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한다>라는, 결혼해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자못 불순하게까지 느껴지는 제목의 이 책을 남편 몰래 감춰놓고 한 장씩 읽었다. 감춰놨다기보다는 눈에 띌 장소에 일부러 놓지는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실소가 나왔지만 이 책으로 인해 마치 내가 이혼을 상상해보거나 혹은 염두에 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비치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눈치채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결혼한 이들에게 '이혼'이란 말은 그만큼 금기시되는 단어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 말만큼은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하다하다 안 되어서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하게 되는, 말 그대로 불가피한 방법이기에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이혼'이라는 단어에 대해 더욱 무관심해지려 하는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같이 사는 혼자되기를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책 서문에서는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되거나 혹은 독신을 선언해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같이 사나 혼자 사나 결국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므로, 아니 그보다 삶이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므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같이 사는 삶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면 혼자 사는 삶 역시 그렇지 못할 것임이 자명하다. '같이'나 '홀로'는 삶을 위한 부수적인 조건일 뿐, 문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각이며 책임감일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그러한 내 생각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만 전제했다시피 이 책에서 제안한 여러 가지 방법이나 충고는 실제로 혼자 살고 있거나 그러기를 결심한 이들만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결혼해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혼자살기'를 너무 육체적인 의미로만 해석했달까. 종종 원론적이고 불필요한 설명처럼 느껴졌던 부분들은 저자가 너무 친절하고 자상한 탓이었다. 저자는 혼자살기의 장점을 나열하고 그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밤이 무섭거나 도둑이 두렵거나 혹은 담판에서 이겨야만 할 때는 이러이러하게 행동하고 말하라는 식으로. 혼자살기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이러한 말들로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혼자살기를 선택해 그렇게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조금 맥풀려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이 책이 마치 이혼이나 혼자살기의 옹호서와도 같은 성격을 띄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직도 이혼에 대한 편견이 심하게 자리잡고 있는 (즉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고'처럼 부닥치는 일이라는, 따라서 불행하거나 적어도 불운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사는 일 자체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사회적인 활동 면에서 좀 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조금은 느긋하게 스스로의 상황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여성의 정신적, 신체적 독립이 아직은 요원한 시점에서 첫 걸음마를 위한 이러한 책이 다소간의 도움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