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견 마사의 사건 일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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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이름은 마사.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며 하스미 탐정사무소에서 견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저먼셰퍼드이다. 사전적 설명으로는 일반적으로 맹견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의 성향을 그런 쪽으로만 한정지으면 굉장히 억울할 것 같다. 나는 비록 늙어 나이는 먹었지만 그 어떤 개들보다 용맹하고 주인에게 충성스런 견종이다! 예전에는 경찰견으로 한몫 했었지만 은퇴한 지도 어언 5년. 지금은 하스미 가에서 장녀 가요코, 차녀 이토코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장녀 가요코는 하스미 탐정 사무소에서 아버지를 도와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고, 이토코는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인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조그마한 소녀였던 자매들이 벌써 이렇게 성장한 것을 보면 허참,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경찰견으로 일할 때처럼 극적인 사건들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들의 사건사고를 들여다보면 아무리 나이를 먹은 나라도 무서울 때도 있고 안타까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토코가 어벙한 인간 모로오카 신야와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온 날만큼 맹견이자 충견인 내가 충격받은 사건이 또 있었던가. 고등학생인 이토코가, 내가 사랑하는 자매 중 한 명인 그녀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인간 모로오카 신야와 밤을 보내고 돌아온 날의 그 허전함이란! 아마 그녀의 아버지 하스미 탐정의 심정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토코가 자기들은 아무 일이 없었다며 믿어달란다. 모로오카 신야마저 자신들은 의문의 소녀를 발견하고 기절했을 뿐, 눈을 떠보니 그 장소가 우연찮게 러브호텔이이었을 뿐이라며 변명한다. 이에 믿음직스런 가요코가 파트너인 나를 데리고 사건 조사에 나섰다. 만약 이토코와 신야가 밤을 보낸 것이 사실이라면 마음이 무척 언짢겠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같이 참여하기로 한다. 이래뵈도 왕년에 경찰견이었던 몸!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나의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판단력은 인간들의 그것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밝혀진 진실 앞에서 이만큼 나이를 먹은 나도 결국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가요코와 나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데 그 조깅길에 우연히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마침 자주 만나는 이웃이 있어 그녀와 가요코가 경찰을 부르러 간 후 나 혼자 시체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만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었고 시체는 사라지고 말았다. 나의 부상에 분노한 가요코! 진상을 파헤치기로 결심한 그녀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저런 일이 참 많았군.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누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괴로워했지만 누군가의 백기사가 됨으로써 행복을 찾으려 했던 청년도 있었고, 갈 데 없는 분노와 불만을 말 못하는 어린 생명에게 잘못 터뜨린 어리석은 인간도 있었다. 게다가 작가라는 사람이 별 일도 아닌데 우리를 불러 일을 의뢰했었는데, 알고보니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죄책감과 관련이 있었던 사건도.

 

그러고보면 인간은 어떤 때는 흑과 백, 양쪽으로 나눌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회색지대에 머물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선과 악이 분명해 보이다가도 막상 그들의 속사정을 알고나면 측은지심이 들었던 때도 몇 번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식구와 연약한 동물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해보이는 것이라고 할까. 사악한 인간들의 그런 잘못된 행동으로 나도 친구를 하나 잃어 마음이 몹시 아픈 요즘이다. 그런 인간들은 정말 개인 나의 눈으로 봐도 한심하게만 비칠 뿐이다. 개한테까지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살짝이긴 하지만 어때, 나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가? 내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글솜씨는 천하일품이라네. 혹시라도 나의 사건해결이 더 듣고 싶거든 [경찰견 마사의 사건일지] 라는 책이 나와 있으니 한 번 읽어보면 되겠다. 소소한 일상 속에 일어난 사건들이지만, 언제라도 당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일이라는 것. 생각하면 오싹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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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4-1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확실하게 뽐뿌질을 하는 멋진 리뷰라니욧! 아이참, *^^*
 
