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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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온다 리쿠이고, 또 오랜만에 올리는 리뷰입니다. 그동안 수능과 집 수리와 이런 저런 일로 정신이 없었더니 책 읽을 시간조차 제대로 나지 않네요. 크흑. 퇴근길 지하철에서라도 붙들어보려 했으나 어느 새 지하철 좀비가 되어 있는 바람에 한 줄 읽는 것도 힘겨운 요즘입니다. 무려 3주나! 저에게 주말이 없었답니다.  이러다간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기는 것은 기본이요, 쌍코피가 터질 것 같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덧 11월 말입니다. 겨울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려는 이 계절에 '여름'이 들어간 제목은, 어쩐지 어색하면서도 이색적이에요. 여름냄새를, 맡을 수 있었거든요. 온다 여사만의 기운으로 퍼져나오는 여름 냄새를요. 거기에 온다 여사만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유감없이 전해져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약간 옛날 냄새, 고풍스러운 냄새도 나고 현실과 차단된 듯한 한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단편인 듯 하면서 단편이 아닌,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상반된 진술이 '믿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파티가 열립니다. 즐거운 듯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공기에는 딱딱한 긴장감이 스며들어 있죠. 파티의 주최자, (마치 세 마녀를 떠올리게 만드는) 세 자매.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빠져들지만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야기 속에 숨겨진 교묘한 진실, 조작된 기억. 그 한 가운데에 몇 명의 남녀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쪼콤 머리가 아팠어요. 온다 여사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미모는 반갑지만, 이번 이야기처럼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의 대부분이 모호한 결말을 맞았지만 어느 정도 추측의 여지는 남겨주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진실을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과 없었던 일을 구분하는 일은 마치 퍼즐 맞추기 같기도 한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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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그 천년의 이야기 - 상식으로 꼭 알아야
김동훈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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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상식시리즈>가 한 칸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상식시리즈>의 팬이기도 하고, 그 동안 꽤 많이 모였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오홍, 일렬로 쫙 늘어서 있는 모습이 참 괜찮더라구요  (아, 물론 저는 이 시리즈는 꾸준히 다 '읽고' 있습니다) 그 칸에 이 한 권도 보태지게 되었네요. 건축도 미술과 마찬가지로 아는 건 조금도 없지만, 역시 미술과 마찬가지로 보는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기없는 딱딱한 흙덩어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을 하나의 생명체일 테니까요. 실제로 숨을 쉬거나 움직일 수는 없지만 건물이 지니고 있을 수많은 역사와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이번 책의 제목이 건축이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마치 하나의 역사나 여행책처럼 느껴졌어요. 건축에 관해서도 몇몇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건물의 역사, 그 나라의 풍습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거든요. 건축에 관해 공부해보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집어든다면 다소 부족한 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을 기대했던 저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의 책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대마다, 나라마다 건축물에 반영된 문화적인 특성이 개성적이어서 사진이 유용한 책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물을 꼽으라면 인도의 아잔타 석굴입니다. 절벽을 따라 조성된 말굽 모양의 석굴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문처럼 생긴 수많은 굴이 나있다고 해요. 29개의 석굴 중 5개 정도의 석굴은 사원으로, 나머지 24개의 석굴은 승려들의 수련장이었습니다. 석가모니가 석굴에서 은신하고 점심 후 석굴에서 명상을 했다는 사실에서 석굴사원이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왕비를 잃은 왕이 그녀를 위해 지었다는 로맨틱한 사연이 깃들어있는 타지마할 궁전.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타지마할 역시 새삼 감동이었습니다. 그 외에 평소 꿈꿔왔던 피라미드와 앙코르와트, 올 여름 일본에 가서 보고 온 건축물 등 저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축물이 가득했습니다. 

여행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수많은 건축물과 역사가 소개되어 있는 책이에요. 지금 살고 있는 저희 집도, 천년이 지난 후에 과연 그 흔적이라도 남아있을까요?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영겁의 시간, 그 시간이 흐른 뒤에 수많은 건축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 지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어쩐지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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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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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어떤 책을 읽고 별로였던 느낌을 적은 적이 있어요. 그 글 밑에 작가의 아쉬운 덧글이 달렸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새싹을 꺾었네, 꺾었어'라며 손가락을 살포시 구부려 보이더군요.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취향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또 돈을 내고 책을 사보는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재미없는 책을 굳이 재미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 정도면 말을 순화해서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으흠. 

