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로 중요한 성장의 경험을 하다" 대략 이런 의미로 쓰이는 영어 표현이 있는데  

cut one's teeth on --.  


<계몽의 변증법>이 내게 철학을 알게 했다. 

저런 말을 하고 싶다면 I cut my philosophical teeth on Dialectic of Enlightenment. 이렇게 해볼 수 있. 



그런데 실제로 좀 그렇다. 07년 1월에 (거의 정확히 15년전) 이 책 구입했다고 아마존 구입 기록이 알려주는데, 이 책 정말 최고였다. 세상엔 이런 책이 있구나. 책이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의 경이감. 영어판엔 69년 신판 서문, 이탈리아어판 서문, 44년/47년판 서문, 이렇게 서문 여럿이 앞에 있고 그 서문들 통과한 다음 본문으로 가게 되는데 서문들도 아주 그냥 ;;;; 오. 오오. 인데 이들 다음 나오는 그 유명한 첫문장. "사유의 진보로서 계몽은 인간을 공포에서 해방시키고 주인이 되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계몽된 세계에서 재난이 승리를 구가한다." 



아도르노 책들도 하나씩 워드 파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계몽의 변증법> 저 첫 두 문장, 느닷없이 충격적이던 이 문장 놓고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이 책이 재난을 말하는 걸 보고 내가 생각했던 재난으로 책 세 권은 쓰겠네, 심정 되었었다. 



요즘 그의 책들 보면, "쓸데없이 고퀄" 이 말 생각난다. 

악마적 객관 정신이 지적 에너지를 비틀고 고사시키는 이 시대 이곳에서 ㅎㅎㅎㅎㅎ 아도르노 식으로 쓸데없이 고퀄, 진짜 너무 좋음. 막 살아나는 느낌도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과학의 진보. 그것은 

우리가 몰랐다는 걸 알게 되는 일." 


평범하고 하나마나한 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바슐라르 과학철학 안에 놓고 보면 좀 심오해지는 말이 아닌가 하게 된다. 어디선가 그는 

"과학사를 읽으며 비이성과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데, 그에게 인간이 무얼 "몰랐다" 이건 거의 도덕적 퇴보, 타락. 해서 개혁의 대상. 조상이 몰랐던 것에 후대가 느껴야 할 책임. 바슐라르 과학철학의 이런 면모를 미셸 세르가 '극혐'했다. 나는 너무 좋음. 비이성과 마주칠 때 양심의 가책.......... 이 말 너무 심오하다고 거의 눈물을 흘리며 감동, 감탄. 


과학적 합리성의 면모로 그가 강조하는 하나가 "discursivity"다. 

저렇게 명사형으로는 거의 쓰지 않고 (두세 번 정도?) 형용사 형으로 (discursif. discursive) 아주 많이 쓰신다. 이 단어를 그의 책에서 처음 접하면, 난데없게 느껴진다. "담론(언설)에 관한" -->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게 이런 의미를 적용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여기서 discursive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 나만 그랬던 게 아니구나 했던 게, <새로운 과학 정신> 영어 번역 보면 저 단어를 debatable로 번역하기도 하고,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 저 책의 역자 또한 깊이 어리둥절. 




저 단어로 그가 말하고자 한 건 

합리성의 미완의 성격, 그리고 진행의 성격. 

즉각적인 것, 최종적인 것의 정반대의 성격. 

우리는 단번에, 최종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식은 미완이고 진행 중이다. 


저 면모들을 특히 강조하는 어휘이지만 그와 함께 합리성의 대화적 성격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합리성, 그리고 인간의 인식 행위를 바슐라르가 말하는 "discursive"의 의미에서 이해할 때, 거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지 않나, 여기 구원이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생각했다. 


특히 당신이 선빵에 지쳤다면. 

혹은 당신이 거의 늘 혼자라면, 당신의 생각을 언제나 이어가기 위하여. ;;;;;;; 하튼 바슐라르의 "discursivity" 이것엔, 잘 용서하기와 잘 이끌기의 미덕이 담겨 있지 않나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튜브에 이 분 채널이 있는 걸 며칠 전 알았다. 

강의 중독 초기에 알았던 교수. 말 속도가 빠르고 그런데 강의 내내 주제에 대한 집중을 잃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던 분. 채널에 다수 강의들이 올라와 있다. 오늘 아침엔 니체 주제 이 강의 들었는데 7:10 지점에서 이런 말을 한다. 


"<즐거운 학문>엔 이런 단장이 있어. "신비주의적 해명은 심오하다고 여겨진다.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얕지도 않다. Mystical explanations are thought to be profound. In fact, they are not even superficial." 전율을 일으키는 말이다.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한 줄 문장에 속할 것이다. 이 말이 가한 충격으로 서구의 신학 도서관 전체가 무너졌다고 해도 된다." 



......... 조용히, 감사히, 들었다. 

영어 이미 잘하신다면 이 분 채널 확인해 보시면 좋겠고 

아니라면 영어 공부를 이 분 채널로. 이 분 영어 오나전 이것이 지식인 영어.... ㅎㅎㅎㅎ 좀 그렇습니다. 