굿모닝 에브리원
다이애나 피터프로인드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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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는 새학기가 시작되고나서 저희반 아이들과 인사를 할 때 '굿모닝' 하기로 약속했는데요,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구요. 저희반 아이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워낙 숫기가 없는 데다 아침에 영어듣기공부를 시작하니 전체가 모일 때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냥 '안녕하십니까~' 하고 들어가면 아이들도 그냥 '안녕하세요'하곤 합니다. 뭐 이제는 신학기도 4주차에 접어들었고, 그럭저럭 서먹서먹한 감정은 없어진 것 같으니까 인사를 어떻게 하든 상관은 없겠지만, 굿,모닝일 때보다 그렇지 않은 모닝일 때가 더 많은 듯도 합니다. 고3이란, 참 힘든 직업이에요. 1,2학년 때 조금이라도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면 참 좋았을텐데, 저희반 아이들은 해맑고 귀엽기는 해도 공부습관이 들어있지 않은 아이가 더 많아 요즘 야자까지 하느라 힘들어한답니다. 어헛! 학교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게 아닌데 말이죠! 굿모닝 하며 인사할 수 있는 굿, 모닝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책 제목으로까지 등장하는 게 아닐까요? 

굿, 모닝을 맞고 싶은 여자, 그녀의 이름은 베키 풀러입니다.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일찍부터 방송 일에 뛰어들었지만 아무리 10년씩이나 일한 베키라 해도 그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승진을 바라보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짤린 그녀가 맡은 프로그램은, 역시나 다 망해가던 <데이브레이크>. 뉴스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만으로도 의욕 100배인 그녀는 이 프로그램을 살리겠다면서 고군분투합니다. 발 패티쉬의 성향이 있는 듯한 남자 앵커를 단숨에 해고하고,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은 베키의 어린시절부터의 우상, 마이크 포머로이. 그러나 마이크 또한 워낙 다혈질에 괴팍한 성격이라 좋은 방송을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네요. 그런 와중에 그녀에게 접근한 꼬픈남 애덤. 뉴스 일로 정신이 없으면서도 이 애덤과의 사랑에 한 번 더 정신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 베키입니다. 

이제 곧 개봉할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런지 단 한 사람, 애덤 베넷의 얼굴만 빼고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한가닥 하셨던 해리슨 포드와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여주인공 다이안 키튼이 까칠한 앵커 역을 연기할텐데요, 그 둘이 아웅다웅하며 방송할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사랑스러운 여인 레이첼 맥아덤즈의 사랑스럽고도 천방지축인 베키 풀러 역을 어떻게 소화했을 지도 기대되구요.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의 원작이어서인지 아니면 영화를 토대로 책을 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랄까요. 책보다는 영화로 더 빛을 발할 것 같은 그런 소설입니다. 뉴스를 준비하고 진행할 때의 생동감이라거나 캐릭터의 팔딱팔딱 뛰는 생명감,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영화로 볼 때보다는 부족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웅, 봄도 오는데 달달한 로맨스에 자기 일에 의욕충만인 베키가 등장하는 영화보고 저도 기운 낼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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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름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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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소설, 스릴러 소설들을 읽다보면 작가들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자극적인 소재와 장면묘사는 물론이고,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심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니까요. 비슷한 소재여도 전개시키는 방식이나 작가가 투영하고 싶은 세상이 다르다면 어느 정도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워낙에 평범한 머리를 가진 저로서는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된 작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큰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한 [일곱 번째 이름] 이지만 초반의 내용들은 익숙하기만 했습니다. 

영국 최고의 명문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잔인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준 오케웨노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용의자 닉과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소녀 올리비아. 준의 사건은 케임브리지에서 세 번째로 일어난 살인이었습니다. 올리비아와 닉의 친구였던 아만다와 일라이저도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경찰에서 이를 연쇄살인사건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죠. 결국 준의 사건으로 연쇄살인의 단서를 잡기위해 분투하는 경찰과 기억을 잃은 올리비아를 도우려는 법의학자 매튜의 이야기, 과거의 진실이 맞물리며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닉이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상황. 하지만 현장에서 같이 발견된 올리비아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죠. 올리비아와 상담을 진행하던 매튜는 잔인했던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면서 그녀 안에 살아있는 또 다른 존재들과 직면합니다. 과연 범인은 닉일까요, 올리비아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을 또 다른 인물일까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실체. 