이 작품 역시 쉽게 읽힌다는 것, 그리고 제가 사랑해마지 않는 고양이가 등장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외의 장점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대략의 줄거리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남자주인공이 다친 마음을 치료해가며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을 생각하고 생물학적 아버지와의 연계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이에요. 그 와중에 자기집 베란다로 찾아든 고양이, 바로 사라다 햄버튼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다가, 인생의 한 발을 내딛기 위해 사라다 햄버튼의 본래 주인을 찾아준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저는 이 책이 어떻게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쪼콤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이 작가님이 쓰신 글은, 제가 일기에 쓰는 것들과 질적으로 그리 달라보이지 않거든요. 이 정도라면 제 일기도 곰방 세상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과도한 자신감이 차올라요. 뭔가 고민한 흔적들은 엿보이지만 깊이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가의 문장보다도 그가 인용한 폴 오스터 등의 문장이 확 와닿지요. 간혹 '~을 깨달았다' 등의 문장들이 보이는데, 저는 도통 주인공이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많은 책들을 읽어왔고, 또 사색도 많이 하셨지만 그것을 글로는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라다 햄버튼이 주인공에게 큰 의미였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라다 햄버튼을 전면에 내세워 제목을 짓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고 봐요. 주인공과 사라다 햄버튼을 동일시하고 싶었다면 뭔가 유사한 점이 보여야 할텐데, 저는 그런 것을 전혀 찾아내지 못했거든요. 오히려 '사라다 햄버튼'과'의 겨울'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선정의 기준이 무엇인 지 잘 모르겠으나,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문학동네라는 이름이 있어도 애써 챙겨볼 확률은 적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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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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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로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큰 기대 하지 않고 유치뽕짝한 내용이겠거니 집어들었는데, 생각지 못한 감동과 재미의 쓰나미에 휩쓸려 엄청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독자를 쥐었다 폈다 할 줄 아는 작가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한 마디로 어디를 어떻게 건드리면 사람들이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는 지 잘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현재 일본에서 방송되고 있는 동명의 드라마에도 급! 흥미가 생겼습니다.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재미는 제가 보장합니다! 팡팡! 

주인공은 세상물정 모르고 겁없는 20대의 다케 세이지입니다. 여느 평범한 젊은이처럼 그럭저럭의 대학을 나와 이런저런 회사에 입사했지만 신입연수에서 받은 회사의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석달 만에 사표를 썼죠. 어떻게든 재취업이 되겠거니 어영부영 보내는 동안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결국 프리타 생활에 들어간 세이지는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진실과 마주합니다. 어머니가 동네의 주민들로부터 2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을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그는, 새 집을 마련하기 위해 이제 전력을 다합니다. 

이 작품의 재미는 일단 캐릭터의 개성에 있어요. 완고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아내의 병을 통해 처음으로 가족을 보살피는 못난 아버지에, 괴롭힘을 당해온 사실을 가족에게 20년 동안 숨길만큼 강한 심지를 지녔지만 우울증을 앓게 된 어머니,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자기 주장이 확실하며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누나와 못난 아들에서 점차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세이지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자랑합니다. 서로 다른 성격으로 인해 초반에 인물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갈등과 위기는, 봄눈 녹듯 점점 사라져가죠. 

무엇보다 다케 세이지의 성장이 볼거리입니다. 이 회사는 나와 맞지 않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며 허세를 부리던 그는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닫고 성실한 청년으로 변모해갑니다. 어머니의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볼 줄 알게 되었고, 아버지의 완고한 모습 뒤에 숨겨진 부정, 누나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되었고, 남을 배려하는 세심한 성정까지 생겼으니 다케 세이지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겠죠. 

요즘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우울한 기분도 달랠 겸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일본드라마나 일본소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극적인 에피소드가 많지만 잠시나마 마음을 달래고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기에는 적절한 책이라고 보여집니다. 백수알바도 이렇게 자기 집을 장만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행복해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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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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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겨울, 아흔 여덟의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녹음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하트포드 집안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해서요. 약간의 거짓말과 그로 인해 빚어진 오해가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는 지, 책을 다 읽은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오싹합니다. 그러고보면 인간의 운명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또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쌓이게 된 무수한 작은 사건들, 그리고 시간의 깊이가 인생의 오묘함을 느끼게 해주네요. 이 작품은 저에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영화 <타이타닉>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는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주인공들이 옛날을 회상하며 서술하는 식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늘 깊이 빠지는 것은 아니에요. 얼마 전에 읽은 [러시안 윈터]는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시종 몰입하지는 못했거든요. 하지만 <타이타닉>과 이 [리버튼]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둘은 분위기도 비슷하고, 아련한 감동을 전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제가 아흔 여덟이 되었을 때 (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제 머리속에 남는 중요한 기억은 무엇이 될까요. 수많은 세월과 엄청난 무게의 시간들. 먼 미래의 저의 머리와 마음을 채우는 기억이 부디 후회와 고통이 되지 않기를 지금 이 순간 간절히 바라봅니다. 

줄거리는 평이해요. 생각지 못한 거짓말에서 시작된 작은 계획과 등장인물들의 엇갈린 사랑,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이야기합니다. 영화와 소설을 많이 접하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내용이겠지만, 저도 익숙하다 생각하면서도 또 끌려들어갔습니다. 쉽게 생각되어버리는 한 명의 사람과 그 사람의 인생, 삶의 시간들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거든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제가 줄거리를 말씀드리는 건 큰 의미가 없을 듯 해요. 그저 사랑 앞에서 어떻게 용기를 내야 하는 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 지, 우리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읽고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리뷰를 쓰기 전에는 할 말이 참 많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쓰기 시작하니까 도무지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요. 그저 스산한 마음을 끌어안고 서성거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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