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돌을 앞두고 있을 때 산 책. 지금이 26개월이니 일년도 더 전에 산 책이다. 우리 아이 이 책 너무 좋아한다. 다른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질리지도 않은지 계속 본다. 두 돌이 넘은 지금까지도 가끔씩 이 책을 읽어달라고 들고 오곤 한다. 표지도 두껍고 책 크기도 커서 저에겐 좀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도 이처럼 좋아하는 걸 보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잘 만든 책인 것 같다.이 책은 운동, 감성, 생활, 놀이, 언어 발달영역이라는 다섯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뒷부분에 나오는 놀이 발달영역과 언어 발달영역은 인지능력이 그만큼 따라와야 되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잘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 잘 본다. 사고 나서 이처럼 대만족인 책은 또 없었다. 아이가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이지만. 그림도 크고 선명하고, 이야기의 가락도 읽어주기 좋게 리듬을 타고 있다. 여기저기 찢어져 기워붙인 지국이 있는 이 책. 아이가 읽어달라고 가져올 땐 좀 지겨운 생각도 들지만 정겹고 좋은 책, 잘 만든 책이다.
기차, 자동차, 자전거 등 탈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산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정보는 따로 없었지만 여기 실린 독자서평이 대체로 괜찮길래 믿고 샀다. 책이 도착한 이후 아이는 이 책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사고 나서 후회할 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입장에서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흐름이 뒤로 갈수록 다소 단조롭고 억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ㄱㄴㄷ...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뭐랄까, '기차는 간다'라는 한 문장에 엄청 많은 수식어와 부사가 매달려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괜찮은 책이다. 그림도 예쁘고 이 책의 기획의도도 잘 살렸다고 생각된다. 이야기를 읽어줄 때 조금 밋밋해지는 부분은 엄마의 재량으로 살을 붙여 읽어준다면 좋을 것이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에겐 추천할 만한 책. (우리 아이는 지금 26개월이지만 좀 더 어린 아이에게 보여줘도 좋을 듯)
읽으면서는 보글보글 거품 일어나듯 생각이 끓어오르다가도 다 읽고나면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나는 그런 책이 있다. 말을 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 지 막막해지는.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정말로 할 말이 없거나 나와 동떨어진 얘기여서가 아니라(그럴 때는 오히려 할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읽고있는 동안에 소화가 다 되어 그걸 새롭게 되새김질 하려 하니 도무지 쉽지 않은 까닭이다.이 책은 소위 잘 나가는, 이력이 화려한(영문학 박사에 여성학 석사) 페미니스트 여성 저자의 에세이이다. <세계를 놀이터 삼아> 라는 제목이 저자의 삶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아래 부제로 단 '여자답게 살 것인가, 여자로 살 것인가'라는 문장이 저자가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그것, 즉 자신의 페니미즘적 주장을 자신이 유학중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로써 풀어놓았다. 일반인에게 거부감을 먼저 일으키기 쉬운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그녀의 책에서 이토록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솔직담백한 글솜씨 영향도 있겠지만, 그녀가 그 단어를 하나의 주장이나 논리가 아닌 생활로써 이해하고 풀어놓았기 때문이다.86년에 시작된 유학생활부터,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세계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닌 그녀의 행적이 재미도 있거니와 세계와 나(혹은 나와 타자)를 잇는 시선이 날카롭고 명쾌하여, 읽으면서 느끼는 기쁨이 컸다. 솔직하되 경박하지 않은 품위있는 글솜씨로 저자는 자칫 산만하게 늘어져버릴 수도 있을 주제를 끝까지 재미있게 이끌어나가고 있었다.이 책에 대한 소감은 나로서는 아주 사적이며 동시에 아주 공적인 것이었다. 주제는 공공연히 논의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세세한 속이야기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이 책을 덮고나니, 속이야기 나눠 할 수 있는 새로운 친구가 생긴 듯 하여 마음이 뿌듯해져온다.