스릴러 소설이라기에는 전개에 극적인 긴장감과 치밀한 트릭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저 단순한 심리소설 같은 분위기랄까요. 끔찍한 시신과 장면 묘사만으로는 최고의 스릴러 소설에 오를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과거의 상황들이 사건을 자세히 알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매끄러운 전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약간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익숙한 소재, 익숙한 상황, 그리고 중후반부를 넘다보면 느껴지는 범인의 실체에 '에이'하는 분들도 계셨겠지만 저는 끝으로 갈수록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결말을 보고 싶어 좀이 쑤시면서도 보고 싶지 않아서 조마조마하기도 했다-라고 평한 소피 한나(작가)의 말에 100배 공감했답니다.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인 '다중인격'이었습니다. 책에서는 '해리성정체장애'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병은 가혹한 어린시절의 잔인한 학대가 주원인이라고 해요. 올리비아가 내보이는 메리, 헬렌, 반나, 주드, 켈리, 크리스티라는 인격들은 그녀 자체가 올리비아이기도 하지만 올리비아가 아닙니다. 사실 '올리비아'의 모습으로 있을 때조차 정말 올리비아가 맞는지 그것도 의심스러워요. 다중인격이라는 트릭을 만들어낼 정도로 잔인한 학대를 받은 올리비아의 과거는 미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접했을 익숙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늘 가슴아픈 소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만약 올리비아가 행복하고 밝은 가정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했어도 그렇게 끔찍한 자아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는 가혹한 운명의 올리비아.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된 그녀이지만, 올리비아에게 희생당한 소녀들만큼이나 가엾은 존재입니다. 

