 철학이 '창조적 정신들의 공화국' 같은 게 되는 거 아니냐

생각도 들던 채널. 우파 자유지상주의자였던 내가 왜 좌파(거의 정통 맑스주의자)로 전향했는가. 이런 얘기를 운영자가 굉장히 진지하게 하기도 한다. 청년인데 청년이 ㅎㅎㅎㅎ (동년배가.....)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한다는 게 극히 신선하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던 채널. 듣고 있으면 나도 동지를 찾은 거 같아지는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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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빈스키는 장수했다. 89세에 타계. 

담배와 술을 평생 즐겼음에도 장수했다. 


스트라빈스키 강좌 들으면서 

가장 굵게 밑줄 그은 게 저 사실인 거 같음.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셨으며 그게 80대까지 지속되었던 습관임에도 

그럼에도 그는 죽기 전 짧게 앓았던 걸 제외하면 건강했고 89세까지 살았다. 그 자신은 

100세까지 살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평생 새로움의 시도에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70대에도 작곡가로서 성공적으로 자기 갱신했다. 70대의 그의 음악이 이전 그의 음악과 비교해 

조금도 딸리지 않음은 물론 더욱 새롭고 실험적이다. 이것도 굵게 밑줄 그었던 사실. 그가 그럴 수 있게 

도움을 준 두 인물이 있었다. 50대 중반 미국으로 온 그는 재혼을 하게 되는데 재혼한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음악에 열광하며 그를 찾아왔던 줄리어드 음대 졸업생 로버트 크래프트. 그의 비서/조수이고 음악적 동료로 30여년을 함께 할 로버트 크래프트. 그의 생 후반에서, 그의 실험과 자기 재발명. 이건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의 생 후반에서 이들 세 사람은 어디든 동행했고 무엇에든 협력했다. 


어디에든 동행했고 무엇에든 협력했다. 

이런 구절도 참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한다.

예전이라면 (삼십대의 나라면) 별생각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사실 어떤 위업인가 아는 거 같다. 그 세 사람 모두에게. 




19-20세기에 위대한 음악가들 다수가 러시아 출신이다 보니 

러시아 음악사에 대해 교수가 하게 되는 얘기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음악사는 반드시 문화사, 사회사, 심지어 정치사이기도 해서 

다수 비음악인들이 인용되고 거론되기도 한다. 서구인들에게 러시아는 어떤 미스테리인가. 이게 그 자체로 

다수 문헌을 생산한 주제이기도 한데, 이 주제에 대해 거들었던 한 인물은 (영국의 문화사학자? 이름을 놓친 인물...) 

"러시아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러시아를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직 여러 달라지는 수준의 무지가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안다는 건 불가능하고 오직 여러 수준의 무지가 있을 뿐. 

.................. 이것도 밑줄 그었던 대목. 


그런데 스트라빈스키 음악은 

과연 러시아의 무엇이 (러시아 출신들이 갖는 감수성의 무엇이) 이런 새로움이 되는 거냐고 

궁금해지게 만들지 않나 한다. 그의 음악 일부를 들려주고 나서 "너 이제 이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너 강의 후에 바로 나가서 음반 살 것임을 내가 알고 있다" 이런 말을 교수가 굉장히 웃기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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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베르크가 말러에게 쓴, 그를 몰라보았음에 용서를 구하는 편지. 전문을 보려면 어디로. 

그들의 편지는 어떤 책으로 나왔나 검색하면서 알게 된 Shoenberg in Words 시리즈.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구스타프 말러에게 쓴 편지는 따로 묶이지 않았는데 (말러가 일찍 죽으면서 편지의 양이 많지 않아서?) 알마 말러에게 쓴 편지는 따로 묶였고 440 페이지 정도 분량이다. 구스타프에게 쓴 편지들은 





여기 실림. 

이 둘을 합하면 천 페이지 정도 되고 

이 둘 외에 작곡가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것이 천 페이지 정도 분량이어서 

지금까지 출간된 편지 양이 약 이천 페이지. (시리즈는 완료되지 않은 거 같다. 책들이 16년부터 19년까지 최근 출간되었다). 


후대의 독자에게 (전문 연구자가 아니어도) 

읽을 이유와 가치가 있는 편지들을 단 한 번인 생에서 이만큼 많이 쓴다는 게 

여기 정말, 엄청난 무엇이 있다는 생각 다시 든다. 


이런 서한집 출간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출판부. 그게 뭘 말하냐도 정말 

엄청난 거 아니냐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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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0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도르노는 음악학자이기도 했고, 작곡가이기도 했고 

피아노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는 듯한데, 철학 저술들에서 음악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아도르노가 자기만족이나 허영심에서 쓰는 저자가 아니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철학 논의를 할 때, 그 사안에 (그것에만) 충실하다는 것. 이게 당연한 거 같아도 이 미덕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저자는 

사실 소수다 못해 희귀한 쪽이지 않나 한다. 거의 대부분의 저자들이, 내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이것도 알고 있다 방향으로 자기 주제를 이탈하면서 수시로 어떻게든 가는 거 같다. 


