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리집이 최고야! - 세계우수창작동화 100선 16
토니 매덕스 지음 / 예지현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낡고 비좁은 자기집이 사실은 세상에서 최고라는 걸 깨닫게 되는 아기새의 이야기. 줄거리만 보자면, 여러 그림책이나 동화에서 이미 익숙하게 다루어진 내용이라 그리 흥미가 동하지는 않았다. (사실 많이 다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아기곰을 주인공으로 한 이런 내용의 그림책이 또 한 권 집에 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동안 편안한 느낌이었다. 별달리 기교를 부리지 않은 일러스트와 아이들이 보기쉽게 커다란 글씨로 쓰여진 본문, 그리고 읽어주기 딱 좋은 서너줄의 문장..., 그림과 글이 편안하고 걸맞게 어우러져 있어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흠이라면, 편안하게 느껴지는 만큼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부분도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익숙한 동화 전질 속의 한 권처럼 오래 보았던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느낌으로, 이미 이런 줄거리의 그림책을 읽어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용의, 즉 우리집의 소중함과 포근함을 주제로 한 그림책이 없다면 이웃 아이엄마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권해줄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스카는 친구가 필요해 - 꿈꾸는 나무 10
멕 루터포드 그림, 존 스팀슨 글, 김현진 옮김 / 삼성출판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만 4~6세용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번씩 책을 빌려보는 곳에서 우리 아이에게 이 책을 대여해줬다. 우리 아이는 만 3세이다. 글자가 많지 않고 주인공도 귀여운 아기곰들이라 읽을 만 하다고 생각했으나 내용을 보니 읽어주기에는 아직 이른 책이었다.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있는 이 책은, 친구를 필요로 하고 또 다른 무엇보다도 친구와 노는 것이 즐거운 시기에 읽을 만한 책이다. '친구'라는 개념보다 '나'라는 것이, 내 고집과 주장, 내가 원하는 것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아이의 시기에는 같이 읽어주고 얘기해줘도 별 공감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공감이 없으면 재미도 없는 법. 이 책을 읽으며,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시기와 눈높이에 맞춰 책을 고르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 일렀지만, 자신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서로 비교해 생각해볼 수 있을 6~7세의 아이라면 실생활과 연관지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이 불었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0
팻 허친즈 지음, 박현철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티치'의 작가인 팻 허친즈의 그림책이라, 구입하기 전에 어느 정도 성향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생각보다는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사람들의 소지품들이 허공에 날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바람이 불어, 아이의 연과 빨래줄에 걸린 빨래와 코를 풀던 손수건과 가발과 신문과 풍선과 깃발과...,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소지품들이 하늘로 날아가버린다. 그것을 쫒아가는 사람들. 바람은 그 물건들을 허공에서 한참 갖고 놀다가 어느 순간 휙 바다로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허공에서 떠돌던 그 물건들은 뒤죽박죽으로 얽혀 사람들의 머리위로 후두둑 쏟아져내린다. 짓궂은 바람, 그러나 이 바람은 무섭고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장난꾸러기 꼬마아이처럼 귀엽고 친근한 바람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이 책에서 줄거리보다는 이미지와 느낌을 전해주려 한 것 같다. '바람이 분다'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겐 다만 그뿐인 것 같아 좀 시시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래서 어쨌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까지 했다.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심심했던 책. 한 마디로 싱겁게 조리된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던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아닌 그녀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떴다. 나는 한양대 사회교육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슬쩍 눈을 뜨고는 마치 안 졸았던 사람처럼 태연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미 시외로 빠져나온 뒤라 그런지 승객도 별로 없이 한산하다. 맞은편에 구경하기 좋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말 심하게 입을 벌리고 자는 여자, 게다가 고개까지 뒤로 젖히고 있다. 그 여자는 자다가 한번씩 깨어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주위 시선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세번째 건너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여자. 무릎을 건너 건너서 시선을 옮겨갔던지라, 그녀의 얼굴을 보기 전에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스포츠센터 가방이었다. 가방끈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낡고 닳았지만, 재질과 디자인은 제법 세련된 가방으로 스포츠센터에 출입하던 누군가의 것이었으랴 싶었다.

  원래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었으리라 추측하는 것은, 그 가방을 품에 안고 있는 여자의 차림새가 노숙자의 모양새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청색 낡은 점퍼에 짤막한 검은색 바지, 거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통굽신발, 그리고 손질하지 않은 긴 머리카락과 화장기 전혀 없는 부스스한 얼굴은 그녀가 노숙자이든 아니든간에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울타리에 속한 사람임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아니었다. 고개를 꺾고 입도 벌리면서 자는 여자는 ‘우리’ 중 하나인지라 사람들이 친근하게 웃었지만, 그녀는 우리의 범주가 아니었다. 그녀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몸을 반대쪽으로 밀착시켜 그녀의 몸에 닿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고, 다른 승객들 역시 그녀를 쳐다보거나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둥근 동그라미가 그녀 주변에 둘러쳐져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녀를 한번씩 건너다보았다. 그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의식하지 않는다면 굳이 바라보지 않으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도 나를 한번씩 건너다보았다. 별 것 아닌 그저 무심한 눈빛의 교환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이 어느 정도의 연대감이나 최소한의 위안이라도 줄 수 있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과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정류장을 더 스쳤을 무렵, 할머니 한 분이 아이를 데리고 올라탔다. 나는 자리를 양보하고 바로 맞은편인 그녀 앞으로 가서 섰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녀에게서는 노숙자들에게서 흔히 풍기는 그런 냄새도 나고 있었다. 그녀 옆자리에 앉았던 세련된 중년 여자는 문 쪽에 자리가 나자 부리나케 그 자리로 몸을 옮겼고, 이제 그녀 옆자리엔 친구 사이인 듯 보이는 두 여자가 서로 몸을 꼭 붙여 앉아있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만약 이 허름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되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다면 이 속에 끼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노숙자 세계에도, 부자들의 세계에도 끼이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어 어쩌면 지금보다 더 초라하고 외로워질 것이다.  