'사람'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때로는 태어날 때부터 선한 사람, 악한 사람으로 구분되어 태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 그 가능성 때문에 무서우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킨 존재 올리비아입니다. 요상하게도 사건 자체보다 그리고 희생자들보다 가해자에게 더 마음이 가게 만드는 불편한 소설이었어요. '제발 이러지마, 아닐 거야' 를 간절히 외치며 읽은, 밝은 빛 속에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잔혹 스릴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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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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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돼지돼지. 40대 남자. 핑크색 피부에 배구공 정도의 크기이며 목소리는 듣기 좋은 중저음입니다. 침착하고 다정하며 성실해서 늘 호텔 여기저기를 공처럼 굴러다니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척척 일하고 있어요. 그랜드 호텔의 버틀러(집사)로서 봉제 인형이지만 예쁜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이 있는,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입니다. -라고 하면, 여러분은 '엥?'하고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으훗. 봉제인형이 어떻게 호텔에서 일할 수 있으며 아내에 두 딸까지 있을 수 있는 거냐!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시려고 하면, 세상 곳곳에 나타나는 작은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행운을 놓칠 수가 있답니다. 이 돼지돼지씨를 만난 사람들도 처음에는 깜짝! 놀라지만, 어느 새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감사하게 되었거든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연작 단편집입니다. 기간으로 따지면 일년에 걸쳐 완성되는 이야기죠. 마지막 파트에는 앞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총출동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는, 읽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집이에요. 연극을 좋아하고 각본가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여성,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제멋대로의 여자로 보이지만 진정한 행복을 워하는 여성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가족들과 소원해져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사는 남자의 딸과 친해지기 작전, 호텔에 갇혀 원고를 써야하는 호러 작가의 이야기가 때로는 따스하면서도 때로는 코믹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이 돼지돼지씨가 굴러다닌답니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돼지돼지씨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계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 눈에는 이 돼지돼지씨가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특정한 사람 눈에만 이 돼지돼지씨가 보인다면, 그 '특정한'을 기준짓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책에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지만 위로가 필요한 사람, 행복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 그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잖아요~나쁜 사람 눈에 이 선량하고 정의로운 돼지돼지씨가 보일 리 없다! 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착하고 순수하고 폭신폭신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극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을 연기한 모습이 더 빛을 발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피해를 주는지도 모르고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에게는 이것이 옳아!'의 집념을 가진 사나이 이아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그때야말로 봉제인형인 돼지돼지씨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에 사람들이 진정한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돼지돼지씨를 만난 건 이 한 권 뿐이지만 실은 10년 이상 이어져 온 장수 시리지의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돼지돼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2011년 1월을 기준으로 벌써 12권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백화점 아르바이트 산타클로스에 형사, 심지어 호스트일 때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있는 시리즈인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돼지돼지씨의 모습이 궁금해요! 아내와는 어떻게 만났고, 그 아내도 봉제인형인지도요. 따스한 봄햇살을 연상시키는 노오란 표지와 돼지돼지씨의 순박한 얼굴로 동화책같은 느낌이 전해져온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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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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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정이 있습니다. 딸의 폭력적인 성향으로 힘들어하는 엔도 가족. 사립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지면서부터 나타난 딸의 막무가내 폭력 성향으로 엄마 마유미의 하루는 고됩니다. 언제 어디서의 말이 스위치가 되어 딸이 돌변할 지 매순간 조마조마해 하는데도, 그녀의 남편은 딸의 거친 언행에도 묵묵부답. 마유미의 가슴에는 하루하루 그늘이 쌓여갑니다. '이 아이가 정말 내가 키운 내 딸인가'. 한편 그들의 앞집에는 누가 봐도 완벽한 가정으로 보이는 다카하시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의사인 아버지, 우아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의학부에 다니는 큰아들과 유명 사립고에 다니는 딸에 어머니의 아름다운 외모를 닮은 막내아들까지, 그야말로 판타스틱 패밀리가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의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여자 고지마 사토코. 그녀의 아들은 멀리 외국에 며느리와 함께 나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아들 부부가 돌아와 자신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쎄요, 어쩌면 희망사항으로 끝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늘 시끄러웠던 엔도 가족의 집이 아니라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던 다카하시 가족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사망한 아버지. 그리고 그 가해자로 경찰에 연행된 어머니.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 편의점에서 마유미와 마주친 막내아들은 그 밤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찰은 막내아들이 아버지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고 도주했으며, 어머니가 그 죄를 뒤집어쓰려 한다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소설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가족해체의 위기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지만 점점 심각해져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근친살해와 가정폭력이 끊이지 않죠. 그만큼 우리의 관계들도 변화합니다. 닫힌 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는 가장 편안한 상태로 보여지는 고립. 서로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웃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죠. 가족들 서로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어지는 이 현상은, 현대사회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라고 치부하기에는 참 슬픈 현실입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 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결국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고 작은 상처와 부담들이 쌓여 결국은 폭발할 때까지 그저 기를 쓰고 버티기만 했을 뿐인 거죠. 가족이라 모든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음에도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말들도 있으니까요.

 

작가는 가족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다카하시 가족의 딸 히나코는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밤 친구 아유미의 집에 묵고 있었어요. 사건이 일어난 후 아유미에게 여러 번 문자를 보내지만 그녀는 답하지 않습니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고 할까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이기도 한 살인자 집안과 얽힐수록 부담은 커졌을 것이고, 그리고 무서웠으니까요. 무슨 말을 해도 히나코가 상처받을 것 같다는 말로 자신의 진심을 포장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히나코의 이모와 이모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니가 아니라 차라리 조카가 범인이기를 바라는 이모와 하루라도 빨리 히나코를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하는 이모부. 그리고 다카하시 가족의 집에 행해진 비방들은, 다카하시 가족을 상처입히는 것은 단순히 살인사건 하나가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그 모든 시선임을 나타내죠.

 

작가의 최고 인기작인 [고백] 만큼 결말이 큰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범인이 누구냐를 떠나 각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과 사람 사이, 가족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을 보듬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 지 생각은 해봐야 하니까요. 각각의 방에 들어가있지만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관람차처럼, 어두울수록 안이 더 잘 보이는 야행관람차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메세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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