시카고 대학 학부, 콜럼비아 대학 박사, 프린스턴 교수. 이러셨던 분이라 

그러니까 이력이 화려한 편인데, 그리고 강의를 들어보면 이력이야 어떻든 "지적 재능" 이것이 비범한 분이었을 것인데 

그러나 철학에 별 기여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 그걸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 이런 분도, 이런 강의를 남기신 분도 실제로 철학, 인문학에 남긴 기여는 없.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2-01-25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려 들어 가게 만드는 능력!
말의 속도 만큼 스스로 호흡을 적절하게 조절 하는 능력 까지! ㅎㅎ

몰리 2022-01-26 11:53   좋아요 1 | URL
어떻게 저렇게 다 기억을 할 수 있나도 놀랍!
니체 한 사람만 강의한 거라면 몰라도 강의 범위가 저렇게 넓은데 누구 주제로 뭘 말하든 흔들림이 없어요. (한숨....)
 



요즘 산 책 중 이것도 있다. 독일에서 위의 시기 동안 이론이 어떻게 저항하는 삶을 이끌었는가, 이런 내용. 표지 마음에 들고 제목도 마음에 들고 .... 했는데 책은, 읽은 몇 페이지 한정해서, 별로. ㅎㅎㅎㅎㅎ 별로임. 저자의 역량이 약하다. 뭔가 좀 '기회주의'적. 팔리게 쓰겠다.... 는 심정이 그에게 있었다고 느껴진다. 그 심정에 따라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따지고. 그게 아예 없으면서 지성의 에너지가 압도하는 책. 그런 책이 좋은 책 아닙니까. 아도르노의 책. 바슐라르의 책. 니체의 책. 저자 자신 자각하면서, 의도적으로 (정말 작정하고 "팔리는 책을 쓰겠어") 그랬을 거 같지는 않고, 요즘 책을 쓰는 모두가 그러는 그 방식으로 썼을 뿐인 거 같기도 하지만 하튼, 독자로서는 '에이 아도르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책이라면 아도르노처럼 쓰셨다면 좋았을 것을.....' 



저자는 젊고 (40대 중반, 후반?) 

그러니 위의 저 연대에서 마지막 몇 년 제외하고 저자 자신의 삶에서 회고하는 내용이 들어갈 만한 책은 아니다.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도입부를 보면 저 연대 동안 독일 출판계에서 주어캄프와 함께 이론서로 유명했던 출판사, 그 출판사를 운영했던 이들의 삶, 그들의 삶에서 이론이 했던 역할에 대한 얘기가 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저자의 삶과 연결해서 쓴다. 자기가 왜 그 출판사에 관심이 있었는가. 등등. 그렇다 보니, 저자의 회고록으로도 보이게 되던 느낌. 사실 저자는, 자기 회고록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아도르노가 <문학노트>에서 소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이 서로에게서, 스스로에게서, 분열되게 하는 이 사회에 대해, 인간이 인간에게 수수께끼가 되게 하는 객관적 힘들에 대해" 소설은 파고 들 수 있다고 하는데, 그가 그렇게 말하던 시대엔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우리의 지금 이 시대는, 소설보다 회고록이 저것을 하기에 적합한 장르가 아닌가, 하게 되기도 한다. "악마적 객관 정신" 이것의 탐구. 


악마적 객관 정신. demonic objective spirit. ㅎㅎㅎㅎㅎㅎ 이거 헤겔적 용어. 아도르노가 자주 쓰십니다. ㅡㄱ게 뭐죠? 하다가 계속 접하다 보니 서서히 나도 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 많이 사고 있다. 

살 때는 오 이거, 이거 사야해. 이것도 사야지. 이것도! 이러다가 

책 박스가 도착하면 그냥 밀어두고 (안에 뭐가 있는지 아니까...) 이틀 뒤에 열어보면서, 그러면서 부지런히 사고 있다. 


연초에 이런 결심 했었다. 

올해 연말에, 아도르노와 바슐라르가 나눈 가상의 대화... 를 써야겠다고 작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런 작정이 가능해지면 올해는 너에게 최고의 해일 것이다. 

매일 저녁이 되면, 저 목표를 위해 오늘은 무엇을 했나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대화를 위해 오늘 네가 한 일은 무엇인가. 


아직까지는 그들의 대화를 위해 매일 무얼 하고 있기는 하다. 

아주 그냥 두 사람 책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 생각해 보니, 사실 이건 아주 너무 매우 좋은 일이 아닌가. 모니터에서 좌우, 심지어 등 뒤, 어딜 봐도 두 사람의 책들이 보인다는 건. 



그랜드 심연 호텔. 

아도르노가 어떤 강의록에서 '방향이 근원적으로 틀렸으나 장엄하게 틀린 책, 틀림과 무관하게도 장엄한 책, 역사 철학의 위대한 시도' 정도로, 비꼬는 게 아니고 사실 굉장한 상찬으로 루카치 <소설의 이론> 얘기를 꺼내더니 "이제 이 책의 재판이 나왔으니 여러분 모두 이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그가 이 책 서두에서 나를 강하게 공격한 걸 알고 있지만 권합니다. 이 책에서 그의 성취와 나에 대한 그의 혹평 사이에 관계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저런 말을 하는데, 웃기기도 했고 뭔가 감동적이기도 했다. 

리처드 로티 책들 감탄하면서 읽다가 아도르노를 읽으면, 가장 감탄스러울 때의 로티라 해도 아도르노와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지 ("child's play", 헤겔이 좋아했던 거 같은 구절...), 같은 생각 든다. 



연말, 12월 27일 즈음 서재에 나타나 "허허허 제가 말입니다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를 끝냈...!" 

.... 럴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오늘 서재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