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 우크라이나 민화 내 친구는 그림책
에우게니 M.라쵸프 그림, 배은경 옮김 / 한림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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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크라이나 민화'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장갑'이라는 소재도 그렇고 '민화'라는 데서 오는 독특함도 있을 것 같아 구입했으나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구입한 다른 독자들이 주로 칭찬을 거듭했으므로, 나는 서운한 점들을 주로 말하려 한다.

줄거리 자체는 흥미를 끌 만 하다. 눈이 쌓인 숲 속에 할아버지가 장갑 한 짝을 떨어뜨리자, 여러 동물들이 차례로 찾아와 그 장갑을 집으로 삼는다. 장갑 안으로 들어오는 동물들의 몸집이 점점 커지면서 처음에 그냥 보통 장갑이었던 그 장갑은 사다리도 생기도 창문도 생기며 굴뚝도, 현관도 생긴다. 그리고 비좁아지다 못해 나중에는 옆구리의 실밥이 터지기까지 한다.

나름대로 상황 설정의 재미도 있고, 장갑의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도 있고, 등장하는 동물들을 덩치나 특성 등으로 비교하는 재미도 있는데 내겐 이 동화책이 마음에 딱 감기지 않았다. 글쎄, 돌고도는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동물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져 다 읽어보기도 전에 '아, 그거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동화의 '원형'과도 같아서였을까. 나는 이 책을 보고서야 우리집에 이렇게 동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그림책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로 칙칙한 색감에, 페이지마다 장갑 색깔이나 바탕의 배경색이 묘하게 달라 시각적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배경색이 시간의 흐름을 짐작케 하기 위한 배려였다면 좀 더 일관성있는 흐름을 타고 변화되어야 했을 것이다. 특히 내겐 맨 마지막 장의 그림이 유독 거슬렸는데, 앞 장과 뒷 장의 변화가 아무런 설명없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전 페이지에서는 곰이 구부정하게 뒷집을 지고 선 채 장갑 속으로 들어가길 청하고 있는데, 바로 다음장은 숲 속에 장갑 한 짝이 떨어져 있는 처음 시작의 그림으로 돌아가 있다. 본문의 그 긴박하고 극적인 전환이 달랑 이 그림 한 장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장갑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숲속을 걸어가던 할아버지는 장갑 한 짝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어요. 즉시 찾으러 되돌아왔습니다. 강아지가 먼저 뛰어갔습니다. 계속해서 뛰어가자 장갑이 떨어져 있었어요. 장갑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멍,멍,멍' 짖었어요. 모두 깜짝 놀라서 이 장갑에서 기어나와 숲 속 여기저기로 달아났어요.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장갑을 주워갔습니다.' (본문 마지막 장)

이렇게 본문의 마지막 장을 몽땅 옮긴 것은, 이 글 아래 조그맣게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억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의 여러 페이지들보다 훨씬 긴박하고 흥미로운 이 마지막 장의 이야기가 달랑(!) 이 썰렁한 그림 하나로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림책은 그림이 반, 글이 반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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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 조끼야 비룡소의 그림동화 24
나까에 요시오 글, 우에노 노리코 그림,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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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그림, 글, 책의 장정 등이 모두 마음에 드는 그림책이다. '그건 내 조끼야' 라는 귀여운 발언을 제목으로 삼은 것도, 겉의 표지와 마찬가지로 내지도 쑥색 테를 둘러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림을 부각시킨 점도, 오른편엔 그림을 넣고 왼편엔 글을 넣어 눈에 쏙 들어오게 한 점도 볼 때마다 흡족하다. 그림책 바탕 색감으로선 좀 어둡다 싶게 느껴졌던 쑥색이 이렇게 훌륭한 바탕색이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귀여운 줄거리! 특히 맨 마지막 조그만 그림 속에서 코끼리가 생쥐를 그네 태워주는 장면이 압권이다. 생각도 좋지, 길게 늘어진 조끼로 그네 태워줄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조끼를 빌려있는 동물들의 몸집이 점점 커지는 것도 재밌고 '조금 끼나?' 말하는 표정도 귀엽다.

우리 아인 처음엔 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생쥐가 조끼를 빌려주는 게 싫었던가 보았다. 다른 동물들이 곁에 와서 '나도 한번 입어보자' 하면 우리 아인 싫다고, 빌려주지 말라고 고집을 피웠다. '조끼 빌려주는 거 싫어?' 하면 싫댄다. 그래도 억지로 페이지를 넘기면, 생쥐 조끼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서 거의 울상이다.

그런데 다행히 이젠 그 초기의 반응을 넘어섰다. 이젠 생쥐 조끼가 늘어나도 그리 속상하지 않은가 보다. 맨 마지막에서 그 늘어진 조끼로 그네 타는 재미를 알았는지도!^^

이 책은 아이랑 즐겨 보는 그림책 중의 하나,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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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나리와 아기별 민들레 그림책 3
마해송 지음, 정유정 그림 / 길벗어린이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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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큼이나 이쁜 내용의 동화책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용의 동화책이지만 구성이나 스토리 라인이 단순해 좀 더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줘도 좋을 듯 하다.