  내릴 때가 가까워져 왔다. 나는 여전히 표정 없는 그녀를 일별하고 전철 밖으로 나왔다. 상큼한 봄바람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털어준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역 밖으로 나와 자전거 주차장으로 향했다. 전철역에서 집까지는 자전거로 15분. 산들바람을 만끽하면서 천천히 패달을 밟는다. 이제 허름한 그녀는 내 머리 속에 사라지고 없다. 내가 그녀에게 잠시나마 가졌던 관심은 그녀의 삶에 어떤 참견도 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질 뿐이라는 것을, 내 삶 속에 그녀를 들여놓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질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무표정한 눈빛이 변하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녀는 내 얄팍한 선심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왜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저 지저분한 것이 싫어서? 아니면 내 삶도 버거운데 남의 버거운 삶까지 관여하는 것이 싫어서?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표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를 벗어난 이의 표정을 갖고 있었던 그녀. 어쩌면 나는 그녀가 아니라 그 표정이, 우리의 숨은 얼굴일 수도 있는 그 표정이 두려운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매애’로 하나 된 우리! 

  “아기 낳은 임산부들은 모두 평등하기도 하지. 잘 살든 못 살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나이가 몇 살씩 차이날지언정 서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뒤뚱거리며 아파하고 또 똑같이 아기를 보고 경이로와하면서 우리는 마치 자매들처럼 우애로운 관계가 된다.”

  2001년 3월 29일의 일기 중 한 부분이다. 나는 3월 25일에 아기를 낳았는데 수술을 했던지라 며칠간을 병원에서 지냈다. 이 일기는 퇴원하기 전날 병원 로비에 앉아 쓴 것인데, 푸른 하늘에 따뜻한 햇볕이 로비에 가득 쏟아지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기가 태어나고 내가 애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감격스럽다기보다 신기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병원 생활 역시 내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남들처럼 무통주사도 맞고 누워있었지만 나는 얼굴이나 손발도 거의 붓지 않았고 몸도 가벼운 편이었다. 이틀째부턴 병원 안을 곧잘 돌아다니면서 다른 산모들을 기웃거리곤 했다. 똑같이 화장기 없는 부스스한 얼굴, 배도 볼록 나오고 펑펑한 옷을 입고, 아파서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다닌다. “마치 펭귄 같아.” 속으로 생각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 펭귄 부대 속의 한 마리 펭귄이었고, 그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편안한 자매애였다. 우리는 하나였고 모두 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월드컵 때 ‘오! 대한민국’을 외치던 길거리 행진보다도 더 진했고 동질스러웠다.

  “가슴 멍울이 아직도 너무나 아파요.”

  “어머나, 그래요? 그럼 그럴 땐 이렇게 해 보세요...”

  “여기 딸기 좀 드세요. 엄마가 사 오셨는데...”

  “아니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요? 신랑 기다려요?”


  그 즈음의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정겹게 하나가 되었던 병실 생활이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주치의 선생님에게 인사를 못했다는 것이다. 내 주치의 선생님은 여의사였는데, 진찰을 받으러 병원에 늘 같이 다니던 애아빠도 나도 그 분이 임신 중이란 사실을 몰랐다. 나이도 있고 또 워낙 몸집이 있는 분이라 그저 배가 나온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병실에 오시는 선생님이 바뀌어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애를 낳고 병실에 누워계신다고 했다. 그 분은 나보다 며칠 뒤에 애를 낳았다. 그런 줄 알았다면 나는 진찰실에 애아빠를 대동하지도, 의사 선생님께 이런저런 엄살 섞인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사차, 문안차 병실 앞에 갔는데 가족들이 있으니 나중에 오라고 수간호사가 말한다. 데면데면하지 못한 탓에 몇번 서성거리다가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같은 임산부였다는 사실보다는 의사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아마도 더 무겁게 느껴졌었나 보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쾌하고 즐거운 펭귄부대의 한 대원으로 끼워넣을 수도 있었을 것을.

 

  어쨌거나 이때의 병실 생활은 ‘우리’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게 기억할 만한 시간이었다. ‘나’를 떠나 ‘우리’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고 친자매 사이를 떠나 더욱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자매애’란 것에 대해 그때 처음으로 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보다 농도는 옅을지언정, 또한 여성으로서 제한적일지언정 나는 이제 그 자매애로 아래층 윗층 아이엄마들을 만나고 있다. 똑같이 아이를 키우고 또 똑같이 나이들어감을 서로 위로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동질의 고민과 희망 속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waho 2004-04-2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첫 애 임신 중인데 님의 글 읽으니 왠지 좋네요. 같은 경험을 공유해서인지 요즘은 산후 조리원이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아주 친해지더군요. 님의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