<나는 이혼한다>라는, 결혼해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자못 불순하게까지 느껴지는 제목의 이 책을 남편 몰래 감춰놓고 한 장씩 읽었다. 감춰놨다기보다는 눈에 띌 장소에 일부러 놓지는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실소가 나왔지만 이 책으로 인해 마치 내가 이혼을 상상해보거나 혹은 염두에 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비치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눈치채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결혼한 이들에게 '이혼'이란 말은 그만큼 금기시되는 단어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 말만큼은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하다하다 안 되어서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하게 되는, 말 그대로 불가피한 방법이기에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이혼'이라는 단어에 대해 더욱 무관심해지려 하는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같이 사는 혼자되기를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책 서문에서는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되거나 혹은 독신을 선언해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같이 사나 혼자 사나 결국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므로, 아니 그보다 삶이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므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같이 사는 삶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면 혼자 사는 삶 역시 그렇지 못할 것임이 자명하다. '같이'나 '홀로'는 삶을 위한 부수적인 조건일 뿐, 문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각이며 책임감일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그러한 내 생각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만 전제했다시피 이 책에서 제안한 여러 가지 방법이나 충고는 실제로 혼자 살고 있거나 그러기를 결심한 이들만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결혼해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혼자살기'를 너무 육체적인 의미로만 해석했달까. 종종 원론적이고 불필요한 설명처럼 느껴졌던 부분들은 저자가 너무 친절하고 자상한 탓이었다. 저자는 혼자살기의 장점을 나열하고 그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밤이 무섭거나 도둑이 두렵거나 혹은 담판에서 이겨야만 할 때는 이러이러하게 행동하고 말하라는 식으로. 혼자살기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이러한 말들로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혼자살기를 선택해 그렇게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조금 맥풀려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이 책이 마치 이혼이나 혼자살기의 옹호서와도 같은 성격을 띄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직도 이혼에 대한 편견이 심하게 자리잡고 있는 (즉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고'처럼 부닥치는 일이라는, 따라서 불행하거나 적어도 불운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사는 일 자체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사회적인 활동 면에서 좀 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조금은 느긋하게 스스로의 상황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여성의 정신적, 신체적 독립이 아직은 요원한 시점에서 첫 걸음마를 위한 이러한 책이 다소간의 도움은 될 수 있겠다.
오래 전부터 막역히 알고 지내던 스님 한 분이 이 책을 권해주셨을 때만 해도 나는 그저 그런 책이겠거니 했다. '평화로움'이라는 제목부터가 전혀 색다르게 보이지 않은 데다 스님이 권해주시는 책이니 아마도 좋은 명상서적쯤 되리라 생각했던 게다. '네, 읽어볼께요' 대답만 시원스레 하곤 몇 달을 그냥 보냈다. 왜 선뜻 그 책을 찾으러 서점에 가지 않았는지? 아마도 흔하게 쏟아져나오는 명상서적들의 그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글귀들에 좀 싫증이 나 있던 탓이었나 보다. 이 책을 집어든 건 일부러 권해주신 스님께 미안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책이 있었다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나는 점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자주 웃기도 했다. 이 책은 머리로 읽어 이해하라고 있는 책이 아니었다. 머리를 써서 읽을 만큼 어려운 말도 없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너무도 일상적인 일들을 적어놓고 있는 것이다. 모든 명상서적들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으라 하지만,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보통 마음가짐으로 명상에 도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이 편안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화로워지기'란 얼마나 쉬운가. 또 얼마나 아름답고 부드러운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겉표지에 찍혀있는 이 선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웃는 얼굴이 마치 바로 옆에 있는 양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듣는다 해도 전혀 낯설지 않았으리라. 책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이 책을 권해준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스님 덕에 어렵게 만나게 된 이 책. 이 속에 담긴 소박하고 따뜻한 말들은 베트남과 한국, 혹은 이곳과 저곳의 거리를 그대로 뚫고 들어와 내게 들어왔다. 살아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기쁨인가. 저자인 베트남 선사 '틱냩한'은 고국에서의 평화운동으로 미운 털이 박혀 귀국을 금지당하고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그렇게 떠돌면서 강연한 글들을 모아 엮어놓은 것이다. 의식주가 초라해도 인간의 정신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었다. 저자가 전해주는 감동에 번역자의 노력도 한 몫 했는데, 단순하고 깔끔한 문장들이 거침없이 수월하게 읽혀 사고의 흐름을 막지 않는다. 좋은 저자에 좋은 번역자, 그리고 좋은 글. '평화로움'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