별이 총총 반짝이는 하늘과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배경으로 바위나리 꽃과 아기별이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둘은 친구가 되어 행복하게 지내지만 별나라 임금님의 명령으로 헤어지게 되고, 서로 그리워하다가 끝내 바위나리는 지고 아기별 역시 바다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마지막 부분이 어쩌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바다 속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환히 빛나는 것은 빛을 잃었던 아기별이 다시 바다 속에서 환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란다. 꿈이나 환상 속에서의 이야기가 실제 아기별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만 같다.

특히 이 그림책은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의인화한 그림으로 바위나리와 아기별의 애틋한 마음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고 있는데, 그림만으로도 줄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어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에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화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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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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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 내엔 지나는 사람이 없고 오직 엷은 주황색 햇살만이 창살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아침공기를 들이쉬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느껴졌다. 맑고 차갑게 폐부로 들어오는 이 공기를, 오늘 할 일에 대한 쓸 데 없는 걱정과 불안으로 차단하여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숨을 쉬면서 나는 지나치게 많이 가진 사람들의 불행에 대해서 생각했다. 먹을 것도 많고 위안거리도 많고 사랑도 많고 욕심도 많고 그래서 할 일도 많은 사람들, 이들은 어느 한 가지에도 진실하게 몰두하기가 어렵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는 일이, 최소한으로 소박해지는 일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욕망과 욕심의 잔가지들을 따라 내려가면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가장 큰 소망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그 소망은 같다. 사실 누군가 이미 행복하다면 그에게 그 이상 다른 것이 무슨 필요 있을까. 이 짧은 글이 이토록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스로 행복해진 한 사람의 삶이 마치 잠언의 한 시귀절과도 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선구적으로 개척해간 이들이 흔히 그랬듯이 이 책 속의 주인공 '부피에'도 가진 것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것을 소박하다고 표현하긴 하지만 부피에의 삶은 소박하고 말고의 여지도 없는 최소한의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던 그가 어떻게 가장 커다란 소망을 이루었던가. 그리고 어떻게 그 소망을 세상으로 번지게 했던가. 그가 남들과 달랐던 것은 고독했으며, 즉 남들이 아닌 스스로의 모습과 늘 마주하고 살았으며 그 고독 속에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하나 가지고 살았다는 것 뿐이다. 그것 뿐이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조용한 새벽, 얇지만 너무도 인상적인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내게 특별히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더우기 이 책은 내가 처음 읽은 것도 아니고 이미 오래 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매일 아침의 공기가 날마다 새롭듯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내 삶이 하루 아침에야 달라질까마는 이렇게 잠시 잠깐이마나 경건해질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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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조경란 지음, 준코 야마쿠사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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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악어가 무슨 악어인가 했다. 이름이 '제이크'라니 분명 야생에서 행복하게 사는 이름없는 악어는 아니렷다. 그런데다 이 악어는 진짜 악어의 징그럽게 커다란 몸집과 꺼칠꺼칠한 감촉,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공격성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신종 애완용 악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의 삶 속에 기생하는 이 악어는 때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만큼 작으며, 때론 미키마우스처럼 귀엽고,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어질 만큼 사랑스럽기조차 하다. 가끔 애드벌룬이나 하늘의 흰구름처럼 부풀어 커질 때에도 언제나 우리에게 다정하고 친근한 모습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여러분들은 생각할 것이다. '아하, 관념 속의 악어로구나!' 맞다, 이것은 실재의 악어가 아닌 관념 속 악어이다. 의식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관념 속에 숨어있다 어느 순간 불시에 툭 튀어나오는 이 악어는 그가 지닌 현실 환기력으로 인해 그를 감지하는 사람들의 삶을 일순에 변화시킨다.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밥상 위에, 창틀 위에, 컴퓨터 모니터 위에, 손가락 반지 위에, 시선이 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살 수 있는 이 악어 제이크는 인간 삶의 모든 모호한 진실과 허상들의 표징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악어 이야기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제이크가 박쥐나 도마뱀, 혹은 개미핥기의 이름이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우리는 '제이크'라는 고유명사나 그 이름으로 통용되는 악어 이야기보다는, 그것을 보거나 그것과 맞닥뜨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쏠리기 때문이다. 자서전적인 이 책 역시 '악어 이야기'라기보다는 '조경란 이야기'라고 하는 게 내용상 더 걸맞을 것이다. 후자의 제목이 심심하다면 '악어에 올라탄 조경란 이야기'라고 하면 어떨지.

관념 속에서 나온 것을 이리저리 굴리며 갖고 노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이 만약 그런 류의 일종에 불과했다면 나는 단호하게 '제이크는 신종 애완용 악어'라고 초입에 말해버렸을 것이다. 관념이 길러낸 애완용 악어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작가 조경란이 살아온 이야기의 힘을 받고 있었다. 솔직한 그 힘 속에서 관념 속 제이크는 살아 꼬물거릴 수 있었고, '뭔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관념이 가치를 갖게 되고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재 속에서 뿐이지 않은가.

제이크라는 이름의 악어라거나 혹은 그 무엇이거나, 여전히 그것은 내게 모호한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완독에 두어시간이면 충분한 이 책을 읽고 조경란을 괜찮은 작가라고 인정해버렸다. 소설보다 더 힘든 작업이라고 여겨지는 자전적 글을 이만큼의 미적 거리를 갖고 쓰기도 쉽지 않았을 터이지만, 개인적 삶을 토해내는 과정 속에서 제이크라는 악어를 빌미로, 하나의 생각할 꼭지점을 내게 던져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로서는 제이크라는 악어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보다도 작가 조경란을 보다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소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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