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움 : BEING PEACE
틱낫한 지음, 강옥구 옮김 / 장경각 / 199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부터 막역히 알고 지내던 스님 한 분이 이 책을 권해주셨을 때만 해도 나는 그저 그런 책이겠거니 했다. '평화로움'이라는 제목부터가 전혀 색다르게 보이지 않은 데다 스님이 권해주시는 책이니 아마도 좋은 명상서적쯤 되리라 생각했던 게다. '네, 읽어볼께요' 대답만 시원스레 하곤 몇 달을 그냥 보냈다. 왜 선뜻 그 책을 찾으러 서점에 가지 않았는지? 아마도 흔하게 쏟아져나오는 명상서적들의 그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글귀들에 좀 싫증이 나 있던 탓이었나 보다. 이 책을 집어든 건 일부러 권해주신 스님께 미안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책이 있었다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나는 점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자주 웃기도 했다. 이 책은 머리로 읽어 이해하라고 있는 책이 아니었다. 머리를 써서 읽을 만큼 어려운 말도 없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너무도 일상적인 일들을 적어놓고 있는 것이다. 모든 명상서적들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으라 하지만,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보통 마음가짐으로 명상에 도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이 편안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화로워지기'란 얼마나 쉬운가. 또 얼마나 아름답고 부드러운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겉표지에 찍혀있는 이 선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웃는 얼굴이 마치 바로 옆에 있는 양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듣는다 해도 전혀 낯설지 않았으리라. 책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이 책을 권해준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스님 덕에 어렵게 만나게 된 이 책. 이 속에 담긴 소박하고 따뜻한 말들은 베트남과 한국, 혹은 이곳과 저곳의 거리를 그대로 뚫고 들어와 내게 들어왔다. 살아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기쁨인가.

저자인 베트남 선사 '틱냩한'은 고국에서의 평화운동으로 미운 털이 박혀 귀국을 금지당하고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그렇게 떠돌면서 강연한 글들을 모아 엮어놓은 것이다. 의식주가 초라해도 인간의 정신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었다. 저자가 전해주는 감동에 번역자의 노력도 한 몫 했는데, 단순하고 깔끔한 문장들이 거침없이 수월하게 읽혀 사고의 흐름을 막지 않는다. 좋은 저자에 좋은 번역자, 그리고 좋은 글. '평화로움'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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