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을 덮고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 내엔 지나는 사람이 없고 오직 엷은 주황색 햇살만이 창살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아침공기를 들이쉬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느껴졌다. 맑고 차갑게 폐부로 들어오는 이 공기를, 오늘 할 일에 대한 쓸 데 없는 걱정과 불안으로 차단하여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숨을 쉬면서 나는 지나치게 많이 가진 사람들의 불행에 대해서 생각했다. 먹을 것도 많고 위안거리도 많고 사랑도 많고 욕심도 많고 그래서 할 일도 많은 사람들, 이들은 어느 한 가지에도 진실하게 몰두하기가 어렵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는 일이, 최소한으로 소박해지는 일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욕망과 욕심의 잔가지들을 따라 내려가면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가장 큰 소망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그 소망은 같다. 사실 누군가 이미 행복하다면 그에게 그 이상 다른 것이 무슨 필요 있을까. 이 짧은 글이 이토록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스로 행복해진 한 사람의 삶이 마치 잠언의 한 시귀절과도 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선구적으로 개척해간 이들이 흔히 그랬듯이 이 책 속의 주인공 '부피에'도 가진 것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것을 소박하다고 표현하긴 하지만 부피에의 삶은 소박하고 말고의 여지도 없는 최소한의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던 그가 어떻게 가장 커다란 소망을 이루었던가. 그리고 어떻게 그 소망을 세상으로 번지게 했던가. 그가 남들과 달랐던 것은 고독했으며, 즉 남들이 아닌 스스로의 모습과 늘 마주하고 살았으며 그 고독 속에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하나 가지고 살았다는 것 뿐이다. 그것 뿐이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조용한 새벽, 얇지만 너무도 인상적인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내게 특별히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더우기 이 책은 내가 처음 읽은 것도 아니고 이미 오래 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매일 아침의 공기가 날마다 새롭듯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내 삶이 하루 아침에야 달라질까마는 이렇게 잠시 잠깐이마나 경건해질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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