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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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돼지돼지. 40대 남자. 핑크색 피부에 배구공 정도의 크기이며 목소리는 듣기 좋은 중저음입니다. 침착하고 다정하며 성실해서 늘 호텔 여기저기를 공처럼 굴러다니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척척 일하고 있어요. 그랜드 호텔의 버틀러(집사)로서 봉제 인형이지만 예쁜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이 있는,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입니다. -라고 하면, 여러분은 '엥?'하고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으훗. 봉제인형이 어떻게 호텔에서 일할 수 있으며 아내에 두 딸까지 있을 수 있는 거냐!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시려고 하면, 세상 곳곳에 나타나는 작은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행운을 놓칠 수가 있답니다. 이 돼지돼지씨를 만난 사람들도 처음에는 깜짝! 놀라지만, 어느 새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감사하게 되었거든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연작 단편집입니다. 기간으로 따지면 일년에 걸쳐 완성되는 이야기죠. 마지막 파트에는 앞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총출동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는, 읽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집이에요. 연극을 좋아하고 각본가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여성,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제멋대로의 여자로 보이지만 진정한 행복을 워하는 여성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가족들과 소원해져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사는 남자의 딸과 친해지기 작전, 호텔에 갇혀 원고를 써야하는 호러 작가의 이야기가 때로는 따스하면서도 때로는 코믹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이 돼지돼지씨가 굴러다닌답니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돼지돼지씨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계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 눈에는 이 돼지돼지씨가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특정한 사람 눈에만 이 돼지돼지씨가 보인다면, 그 '특정한'을 기준짓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책에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지만 위로가 필요한 사람, 행복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 그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잖아요~나쁜 사람 눈에 이 선량하고 정의로운 돼지돼지씨가 보일 리 없다! 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착하고 순수하고 폭신폭신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극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을 연기한 모습이 더 빛을 발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피해를 주는지도 모르고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에게는 이것이 옳아!'의 집념을 가진 사나이 이아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그때야말로 봉제인형인 돼지돼지씨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에 사람들이 진정한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돼지돼지씨를 만난 건 이 한 권 뿐이지만 실은 10년 이상 이어져 온 장수 시리지의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돼지돼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2011년 1월을 기준으로 벌써 12권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백화점 아르바이트 산타클로스에 형사, 심지어 호스트일 때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있는 시리즈인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돼지돼지씨의 모습이 궁금해요! 아내와는 어떻게 만났고, 그 아내도 봉제인형인지도요. 따스한 봄햇살을 연상시키는 노오란 표지와 돼지돼지씨의 순박한 얼굴로 동화책같은 느낌이 전해져온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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