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름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 스릴러 소설들을 읽다보면 작가들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자극적인 소재와 장면묘사는 물론이고,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심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니까요. 비슷한 소재여도 전개시키는 방식이나 작가가 투영하고 싶은 세상이 다르다면 어느 정도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워낙에 평범한 머리를 가진 저로서는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된 작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큰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한 [일곱 번째 이름] 이지만 초반의 내용들은 익숙하기만 했습니다. 

영국 최고의 명문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잔인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준 오케웨노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용의자 닉과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소녀 올리비아. 준의 사건은 케임브리지에서 세 번째로 일어난 살인이었습니다. 올리비아와 닉의 친구였던 아만다와 일라이저도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경찰에서 이를 연쇄살인사건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죠. 결국 준의 사건으로 연쇄살인의 단서를 잡기위해 분투하는 경찰과 기억을 잃은 올리비아를 도우려는 법의학자 매튜의 이야기, 과거의 진실이 맞물리며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닉이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상황. 하지만 현장에서 같이 발견된 올리비아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죠. 올리비아와 상담을 진행하던 매튜는 잔인했던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면서 그녀 안에 살아있는 또 다른 존재들과 직면합니다. 과연 범인은 닉일까요, 올리비아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을 또 다른 인물일까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실체. 

스릴러 소설이라기에는 전개에 극적인 긴장감과 치밀한 트릭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저 단순한 심리소설 같은 분위기랄까요. 끔찍한 시신과 장면 묘사만으로는 최고의 스릴러 소설에 오를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과거의 상황들이 사건을 자세히 알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매끄러운 전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약간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익숙한 소재, 익숙한 상황, 그리고 중후반부를 넘다보면 느껴지는 범인의 실체에 '에이'하는 분들도 계셨겠지만 저는 끝으로 갈수록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결말을 보고 싶어 좀이 쑤시면서도 보고 싶지 않아서 조마조마하기도 했다-라고 평한 소피 한나(작가)의 말에 100배 공감했답니다.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인 '다중인격'이었습니다. 책에서는 '해리성정체장애'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병은 가혹한 어린시절의 잔인한 학대가 주원인이라고 해요. 올리비아가 내보이는 메리, 헬렌, 반나, 주드, 켈리, 크리스티라는 인격들은 그녀 자체가 올리비아이기도 하지만 올리비아가 아닙니다. 사실 '올리비아'의 모습으로 있을 때조차 정말 올리비아가 맞는지 그것도 의심스러워요. 다중인격이라는 트릭을 만들어낼 정도로 잔인한 학대를 받은 올리비아의 과거는 미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접했을 익숙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늘 가슴아픈 소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만약 올리비아가 행복하고 밝은 가정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했어도 그렇게 끔찍한 자아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는 가혹한 운명의 올리비아.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된 그녀이지만, 올리비아에게 희생당한 소녀들만큼이나 가엾은 존재입니다. 

'사람'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때로는 태어날 때부터 선한 사람, 악한 사람으로 구분되어 태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 그 가능성 때문에 무서우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킨 존재 올리비아입니다. 요상하게도 사건 자체보다 그리고 희생자들보다 가해자에게 더 마음이 가게 만드는 불편한 소설이었어요. '제발 이러지마, 아닐 거야' 를 간절히 외치며 읽은, 밝은 빛 속에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잔혹 스릴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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