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한다
게일 래드클리프 외 지음, 김예숙 옮김 / 다해출판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이혼한다>라는, 결혼해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자못 불순하게까지 느껴지는 제목의 이 책을 남편 몰래 감춰놓고 한 장씩 읽었다. 감춰놨다기보다는 눈에 띌 장소에 일부러 놓지는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실소가 나왔지만 이 책으로 인해 마치 내가 이혼을 상상해보거나 혹은 염두에 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비치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눈치채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결혼한 이들에게 '이혼'이란 말은 그만큼 금기시되는 단어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 말만큼은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하다하다 안 되어서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하게 되는, 말 그대로 불가피한 방법이기에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이혼'이라는 단어에 대해 더욱 무관심해지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같이 사는 혼자되기를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책 서문에서는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되거나 혹은 독신을 선언해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같이 사나 혼자 사나 결국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므로, 아니 그보다 삶이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므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같이 사는 삶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면 혼자 사는 삶 역시 그렇지 못할 것임이 자명하다. '같이'나 '홀로'는 삶을 위한 부수적인 조건일 뿐, 문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각이며 책임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내 생각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만 전제했다시피 이 책에서 제안한 여러 가지 방법이나 충고는 실제로 혼자 살고 있거나 그러기를 결심한 이들만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결혼해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혼자살기'를 너무 육체적인 의미로만 해석했달까. 종종 원론적이고 불필요한 설명처럼 느껴졌던 부분들은 저자가 너무 친절하고 자상한 탓이었다. 저자는 혼자살기의 장점을 나열하고 그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밤이 무섭거나 도둑이 두렵거나 혹은 담판에서 이겨야만 할 때는 이러이러하게 행동하고 말하라는 식으로. 혼자살기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이러한 말들로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혼자살기를 선택해 그렇게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조금 맥풀려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마치 이혼이나 혼자살기의 옹호서와도 같은 성격을 띄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직도 이혼에 대한 편견이 심하게 자리잡고 있는 (즉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고'처럼 부닥치는 일이라는, 따라서 불행하거나 적어도 불운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사는 일 자체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사회적인 활동 면에서 좀 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조금은 느긋하게 스스로의 상황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여성의 정신적, 신체적 독립이 아직은 요원한 시점에서 첫 걸음마를 위한 이러한 책이 다소간의 도움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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