아무튼 그러한 아도르노가 음악 책을 쓰면 

........... 기절하게 어려운 책을 썼던 거 같음. 

대학원 시절 도서관에서 위의 책을 대출하는데 

도서관 창구에 근무하던 학부생 조교가 "오 말러다! I love him!" 활짝 웃으면서 반색하던 거 기억함. 

말러는 인기 작곡가인 것이다. 로스코가 인기 화가인 것처럼. 


지금 다시 본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첫줄부터 읽을 수 없었던 거 같다. 왜 그, 들어볼까 해서 다가간 웨이트인데 

들리지 않음. 미동도 하지 않음. 그런 웨이트. 




죽음을 기다리던, 죽음 앞의 며칠 동안에도 

말러는 평생 그랬듯이 철학 책을 읽었다고 한다. 

책을 들고 있을 힘이 없으니 두세 장 찢어내어 페이지로 들고 읽었다. 

그리고 자기 없이 살아갈 쇤베르크를 걱정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누가 그를 이 세상의 "mob"으로부터 보호하지? 


아내 알마 말러는 그와 결혼하면서 작곡을 포기해야 했고 

(구스타프 정도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알마의 재능도 비범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들의 결혼은 불행한 결혼이었다. 구스타프 말러는 극히 깊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재혼도 하고 오랜 세월을 살게 되는 알마 말러가 그 오랜 세월 거의 내내 

그를 원망했다고 하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순수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게 자기를 중심에 두는 건 아니었다. 자기 음악을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 음악이 그에게 가장 중요했다." 


말러. 사람으로도 극히 흥미로운 사람일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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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증언>. 

이 책 얼마 전 도착해서 

당장 이것만 읽고 싶어도 어쩌다 조금씩 천천히 읽고 있는 처지인데 

책 앞에 실린, 그와의 우정을 회고하는 솔로몬 볼코프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는 쓸쓸하고 동시에 조롱하는 듯한 ("wry" 이 단어가 쓰인다) 미소를 짓더니 

칼 맑스의 전기 영화 영화 음악을 작곡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들로 책상을 톡톡톡톡 치기 시작했다." 


왜 웃긴지 모르겠으나 매우 웃겼던 대목. 

wry grin. 이 구절도 자체로 웃겼다. 쇼스타코비치는 음악하는 "너드"였을 것인데 

너드들의 wry grin. 그가 그의 본성에 반하여 (하고 안하고에 생사가 걸린.......) 하고 있는 

칼 맑스 전기 영화 음악 작곡. 


로버트 그린버그는 

쇼스타코비치를 깊이 사랑하는 듯해서 

(음악학자로서 그는 여러 음악가들의 전문가라고 소개되던데 

쇼스타코비치가 그 음악가들에 속할 거 같다. 가장 깊이 연구한 건 베토벤인 듯하고) 


(.....) 지금 이 곡을 이렇게 부분 절단해 들려주는 건 범죄에 속해. 

게르니카를 왼쪽 하단 손바닥만큼만 보고 보았다고 착각하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겠지. 

우리의 형식 상 이럴 수밖에 없으니 이만큼만 듣는 걸 견디도록 하자. 하지만 너는 이 곡을 전부 

들어야 한다. 이 강의가 끝나면 꼭 음반을 구입해라.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들어라. 

이 음악은 너의 삶을 바꿀 것이다. (.....) 


저런 말을 한다. 

"이 음악은 너의 삶을 바꿀 것이다." 이 한 문장에는 그의 삶 전부에서 합한 한숨이 들어간 거 같기도 했다. 

말이란 얼마나 제한된 수단이냐. 내가 지금 너에게 이 말밖에 하지 못함은 얼마나 애석하냐. 



강의들이 음악사에서 거인들 중에서도 거인들만 모은 강의들이다보니 

전부 (아 예외도 있다. 아직까지는 한 사람인데, 하이든. 전혀 신동이나 천재가 아니었다는. 

대기만성형이었다는. 독실한 천주교도여서 "나는 곡이 안 써지면 묵주기도를 해. 묵주 기도 하면서 

방을 몇 바퀴 돌면 곡이 써지기 시작해..."라 말했다는 하이든....)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들이다. 


쇼스타코비치에게도 

초능력에 속할 여러 천재적 면모들이 있었다. 

그가 St. Petersburg 음악원 다닐 때, 그를 가르쳤던 스승이 그보다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천재였고 

해서 제자 쇼스타코비치를 잘 이해했는데, 이 스승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해서 


"그의 성취는 일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일어났다. He made progress not by the day but by the hour"고 

그 스승의 스승이 탄복하며 말했다고 


그린버그 교수가 전해 줌. "일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진보함. 이것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럴 수도 있구나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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